글 / 둥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7월 30일 】나는 현재 유리실소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대법제자로 금년 66세이다. 법을 얻기 전에 몸에는 어깨관절염, 갈비 염증, 류머티스성 관절염, 두통, 피부병 등등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1999년 6월에 법을 얻었으며 연공을 한 후 반년 만에 온몸의 병이 다 나았다. 나는 대법이 정말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나의 변화를 보고 우리 온 가족 7명이 선후로 모두 대법을 얻어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99년 7월 20일 사악한 세력이 대법제자들을 발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선생님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잘못인가? 라고 생각하였다. 우리 부부는 공정한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선후로 5차례나 베이징에 청원하였으며,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나는 폭풍과 폭설이 함께 뒤덮인 어느 한 밤중에 붙잡혀서 불법으로 완자 노교소로 끌려가 1년간 감금되었다. 이 1년 동안 악경은 나로 하여금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시달리게 했는바, 벽을 마주 향해 서있게 하거나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작은 감방에 가두거나 쇠로 만든 의자에 앉히며 호랑이 의자에 태우거나 매달아 놓고 뜨거운 햇빛을 쬐이는 등의 혹형을 가했다. 악경이 구둣발로 나를 걷어차 오른쪽 늑골이 부러졌는데 3개월이 지나서야 나았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하나의 “믿음(信)” 자(字)에 의거해 시종일관 사악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1년 동안의 혹형과 시달림을 받아 피를 토하고 혈뇨, 각혈이 발생했으며 사람이 마르다 못해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었다. 사악들은 사람이 곧 잘못될 것 같자 책임이 두려워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의 이 한 단락의 경력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려 하고, 세상 사람들더러 장쩌민 일당이 어떻게 인성을 말살하고 잔인무도한가를 보게 하려고 한다.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고 사람을 잡아간다.
2000년 11월 5일 오후 우리 부부는 집에서 법 공부하고 있었다. 샤오퉁(小佟)은 7명의 악경을 데리고 불법으로 우리 집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캉(康) 소장이 당신들과 이야기하려고 하니 이불 짐을 싸가지고 차에 오르라”고 했다. 나는 “캉 소장의 사무실은 300미터밖에 안되는데 이불 짐은 왜 가지고 가야 하는가?”라고 묻자, “쓸데없는 말을 할 것 없이 빨리 차에 오르시오”라고 하였다. 나는 “법을 어긴 일이 없으므로 안 가겠다”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구치소에 잡아넣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일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이때 두 경찰이 다가오더니 나의 남편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의 지시(雞西)는 이미 빙설천지였는데 남편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옷도 입지 못한 채로 있었는데, 4-5명의 경찰들이 때리고 차면서 차에 끌어 올렸다. 4명의 악경은 또 나도 끌어다 차에 실었다. 우리 두 부부를 잡아다 구치소에 감금시킨 후 그들은 또 다시 우리 집에 뛰어들어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가져가거나 버리고, 아들의 택시 한 대를 끌고 갔는데 가격이 4만 위안이다. 컴퓨터 한 대, 복사기 2대, 휴대폰 2개, 남편에게 있던 현금 13,000위안을, 그것도 영수증 없이 빼앗아 갔다. 남편은 45일간 불법감금 당했다.
나의 아들과 딸도 파룬궁을 수련하였기에 모두 불법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다. 각기 8년, 9년 판결을 받고 하얼빈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사위에게 아이가 하나 있는데 생활할 수 없어서 핍박으로 이혼을 했으며, 며느리는 아이 하나 데리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매번 그들을 보려고 찾아가면 악경들은 “대법제자를 만나려면 사부를 먼저 욕하고 법신상을 밟아야만 만나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대법제자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3년이 되도록 아들딸을 만나보지 못했다. … …
변함없이 꾸준히 대법을 실증하다
우리는 강제로 지시 구치소에 잡혀갔는데 갈 때에는 반 달 동안 구치라고 적혀져 있었다. 그러나 결과 잡혀가자 무기한으로 감금되었다. 나는 감방에서 갖은 혹형과 시달림을 당했다. 마지막에 기한이 넘었으나 석방하지 않아 나는 단식으로 항의를 했다. 사람이 다 죽게 되자 비로소 나를 석방시켰다. 나온 지 3일 만에 나는 남편을 감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지금 사악들로부터 비방을 당하고 계시므로 사부님의 청백함을 다시 되찾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기에 나도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지 않는다면 대법제자가 아니다.”(>) 때는 구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설을 쇨 것이 아니라 베이징에 가서 현수막을 펼쳐들고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11월 12일 나는 6개의 현수막을 만들어서 동수에게 몇 개 주었으며, 나는 두개를 가지고 순리롭게 베이징에 도착했다. 나는 베이징의 금수교 위에서 금빛이 번쩍이는 큰 현수막을 펼쳐들고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의 청백을 돌려 달라! 대법의 청백을 돌려 달라!” 라고 외쳤다. 나는 할말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때 두 악경이 오더니 나를 붙잡아서 스징산(石景山) 구치소에 4일간 가뒀다. 나는 단식으로 항의했으며 성명과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악경이 나의 얼굴을 10여 번이나 때려 바로 입가에 피가 흘렀으나 나는 아픈 줄 몰랐다. 되려 악경이 손을 아파했다. 악경은 이것으로 안 되자 이번에는 위선적인 악경을 보내서 달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의 집도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당신이 어디서 왔다는 것만 나한테 알려주면 내일 내가 당신을 가만히 놓아주겠습니다.”라고 했다. 대법제자는 “眞善忍(진선인)”을 수련하기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므로 나는 그들도 진실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해서 사실대로 말했다. 이튿날 직접 나를 베이징 주재 사무실에 보냈으며 거기에 7일 동안 감금시켰다. 지시의 헝산구(恒山)구에서 소장 류광더(劉光德)와 한 젊은 여자가 왔다. 나에게 수갑을 채우고 돌아 갈 때에 그는 나한테 “당신은 정말로 어머니입니다. 당신은 나의 친어머니입니다. 나는 탄복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아들을 요구하지 않소, 당신이 이렇게 파룬궁을 대하는데 누가 당신의 어머니 노릇을 하면 그가 당신과 함께 지옥으로 갈 것이요 “라고 했다.
작은 손자가 9살 반인데 베이징에 가서 현수막을 펼쳐들다
2000년 11월 12일 내 아들과 며느리는 손자를 데리고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갔다. 또한 동수의 집안에서도 부부가 12살 난 애를 데리고 함께 갔다.
베이징에서 어른들은 모두 잡혀갔고 두 아이만 남았다. 애들은 부모들이 다 잡혀가자 의지할 곳이 없게 되다.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애들은 베이징 역 앞으로 향했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나의 손자 샤오위(小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 뭘 하려고 왔나?” 왕씨 성인 그 아이는 “우리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대법을 실증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고 했다. 샤오위가 “내 현수막은 아직 펼쳐들지 못했는데?”라고 하자, 왕씨 성인 그 아이도 “내 것도 아직 못 펼쳤어”라고 했다. 샤오위가 “우리 가서 현수막을 펼치자”라고 하자 그 아이도 “좋아”라고 했다. 두 아이는 다시 톈안먼 광장으로 돌아갔다. 샤오위는 “작은형, 형은 금수교 위에 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나는 광장에 가서 펼치는 것이 어때요?”라고 묻자 왕씨 성인 그 아이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두 아이는 서로 나누어서 갔다. 그 후로 그 아이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
샤오위는 톈안먼 광장에 간 후 현수막을 펼쳐들고 높이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샤오위는 바로 경찰한테 잡혔다. 경찰은 그에게 “어른들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다. 샤오위는 “다 잡혀 갔어요”라고 했다. 경찰은 “어디로 잡아갔느냐?”라고 물었다. 샤오위는 “차에 실어 갔어요”라고 했다. 경찰이 “내가 너를 데리고 그들을 찾아 주겠다. 네 아빠 이름이 뭐지?”라고 묻자 샤오위는 “몰라요”라고 했다. 경찰이 “네 엄마 이름은 뭐지?”라고 묻자 샤오위는 “몰라요.”라고 했다. 그는 그저 모른다고만 했다. 경찰은 샤오위를 데리고 베이징에 있는 대법제자들을 감금시킨 곳을 다 돌아다녀도 사람을 차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경찰은 샤오위를 데리고 톈진(天津) 구치소에 찾아갔다(당시 이름과 주소를 대주지 않은 대법제자들을 모두 톈진에 보내 감금시켰다). 톈진 구치소에 도착하니 대법제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은 끝내 샤오위를 데리고 거기서 찾아냈다.
샤오위는 후에 다른 감옥으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보름동안 갇혀 있었다. 연말에 지시에 있는 대법제자 샤오자오(小趙)가 베이징에 가서 현수막을 펼쳐들고 법을 실증한 후 샤오위를 데리고 왔다.
감옥에서의 연공은 사악을 벌벌 떨게 하다
2001년 4월 1일 완자 노교소에서 대법제자들은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동시에 단식을 했다. 악경들은 당황하여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나는 4월 17일까지 단식을 했는데 지탱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신체를 조절하려고 했다. 감방에 있는 작은 두목 샤오마(小馬)가 이것을 보았다. 샤오마는 형사범인데, 그가 나를 제지했으나 나는 듣지 않았다. 그는 악경 호장(번역자 주 : 매 감방 안의 우두머리) 왕민(王敏)을 불러왔다. 나는 계속 듣지 않았다. 그들은 또 대대장 우진잉(武金英)을 불러왔는바, 우진잉은 이곳의 제일 높은 책임자인데 그는 오자마자 큰 소리로 욕을 해대면서 나의 다리를 내려놓았다. 나는 또 다리를 올렸다. 이렇게 여러 번 실갱이를 하였는데 우진잉은 자기 혼자서 안 되니까 몇 사람을 더 불러왔다. 5명이 동
시에 달려들어 나를 붙잡고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나의 다리는 마치 고정시켜놓은 것처럼 누구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땀을 흘리면서 애를 썼지만 내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그들에게 “내가 당신들의 시달림을 받아 이제는 뼈밖에 안 남았는데 당신들은 왜 이다지도 잔인한가?”라고 하자 두 번째 책임자 린(林)대장은 “정부에서 하지 말라는데 왜 꼭 대항해서 나서는가?”라고 했다. 나는 “나는 정부에 대항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한마디 공정한 말 —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라는 한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장xx는 나를 여기에 잡아다가 고생을 하게 한다”라고 했다. 악경은 “담도 크구나, 장xx이름을 당신이 부를 수 있는 건가?”라고 했다. 나는 “장xx이름은 부르라고 한 이름이지 눌러서 자래우는 것인가?그리고 베이징은 장xx의 개인 집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진실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라고 했다. 5명의 악경들이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진잉은 형사범 샤오마에게 “잘 지켜봐, 24시간 다리를 내려놓지 못하게 해” 하고는 슬그머니 가버렸다. 나는 마난 앞에서 정말로 생사를 놓는다면 사악은 자멸한다고 생각했다.
감방에서 떳떳하게 대법서적을 보호하다
2001년 7월 하순에는 사악의 시달림을 받아 피를 토하고 혈뇨, 각혈이 발생했으며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식당에 밥 먹으로 가기도 어려웠다. 나는 감방에서 >을 보려고 생각했다. 이것은 수련생이 손으로 베껴 쓴 건데 그가 갈 때에 나한테 남겨주었다. 그때에 누구 할 것 없이 손에 대법자료가 있으면 다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대했다. 점심시간 밥 먹는 기회를 타서 금방 2페이지를 보았는데 그만 감방을 관리하는 악경 왕민에게 들켰다. 그는 흉악스럽게 나한테 다가오더니 책을 빼앗으려고 했다. 나는 주지 않았다. 나는 “내 책을 가져가서는 안 돼 “라고 했다. 그는 “오늘 이 책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을 작은 감방에 처넣을 것이요”라고 했다. 나는 “내가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에게 줄 수 없소!”라고 했다. 이때 나는 오른손에 책을 쥐고 뒤로 가져갔으며 왼손으로는 악경이 책을 빼앗으려는 것을 제지했다. 나는 속으로 악경이 책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도록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이때 왕민이 확 달려들어 책을 빼앗으려고 해 나는 왼손으로 밀치면서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책을 던졌는데 바로 다른 동수의 옆에 떨어졌다. 수련생은 즉각 책을 감췄다. 악경은 이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내 몸에서 찾으려 해도 찾아내지 못했다. 악경은 “신기한데, 책을 어디에 감췄어?!” 나는 “정말 신기하지. 찾지 말아요!”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시다
2001년 10월 17일 나는 정념으로 마귀의 소굴에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현지의 사악한 자들이 계속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할 수없이 집을 떠나 밖에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2002년 7월 20일 나는 채소를 사가지고 길을 건너다가 주의하지 않아 택시와 부딪쳤다. 당시 허리가 끊어지고 엉덩이뼈가 부셔졌다. 나는 땅에 누워서 사부님을 불렀다.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택시 기사는 나를 병원에 싣고 가려고 했으나, 나는 “괜찮아요.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라고 했다. 집에 온 후 나는 그한테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 이예요. 나는 당신을 속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돌아가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장쩌민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 마세요. 당신이 오늘 직접 본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요 아니면 나쁜 사람이요?”라고 하자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후에 나는 7일 낮과 밤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였고 열이 나고 메스꺼웠으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고 몸을 돌려 눕지도 못했으며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은 매우 이지적이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 저를 빨리 낫게 해 주십시오 라고 생각했다. 저는 빨리 일어나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며 대법을 실증하고 세상 사람들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말할 때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오며 이 일념의 차이는 부동한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말씀하셨다. (>) 내가 이렇게 생각하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의 허리에서 갑자기 무수한 파룬이 돌아가면서 무언가 끌어당기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3일이 지나자 나는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를 한 대도 맞지 않고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나는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사신(死神)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에 대해 나는 언어로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상은 나의 자그마한 경력이다. 장쩌민 사악한 집단의 우리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글로서는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현재 나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배치 하에 동수들과 연락을 가졌다. 지금 해야 할 3가지 일을 바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로 동수들을 격려하려 한다.
끊어라 원곡
수련은 어렵지 아니하나
마음 버리기 어렵노라
많은 집착 언제 가서 끊을소냐
고해(苦海)는 언제든 대안 없음을 다 알것인즉
의지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으려니
어떻게 속세를 벗어나랴
문장완성 : 2004년 7월 29일
문장발표 : 2004년 7월 30일
문장갱신 : 2004년 7월 31일 12:39:48 PM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30/8065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