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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대법제자 리추가 박해 받아 치사하다.

【명혜망 】창춘시(長春市) 대법제자 리추(李秋)가 99년 이래 여러 차례 납치당해 박해 받았다. 2002년 3월 그는 또 다시 납치당했는데, 혹형과 시달림을 받아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차오양거우(朝陽溝)노교소에 끌려 가서 또 시달림을 당했는데, 숨이 간신히 붙어 있었다. 노교소에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2003년 1월에 리추를 석방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리추는 줄곧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으며 2004년 7월 6일에 사망했다.

리추, 41세, 창춘시 우체국 융춘분국(永春分局) 직원이며, 창춘시 자오구(郊區) 융춘진(永春鎮)에 거주, 1996년 법을 얻었으며 보도원을 맡은 적이 있었다.

1999년 장씨 집단이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리추는 박해와 시달림을 받았으며 1999년 8월에 융춘진 파출소와 창춘시 공안국에서 그의 집을 수색하고 그를 납치하여 다툰(大屯)노교소에 15일간 감금시켰다. 회사에서 리추에 대한 평이 좋았기에 회사에서 보증을 서고 그를 데려갔다. 그 해 9월 20일 두 번째로 집에서 애인과 함께 융춘시 파출소에 납치당해 다툰노교소로 갔다. 그의 애인도 대법제자인데 15일 후에 석방되었다. 리추는 불법판결 1년을 받고 펀진(奮進)노교소에 감금되어 박해 받았다.

2001년 6월 리추는 세 번째로 또 다시 진 파출소에 납치당해 싱룽산(興隆山)세뇌반에 들어갔으며 이 기간에 25일간 단식을 하여 정념으로 뛰쳐나왔지만, 후에는 핍박에 의해 거처를 잃고 떠돌아 다녔다.

2002년 3월 5일 창춘시 난관구(南關區) 법원에서는 붙잡힌 대법제자들을 심판한다는 것을 미끼로 성원하러 오는 대법제자들을 체포했는데 리추는 그 법원 입구에서 네 번째로 납치당해 다툰노교소에 감금됐다. 경찰들은 잔인무도하게 여러가지 형구로 리추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박해를 가했다. 후에 리추는 공안병원에 호송되어 2개월이 넘게 계속 박해를 받은 후 또 톄베이(鐵北)감옥으로 넘겨졌으며, 그 해 7월에 또 다시 차오양거우 노교소로 이송되어 계속 박해를 받았는데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됐으며 전신이 붓고 숨쉬기 조차 어려워 금방 숨이 넘어 갈 것만 같았다. 차오양거우 노교소에서는 책임이 두려워 2003년 1월 밤 10시에 가족에게 통지하여 중일롄이병원(中日聯誼醫院)에 가서 리추를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리추는 흉부, 허리에서 줄곧 고름이 흘렀으며 두 다리는 불구가 되어 걸을 수 없었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2004년 7월 6일 5시에 박해로 사망했다.

문장완성: 2004년 7월 15일

문장발표: 2004년 7월 15일
문장갱신: 2004년 7월 15일 8:17:18 PM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15/794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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