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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뿌리를 없애자(上)

【명혜망】시간에 대한 집착은 아마 많은 수련생들에게 존재할 텐데 어떤 동수들은 정법수련 중에서 이미 버렸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비록 아직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미 매우 담담해 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많은 이전의 동수들이 이 문제에서 아주 깊이 빠졌으며 아주 심하게 집착한다. 심지어 그(그녀)들이 떨어지게 하며 반면으로 나가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아래에 몇 개 방면으로 토론하려고 한다.

1.시간에 대한 집착은 대법제자의 사명에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정법시기에 사부님을 도와 세간에서 행하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함과 동시에 자신을 깨끗이 씻어야 만이 법에 동화된 후에 대법이 육성한 새로운 우주에로 회귀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집착은 이 한 시작에서 빗나갔다. 어디가 틀렸는가?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설법 중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북미순회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은 진정으로 이 단락의 시간을 잘 이용하지 않고 당신은 그것이 빨리 결속 짓기를 희망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오늘 우리들이 곧 결속되면, 그러면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가? 아주 많은 사람들은 더욱 큰 천체의 아주 많은 뭇 생명과 대응되는데, 곧 바로 결속되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곧 도태되어 버리겠는가? 우리가 그들 머리 속에서 우주대법을 적대시하는 사악한 생각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주 많이는 또 방대한 천체를 대표하고 있기에, 그들의 도태로 하여 그들과 대응되는 우주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버리게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도태하겠는가?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여 보았는가? 당신들은 대법제자이며, 역사가 당신들에게 위대한 책임을 부여하였다. 우리는 반드시 이 시간을 잘 이용하여야 하며, 결속되지 않은 이 것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기회이다. 시간이 아주 짧다. 일단 법정인간(法正人間)이 시작되면, 부동한 위치에 배치한 사람이 곧 정해지게 된다. 비록 우리가 이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더라도, 당신들은 이 단락의 시간 중에서 자신을 단련하였고 대법제자의 위덕(威德)을 수립하였다. 대법제자가 대법이 박해를 받을 때, 여러분은 우선 반드시 생각한 것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었으며, 생각한 것이 어떻게 하면 대법을 증명할 것인가 였다. 이는 위대하지 않는가? 이번 사악의 배치에 대하여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승인하지 않지만, 박해는 필경 나타났고 사악은 필경 그렇게 많은 중생을 박해하였는데, 우리가 우선 가서 시간을 다그쳐 그들을 구도하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을 일종 속인이 인간에 대한 박해로 삼고, 한 속인의 마음을 품고 문제를 생각한다면, 언제면 우리들의 누명을 벗겨주겠는가? 언제면 결속될까? 고 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상은 대법제자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시간이 길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기독교는 박해를 받아 3백년 후에야 비로소 일어섰다. 중대한 사명을 지닌 대법제자가 한 일반 수련자보다도 못한가?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가서 문제를 인식하느냐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중생을 구도하는데 십년이 더 있어도 당신들은 하겠는가 안 하겠는가? (수련생은 함께 대답 : “할 것입니다!”) (박수)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이다. (박수) 물론 십년이 더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이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것들의 수명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대법제자가 어떻게 문제를 보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가르치심을 배우는 중에 나는 정법의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법 일을 한다면 누락이 있는 것이며, 우리들이 맡고 있는 중대한 사명에 용납되지 않으며 근본 상에서 말하면 사(私)를 위한 것이므로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매우 좋지 못한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심성 표준이 심지어는 하나의 일반적인 수련자보다도 낮은 것이다.

2.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최종적인 경지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대법제자가 법에 동화되고,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 마지막에는 마땅히 “집착이 하나도 남김없이 수련되면 고거감래(苦去甘來)라 진짜 복 이로다”(《홍음》)에 도달해야 하는바, 그렇다면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집착이 하나도 남김없이 수련되면”의 경지에 도달 했는가 라고 물어보라. 분명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원만의 표준에 도달한 수련자로 말한다면 세간의 어떠한 사물에 대한 집착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집착이 아닌가? 이왕에 이것이 하나의 집착이라면 마땅히 제거해야한다.

3.시간에 대한 집착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마음

전에 동수와 접촉하는 가운데서 느낀 것은,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의 배후에 반영되어 나오는 사람의 마음이 매우 큰 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진수제자들도 이 방면에 집착이 있었지만 그러나 법공부를 통하여 빠른 시간 내에 제거했거나 또한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담담해졌다. 하지만 전에 많은 동수들이 이 방면에서 표현한 것이 특별히 돌출하였는바, 심지어 자신으로 하여금 수련을 포기하거나 혹은 반면으로 나아가게 한 이유로 되었다. 이것은 단지 시간에 대한 집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바, 마땅히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가 분석해야한다. 여기서 전에 일찍이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의 표현이 마치 매우 견정한 것 같았던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집착한 배후에 드러난 문제들을 토론하여 보자

(1) “견정”의 배후에 있는 구하려는 마음

이전의 어떤 동수들은 대법 수련에 들어선 후 줄곧 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이는 병이 낫기를 구하고 어떤 이는 세간의 명, 리, 정을 만족하는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며 심지어는 대법 중에서 이러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등등이다. 박해가 시작된 후에 이런 사람들은 많은 대법제자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는 것을 보고 그들도 따라 나섰으나 사상의 기초가 진정하게 법에서 법을 인식한 제자와는 다르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추측에 따라 진상이 크게 나타날 날짜, 혹은 누명이 벗겨질 날짜에 대해 하나의 시간을 정하는데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까지는 “견정”하며 고생도 이겨내고 심지어는 이지적이지 않게 고생을 찾아서 하거나, 고생을 하고 소업을 하는 것을 수련의 전부로 여기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위대한 사명이 사부를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자신을 바로잡고 위대한 위덕을 쌓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집착함은 그저 표면 현상일 뿐이며 진정으로 마음속 깊이에 숨어있는 것은 바로 그 구하려는 마음이다.

사부님은 《전법륜》에서 우리들에게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 불가는 공(空)을 주장하여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空門)으로 들어가고, 도가는 무(無)를 주장하여 아무 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연공인(煉功人)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 무위(無爲)적인 상태로 수련하며 오직 당신의 心性(씬씽)만 수련한다면 당신의 층차는 곧 돌파될 것이며 당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당연히 있게 된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집착심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에서 단번에 이렇게 높은 법을 전수하므로, 물론 당신의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도 높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품고 와서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하는 것은 수련의 어느 시기에도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명백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집착이 쉽게 생기며 또한 사악이 쉽게 틈을 탈수 있다. 시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려면 우선 마땅히 구하려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2)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려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검은 소굴(번역자 주 : 노교소나 구치소 등을 말함)에서 법을 실증하고 3가지 일을 잘하며 정진실수(精進實修)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옛날에 한 수련생은 다른 한 수련생이 단식을 2개월이 넘게 한 후 정정당당하게 검은 소굴에서 걸어 나와 많은 동수들의 찬양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도 따라 했는데 그러나 그는 수련생이 단식을 하는 과정에 법공부, 법을 외우고,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으로 정념정행 한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표면상에서 단식하는 방법만 배웠으며 또한 생각하기를 단식하는 시간 방면에서 정념정행으로 검은 소굴을 떳떳하게 걸어 나온 수련생을 초과하려고 했으며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을 실증하려고 했다. 결과 그는 단식을 3개월 동안 하고난 후에 오히려 소위 “전향”을 당했다. 이렇게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려고 하는 것은 뚜렷한 누락이며 사악이 틈을 탄 것이다.

(3) 갖지 말아야할 증오심이 시간에 대한 집착을 더 하게 했다

수련자에게 증오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련하는 사람이 증오심이 있다면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 너무도 중한 것이다. 증오심은 속인 중에서도 좋지 않은 마음이다. 대법수련자라면 더구나 이런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옛날에 어떤 동수들이 박해를 받을 때 이런 마음이 나왔으며 폭행을 실시하는 자들을 증오하였는데, 이것은 그들 중에도 허다한 사람들이 구도될 생명이므로 마땅히 하나의 홍대한 자비와 정념으로 저지하고 더 큰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며 더욱 큰 악보를 받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옛날에 한 수련생은 그가 “견정” 할 적에 “증오하는 것”을 기점으로 하였는데 누락이 있었기에 비록 정정당당하게 노교소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다시 “세뇌반”에 잡혀 들어갔다. 사악은 그를 위협하면서 노교소는 기한이 있지만 여기는 무기한이라고 했다. 그는 핍박에 의해 타협했는데 그러면서 그는 내가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당신들 ×××를 증오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증오심은 시간에 대한 집착을 가중시켜, 하루라도 빨리 악인들이 징벌되고 자신이 해탈되기를 바라게 하지만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게 한다. 길을 잘못 걸은 후 그중의 이지를 상실한 자는 심지어 증오심을 대법과 사부 대법제자들에게 돌리는데 유따(犹大)질하며 대법제자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며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이 모두 거대한 상해를 받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면 먼저 증오심을 제거해야 하며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할 생각을 해야 시간에 대한 집착심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총괄적으로 말할 때, 소위 검은 소굴에서 “견정”하게 한 시기 동안을 지낸 이전의 동수들이 시간에 대한 집착의 배후에 흔히는 하나의 더욱 큰 집착심이 숨어 있으며 심지어는 여러 가지 집착심이 있는바, 이것이 바로 누락된 부분이고 낡은세력이 박해를 크게 하는 이유이며 또한 자신이 정념정행을 하지 못하므로 하여 사악의 악행을 저지하지 못하는 것으로써, 사악은 당신의 이런 집착심을 더 크게 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에 대해 아득하게 먼 감을 느끼게 하는바, 이렇게 되면 이지도 청성하지 못하여 길을 잘못가면서도 바르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 사실상 이런 상황이 나타난 이전의 동수들은 매우 오랫동안 진수하지 못했으며 사상행위가 이미 법에서 벗어났는데, 만약 진정으로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했다면 이렇게 큰 박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검은 소굴에서 정념정행하고 사악의 간담을 서늘케 한 많은 진수제자들이 실증한 사실이다.

사부님은 《북미순회 설법》중에서 우리들에게 :“대법제자가 두 가지 정황 하에서, 그것들은 움직일 수 없다. 하나는 단호하기로 반석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은 알고 있는바 당신이 낡은 세력이든 좋고, 낡은 이치이든지 좋은데, 이 제자가 바르게 가고 잘 하면, 누가 만약 가서 박해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신변에는 무수한 바른 신(正神)들이 있다! 나는 또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으며 모두 정법(正法)할 수 있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이 온건하지 않는 것이 두려우며, 이러한 집착, 그러한 두려운 마음은 낡은 세력이 보고 곧 바로 빈틈이 생긴 마음을 잡고 박해한다. 또 박해 중에서 정념(正念)이 모자라면 당한 박해는 곧 더욱 크며 전부가 이 정황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사악의 어떠한 형식의 박해도 승인하지 않으며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박해가 발생할 때 우리 또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박해를 대해서는 안 되며 사악으로 하여금 더욱 엄중하게 당신들을 박해하게 해서는 더욱이 안 된다. 마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정법 수련을 포기하는 어떠한 행위도 모두가 사악의 박해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악의 배후의 흑수, 낡은세력은 당신들이 누락이 있고 대법제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더 심하게 박해를 한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포기하고 당신이 반면으로 나아가—-사악의 편으로 간다면 그것은 바로 그것들이 당신들을 훼멸시키려고 하는 욕망을 만족시켜준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당신들의 이런 비이성적인 선택이 당신들 자신에 대해서와 당신들과 거대하게 밀접한 연계가 있는 중생들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아는가? 이것은 자기스스로 훼멸하는 것이다.

(계속)

문장완성 : 2004년 7월 1일

문장발표 : 2004년 7월 2일
문장갱신 : 2004년 7월 2일 1:17:42 PM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2/7850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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