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헤이룽장 대법제자 왕신춘(王新春)
【명혜망 2004년 6월 24일】나는 왕신춘이라고 하며 29살이다. 98년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였으며, 집은 헤이룽장(黑龍江)성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펑마오 린창(豐茂林場)에 있다.
2002년 1월 8일, 나는 자전거를 타고 린창에 가서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는 도중에 파출소에 의해 발견되었다. 악경 소장 왕웨이(王維)와 악경 A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붙잡고 몸을 수색하였다. 나는 그들의 박해를 제지하기 위하여 방법을 대어 벗어나려고 하였다. 몇 리 길을 걸어가서 또 그들에게 발견되었고 나는 또 벗어났다. 하는 수없이 나는 산길을 걸었다. 악경 왕서우민(王守民)과 민창춘(敏長春)은 밤을 지새우면서 새벽까지 뒤쫓아 왔다. 나는 당황하여 도중에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조심하지 않아 두 발이 강에 빠졌다. 두 발에서 무릎까지 전부 얼음이었다. 악경은 산을 포위하였고 나는 지형을 잘 몰라 이틀 후에 소장 왕웨이과 악경 A(이름 모름)에게 붙잡혔다. 악경A는 먼저 얼굴을 때렸고 펑거우(豐溝) 파출소에서 불법으로 몸을 수색하고 BP기, 모자, 돈, 코트를 몰수하였으며 자백을 강요하였다. 악경 A는 왕웨이와 공안 국장 추이위중(崔玉中)의 지시 하에 난로 위에서 뜨거운 물주전자를 가져와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아주 뜨거운 물을 눈으로 보면서 나의 발 앞에 가져다 놓고는 얼음처럼 언 나의 두 발을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었다(상식에 따르면 이렇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바, 심각한 동상을 조성하며 사지가 불구된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신발 표면이 녹았다. 그 다음 그는 가위로 나의 신발을 잘라냈는데, 신발 안과 살은 얼음으로 변해있었다. 바로 이렇게 뜨거운 물 속에서 강제로 신발을 벗겼다. 그 당시 나의 발은 이미 부어서 서기조차 힘들었다. 이때 그 악경은 또 사악하게 말했다. “우리 공안이 얼마나 좋은가. 시녀처럼 너의 수발을 들고 있으니” 사실 이것은 칼을 보이지 않는 가장 잔인한 수단이었다. 그들이 나를 산에서 붙잡을 때, 나는 그래도 길을 걸었다. 완전히 동상을 입지 않았지만 붙잡힌 후 뜨거운 물로 녹여서 결국 진정으로 동상을 입은 것이다.
점심에 그 악경들은 나가서 점심을 먹었고 악경 A더러 감시하게 하였다. 악경 A는 나의 앞가슴을 붙잡고 앞뒤로 밀고 내던졌으며 얼굴을 때렸다. 그 악경들이 모두 돌아온 후 그들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그 당시, 펑거우 파출소에는 공안 국장 추이위중과 610우두머리인 멍셴화(孟憲華), 정보과 악경 왕서우민, 펑거우 린창의 창장(場長, 주: 린창의 책임자) 왕창치(王長歧), 악경 A와 B(이름 모름)가 있었다. 나의 발은 끊임없이 부어올랐는데, 저녁 5시가 되어서야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발이 동상을 입으면 반드시 기포가 생기는데 동상에 걸린 곳에 기포가 생기고 다친 발의 윗부분인 작은 다리에도 기포가 생겼다. 원인은 뜨거운 물에 불렸기 때문에 조성된 것인데 위쪽으로 물집이 생겼다. 후에 진산툰구의 공안, 610, 정부기관이 촬영기를 가지고 3차례나 나의 집에 쳐들어와 촬영하며 대화를 이용하여 누락을 찾아 거짓말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왕서우민이 나의 부친에게서 200위안의 돈을 갈취하려고 하였고, 또 한번은 사기수단으로 사진을 찍었다. 5월경에 그들은 또 나의 모친 왕구이샹(王桂香, 대법제자)을 붙잡아갔고 혹형으로 괴롭혔다. 나의 모친은 지금까지 하얼빈 마약 퇴치소에 불법으로 수감되어 있다.
아름답던 가정이 바로 이렇게 이 모양으로 박해받았다. 이후부터 부친이 가정의 일체를 감당하고 나와 가정을 보살폈다. 그 사악한 공안은 곳곳에서 거짓말을 퍼뜨리기를, “왕신춘이 혼자 산에 갔다가 발이 얼었고 스스로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녹이다가 불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인들을 속이고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진상을 덮어 감추었다.
몇 달 동안 썩어 들더니 2002년 11월 나의 두 발은 완전히 떨어져나갔고 사악한 박해는 나를 한평생 불구로 만들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하였다. 2003년 11월 28일 펑거우 파출소의 소장 민창춘과 공안국장 추이위중은 나의 부친을 차에 납치해 가서 자백을 강요하고 괴롭혔다. 열쇠를 빼앗아서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고 한바탕 마구 뒤졌다. 악경이 전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잘 알지 못하였지만, 왕서우민이 나의 종이, 연필, 가방, 무슨 주소, 쪽지, 편지들을 전부 뜯었으며 또한 마구 욕을 하면서 카세트, 라디오를 불법으로 가져갔다. 왕서우민은 또 기타 전자제품을 걷어차서 고장 내고 나의 가슴과 이미 불구가 된 발을 걷어찼다. 나는 발정념을 하였는데 구들장 두 군데가 피바다가 되었다. 상처의 면적이 확산되어 방석과 바지가 전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왕서우민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고 다급히 피 흔적을 닦았다. 왕서우민은 또 “공안은 국비(즉 국가의 공복을 입은 토비)”라고 말했다.
집을 수색하던 그날 오후3시 파출소의 민창춘, 왕서우민과 보간(保乾) 둥수화(董術華)는 나의 집에 자주 들르는(연공인이 아님) 사람을 파출소에 데려가 자백을 강요하고 나무 의자로 허리를 때렸으며 총으로 작은 다리를 때림과 동시에 체벌을 가하면서 괴롭혔다(본인이 상세히 이야기함). 아울러 다른 사람을 위협하여 연공인의 집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누구도 나의 집에 오지 못하였다. 사악의 무리들은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소식을 엄밀히 봉쇄하였고 대법제자와 세인들이 나의 집에 오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도 지금까지 엄밀한 감시를 받고 있다. 둥수화는 진상을 모르고 할 일이 없는 일부 노동자들을 전문적으로 데려다 엄밀하게 감시하게 하는데 대법제자의 뒤를 밟거나 가로 막게 하였다. 2004년 4월 나는 무릎으로 밖에 기어나가 생활필수품을 사려다가 역시 그들에게 몸수색을 당하고 가로 막혔는 즉, 신체의 자유는 심각한 침해를 받았다. 후에 나는 다행히 휠체어를 마련하였지만 아직도 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5월 16일 점심, 나는 손으로 휠체어를 타고 30여리 밖에 있는 진산툰구에 나갔다.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있을 때, 110경찰차에서 4, 5명 공안이 내리더니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강제로 나와 휠체어를 끌고 공안국에 가서 강제로 몸수색을 하였다. 그들은 휠체어 타이어 3개의 에어를 빼버렸고 또한 나를 작은 차에 밀어 넣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 악경은 또 나를 한번 걷어찼다. 바로 이렇게 휠체어는 공안국에 압류되었는데 그것들은 내가 박해당하여 불구가 된 진상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폭로할까봐 나의 것을 공안국 정보과의 차고에 압류하였다. 5월 18일 나는 휠체어가 없어 길을 걸을 수 없었지만 펑마오 린창에 가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보간(保乾) 둥수화와 쉐썬린(薛森林)은 쇠와 몽둥이로 나의 몸을 때렸다. 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것들은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 나는 구경하러 몰려온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휠체어는 지금도 공안국에 압류되어있다.
99년 7월 20일 이후 나는 대법수련을 견지함으로써, 전에 그들에 의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았고 2001년 10월말 노교소에서 석방된 후 펑거우 파출소 소장 왕웨이와 악경 왕서우민은 전에 철몽둥이로 나를 때렸다.
악인들은 악한 짓을 많이 저질러 마음이 지극히 켕겨 사람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두려워한다. 즉 그것들은 좋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실이 폭로됨과 동시에 머지않은 장래에 정의의 심판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왕서우민 : 현 진산툰 펑거우 파출소에서 일함,0458-3734082,핸드폰-1313458408
추이위중 : 현 진산툰 공안국 국장임
w-0458-3738191,3432810(대),b-0458-3435978, 3738537, 732368,핸드폰-13904589398, 13904588191
멍셴화 : 진산툰 공안 부국장 임
w-0458-3733667,b-3738512,핸드폰-13846693497
왕웨이 : w-0458-3732664
왕창치 : w-0458-3733988,지금은 주무창(貯木場)으로 옮겨가 일하고 있음.
문장완성:2004년 6월 23일
문장발표:2004년 6월 24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23일 9:30:47 PM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6/24/7783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