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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수련생을 박해하는 국가적 범죄 행위로부터 본 장씨 집단의 도덕의 최저한계(사진)

【명혜망 2004년 5월 21일】(명혜 기자 메이제(梅潔)정리, 저술)5년 이래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손에 쥔 권력으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멸절성(滅絕性)적으로 박해하는 과정 중에서 여 수련생들이 받은 상처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다. 여 수련생들에 대한 시달림과 모욕이 구성한 국가 공포주의 범죄는 장씨 집단의 도덕의 전면적인 멸망을 상징하며 또한 동시에 중화민족에 심중한 상해를 가져다주었다.

한 여 대법수련생이 대낮에 베이징 다베이야오(大北窯) 입체 교차교(立交橋) 아래에서 악경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많은 노교소의 여 악경들은 파룬궁 여 수련생들의 옷을 홀딱 벗겨 “널판자에 묶는다”(사지를 대(大)자 형으로 침대에다 묶는 것) 다롄(大連) 교양원의 악경들은 의외로 여러 번 전기 충격기로 여 수련생들의 음부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여 수련생들에 대한 학대는 국가 공포주의의 표현이다.

한 국가 혹은 민족에 대해 말하면, 제일 큰 생존위기와 치욕은 독재정치 혹은 외적침입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마구 학살하는 것과 부녀자들에 대한 능욕이라고 본다. 역사상에서 일본 군국주의가 “난징 대학살(南京大屠殺)” 과정에서 마음대로 불사르고 죽이고 빼앗았는데 중국인들은 이것을 순국(國殤), 국치(國恥)고 여기고 있다. 오늘날 권력자의 질투심으로 인해 나타난 한 차례 무고한 중국 국민에 대한 학살, 중국의 부녀들을 능욕하는 더욱더 비참한 비극이 중화의 대지에서 출현되고 있다. 현재 많이는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한 차례의 국가적인 공포주의 범죄의 진면모를 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얻은 대량의 증거들로부터 이 한 차례의 박해 중에서 국가 공포주의 범죄의 실질을 알 수 있는바, 파룬궁 여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도 이 한 점을 실증하고 있다.

중국 대륙 민간에서 전해져온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은 사례 통계 수치에 따르면, 1999년 7월부터 2004년 5월까지 모두 58개월의 기간에 이미 960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받아 치사하였는데 그 중에 여자 파룬궁 수련생이 496명으로 총수의 51.7%를 차지하며 평균 연령은 : 45세이다. 이런 여 수련생들은 전국의 30여개 성, 시, 자치구와 직할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전국의 노교소, 구치소, 감옥, 세뇌반 등에 감금되어 있는데 박해를 받고 있는 여성들은 모두 부동한 업종, 계층에 있으며 교사, 엔지니어, 전문가, 학생, 노동자, 농민, 개인 기업주, 국가 공무원을 포함하고 있다.

장쩌민 집단이 여성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실시한 건달 수단은 대가를 아끼지 않으며 후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부녀자들의 권익과 사회직위 보장 및 존경을 받는 정도는 흔히 한 사회 혹은 국가 문명의 정도를 상징한다. 한 문명국가의 기본 직능은 정의를 수호하고 일반 국민의 합법적인 권익을 수호하는 것을 제외한 외에도 부녀자, 아동, 노인 등의 약사군체(弱勢群體) 들이 침범을 받지 않게 보호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5년간의 기간에 장쩌민은 오히려 수중에 장악한 권리를 이용하여 위와 상반되는 길을 걷고 있는데 : 장쩌민 집단은 국가기관들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건달 수단으로 부녀들을 짓밟으며 파룬궁 수련 단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이미 대가를 아끼지 않으며 후과를 고려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덕치국가(以德治國)”라고 자처하는 장쩌민이 국가 텔레비전 방송국의 기자가 “89민운(八九民運)에서 여대생이 강간당한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고 한 물음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없이 “6.4”폭도, 그 죄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 라고 대답하였다. “죄가 있으므로 당연히 받아야 한다”라고 한 한 마디 말은 독재자의 몰골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며 또한 전 세계에 장씨 집단의 “덕치(德治)”를 선포한 것으로써 중국에서는 정치범, 양심범, 사상(思想)범에 대한 성적인 유린이 도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달 도덕을 제외한 외에도 장씨 정권은 또한 강압, 보너스, 감형 등 강제 수단으로 경찰, 형사범들로 하여금 여성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국가 범죄 행위에 참여하게 한다.

“장씨 특색의 건달식 교사(教唆)하에 전국의 각지 노교소의 경찰들은 보편적으로 자유를 잃은 부녀자들에 대해 잔인하고 쌍스럽고 비열하게 대하며 백여 종의 혹형을 가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파룬궁 인권보고” 중에서 “부녀자들에 대해 폭행을 저지르는데”에 대해 이러한 부분적인 묘사가 있는데 : 잡혀있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파룬궁 여 수련생 중에 옷을 홀딱 벗겨버리는 모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으며(때로는 장시간 계속), 생리대를 사용하지 못하고 성폭행과 잔혹한 위협이나 혹은 흉부 및 외음부를 주먹이나 발길에 차이는 등등의 혹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더욱 비참한 사례들이 있는데 여 수련생들이 경찰들에게 성폭행 혹은 윤간을 당하며 전기 충격기로 음도에 전기 충격을 당하고 단단한 솔 같은 것을 음도에 밀어 넣고서 마구 긁는 학대를 당하거나 혹은 여 수련생을 알몸으로 남자 감방에 밀어 넣는 등의 박해를 당하고 있다. 죽음에서 도망쳐 나온 한 여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그 안의 사악에 대해 외부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명혜망의 보도에 의하면, 발광적으로 박해에 참여한 다롄 교양원은 예전이나 지금 계속 발생하고 있는 악성 사례들에 대해 종래로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롄 교양원에서는 대규모로 강제 “전향”을 진행하고 있는데 원장 하오원솨이(郝文帥) 등 전체 교양원의 간부 경찰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2001년 3월 19일 하오원솨이는 직접 손에 전기 충격기를 들고서 여 수련생의 얼굴과 몸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많은 수련생들의 손, 온 얼굴이 물집 투성이가 되었다. 악도들은 먀오(苗) 씨 성을 가진 한 수련생이 수련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20여 시간의 박해를 실시하였다. 사악들은 “3.19” 이 하루 폭행을 저질렀는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다롄 교양원에서 박해를 받아 죽은 대법 수련생이 또 있는데 : 순롄샤(孫蓮霞, 2001년 1월 16일 박해받아 치사), 왕추샤(王秋霞, 2001년 6월 10일 박해로 치사)

-한수화(韓淑華),여, 간징쯔구(甘井子區) 사람, 50세, 신념을 견지하였다 하여 노동교양 2년을 판결 받았다. 다롄 교양원에서 한수화는 수련을 견지하였기에 “독방”에 감금되었다. 완야린(萬亞琳), 위안링웨(苑齡月), 한젠민(韓健敏) 등 대장들은 범인들을 시켜서 그녀에게 백방으로 시달림을 가하게 하였다. 매달아놓고 신체를 “대(大)”자형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널판자로 발바닥을 때렸으며 오이나 나뭇가지로 음도를 쑤시고 입에 고춧물을 쏟아 넣었다. 더욱 참혹한 것은 이렇게 시달리게 한 다음, 보온병에 끓여 놓은 물을 이미 묶어놓은 발목에 쏟아 붓는데 두 발에 즉시 물집이 생긴다. 한수화는 즉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은 한수화를 내려놓은 다음 몇 사람이 그녀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데 한수화의 두 발의 가죽이 다 벗겨졌다.

-인구이룽(尹桂榮),여, 루순(旅順)사람,43세. 2002년 2월에 “독방”에 감금되었다. 한젠민 대대장은 범인 궈링(郭玲), 장슈쥐안(張秀娟), 쑨보(孫波)를 충동질하여 철창 속에서 인구이룽의 신체가 “대”자형으로 되게 한 다음 혹독한 시달림을 가하게 했다. 찬물을 끼얹었는데 그때는 엄동설한이었다. 밧줄로 몸을 묶어서 아래로 당기는데 그 수단이 잔인하기 그지없다.

-왕신펑(王心鳳),여,30세, 푸란뎬(普蘭店)사람. 신념을 견지하고 “전향” 증을 다는 것을 거절하였다 하여 스팀관에 수갑을 채워놓았는데 꼬박 5박 5일 동안 그런 상태로 있게 하였다.

-27세인 청후이(程輝)와 30세인 순옌(孫雁)도 같은 방법으로 팔과 다리를 벌리고 묶였는데 “방교(幫教 : 보도 교육)인원” 이 긴 몽둥이를 그녀들의 음도에 밀어 넣어 엄중한 출혈을 초래하였다. 다른 여 수련생 두 명의 음도에도 고춧물을 쏟아 넣었는데 방교인원이 화장실에서 쓰는 솔을 그녀들의 음도에 밀어 넣어 엄중한 음도출혈을 초래하였다.

다롄 교양원의 소위 “독방”은 각관으로 용접하여 만든 1미터 넓이 2미터 높이로 된 철창을 말한다. 사람을 독방에 넣은 다음 두 팔을 사선방향으로 벌려 수갑을 채워놓는데 수갑을 꽉 조이면 손목이 깊숙이 패어 들어간다. 한 쪽 다리를 들어서 팔하고 거의 닿게 한 다음 밧줄로 묶어놓는다. 그런 다음에 두 사람이 다른 한 쪽 다리를 최대한의 위치에까지 들어 올린다. 입은 테이프로 봉해버린다. 그러고는 음부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밧줄을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만들어 두 사람이 양쪽에 서서 밧줄을 밀고 당긴다. 혹은 대걸레를 음부에 밀어 넣고 쑤신다. 음부에 밧줄을 대고 앞뒤로 당겨서 파혈시킨 후 또 널판자로 때린다. 이러고 나면 음부에서 피가 흘러 땅바닥에 떨어지는데 대걸레로 닦아버린다.

보도에 의하면, 파룬궁 수련생들이 각 지역의 노교소에서 이러한 학대와 시달림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들은 정부를 대표하여 너희들을 전향 시킨다”, “너희들이 죽는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다” 상부에서 말한 파룬궁 수련생이 “맞아죽으면 자살로 인정 한다” 는 이러한 말들을 듣는다.

박해를 받은 부녀자들 중에는 노년 파룬궁 수련생, 아동뿐만이 아니라 간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부녀자들도 포함되어있다.

아래에 각 지역에서 발생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들을 적는다

강제로 낙태 시킨다 : 산시(陝西) 파룬궁 수련생 장한윈(張漢雲) 여사가 곧 해산하려고 할 때, 한중시(漢中市)의 610사무실에서 그녀를 세뇌반에 강제로 보냈으며 또한 그녀를 병원으로 끌고 가서 확장 인출방법(擴張引出術)으로 강제로 아기를 빼냈다. 선전(深圳)파룬궁 수련생 왕샤오나(王少娜)는 남편과 함께 베이징에 가 상방하였다 하여 납치당했으며 서커우(蛇口) 간수소에 갇혔다. 왕 여사는 그때 임신한지 6개월이었다. “합법적“으로 그녀를 감금하기위해 당국에서는 강제로 낙태시켰다.

혹형으로 부녀자들을 시달리게 하다 : 29세인 광저우 톈허구(廣州天河區) 엔지니어 뤄즈샹(羅織湘)은 임신 3개월이었는데 610악도들이 그녀를 황푸(黃埔) 마약중독치유센터에 데려가 박해하였다. 2002년 1월 4일 박해받아 사망하였다. 수핑(淑萍) 여사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여 허베이성(河北省) 가오양(高陽) 노교소에 감금되었다. 비록 그녀가 임신 4개월이었지만 교도관은 그녀의 두 발과 입에 전기 충격을 가했으며 그녀로 하여금 강제로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몸을 굽혀 서있게 하였는데, 이렇게 20여 시간 시달리게 하여 그녀가 토하고 허리 아래 부위와 복부에 참기 어려운 통증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교도관에게 항의를 하였다. “당신들은 어찌 잉부(임신한 부인)를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교도관은 “임신했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어? 네가 죽으면 우리는 시체를 화장해 버리면 그만이야, 너의 집 식구들은 그저 유골만 보게 될 것이다”고 대답하였다.

젖을 먹이고 있는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박해 : 2000년 10월 21일 베이징에 상방하여 중앙정부에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중지할 것을 호소하는 기간에, 산둥성(山東省) 옌타이시(煙台市) 시샤쓰커우진(棲霞寺口鎮) 난거우촌(南溝村)의 왕리쉬안(王麗萱)과 8개월 된 그녀의 아들 멍하오(孟昊)가 동시에 납치되었는데, 후에 베이징의 퇀허(團河) 노교소 감금되었다. 11월 7일 두 모자는 노교소에서 학대를 받아 사망하였다.

27세인 허베이(河北) 바오딩(保定) 유치원 교사 구펑(顧朋)은 2001년 1월 정부를 향해 파룬궁에 대한 진압을 정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여 그녀의 남편과 6개월 된 예쁜 아기가 베이징에서 납치당했다. 경찰은 연속적으로 구펑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바오딩으로 돌아온 후에 현지의 610사무실은 구펑을 정신병원에 가둬놓고 매일 박해를 가했으며, 마음이 쇠약해지도록 하는 약물을 강제로 먹게 하였는데 심지(心智)가 엄중하게 쇠약해졌다. 약물의 효과는 늘 그녀의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게 하였는바, 쉴 새 없이 이리저리로 마구 걸어 다녔다. 그녀가 정신병원에서 당한 학대와 시달림 때문에 그녀의 예쁜 아기도 생명에 대한 영양공급과 모친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다.

리밍(李明)은 원래 중국 광저우의 성공한 한 의상디자이너였으며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리밍은 광저우에서 여러 차례 사복경찰에게 납치되었으며 딸 샤오더우더우(小豆豆)도 여러 차례 24시간 넘게 감금되었다. 아이는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할 것만 같아 두려워서 엄마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녔으며 심지어는 화장실도 가기 싫어했다. 매번 경찰이나 혹은 사복경찰이 엄마를 데려갈 때에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울었다. 양심을 팔아먹지 않기 위해 리밍은 사랑하는 딸과 떨어져 미국으로 갔다. 2002년에 미국은 더우더우가 미국으로 올 수 있게끔 비자 신청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광저우시 공안국 둥산(東山) 분국에서는 줄곧 여권을 내주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파룬궁 가족은 출국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여러 면의 노력으로 2003년 11월 8일 더우더우는 끝내 대륙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엄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베이징에 있는 파룬궁 여 수련생(피해자 보호위해 익명)이 파룬궁 전단지를 붙이다가 순찰하고 있던 사복경찰한테 잡혔는데 경찰은 뭇 사람들 앞에서 이 수련생을 구타하고 나서 행인들에게 “이 사람은 파룬궁 수련생인데 반동분자이다. 내가 때려 죽여도 무방하다”고 소리쳤다. 그런 다음에 여 수련생을 다리 밑으로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강간하였다. 그런 후 그녀의 몸 위에 앉아서 있는 힘을 다해 플라스틱으로 된 경찰봉을 여 수련생의 음도에 밀어 넣었다……

2003년 5월 13일 충칭(重慶)대학 여 연구생 웨이싱옌(魏星豔)이 사핑바구(沙坪壩區) 바이허린(白鶴林) 간수소에서 한 경찰에게 뭇 사람들 앞에서 강간을 당하였다. 사건이 폭로된 후에 충칭대학은 경찰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웨이싱옌이 충칭대학의 학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웨이싱옌이 전공하고 있는 고압 직류의 송전 및 시뮬레이션의 기술 전공도 학교의 소개 내용 중에서 삭제하였다. 또한 웨이싱옌 본인은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다……

집단 성학대 :2000년 6월 마싼자(馬三家) 노교소에서 18명의 여 수련생의 옷을 몽땅 벗겨 제일 흉악한 남자 범인들의 감방에 밀어 넣었다. 또한 이런 범인들을 부추겨서 파룬궁 여 수련생들을 강간하고 학대하게 하였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알몸으로 모욕을 받으면서 VTR 앞에 서있어야 했으며 또한 장시간동안 이런 몸으로 눈 위에 서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마싼자 노교소에 있는 수련생들은 늘 옷이 벗겨진 채로 음부가 전기충격기의 충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심문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 성침해, 치욕을 받는데 — 이 모든 것은 수련생을 핍박하여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게끔 하기위해서이다.

노년 부녀자들에 대한 성학대 : 2000년 8월 노부녀 파룬궁 수련생(55세를 초과) 4명 류자밍(劉加明) 여사, 왕루란(王如蘭) 여사, 천리화(陳麗華) 여사 및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한 여사 등이 체포된 후 베이징시 다싱현(大興縣)의 지휘처(調遣處)에 끌려갔다.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공안들은 그녀들이 소지한 물품들을 검사하였으며 이불까지 다 찢어 그 속에 물건을 감추었는지 검사하였다. 공안들은 그녀들을 핍박하여 옷을 벗게 한 다음 일체 검사가 끝나자 알몸이 된 노년 부녀자들을 뜰 안에 나가게 하였으며 거기서 이불을 꿰매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남자 공안들이 뜰 안에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으며 또한 모든 남자 범인들로 하여금 모두 알몸으로 된 여성들을 보게 하였다.

해외 여성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 : 명혜망의 보도에 의하면, 2004년 4월 6일 오전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 가네코요코가 제네바 연합국 인권대회에서 부녀인권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였는데 자신이 베이징 여자 노교소에서 참혹한 박해를 받은 경력을 서술하였다 : 공안 병원에서 경찰들은 나를 핍박하여 신념을 포기하라고 하였다. 그들은 나의 두 손과 두 발을 침대에 채워놓았으며 수갑을 더욱 조여서 손목에서 피가 났다. 코에 호스를 꽂아 넣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강제로 요도에 호스를 꽂아놓았는데 나를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는 생리가 왔는데 그들은 내가 이불을 어지럽힐까봐 밑에 비닐을 펴놓고 알몸으로 그 위에…… 6월 베이징의 날씨는 35~36도 되는데 몸 아래는 땀, 분비물들로 눅눅해졌고 열기를 받아 뜨거워졌으며 음식물을 투입한 다음 호스를 빼내지 않고 잘 매놓지도 않아서 위에 들어간 음식물이 오히려 흘러나와 목이며 어깨며 사처에 진득진득한 것이 묻어났는데 그들은 이렇게 줄곧 20여일이나 묶어놓았다. 후에 그들은 나를 내려놓았는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뒤 잔등은 모두 썩었었으며 일어나 걸을 수도 없었다.

여성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조직적이고 계통적으로 실시하였다.

웨이싱위안이 강간당한 이 안건을 통해 장쩌민이 전반 국가기구를 이번 박해에 끌어들인 정도와 깊이를 알 수 있다. 이 폭행이 해외에 폭로된 후 중앙에서부터 지방에 이르기 까지 어느 한 계층의 정부에서도 흉수를 징벌하라는 것이 없었으며 정의를 세우지 않았다. 또한 어느 한 매스컴도 진상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악행을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정 공안국 검찰원 사법은 신문, 교육 각 부문과 연합하여 총동원해 공동으로 610과 협력하여 소식을 봉쇄하고 범죄자를 빼돌렸으며 박해당한 사람과 내막을 알고 있는 자 및 함께 있는 학생들을 격리시켰다. 충칭대학당국에서는 심지어 3차례나 “엄정”거짓성명을 발표하여 피해자와 그녀가 소속해있는 전공이 종래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씨 집단은 심지어 610을 파견하여 공개적으로 파룬궁 수련생과 소식을 누설한 자를 체포하였으며 계속 깡패 건달의 자세를 취했다.

박해 과정 중에서 각급의 부녀연합회, 부녀자 사무위원회는 “610”과 단짝이 되어 매스컴과 협력하여 대량으로 파룬궁을 증오하는 선전을 하였고 가족들을 부추겨서 수련생에게 정신 압력을 가했으며 또한 이러한 박해를 해외에 까지 뻗치고 있다.

2001년 1월 20일 장 집단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하기 직전에 신화사 보도에 의하면, 전국부녀연합이 전국적인 활동을 벌여 전국의 부녀자와 2억 7천만의 가정을 선동하여 육친의 정으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압력을 가하여 “철저하게 파룬궁과 이탈”하게 하려고 하였다고 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베이징, 톈진(天津), 허베이, 안후이(安徽), 하얼빈(哈爾濱), 지린(吉林), 산둥 등 지역에서는 소위 “백만 가족의 승낙”이라는 대중성적인 사인 활동을 조직하였는데 증오 선전의 독해를 받은 대중들이 전국 각지에 다 있다고 하였다. “분신자살 조작극”이 발생한 후 “인권 망나니”로 불리 우는 장쩌민은 즉시 부녀연합의 명의로 인권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파룬궁이 아동의 생존과 발전권을 침범하였다고” 말하는 이것은 도둑이 도둑을 잡으라고 하는 건달식의 수단으로 기편하려는 데 있다.

장씨 집단이 부녀연합을 이용하여 국내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정부에서 “민간조직”이라는 허울 하에 박해를 해외에 까지 뻗치고 있다. 2002년 전국부녀연합에서는 통지를 내려 보냈는데, 많은 가정들을 동원하여 해외에 있는 친인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 파룬궁을 멀리하게 하라고 하였다. 전국부녀연합 책임자 화푸저우(華福周)가 사업을 총결할 때에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시(赤峰市) 위안바오산구(元寶山區)에 있는 212세대들이 해외에 있는 친우나 가족에게 편지나 소포, 연하장, 전가서(傳家書 : 집 안 식구끼리 혹은 대대로 물려서 보는 책)등 형식으로 침투를 진행하였다. 보고서에 또 “이러한 활동들은 중앙 610사무실의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고 하였다.

도의(道義)가 멸망된 장씨 집단은 중화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왔다.

한 사회의 개인의 범죄에 대한 제약은 흔히 3가지 면에서 구현되는데 즉, 도덕, 여론, 법률이다. 그러나 독재자가 국가의 권력을 남용하여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하고 도덕이 멸망하는 동시에 거짓말과 증오 선전으로 여론을 오도하고 법률 등 국가기구를 도용하여 무고한사람을 마구 학살하며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있을 때에, 민중의 생명, 안전은 더욱이 아무런 보장도 받을 수 없으며 부녀자 권리 존엄은 보호하고 유지할 수 없다.

온 천하의 견식이 있는 지식인들과 애국지사들이 장씨 집단의 국가적인 공포주의 죄행, 그 죄행들을 천하에 알려 사람마다 규탄함으로써 중화민족을 불구덩이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문장완성 : 2004년 5월 20일

문장발표 : 2004년 5월 21일
문장갱신 : 2004년 5월 21일 10:12:32 PM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5/21/7521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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