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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핍박하여 미치게 하고 죽게 하였다. 바오시라이(薄熙來)의 통치 기간 동안에 마싼자의 흑막 (사진)

— 현대 감옥에는 혹형이 범람하고 있으며 가슴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자주 들린다.

【명혜망 2004년 5월 2일 】4월 22일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중국 상무부장 보시라이가 (薄熙來) 워싱턴 DC지역 법원에서 보낸 소환장을 받았는데 이유는 그가 랴오닝성 성장(省長)으로 있을 때 거액의 국가 자금을 허비하여 파룬궁 탄압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랴오닝성 마싼자 노동 교양소에서는 가슴을 찢는 듯한 처참한 소리가 자주 들린다고 하였다. 2000년 10월 마싼자에서 여자 파룬궁 수련생의 옷을 전부 벗겨 남자 감방에다 밀어 넣는 소름이 끼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참혹한 박해로 인하여 적어도 5명이 치사하였고 7명이 정신이상자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불구자가 되었다.

중국 정부 매스컴의 보도에 의하면 랴오닝성에서는 10억 위안을 투자하여 전 성(省)의 감옥을 다시 개조하였는데 선양 위훙구(瀋陽於洪區) 마싼자 한 곳만 보더라도 5억 위안을 허비하였으며 2003년에 중국에서 제일 큰 감옥을 건설하였다. 땅 면적은 2000여무(60000평) 되는데 다베이(大北) 감옥과 여자 감옥들을 여기로 옮겨왔다. 중국 정부는 현대화한 감옥에다 약 만여 명의 죄수들을 수용할 수 있는데 대형슈퍼마켓, 은행 등 없는 것이 없고 일부 구역은 대외에 개방하려하고 있으며 마싼자는 횡재를 하였다고 선전하고 있다.

선양시 위훙구에 자리 잡고 있는 마싼자 강제 노동 교양소는 99년 이전에는 해마다 적자였다. 심지어는 전기요금마저도 내기 어려웠다. 박해가 시작된 이래 해당 지역 당국에서는 성내각 지역으로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을 마싼자 노동 교양원으로 압송해 왔고 한 사람 당 각 1만 위안씩 지출하였는데 4년간 마싼자에 불법으로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의 총수는 4,000여명에 달하는 바, 그렇다면 4,000만 위안을 지출한 셈이다. 1999년 10월 말에 세워진 마싼자 노동 교양원 여2소(女二所)는 중앙 사법부 관할에 예속되어 있으며 전문적으로 여자 수련생을 감금하고 박해하고 있다. 원래 여2소의 경찰 간부(干警)는 경비원을 포함하여 10명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100여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파룬궁 수련생 1,500명을 관할하고 있다. 남, 여 경찰의 비율은 2 : 8이고 젊으며 농촌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모두가 2001년에 채용되었으며 매달 월급을 두 번씩이나 주는데 대우가 매우 좋다.

사법부에서는 또 특별비용으로 100위안을 마싼자에 지급해 환경(개선)에 사용하게 하였는데 여2소의 소장 쑤징(蘇境)은 박해에 적극 참가하였기에 사법부로부터 5만원의 장려금을 받았으며 “일급영웅”으로 명명되었다. 부소장 사오리(邵麗)도 3만 위안의 장려금을 받았으며 각 대대에서도 모두 장려금을 받았는데 전체 감옥 경찰들은 “단체2급영모(英模 : 노동 영웅과 노동 모범)” 로 대접을 받았다. 뤄간, 류징이 직접 여러 차례 마싼자에 와서 지휘하였다.

마싼자외에도, 선양 다베이 감옥, 다롄 교양원, 장스 교양원, 룽산 교양원 등 모두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것이 잔혹하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보도에 의하면 2001년 말에 랴오닝성 룽산 교양원은 파룬궁 박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40만 위안의 장려금을 받았으며 장스 교양원에서는 5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감옥 경찰들은 공개적으로 말하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누가 이런 비열한 짓을 하겠는가?”라고 한다.

랴오닝성 사법청의 한 고위급 관리가 한번 마싼자 교양원에서 강제 노동해제 대회에서 말하기를 “파룬궁에 대처하기 위하여 투자한 재정 지출이 한차례의 전쟁비용에 해당 한다”고 하였다.

*「전향」혹형

99년 7월 20일에 시작하여 2004년 4월 18일까지 랴오닝에서 있었던 사실인데,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이 103명이나 되며 이는 전국적으로 4위에 해당한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마싼자에서는 늘 가슴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전향”을 거절하는 수련생에 대하여 마싼자에서는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모함하면서 강제로 주사를 놓거나 신경계통을 파괴하는 약물을 투입시키며 강제로 세뇌시키는 녹화테이프를 보게 하고 때리며 전기 충격기로 혹형을 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2000년 10월 랴오닝성 마싼자 노역소에서 여자 수련생들의 옷을 모두 벗겨 남자 죄수들의 감방에 밀어 넣는 소름이 끼치는 일까지 발생하여 국제사회를 경악케 하였다. 잔혹한 박해로 5명이 치사하고 7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불구가 되었다.

마싼자에서는 최근에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박해를 하고 있는데 감옥 경찰들이 견강한 수련생들을 밀폐된 방에다 감금시켜놓고 방안의 벽에다가 10센치 두께나 되는 스폰지를 붙여놓고는 장기간 그 안에 있게 하는데 숨을 쉬기가 정말 어렵다. 스폰지 위에는 수련생들이 고통에 못 이겨 짚었던 손자국이 어지럽게 남아있다.

나이가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도 마싼자에서 혹형을 면하지 못하였다. 백발의 노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스팀파이프에다 달아맨 채로 밤을 지새우게 하였으며 내려놓은 다음에는 두 다리를 9시간 동안이나 묶어놓았다. 또 한 노인을 묶어서 매달아 놓고 때렸는데 팔이 다 부러졌다.

* 방직 여 엔지니어가 박해받아 사망

랴오닝 진저우시(遼寧錦州市) 뉘얼허(女兒河) 방직공장 여 엔지니어, 38세의 왕원쥔은 마싼자 노역소에서 장기간의 학대와 시달림을 받아 신체가 심하게 상하여 2003년 7월 22일에 사망하였다.

칼라사진 중 오른쪽에 자색 모자를 쓴 사람이 왕원쥔이고 왼쪽에 남색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이 동생 왕원쥐안이며 두 자매는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였는데 언니는 박해받아 사망하였고 동생은 계속 마싼자 노역소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고 있다.

1999년 10월 26일 왕원쥔 등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가서 파룬궁 현수막을 펼쳤다. 베이징에서 1년 판결을 받았다. 감금당했던 기간 동안 감옥 경찰은 그녀에게 수갑, 족쇄를 채웠고 사형수와 함께 수감시켰으며 협박하여 매일 판자 위에 앉게 하였는데 한번은 9시간 동안이나 매달아 놓았다. 2000년 10월 26일 왕원쥔은 형기가 만기되어 석방되었다.

2001년 1월 8일 왕원쥔은 베이징에 가서 평화적으로 청원을 하다가 체포되어 진저우시 제1간수소에 감금되었다. 감금당했던 기간 동안 감옥 경찰들은 찬물을 끼얹고 뺨을 때렸으며 머리채를 부여잡고 벽에다가 부딪쳤다. 2001년 6월 왕원쥔은 마싼자 노역소에 압송되어 3년 판결을 받았으며 여2소 1대대 3분대에 감금되었다.

노역소에서는 그녀를 협박하여 과도하게 노동을 시켰으며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장시간에 걸친 박해로 그녀의 신체는 갈수록 나빠졌다. 2002년 5월부터 왕원쥔은 아래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하반신에서 피가 흘렀으나 노역소에서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으며 계속 그녀를 협박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하였다.

2002년 12월 마싼자 노역소에서는 항복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 또 한 차례의 폭력적인 세뇌를 시작하였다. 왕원쥔에게 가부좌를 하게하고 밧줄로 다리를 묶어서 5시간 동안이나 있게 하였으며 협박하여 오랜 시간 걸상에 앉아있게 하였다. 이때 왕원쥔의 신체는 이미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저녁에는 배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후에 병원에 가서 검사하였을 때 이미 자궁암 말기라고 하였다. 2002년 12월 28일 왕원쥔과 이혼 한 전 남편이 그녀를 데려갔는데 왕원쥔은 2003년 7월 22일에 집에서 사망하였다.

마싼자에서 박해받아 치사한 또 다른 사람은 바이수전(白淑貞), 장구이즈(張桂芝), 쩌우구이룽(鄒桂榮)이다.

* 추이야닝(崔亞寧)이 생명이 위급

마싼자에 감금되어 있는 또 다른 수련생 추이야닝은 장기간 엄중한 박해를 받고 있는데 금년 구정 전후하여 병이 더욱 악화되었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마싼자 내에 있는 병원에서 검사하였을 때 당시 추이야닝의 혈압, 심전도가 모두 비정상이었지만 마싼자에서는 외부에 추이야닝은 병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람을 내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해한 바에 의하면, 추이야닝이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뒤 두 차례나 감금되었는데 감금 기간은 4년이 넘었다고 한다. 1999년에 처음 감금되었는데 2년간 감금되었다. 석방된 후 2개월 조금 지났을 때인 2001년 12월말에 또 다시 잡혀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2년이나 되었다. 그녀의 모친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35세인데 협박에 의해 남편과 이혼을 하였으며, 8-9살 되는 아들은 아빠와 같이 있다고 한다.

가자가 마싼자 여2소 2대대에 전화를 하였는데(024-89210074-382),전화를 받은 사람이 추이야닝이 그곳에 감금되어 있다고 하였다.

아래는 전화기록:

기자:2대대 5분대입니까?
상대방:무슨 일입니까?
기자:추이야닝이 거기 있습니까?
상대방:예.
기자:그녀에게 전화를 받게 할 수 없습니까?
상대방:안됩니다.
기자:그녀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상대방:예.
기자:그녀는 언제쯤 나올 수 있습니까?
상대방:형기(刑期)를 마치면 나갈 수 있습니다.
기자:형기는 언제까지 입니까? 알려줄 수 있습니까?
상대방:안됩니다.
기자: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거기에 감금되어 있습니까?
상대방:모릅니다. 당신의 성씨는?
기자:주씨입니다 당신은?
상대방:그거는 당신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 공안국(024-22826445) 전화를 받은 여자가 기자에게 말하기를, 그녀는 외부에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문장완성 : 2004년 5월 1일

문장발표 : 2004년 5월 2일
문장갱신 : 2004년 5월 2일 3:40:21 AM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5/2/7369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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