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4년 4월 26일 】쓰촨성 러산시 농업국 대법제자 장줘(張卓)는 2002년 6월 7일 러산시 중산구 공안분국 경찰에게 붙잡혀 장궁차오(張公橋) 파출소로 보내졌다. 이튿날 저녁 7시경 가족들은 그가 아침 7시경에 장궁차오 파출소 구치실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을 알았다.(명혜망에 이미 보도됨)
장줘, 남, 1969년생, 1991년 7월 베이징 농업대학을 졸업 하고 쓰촨성 러산시 농업국에 임용되어 근무하였으며 국가 공무원의 신분이었다. 근무지에서 그는 직무에 충실하였으며 사람이 진솔하고 품성이 좋아 상급자가 그를 등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단지 그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았다.
장줘는 러산시 중구 과학기술 다러우(大樓) 연공장 보도원이었다. 1999년 7.20이래 그는 여러차례 “전향(轉化)”반에서 세뇌당하였으나 시종일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7일 오후 5시 30분경 장줘는 러산시 중구 쟈저우(嘉州)대로와 난안로(南安路)가 교차하는 지점의 잔디밭에서 동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러산시 중구 공안분국 경찰이 그를 불법으로 장궁차오 파출소로 데려 갔다. 그는 그곳에서 불법으로 심문을 받았고 저녁 7시경 집을 수색 당하였다. 이튿날 9시 이후 가족에게 장줘가 아침 7시경 장궁차오 파출소 구치실에서 사망하였다고 알렸다.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하면 7일 저녁 8, 9시경 가족이 그를 방문하였고 모두가 정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줘가 사망한 후, 러산 경찰들은 소식을 봉쇄하려고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가족들을 엄밀히 감시 하였다. 장줘가 사망한 그날 경찰은 가족들이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바로 화장을 하려고 했으나 유가족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3, 4일이 지난 후에 가족들은 사망자의 시신을 보았으나 시신은 이미 “미용(美容)”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사망자의 코 구멍, 귀 등 여러 곳에서 핏자국을 보았으며 이빨 틈새에 피가 선명하게 보였다. 한쪽 손등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사망자는 심한 구타를 당한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경찰은 장줘가 자살하였고 7시경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7시 20분에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자살한 곳은 지면으로부터 1.5미터도 안되며 간수와의 거리는 1미터 떨어진 정도로 “자살”이라고 아무리 둘러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장줘가 사망한 당시에 6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천리밖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은 신체가 허약하고 병도 많아 가족들은 노인들이 심한 타격을 받을까봐 염려하여 아직까지 소식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문장완성: 2004년 4월 25일
문장발표: 2004년 4월 26일
문장갱신: 2004년 4월 26일 2:04:18 PM
문장분류: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04/4/26/73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