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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吉林省) 메이허커우시(梅河口市) 대법제자 리촨원이 박해받아 치사

【명혜망 2004년 4월 3일】지린성(吉林省) 메이허커우시(梅河口市) 파룬궁 수련생 리촨원(李傳文), 54세,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한다하여 여러 차례 훙메이진(紅梅鎮) 공안국 악경 뉴전쿠이(牛振奎)를 두목으로 하는 악경들에게 잡혀가 구타를 당했으며 두 번이나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하였다. 노교소(勞敎所)에 감금되어 목숨이 곧 끊어질 듯해지자 2004년 3월에 석방 하였는데 이미 중도(重度)의 빈혈이 나타났으며 호흡도 매우 미약해졌다. 그렇게 3월 9일에 사망하였다.

리촨원은 96년도 초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99년 10월에 헌법이 부여한 공민의 신앙자유, 청원할 수 있는 권리 등에 따라, 텔레비젼의 파룬궁에 대한 거짓보도를 똑똑히 밝히려고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하였다. 그러나 되려 메이허커우 톄베이(鐵北) 간수소로 보내져 불법으로 감금시켰다. 감금되어 있던 기간에 간수소의 경찰들은 범인들을 시켜 그를 구타하게 하였다. 그들은 널판자로 엉덩이를 때렸는데 살이 다 찢어져 바지와 함께 붙었다. 또 하나의 혹형은 “벽을 뚫는다(穿牆過)”는 것인데 두 사람이 양쪽에 서서 팔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한다. 그 다음 한 사람이 엉덩이를 힘껏 차는데 그러면 머리가 벽에 탕 하고 부딪쳐 몇 번만 그러고 나면 금방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또 다른 하나는 “비행기를 업는다(背飛機)”는 형벌인데 역시 두 사람이 양쪽에 서서 각기 팔을 비틀어 뒤로 가져가 위로 힘껏 쳐든 다음 손바닥이 벽을 짚게 하고 다리는 굽히지 못하게 한다. 사람은 몇 분도 채 견디지 못한다. 평소에 리촨원은 “이 쑤시개를 말아놓는(捲牙籤)” 강제노동을 하는데 매일 15-16시간에 달한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악경이 구타를 하거나 벌을 세우는데 한달이 지나야 내보낸다. (말에 따르면 매 사람이 600위안의 벌금을 냈으나 아직도 영수증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2000년 3월, 리촨원은 또 다시 강제로 세뇌반에서 박해를 받았다. 그때 훙메이진 분국 국장 뉴전쿠이는 그가 베이징에 가서 상방할까봐 두려워 그가 가지고 있는 2000위안의 저축 통장을 빼앗았고 그를 핍박하여 매일 공안국에 가서 자기의 차를 닦게 하였으며 눈도 쓸고 깨끗하게 치우게 하였다. 경찰 왕서우보(王壽波)는 그한테 돈을 꿔달라고 협박하였으나 그가 꿔주지 않자 한 차례 그를 구타하였다.

2000년 10 월, 리촨원은 원래 쾅위춘위안(礦育春園) 탁아소였던 곳에 꾸린 세뇌반에 강제로 끌려갔다. 뉴전쿠이는 그로 하여금 물 한 대야를 담아서 추켜들고 서있게 하였는데 규정한 시간 전에 내리거나 물을 쏟으면 사정없이 때렸다. 그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박해에 반대하여 단식을 시작하였는데 뉴전쿠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리촨원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질 하였다.

2001년 1월 25일, 좌우에 리촨원은 또 다시 구치소에 15일간 감금되었다.
2001년 3월 23일, 뉴전쿠이는 리촨원의 집에 가서 그를 속인다음 데려가 간수소에 보냈는데 거기에서 또 퉁화(通化) 노역소로 보내 1년 동안 박해를 받게 하였다.

2002년 6월 18일, 리촨원은 또 다시 자오양거우(朝陽溝) 노역소에서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받았다. 엄중한 박해로 인하여 리촨원의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졌는데 노역소에서는 책임져야 할까봐 두려워서 3월 10일에 리촨원에게 알지도 못하는 약물주사를 놓았고 그는 정신이상(精神失常)이 생겼다. 그런 다음에 노역소에서는 그를 메이허커우시 “610”에 보냈다가 또 훙메이진 분국에 넘겼고 경찰 장(張)XX가 장춘옌(張春豔)의 집에 데려갔다. 경찰 장XX는 가면서 리촨원에게 “며칠이 지나면 다시 올 것인데 계속 연공을 하면 또 잡아 가겠다”고 위협조로 말하였다. 장씨네 집은 유치원이라서 생명이 거의 끝에 이른 사람을 두기가 불편하였다. 후에 가이융광(蓋永光)이 자기 집으로 데려가 보살폈다.

리촨원은 장기적인 불법감금과 잔인무도한 박해로 인하여 이미 중도의 빈혈(重度贫血)이 생기고 호흡이 미약해 졌으며 매일 단지 적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3월 17일부터 시작하여 피를 토하기 시작하였고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였다. 18일 저녁에 아이민(愛民)병원으로 호송하였는데 의사는 병이 위급하다는 통지서를 내렸다. 3월 19일 훙메이진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날 저녁 6시 10분경에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쓴 채 세상을 떠났다.

영안실에 근무하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 경찰차가 밤새도록 주변에서 순찰하였으며 아침에 일찍 나왔다고 한다. 3월 20일 오전 8시 10분에 시(市) 610, 정법위원회, 공안국에서 모두 7명의 사람이 나와 리촨원의 시체를 싣고 갔다. 더 구체적인 상황은 불분명하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근무자에게 만약에 가족이 오면 공안국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문장완성 : 2004년 4월 1일

문장발표 : 2004년 4월 3일
문장갱신 : 2004년 4월 3일 3:08:09 AM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4/3/7148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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