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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배워 심신이익을 얻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다.

[명혜망 2004년 2월 11일] 나는 97년도에 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수련하기 전에는 온몸에 병이 있었는데, 신경성 두통으로 수없이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어떤 때에는 밤에도 아파서 온밤을 앉아 있어야 했으며, 또 허리와 위장, 그리고 다리에도 통증이 있었다.
또한, 봄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솜바지를 입지 않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한 달은 더 입어야 했다. 지금은 몇 년 동안이나 겨울에도 솜바지를 입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발은 동상에 걸려서, 겨울이면 밤새도록 발을 물에 담그고 있어야 했고, 심할 때에는 걷지도 못하였다.

수련한 이후 병은 완전히 없어졌는데, 마치 사람을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길을 걸으면 온몸이 가벼웠고, 일할 때에는 젊은이 못지 않았다. 대법은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준다. 신체의 정화뿐만이 아니라 심령마저도 정화시키므로, 당신은 곳곳에서 남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언젠가는 한 여자아이가 우리집 문 앞을 지나면서 자전거 바퀴 공기주입구의 고무 밸브와, 주입구의 테를 모두 잃어버렸다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여기 어딘가에 자전거를 수리할 곳이 있나요?” 그때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자전거 수리소는 이곳에서 너무 멀어 많이 걸어야 하는데, 오랜 시간을 지체한다면 수리소는 문을 닫을 것만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곳곳에서 남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곧바로 우리 집 자전거에서 떼어내어 그녀에게 설치해 주었다. 그녀는 매우 감동하여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말했다. “고마울 것 없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소.”

또 어느 한번은 문어구에 채소를 파는 사람이 왔었는데 나는 그에게서 채소를 샀다. 그런데 그 영감이 계산을 틀리게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적게 계산했소!” 그 영감은 아주 감동하였고, 나는 또 그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나 또한 수련하기 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99년 7.20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장쩌민 집단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을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권력자가 나쁜 사람은 방임하고, 오히려 좋은 사람을 억압하는 그런 것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2000년 12월, 나는 법을 실증하러 천안문 광장에 갔었는데,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경찰이 나더러 대법은 좋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하라고 하여서 나는 그 경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대법은 사람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주고, 또 좋은 신체가 있을 수 있게 하는데, 당신은 TV에서 말하는 것을 듣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는 즉시 경찰차를 불러 나를 천안문 파출소로 끌고 갔으며, 오후에는 화이러우 감옥으로 보냈다. 경찰은 나에게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악경은 화가 나서 듣기 거북한 말을 많이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너에게 내가 어디 사람이라고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알려 준다면 너희들은 당지 공안국에 통지하여 나를 데려가게 할 것이다. 나는 아직 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천안문에 와서 법을 실증했지만, 우리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 걸어 나오지 못했으니, 나는 정념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이튿날 바로 나를 석방하였다. 경찰들은 차로 나를 화이러우 감옥에서 멀리 떨어진 개인 여관으로 보내면서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길에서 또 말하기를 “오늘은 천안문에 가지 마세요. 당신이 간다면 우리는 밥그릇을 잃소. 가려면 며칠 지나서 다시 가시오.”
현지에 다시 돌아온 후 나는 집에 갈 수 없었으며, 집에 가면 천안문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곧 동수의 집에서 이틀 동안 머물면서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을 찾아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전국 각지의 대법제자들이 모두 법을 실증하러 천안문에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 지역의 대법제자들도 모두 법을 실증하러 천안문에 갔었는데 후에 현지에서 데려가, 여러 동수분이 단체로 단식하였고, 며칠 안되어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집에서도 조금 압력이 있었는데 현지에서 “민감일(북경회의 등)”이 되면 악도들은 우리 연공인들을 향진에 불법수감하고, 집에 일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두 살바기 손자가 있었는데 돌볼 사람이 없어 아이가 울면서 할머니를 찾았지만, 그들은 돌보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 한번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솜옷도 입지 못한 채로 악도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갔다. 이런 일이 일년에 몇 십 차례 찾아 온다. 그래서 집에서도 줄곧 편안하지 못하였다. 우리 집 영감이 말하기를 그들이 오면 자기 말대로 말하라고 하였다.(뜻인즉 그들에게 ‘연공하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다.’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였다. “나는 ‘眞(쩐), 善(싼), 忍(런)’을 수련하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소.” 그는 내가 아주 견정한 것을 보고는 이후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당에 가입할 수 없어 어떤 때에는 원망도 하였다. 며느리도 나에게 말하였다. “어머님은 너무 완고하세요. 이후 아이들도 모두 대학에 갈 수 없어요.” 며느리의 모친은 뇌혈전에 걸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는데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연공하지 않았다면 네 어머니보다 더 안 좋았을 거다. 지금 어떠한가를 아직도 모르겠니.” 이러한 진상을 통하여 그들도 지금은 알게 되어 며느리도 그녀의 어머니에게 수련을 하라고 말하였다.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가족들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여, 지금은 우리집 영감도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에 진상을 알려서 진상을 알게 해야 한다. 지금 나는 진상 자료가 있으면 자료를 배부하고, 없으면 입으로 이야기한다. 문어구에서 채소를 파는 사람, 참기름을 파는 사람 또는 넝마주이 등등 누구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려 주어, 한 번 더 이야기하면 한 사람 더 구할 수 있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정진합시다! 정법노정이 이렇게 빠른데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남아 있는 길을 신의 정념정행으로, 당신들의 사전의 큰 소원을 원만시키도록 하라!”

문장완성 : 2004년 2월 11일

문장발표 : 2004년 2월 11일
문장갱신 : 2004년 2월 11일

문장분류 : [호법여정]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2/11/6715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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