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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쇼(蒙潇)를 기억하면서

글/ 뉴질랜드 대법제자 고이칭(高一青)

[명혜망 2004년 1월 29일] 멍쇼(蒙潇)가 학살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저는 눈물을 억제 할 수 없었습니다. 멍쇼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 그리고 일거일동이 아직도 어제일 같았습니다.

저는 2000년 1월에 북경 동성(北京东城)수용소에서 멍쇼(蒙潇)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뉴질랜드 대법제자 7명은 1999년 12월에 대법을 실증하려고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천안문에 가서 마음 속의 말을 외치기도 전에 호텔에서 잡혔습니다. 2000년 1월 1일 이른 새벽에 우리 7명은 동성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저는 여 1통 1소에 감금되었습니다. 대략 일주일 후에, 적지 않은 대법제자들이 7소에서 동성수용소로 옮겨 왔는데, 그 중에서 1통 1소로 온 멍쇼(蒙潇)를 알게 되었습니다. 멍쇼(蒙潇)는 삼십여세에 짧은 머리를 하였으며, 몸에 입은 옷은 (그녀는 저에게 수련생이 준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깨끗하고 정결했는데, 멍쇼(蒙潇)가 처음 저에게 준 인상은 소박하고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오기 전, 1소에는 벌써 3명의 대법제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마루바닥에 앉아 정공을 하였지만, 여러가지 집착심으로 인하여 동공은 시작 한 지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저는, 매번 감시기 앞에서 연공할 때에는 가슴이 뛰어 마치 큰 난관을 넘기는 것 같았습니다. 멍쇼(蒙潇)가 온 후, 대법에 대한 견강함과 용감은 모두 저에게 격려를 주었습니다. 더욱이 저로 하여금 놀라게 한 것은 그녀가 수련한지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대법 법리에 대한 인식은 매우 똑똑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공인이 다른 사람을 연루시켜 함께 벌을 받게 할까봐 두려워 하는” 생각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한 방면으로는 관리원(管教)들에게, 연공인은 연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선악이 보응이 있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는 것을 알려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만일 정말로 어떤사람이 “연루” 되었다면, 이 사람도 대법을 위하여 조금 이나마 공헌을 하였기에 장래에 그래도 복을 받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연공하는 환경은 우리가 반드시 개척해야 했습니다.

어느 한번 연공하는데, 관리원(管教)이 멍쇼(蒙潇)를 수갑으로 철창문에 채우자, 그녀는 큰 소리로 사부님의 경문 > 과 >를 외웠습니다. 그러자 수용소에 있는 많은 범죄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멍쇼(蒙潇)는 마치 류호란 (刘胡兰) 강제(江姐) 같다고 말했습니다. 멍쇼(蒙潇)는 많은 경문들을 익숙하게 외울 수 있고, 그녀는 저에게, 자기는 항상 시간만 있으면 경문을 외웠고, 길을 갈 때, 저전거를 탈 때도 외웠으며, 이렇게 해야만 숙달되고 잊혀지지 않으며, 시시각각 법에 용해 될 수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매일 밥을 두끼 주었는데, 매끼 찐빵 두개에다 배추국 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배추와 고기는 맛이 같다고 하면서,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식이불미—-구단집착”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감탄하면서 “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가정이 부유하지 않아, 북경에 올 때에도 돈을 얼마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동수들은 그녀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사람이 조금 주고 저 사람이 조금 주어, 비록 그녀가 재삼 거절했지만, 그녀는 늘 “돈을 쓰면 쓸수록 많아졌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부유”하여 주머니에는 이백여원이나 있었습니다. 후에 그녀가 다른 수용소에 옮겨질 때, 우리 수용소에 있는 경제가 매우 힘든 다른 한 동수에게 관리원(管教)을 통하여 감옥에서 쓸 돈 ”號錢”(수용소내에서 물건을 살 때 쓰는 표)을 보내왔습니다. 그 수련생은 받고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했습니다. 죄인들은 모두 소곤소곤하면서, 法輪功(파룬궁)은 정말 한집안 식구처럼 친하다고 하였습니다!

멍쇼(蒙潇)는 북경 천안문에서 다른 두 동수와 “法輪大法 (파룬따파), 생생불멸 (生生不息), 장존위세 (长存于世)” 라는 플랭카드를 펼친 후, 잡혀 동성수용소에 감금 되었습니다. 후에 북경 7소(7소는 중범죄자를 감금하는 곳)에 감금 되었다가, 후에 다시 동성수용소에 옮겨왔습니다. 그 플랭카드에 씌였던 말들은 그녀의 마음을 대표하는 것이였으며, 法輪功(파룬궁)이 탄압 받은 후, 그녀는 태연하게 가정과 직장, 사회 각 방면의 압력을 단호하게 제지하였으며, 절대로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법에 대한 굳은 믿음과 사악 앞에서의 용기는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녀는 4.25 부터 태양은 다시는 태양이 아니고, 그것은 이미 돌고 있는 法輪(파룬)으로 보인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소한 일들도 모두 눈앞에 선했습니다. 그렇게 활발하고 젊은 생명은 이미 빼앗겼습니다. 저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고,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눈물을 그칠줄 몰랐습니다. 저의 좋은 동수 멍쇼(蒙潇), 당신은 일찍 매번 “사부님을 찾은지 몇몇 해던가, 하루 아침 직접 뵈옵게 되었구나, 법을 얻어 되돌아 수련하거니, 원만하여 사부님따라 돌아가리라.”를 외울 때마다, 당신은 언제나 눈물을 흘렸고, 이 시가 당신 영혼의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하였습니다. 현재 저는 당신이 자기 생명의 진정한 귀소를 찾았다고 믿습니다.

(주: 멍쇼(蒙潇), 여, 37세, 사천성 성도(四川省成都)대법제자, 원 성도강철공장 직원, 공단장이며, 대학 학력입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대법진상을 말하므로, 사악한 경찰들의 참혹한 형벌을 받았고, 강제로 음식을 주입 당하였으며, 묶인 상태로 독성이 있는 대량의 주사를 맞은 다음, 온몸에 상처 투성이였고 핏자국으로 얼룩진 멍쇼(蒙潇)는 2004년1월 8-12일 사이에 성도 금탕현(成都金堂县)에서 박해로 사망하였습니다.)

문장 완성시간: 2004년1월29일

문장 분류: [호법여정]

원문 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29/6605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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