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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최후의 한장의 사진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월 28일】 나는 우링샤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사진을 볼때면 가슴이 쓰리도록 아프며 비록 이러한 일들이 2001년에 발생하였지만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때는 무더위가 한창인 7월이었다. 우리는 불법적으로 가목사의 강제 노동 교양소에 갇히었는데, 이곳은 법륜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은 수련생들을 단독으로 가둬 놓았으며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느날 감시기를 설치하였지만, 우연히 그를 만나서 잠시나마 같이 있게되었다.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그의 집이 쌍압산시에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때는 그가 들어 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의 전화를 맡은 유따는 감옥 경찰의 지시하에 끊임없이 그한테 거짓말을 하면서 그더러 사부님을 배반하라고 하였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상화한 심태로 오히려 유따한테 진상을 하였는데 그때 나는 그가 꼭 끝까지 수련할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후 매우 오래지나서야 나는 그가 심한 박해를 받아 간복수가 엄중하게 되었다는것을 알게 되었으며 노개소에서 부득불 그를 석방하였다.


우링샤가 노개소에 잡혀가기전에 아들하고 찍은 사진


우링샤가 가목사시 강제 노동 교역소에 잡혀가있는 동안에 박해를 받아 간경화 복수와 다리가 썩고있는 사진이다

2002년 봄에 나와 B수련생은 박해로 떠 돌아 다니게 되었는데 우링샤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리저리 찾아 다니던 중에 마침내 그를 찾게 되었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전에 예쁘기만 하던 그가 두볼이 움푹패여 들어갔으며 두눈은 튀여 나오고 두팔은 살이 빠져 뼈만 앙상 하였으며 배는 불러서 금방 터질것만 같았고 두 다리는 부어있었다. 힘겹게 숨을 몰아 쉬며 눕지도 못하고 그저 않아있어야만 했다. 78세의연로하신 그의 아버지가 똥오줌을 받아내고 있었으며 80세가 넘는 그의 모친은 귀가 멀어서 그를 돌봐주지 못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이집의 유일한 노동력이었다.

작고 허름한 집안에는 눈에 뜨일만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경찰은 찾아와 귀찮게 하였다. 그의 형편을 헤아려 돈을 조금 남기려고 하였으나 그는 굳이 받지 않았다. 다른 동수들도 돈을 보내 왔지만 그는 모두 돌려 보냈다고 하였다.

우리는 정시 발정념을 하였는데 수련하지 않는 그의 부친도 우리와 함께 하였다. 그가 이렇게 하는것은 딸이 하루 빨리 몸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때가되면 딸한테 “발정념시간이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가 가려고 하자 그의 부친은 매우 감동해 하면서 우리들이 자주오기를 바랬다.

7월의 어느날 나는 또 그를 보러 갔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의 두다리는 썩어서 장단지가 움푹하게 패여 들어갔으며 무릅아래로 물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배는 이미 명치끝 부위까지 부어 올랐고 집안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나는 그한테 사진한장을 찍어서 명혜망에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냐고 물었다. 그는 동의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생명 최후의 시기에 가슴을 저리게 하는 사진한장을 남겼다.
7월 하순, 나는 집에가서 무얼 좀 장만해 가지고 그한테 가서 돌봐 주려고 하였는데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7월 27일에 그는 사망하였다고 하였다.

1년이후 나는 진상 CD에서 우링샤의 이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지나간 일들이 영상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때 나는 우링샤의 집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을 동수들한테 말하였는데 여러사람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A수련생이 길을 안내하고 B수련생은 박해 경과 를 쓰고 D수련생은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나는 옆에 서 있던 동수 기송산에게그의 애명(어린 아이적에 부르느 이름 ) “소삼(小三)”을 부르면서 우링샤의 집에 가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일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가슴아픈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 왔다. 먼저 A,D 두 수련생이 2002년 12월에 선후로 잡혀 갔으며 B동수도 2003년 3월에 불법체포되었고 같은해 6월 18일 27세의 젊은 동수 기송산은 잡힌 그날로 악경들에게 맞아서 사망하였다.

A,D 두 수련생은 대법수련을 견지하면서 절때로 타협하지 않았으므로 악경들의 혹형과 시달림을 받았다. 악경들은 비닐주머니를 동수의 머리위에 씌우고 질식시켰으며 잔인 한 수단은 이루 상상할 수도 없다.
마지막에 두 수련생은 중형을 받았다. B 수련생은 박해를 받는 기간에 “몽둥이로 받친다”는 일종의 형벌을 받았는데 두 다리를 벌리게 하고 몽둥이의 양쪽끝에 철환(铁环 ) 을 고정시켜 놓고 두 발목을 거기에 묶어놓은 다음 두손을 철환으로 엎어서 함께 다른 한쪽의 발목에 고정시켜 놓는다 . 하루 24시간 이런 자세로 있게 하는데 스스로 자기몸을 가누지 못한다. B 수련생이 시달림을 받아 생명이 경각에 이르자 비로서 석방되어 나왔다.

끝내 10월 어느날 내가 또 다시 이 작은 마을에 오게 되었다. 시장(市场)에서 연세가 많으신 동수 한분을 찾다가 알게 되었는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동수들 대부분이 잡혀가고 , 판결받고 ,노개소에 갔고 불구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나한테 당신은 그들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의 모든 대법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법륜대법은 좋습니다.”는 한마디 진실한 말을 하였을 뿐이다.

신앙의 힘은 무궁한 것이며 대법제자는 더우기 역사의 그 어느때의 수련과도 다른 것이다. 우리들은 간고한 환경속에서 공포의 박해하에서도 계속 견정하게 나와서 진상을 알릴것이며 사람들에게 “법륜대법은 좋습니다.”고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고귀한 중국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장완성:2004-1-27 투고:2004-1-28 수개:2004-1-28 10:44:5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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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분류:【박해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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