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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방(候有芳)이 감숙평안대노교소(甘肅平安台勞教所)에서 박해를 받아 치사된 사실(사진)

【명혜망2004년 1월 25일】후유방, 여 49세 법륜공 수련생, 감숙 금창시 서파중학교 선생, 란주 사대 물리계열 졸업.

2000년 북경에 가서 상방한 이유로 붙잡힌 후 15일간 구속(금창시 구치소)되었으며, 9,997위안의 벌금을 내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 돈이 그녀를 세 번이나 북경에서 데리고 올 때 사용한 비용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그들에게 도리를 따지고 나서야 겨우 1,000위안을 돌려주었다. 그 당시 여러 압력으로 남편은 그녀와 이혼할 것을 강요하였다. 학교에서는 그녀에게 강의를 못하게 하고, 대신 취사를 시키며, 막노동을 시켜 매달 겨우 200위안의 임금을 주었다. 거처할 곳이 없어서 시골의 단칸방에 세를 들었다. 학교 관련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와서 수련하지 않겠다는 말만 하면 그녀에게 임금과 아파트를 주고 복직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이런 모든 것들은 그녀의 법륜대법에 대한 신념을 바꾸지 못하였다.

2002년 8월에는 法輪功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붙잡혀 금천구 공안국 “인민 경찰”에 의해 “고문용 의자”등의 혹형과 고통을 받았다.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받고 감숙성 제1노교소 평안대 7대대 2소대에 감금되었다. 노교소에서 다시 혹형과 핍박을 받아 전화(轉化)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전화하였다. 그 후 다시 마음이 변함을 발표하자, 경찰은 그녀에게 혹형을 가하였고 밖에서 1개월 동안 벌로 서있게 하였으며 안으로 들어가 자지 못하게 하였다. 그녀를 핍박하여 “회개서”를 쓰게 하였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쓰지 않았다. 경찰은 다시 악랄하게 그녀를 구타하여 팔, 다리가 모두 부러져 2002년 11월 29일 마침내 심한 고통을 받으며 사망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사망할 때에 체내에 많은 피를 흘렸고 늑골, 골반이 모두 부러졌다고 한다.

공안은 죄를 덮어 감추기 위해서 가족에게 통지 없이 시신을 화장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몇몇 살인흉수들을 원래 부문으로 돌려보냈다. 후유방의 모친(母亲)은 아직까지도 자기 딸이 “인민 경찰”의 손에 참혹하게 살해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글발표시간 : 2004년 1월 25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25/6578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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