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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13처 간수소의 기만책과 고문혹형

[명혜망 2004년 1월25일] 며칠 전 수련생이 쓴 >란 문장을 보고 나도 내가 북경13처 간수소에서 보았던 견문들을 써 내어 그들의 기만책을 폭로하고자 한다. 북경 13처 간수소의 기만책
 
13처 간수소는 상당히 큰 1처 간수소로서 몇십개의 감구(监区)가 있고 매 감구마다 십여개의 감호(监号)가 있다. 또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분리되어 있다(형사범의 말에 의하면 앞마당에는 아직 심판하지 않은 사람을 가두고 뒷마당에는 판결받은 사람을 가둔다고 하였다). 들어가자 마자 악경이 먼저 야만적으로 몸 수색을 하는데 강제로 옷을 발가벗긴 후 신, 허리띠, 안경, 시계 등을 절대 지니지 못하고 입지 못하게 하였다. 십여명이 한방에 들어가는데 우리가 이름을 말하지 않자 악경은 우리에게 번호를 달아 주었다. 오후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려 심문을 당하였으며 우리더러 이름과 주소를 말하게 하였다(대법제자들은 현지 혹은 회사에 번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하여 모두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당시 심문할 때는 사람을 때리지 않았고 경찰은 아주 사람을 관심하는 모습으로 꾸며 심지어 우리와 수다를 떨면서 수시로 우리더러 이름, 연령, 주소 혹은 우리가 반영하고 싶어하는 문제를 말하도록 유인한다. 모든 문제를 반영하여도 괜찮았다. 또한 스스로 쓸 수 있었지만 나중에 진실한 성명과 주소를 적어야 하는 바 이것은 우리에게 답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기만책1, 사실 반영된 문제는 근본 보고하지 않았고 문제를 반영하라는 것은 가짜이고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 진짜이다). 어떤 대법 수련생은 어차피 청원하러 왔으니 누구와 반영하든 지간에 같지 않는가 생각하고 이름과 주소를 말해 냄으로서 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

불법으로 심문하여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은 더 한층 격리시킨다. 나와 세명의 수련생은 XX구 10호 감실에 들어갔고 문에 들어서자 마자 네명의 형사범 중 세 사람이 우리를 에워쌌다. 그녀들은 아주 흥분하여 말했다: ‘法轮功(파룬궁)이 왔다… …’ 그녀들은 한 사람이 한 사람과 한담하였으며 그 중에 한 형사범은 한 동수의 손을 잡고 ‘고향 사람’이라고 불렀다. 말투를 듣고서 고향 사람인 것을 알았다고 하며 ‘친절하게’ 이것 저것을 물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아직 적응되지 않았는데 형사범이 우리에게 이렇게 잘 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또 이전의 이 방 동수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이야기하였다. 북경의 한 할머니가 3월 9일에 붙잡혀 들어 왔는데 담요가 없이 단단한 바닥에 누워서도 추워하지 않았으며 할머니는 또 그녀를 양딸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녀에게는 또 할머니의 전화번호가 있었다(기만책2. 대법제자에게 표면적으로 친절한 이런 종류는 그녀들에게 얼마나 강한 정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목적이 있었다. 악경들은 우리에 대한 심문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들은 이런 형사범을 이용하여 위선적인 방식으로 목적에 도달하였다). 대법제자의 마음이 모두 비교적 순진하기 때문에 세간의 속임수와 허위란 것이 없으며 경각성을 갖지 못하였다. 그녀들의 이런 표현을 보았을 때 자연히 아주 기뻐하였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은 또 >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웠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녀한테는 또 소장인쇄본>이 있었다(기만책3, 이런 방식은 일반적으로 가려내기 아주 힘들다.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또 정말로 그녀들이 대법에 대하여 선념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경각성을 늦추었다). 그 당시 나는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들어갈 때 모두 엄격하게 몸수색을 당하여 아무 것도 갖고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녀들에게 어찌 >이 있을 수 있을까… … 그러나 그 당시 또 이런 한가지 생각만 있었을 뿐 그 속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우리는 경각성을 늦추었고 그녀들에게 이름, 주소,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으며 또 나가서 그녀들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대답하였다.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여전히 우리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또 그녀가 안 되겠다고 여겼다.

13처 간수소의 조건은 아주 열악하여 일년 사계절 뜨거운 물이 없어 오직 식사할 때 뜨거운 국물이 조금 있었다. 평소 생수를 마셨고 어떻게 춥든지 모두 찬물에 샤워하였다. 감실의 창문은 아주 높고 아주 작아 근본 햇볕이 들어오지 못하였다. 비록 대낮이라도 창문너머 하늘을 보고 시간을 알아낼 수 없었다. 하루에 다만 두번 식사하였으며 찐빵 하나에 국 한 그릇이며 어떠한 노동 항목도 없었다. 장기간 감금된 형사범들 중에 어떤 이는 너무 지루하여 자살을 생각하였다(그러나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어떤 이는 사상 중에서 강렬하게 나가기를 바랐는데 아마도 마침 이러한 사상 때문에 악경에게 이용당하여 대법제자를 배신하는 이욕으로 얼룩진 일(利欲熏心)을 하였을 것이다.

얼마 안가서 그 세명의 형사범이 경찰에게 불러 나갔다. 우리에게 아주 냉담하던 형사범이 비꼬면서 말했다: ‘그녀 세 사람의 그 덕성이… …’ 세 사람은 돌아온 후에도 우리에게 속여 말하기를 옷가지와 물건을 검사하는것을 도와 주었다고 하였다.

그날 밤 나는 심문을 당하였다. 악경은 손에 뻰지를 들고 눈을 흘겨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의 집은 XX이고 너의 회사는 XX이다. ‘이때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나의 이름과 주소를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 ‘그는 좋다고 하더니 책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책에는 이미 다른 동수의 글이 가득 씌여 있었다. 나는 세가지를 적었다. 1, 평화롭고 쾌적한 연공 환경을 요구한다. 2, 정식으로 대법서적을 출판하라. 3, 이 선생님의 명예를 회복하라. 쓰고 나서 나는 그에게 위에 반영할 수 있는가 물었고 그는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또 중앙으로 반영할 수 있는가 물었고, 그는 안된다고 하였다. 단지 그의 상급인 13처의 영도한테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기만책4,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동수들을 기만한 즉 모두들 그들이 중앙으로 반영한다고 여기고 비로소 이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는 또 한번 기만 당하였음을 느꼈다.

북경13처 간수소의 고문혹형

13처 간수소에서 우리는 계속 단식으로 항의하였다. 갓 하루를 단식하자 우리는 끌려 나가서 음식물 주입을 당하였다. 복도 하나를 지나니 비참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은 혹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맞은 편에서 내가 아는 수련생이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이미 맞아서 변형되었고 왼쪽 어깨는 굽어 움직이지 못하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겨우 걸어갔다(뒤에 그는 나에게 알려주기를 먼저 음식물 주입을 당하고 또 전기침을 사용하였으며 또한 혹독한 매질을 당했다고 하였다). 이 감구의 매 한개의 감실에는 모두 혹형실이 있었다. 매 한개의 감실에는 모두 침대 하나씩 있었고 침대 네 모퉁이에는 띠가 감겨져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한 의사가 한쪽에서 나의 손과 발을 묶으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말하라. 말하면 이런 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말하라는 것인가?’ 그는: ‘너의 집 주소를 말하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라고 물었고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말하였다면 어찌 또 이곳까지 왔는가?’ 그는 또 가서 경찰더러 대조하게 하였다. 나는: ‘당신은 의사로서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이 당신의 책임인데 오히려 나를 이 곳에 묶으며 또한 나더러 집주소를 말하라고 하다니. 완전히 인도주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당신은 양심에 미안하지 않는가. 의사의 신성한 직책에 미안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이때 나를 심문하던 경찰도 오더니 의사에게 말했다: ‘그녀는 확실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밥을 먹지 않는다.’ 의사는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마비되어 말했다: ‘주입하라.’ 이때 나는 비로소 나에게 음식물을 주입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사의 뒤에서 젊은 실습생이 걸어왔고 이 실습생이 나에게 주입하였다. 그 의사는 옆에서 지도하였다. 이 실습생은 기술이 아주 좋지 못하여 호스가 위에서 돌고 돌면서 들어가지 못하였다. 나는 극도로 고통스러웠으며 겨우 들어갔을 때 코도 파열되고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하였다. 목도 파열되었고 위에 꽂아 넣어 위도 파열되었다. 뽑아냈을 때 모두 피였다. 의사는 주입할 방법이 없는 것을 보고 콧구멍을 바꿔라고 하였다. 또 다른 콧구멍으로 들어갔지만 뽑아낼 때 모두 피였다. 의사는 주입할 수 없음을 보고서 호스를 뽑아내더니 소리를 질렀다: ‘침을 놓아라. 침을 놓아라.’ 이른바 침 찌르기는 바로 두개의 침을, 하나는 인중혈에 꽂고 하나는 손목 혹은 발목에 꽂고서 두 침 사이를 전선으로 연결하여 전류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전류의 강도가 고르지 않으면 인체에서 감당하는 느낌도 다르다. 고강도의 전류가 통과될 때 인체는 강렬하게 진동되어 침대판마저 ‘펑펑’소리가 난다.

‘과전침(过电针)”은 이미 완전한 형벌이었다. 아울러 이렇게 잔혹한 형벌을 단지 평화롭게 단식하고 있는 대법제자에게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형벌을 실시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보통 하늘 아래에서 가장 고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의사였다. 심지어 의사마저 이 정도로 의덕을 엄중히 위반하고 양심과 도의를 위반하는 행위를 저지르면서 자신은 이를 모르고 있으니 이는 현대 변이 사회의 비애가 아닌가!

사후에 또 세명의 동수에게 들었는데 그녀들은 13처의 악경에 의해 정신병원에 가서 전기침을 맞았다고 하였다. 전류가 극히 강하여 다만 ‘펑펑’하는 진동소리만 들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명의 수련생은 사부님의 보호 하에 모두 무사히 벗어 났다.

13처의 일막 일막을 회상하면, 그들이 사용했던 사람을 속이는 수단은 정말로 사람의 양지에 대한 범죄였다. 장(江)씨 집단의 조종 하에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고하는데 어서빨리 당신들의 범죄 행위를 멈추고 자신을 위하여 살 길을 남겨두라!

2004-1-25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25/6579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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