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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꼬요꼬가 자신이 쟝(江)씨집단에 납치된 548일간의 낮과 밤을 돌아보다(사진)

글/가네꼬요꼬

[ 명혜망 2003년 12월19일] 2002년 5월24일 나와 두 명의 일본 법륜공 수련 생은 북경에 도착한 후 천안문에 가서 청원하려고 준비하였다. 천안문으로 가는 길에서 행인과 주민들에게 법륜공전단지를 배포하다 붙잡혔으며 그 당시 북경시간으로 오전 11시 좌우였다. 기타 두 명의 수련생은 일본 국적이기 때문에 저녁에 파출소에서는 그녀들 두 사람을 데려갔다. 나는 중국 국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혼자서 지하실에 가두고 세 명의 경찰이 나를 감시하였다.

가네꼬는 11월27일 일본에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남편과 일본제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가네꼬는 11월27일 일본에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또한 많은 매스컴의 인터뷰를 받았다.


일본으로 돌아온 가네꼬요꼬와 그녀의 일본 가족이 新佐渡의 집에서 (왼쪽으로부터 남편의 어머니, 90세 노 할머니, 가네꼬본인, 가네꼬남편)

5 월경의 북경은 낮에는 기온이 무척 더워 35도 36도에 달하지만 저녁에는 아주 추웠다. 그 당시 나는 여름옷을 입은지라 아래는 짧은 스커트바지이고 위에는 짧은 셔츠였다. 지하실에서 그들은 양말을 신지 못하게 하고 맨발로 얼음장 같은 시멘트 바닥에 서 있게 하였다. 나를 감시하던 경찰은 솜옷을 입고서도 춥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법륜공의 진실한 정황을 이야기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나를 욕하고 모욕하였다. 나는 지하실에 갇히어 이튿날 오후까지 계속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나를 간수소로 보낼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간수 소는 보낸 사람들을 신체검사하였다. 그들은 나의 혈압이 아주 높은 것을 발견하였는데 고혈압이 200이 넘었다. 간수소의 규정에 따르면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내가 법륜공수련 생이고 나의 남편이 또 일본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국장을 찾아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억지로 받았다.

그들은 강제로 나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지만 혈압이 특별히 높은 나를 온천병원에 보냈다. 온천병원에 도착한 후 그들은 나의 손과 발을 침대에 묶어놓고 강제로 나에게 주사를 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법륜공이 중국에서 박해당하고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보아하니 당신은 쟝언니보다 더 쟝언니이다”고 말하였다. 그 중에서 한 작은 우두머리 같은 사람이”법륜공 전용침대를 가져와라. 그녀가 얼마나 또 재간이 있는지 두고 볼 테다”고 말하였다. 이른바 법륜공 전용침대는 일종 전문적으로 법륜공을 박해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형구였는바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로 넓고 2미터 길이의 나무판에 다리 4개를 박았으며 판자 위에는 여러 개의 줄이 달려 있었다. 4,5명 경찰들이 강제로 나를 침대에 묶고 발목에서 붙어 어깨까지 묶었다. 그들은 발로 침대를 밟고서 힘껏 조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대법제자가 아닌가? 너는 참을 수 있지 않는가? 너희들의 사부가 너한테 너무 잘해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더러 잘 감수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또 나의 두 손을 어깨에서 비틀어 양 쪽 침대 다리에 묶어 아주 아팠다. 얼마 안가서 나는 온 얼굴은 땀으로 얼룩졌고 이 신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나를 연속 3일간 낮과 밤을 묶었으며 나는 고통스러워 거의 지각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감측의기를 달아주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 나의 혈압이 아주 높았기 때문 이였으며 그들의 잔혹한 괴롭힘으로 내가 그 곳에서 죽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후에 그들은 내가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나를 풀어주며 음침하게 말했다: “이번에 너를 좋은 곳에 보내주마.” 이렇게 그들은 또 나를 북경 시 공안국 병원에 보냈고 그 곳은 법륜공을 아주 잔인하게 박해하는 곳이었다.

공안국 병원에 도착한 후 그 곳의 경찰이 아주 악독하게 말했다:”이번에 내가 너를 아주 잘 ‘향수’하도록 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계속 단식으로 항의하였으며 그들은 나를 침대에 묶고 나에게 위 호스를 꽂고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시켰다. 나의 거절을 받자 그들은 나 한사람을 위 아래로 아주 힘껏 당긴 후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침대에 매달고 발에는 여전히 족쇄를 채웠다. 족쇄가 발목에 꽂혀 아주 아팠다. 또한 그들이 나를 아주 힘껏 당김으로서 수갑은 아주 아프게 조여졌고 손목은 조여서 피가 나왔다. 그들은 한 편으로 수갑을 채우면서 한 편으로 말하기를:”이것이 어디 사람을 대하는 것인가 마치 돼지를 잡는 것이 아닌가”고 하였다. 이렇게 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코로 위 호스를 꽂아 넣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강제로 소변호스도 꽂아 넣어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당시 마침 생리가 온 탓으로 그들은 내가 이불을 더럽힐까봐 나에게 비닐봉투를 깔아주고 하반신은 알몸으로 있게 하였다. 6월경 북경의 기온은 35도, 36도였으니 몸 아래 땀방울과 분비물로 끈적끈적하게 달궈져 있었다. 위에는 그들이 음식물을 주입하고 음식물호스를 빼내지 않아 또한 제대로 매듭을 짓지 않아 위 속에 주입한 음식물이 반대로 모두 흘러나와 버렸다. 목, 어깨로 흘러나와 곳곳마다 모두 끈적끈적한 것이 있었다. 나의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들은 나를 거의 20일간 묶어놓았다. 후에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나의 곁으로 오지 못하였는데 그들은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꺼려하였다. 어느 날 어느 과장이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륜공을 연마하지 않겠다고 대답하면 너를 일본으로 보내준다.” 나는”법륜공의 어느 곳이 잘못되었는가. 당신들이 법륜공에 대하여 이렇게 박해하면 아주 죄가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나를 조건 없이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나더러 법륜공을 포기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나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하였지만 그들은 나의 남편이 일본인인 것을 알고서 감히 손쉽게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후에 그들이 나를 풀어주었을 때 침대에서 이미 일어나지 못하였다. 뒷등은 전부 썩었으며 또한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들은 또 나를 간수소로 보내 강제로 1년 반이란 노동교양 형을 내렸다.

그들은 강제로 노동교양 절차를 거쳤는바 4, 5명 경찰들이 나를 붙잡고서 나의 손을 잡아 손도장을 찍게 하였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나는 죄가 없다!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인권을 위반하는 것이고 신앙자유를 박해하는 것이다! 법륜공은 좋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과 30 분 좌 우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끝내 손도장은 강제로 찍혀졌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을 고소하겠다고 말했으며 이 일체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에 그들은 또 강제로 나를 벽에 기대어 서게 하고 몇 명의 경찰들이 발로 걷어차고 때리며 목을 졸라 사진을 찍었다. 지금 1년 반이란 시간이 지나갔지만 나의 다리에는 여전히 그들이 나를 걷어찰 때 남긴 상처가 있다. 아울러 나의 오른쪽 팔은 지금도 회복되지 않은즉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또 나를 노역인원 배정 처(遣)로 보냈고 그 당시 나는 스스로 길을 걸을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나를 부축해야 했다. 또한 혈압도 아주 높았다. 배정 처에서 사람을 받을 때도 신체를 검사한다. 그들은 나의 신체정황을 보더니 근본 받으려 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나는 간수 소로 돌려보내졌다. 간수 소에서 나를 연속 3번 돌려 보냈고 규정에 따라 배정 처에서 사람을 받지 않으면 풀어주어야 했지만 내가 법륜공을 연마하기 때문에 또한 일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쉽게 나를 풀어주지 않았으며 또 상급의 비준을 맡고서 나를 강제로 받았다.

배정 처로 왔을 때 이미 저녁이었다. 그들은 나더러 대청(大廳)에 서있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그 당시 나의 신체는 근본 서 있을 수 없어 간수는 나더러 쭈그리고 앉아있게 하였지만 나는 쭈그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마약중독자더러 나를 감독하게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오랫동안 잠을 잔 후 (시계가 없어 몇 시인지 몰랐고 다만 밤이 아주 오래되었다고 느껴졌을 뿐이다)그들은 비로소 나더러 잠을 자게 하였다. 아침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또 나를 깨웠고 대청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있게 하였다. 후에 그들은 내가 정말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천당하 병원에 보냈다.

천당하 병원은 북경 시 여자 노역소 배정 처가 지정한 병원이며 그 곳의 대부분은 법륜공수련 생이다. 일부는 마약하는 환자이고 아주 많이는 에이즈, 간병, 폐결핵 등 전염병이다. 모두들 같이 살고 있다. 그 곳의 조건은 아주 열악하고 경찰은 법륜공수련 생에 대하여 특히 엄하게 감시하여 서로 말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마약하는 재소자들더러 우리를 감시하도록 하였다. 내가 병원에 온 이튿날 아침, 화장실에 갔을 때 볼 일도 보지 못하고 복도에서 아주 큰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화장실에 들어와 나더러 빨리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복도를 지나갈 때 두 사람이 한 60여세 되는 노인을 끌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하반신은 벗겨져 있었다. 병원바닥의 벽돌은 움푹 패고 아주 습하다. 그녀들은 노인의 두 팔을 끌었고 하반신은 바닥에 끌리었으며 피부가 모두 끌리어 피가 났지만 이렇게 그녀를 화장실까지 끌고 갔다. 그녀들은 나더러 보지 못하게 하였고 나를 방안에 밀어 넣었다. 후에 나는 그 노인도 법륜공수련 생임을 알았다. 그녀는 엄중한 심장병이 있었고 거의 일체를 자립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천당하 병원에서 일주일간 있었고 신체는 근본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또 나를 강제로 여자 노동수용소에 보냈다.

노동수용소에서 그녀들은 나에게 세뇌전향을 진행하였다. 그 당시 나의 혈압은 여전히 아주 높고 심장도 좋지 못하여 길을 걸을 때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그녀들은 매일 마다 나더러 아주 늦게 잠을 자고 아침에는 아주 일찍 일어나게 하였는바 점심에는 휴식하지 못하여 나의 신체는 근본 감당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대장 리지룽(법륜공을 박해함에 있어서 “공”이 있기 때문에 16대 대표로 선거되었음)은 악이 차서 말했다:”너는 이 곳을 노동수용소라고 보지 말라. 노동수용소에는 죽은 사람의 지표가 있다. 너는 지금 여전히 중국국적이므로 역시 중국의 법률에 따라 처리해야 하고 기타 사람과 차이가 없음을 잊지 말라.” 그녀들이 법륜공수련 생에 대하여 실시하는 강제로 세뇌 시키는 방법은 아주 잔인하였다. 오랜 시간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여 어떤 이는 매일 마다 겨우 1, 2시간 잠을 잤고 어떤 이는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20 여 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였다. 낮에는 세뇌된 자들이 윤번으로 그들의 왜곡된 도리와 사악한 말을 주입하는데 저녁 12시 좌우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마약중독 재소자들이 와서 잠을 자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이때 이 마약중독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법륜공수련 생을 괴롭힐 수 있는데 아주 깊은 밤에 늘 처참한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정말로 감당하지 못하여 괴롭힘 때문에 정신이 비정상이 된다. 이때 그들은 또 새로운 구실이 생기므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보라, 법륜공을 연마하여도 모두 이렇게 되는데 계속 법륜공을 잡고 놓지 않는가. 계속 이렇게 하다간 미치지 않아도 죽게 된다.” 그들은 법륜공수련 생을 박해하여 죽이기 위해 먼저 구실을 찾아 날조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의 혈압은 갈수록 높아졌고 후에 눈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또 나를 천당하 병원에 보냈고 병원에서 한번 측정하니 혈압의 저압이 130인즉 정상인의 고압보다 높았으며 또한 특별히 높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눈에 대하여 검사하고서 눈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천당하 병원은 의료시설에서 기능까지 모두 비교적 낙후하여 그들은 또 나를 대흥현 병원에 보내 검사하게 하고 또 눈 밑을 검사하였다. 의사는 나의 오른쪽 눈 아래부위의 모세혈관이 이미 죽었으며 죽은 지 1달,2달이 되었다고 말했다. 천당하 병원으로 돌아온 후 나는 병원의 경찰에게 그녀가 관련영도에게 나의 눈의 진실한 정황을 반영하기를 요구하고 나의 눈이 더 이상 악화되지 말기를 희망하므로 만약 중국에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나는 일본에 가서 치료할 것이다 고 하였다. 일주일후 그녀들은 동인병원에서 전문가를 찾아와 나에게 철저한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결과에서 전문가는 나의 눈의 모세혈관이 이미 통하였고 나아졌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사실 그는 사전에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나를 속이려 하였다). 천당하로 돌아온 후 나는 경찰에게 의문을 제기하였다. 나는 “일주일동안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였고 눈은 예전처럼 보지도 못하는데 어찌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고 하였다. 나는 그녀들에게 진단증명을 요구하며 만약 내가 나갈 수 있는 그날 눈에 대하여 전면검사를 할 것이니 만약에 전문가가 말한 것과 같지 않거나 혹은 무슨 후과가 생기면 법률상에서 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들은 나에게 진단증명을 주지 않았다. 나의 눈은 어떠한 호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짧은 시간 내에 세 차례의 눈 밑 검사를 하여 강한 빛의 강력한 자극으로 눈은 지진 듯이 아팠으며 눈을 뜰 수가 없고 빛을 두려워하였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는바 지금도 나의 눈은 여전히 빛을 두려워한다.

나는 병원에서 대략 3개월간 지냈고 2003년 신정 전에 병원에서 나와 노동수용소로 갔다. 나는 1반에 배치되어 강제로 노동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1반에는 십 여 명이 있었고 거의 모두 법륜공수련 생들이다. 그녀들은:”그녀는 눈도 뜨지 못하는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수용소에서 일할 때 마약중독자가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성품이 아주 나쁜 그러한 사람들 이였으며 경찰에게 이용되어 법륜공수련 생들을 관할하였다. 그녀들은 나를 모욕한 후 또 경찰을 찾았으며 경찰은 나의 반의 반장을 불러 반장더러 강제로 나를 노동 하도록 하였다. 반장은 돌아와 나의 정황을 보고 또한 전체 수련생의 반대로 반장 또한 할말이 없었다. 그것은 1반이 중점반이기 때문에 감독과 감청이 있었고 그들은 내가 계속 눈을 감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순밍웨라는 경찰이 와서 나를 부르더니 강제로 노동하게 하였다. 나는 눈을 뜰 수 없다고 말하고 그녀는 그럼 손으로 더듬으면서 하라고 하였다. 나는 눈을 뜨고도 하기 어려운 일을 더듬으면서 어떻게 하는 가고 말했다. 그녀는 어찌하든지를 막론하고 꼭 일해야 한다고 하였다. 매일 노동하는 것 외에 또 이른바 “학습”을 하였고 또 감상을 쓰도록 하였다. 나의 눈은 뜰 수가 없었고 나의 주관경찰 장수전은 나를 불러 강제로 감상문을 쓰라고 하였다.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어 쓰지 못한다고 하였고 그녀는 눈을 감고서 쓰라고 하였으며 나는 당신이 먼저 눈을 감고 한번 써보고 쓸 수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주라고 하였다.

1 반에 있을 때 낮에는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 기타 수련생들과 말하지 못하게 하였고 저녁에 잠을 잘 때는 마약중독자더러 나의 침대머리에 앉아 나를 감시함으로서 나는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게 나의 혈압은 또 조금 조금씩 높아져갔다. 2003년 4월경, 그녀들은 갑자기 나와 몇 명의 마약중독자들을 다른 한 방안에 가두며 나의 신체가 좋지 못하여 나를 보살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상 나를 더 한층 감금시키는 것이었으며 내가 어떠한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내가 한번 움직이기만 하면 마약중독자들이 나를 감시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더 이상 나에게 노동을 강요하지 못하였고 힘든 체력 일에는 참가시키지 않았다. 어느 날 대장 리지룽은 나를 찾아 담화하였다. 내용은 대체로 우리 이 곳은 당신을 박해하지 않았고 또한 당신에 대해 특별히 보살피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또 위협적인 어투로 나에게 말했다:”나중에 일본에 돌아가서 당신의 가족, 모친, 형제자매들이 모두 중국에 있으며 친척 친구들이 모두 중국에 있음을 잊지 말라. 이 한점을 명심하라.” 말의 뜻은 바로 이 곳의 진실한 정황을 말해내면 당신한테 좋은 점이 없다 는 것이다.

거의 3달이 지나서 어느 날 대장 리지룽은 전체 법륜공수련 생들 앞에서 일본이 어떠어떠하다고 마구 욕을 해댔다. 모두들 영문을 몰랐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 당시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 일본에 돌아온 후 나는 비로소 이 일체를 알게 되었다. 원래 그녀들이 일본정부와 일본국민들 그리고 전 세계 법륜공수련 생들의 나에 대한 구원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감히 중국의 국내 법륜공수련 생을 대하듯이 나를 그렇게 박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화가 아주 나서 이를 악물었지만 또한 방법이 없었으며 할 수 없이 마구 욕설을 해댔던 것이다.

북경에서 사스병이 폭발한 후 나의 주위에 있었던 2003 년 말 까지 불법으로 노역하는 법륜공수련 생들이 연속 석방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감금되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왜 나를 풀어주지 않는가! 고 물었고 그녀들은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육체적으로 감히 나를 학대하지 못하였지만 또한 감히 나를 풀어주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그녀들이 내가 이 속의 진실한 정황을 말해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아울러 이 기간에 그녀들은 또 구실을 찾아 나에게 기한을 연장시키려고 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 일에서 우리는 쟝쩌민집단의 법륜공에 대한 박해가 떳떳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전 세계의 국민들이 그들이 법륜공을 박해하는 진실한 정황을 알까봐 아주 두려워하고 있은 즉 그들의 법륜공에 대한 박해는 불법이며 인권, 신앙자유에 대한 야만적인 짓밟음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노동수용소에서 매일 마다 오랜 시간동안 노동을 하였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단지 5분 동안 씻는 시간 외에 노동을 시작하며 저녁 10시 좌우까지 일하고 잠자리에 든다. 노동수용소에서는 매일 마다 텔레비전 뉴스 방송을 반드시 보도록 규정하였으나 뉴스 보는 시간에도 일을 하면서 본다. 어떤 때는 일거리가 많아 새벽 3시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또 연장근무를 하였다. 매일 오랫동안 작고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음으로 모두들 엉덩이가 모두 앉아서 찢어지고 한 층의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어떤 때 가려워 손으로 한번 긁으면 피가 났다. 그러나 또 이런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 사람으로 하여금 감당 못하게 하는 그러한 무형의 거대한 정신적인 고통이 있었다. 매일 매 사람마다 모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오늘 또 무슨 일이 발생할까를 생각하였다. 경찰이 어느 법륜공수련 생을 부르면 모두들 그녀를 위하여 걱정하고 그녀 언제 돌아올지 또 그녀가 어떠할지를 걱정하였다. 노동수용소에서 매일 저녁마다 잠자기 전에 단체로 이름을 부른다. 어떤 때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모두들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이튿날에는 이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어디에 갔는지 근본 몰랐다. 매일 마다 모두들 만나기만 하면 서로 격려하며 서로 간의 눈길 한번, 미소하나 모두 막대한 위로였다. 그러한 거대한 정신압력에서 매 사람의 머리카락은 저도 모르게 새하얗게 희어졌다. 나의 머리카락은 나오면서 스스로 염색한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나의 혈압은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고 신체상황은 여전히 좋지 못하였다. 노동수용소에 있는 기간에 2달을 남기고 그녀들은 또 나를 천당하 병원에 보냈는데 그것은 그녀들이 내가 그런 신체상황으로 나갔다간 영향이 좋지 못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는 기간에 내가 있던 4대대의 대장 리지룽이 전근되었고 또 기타 대대에서 한 대장이 왔다. 역시 성이 이(李)가였으며 그녀는 병원에 와서 나를 위협하였다:”네가 곧 나오더라도 너의 일을 우리는 또 일본대사관과 교섭해야 한다. 네가 일본에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또 너를 데려올 수 있다.” 등등이었다. 만약 일본정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국외법륜공수련 생들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을 것인즉 아마도 노동수용소에서 죽거나 혹은 연기되어 감금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일본에 돌아왔고 내가 날마다 그리워하던 가족의 곁으로 돌아와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다지 홀가분하지 않는바 노동수용소의 법륜공수련 생을 생각하기만 하면 (지금 수용소에 갇혀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 법륜공수련 생들이다) 그녀들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달림을 당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특별히 무거워진다.

나는 단지 법륜공의 진상자료 몇부 때문에 강제로 1년 반동안 노동개조를 하였고 인신자유를 잃었으며 갖은 고통스러운 괴롭힘을 당하였다. 아울러 나의 중국에 있는, 일본에 있는 가족, 친구들 역시 고통스러운 괴롭힘을 당하였다.

작년 8월경, 나의 남편은 수용소에 와서 나를 한번 만났다. 그 전에 마침 그녀들이 나에게 강제로 전향을 진행하던 시기였으며 나의 신체상황은 아주 좋지 못하였다. 혈압이 비정상으로 높았고 심장도 좋지 않았으며 대뇌는 피 공급이 엄중하게 모자라 늘 혼미상태에 처하였다. 엄중할 때는 인사불성이었다. 얼굴색은 검은 빛을 띠고 입술이 자주 빛이고 사람은 말라서 뼈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리와 발은 엄중하게 부어 신도 제대로 신지 못하였다. 종아리와 작은 팔은 장기간 족쇄와 수갑에 채워져 모세혈관이 출혈되어 짙은 자주 빛을 띠었는바 사람 전체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의 심정은 모두 아주 무거웠고 나의 생명을 걱정하였다. 생명이 위급하던 시기, 갑자기 어느 날 그녀들은 그다지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저녁에는 돌아가 잠을 자게 하였으며 아침에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게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이었는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고 정신이 무너지면 안 되며 또한 신체가 무너지면 안 된다. 이다. 나는 매일 마다 음식을 더 많이 먹으려고 견지하였지만 그 곳의 밥과 반찬은 모두 먹기 힘들었다. 더욱이 반찬은 또 더럽고 맛이 없었는데 당근, 부추, 감자(껍질도 바르지 않음)를 같이 넣고 끓여 마치 한약과 같았으며 또한 속에는 모래가 아주 많았다. 후에 나는 밥을 먹는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 전신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왔다. 위도 수축되어 근본 먹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지내던 법륜공수련 생 중에는 북경대학의 의사가 있었다. 그녀는:”당신의 이 정황을 의학에서는 거식증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방법을 생각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음식을 더 먹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체가 무너지고 맙니다.”라고 하였다. 몇 명의 법륜공수련 들은 그녀들의 조금 밖에 남지 않은 맛있는 음식을 가만히 나에게 주었다(수용소에서는 서로 물건을 주지 못하도록 하며 경찰에게 발각되면 처벌을 받는다). 이때 경찰도 나에 대하여 아주 관심하는 척 하였고 나더러 밥을 더 많이 먹게 하여 살이 찌도록 하였는바 나는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느 날 경찰이 나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나에게 남편이 와서 당신을 만날 것이므로 그에게 이 곳의 정황을 말하지 말며 당신의 신체정황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만 여기의 일체가 아주 좋고 모두들 아주 잘 보살펴준다고 말하되 일어로 말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많은 경찰들의 감시 하에 나는 나의 남편을 만났다. 그 당시 나의 신체는 많이 좋아져 스스로 걸을 수 있었으나 온전히 걷지 못하였다. 내가 남편을 만났을 때 그가 나의 신체를 아주 걱정하자 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나는 나의 신체의 진실한 정황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일체가 아주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였고 남편을 위로하기 위하여 나는 일어를 배우고 싶으니 책을 부쳐달라고 하였다. 결과 남편은 정말인줄 알고 나에게 많은 책들을 부쳐주었으나 이 책들은 모두 경찰에게 압수되었다. 내가 석방될 때 비로소 돌려주었다. 사후에 나는 그녀들이 무엇 때문에 그 며칠동안 나를 그렇게 관심하였는지를 알게 되었는데 원래 그녀들은 법륜공 박해에 대한 진실한 정황이 남한테 발견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후에 그녀들은 남편이 또 나를 만나려 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할 수 없이 나의 남편은 매 주마다 나에게 편지 한통을 썼다. 아울러 매 편지마다 모두 나더러 집에 회답편지를 보내라고 말하면서 나의 편지를 볼 수가 없어 아주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나는 그 당시 혈압이 아주 높고 눈 또한 보이지 않아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금년 4월경 나의 눈은 조금 호전되어 나는 남편에게 편지 한통을 써서 혈압과 눈의 정황을 이야기하였다. 결과 이 편지는 경찰에게 압수되었고 나올 때 비로소 돌려주었다.

일본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남편이 나의 장례에 쓸 사진까지 모두 준비한 것을 보았다. 아울러 그는 손톱을 잘라 전부 보관하였는데 내가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골회도 없어 그의 손톱으로 대처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매일 마다 각종 경로를 통하여 나의 소식을 탐문하였다. 1년 반이란 시간동안 그가 얼마나 거대한 고통을 감당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아울러 나의 일 또한 무수한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본정부, 각계 관원. 뉴스매스컴, 그리고 전 일본의 선량한 사람들과 전 세계 법륜공수련 생들은 내가 하루빨리 안전히 돌아오게 하려고 각양각색의 구원활동을 펼쳤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법륜공은 지금 이미 전 세계각지에 전파되어 각 나라의 환영을 받고 있다. 쟝쩌민집단의 이러한 작법은 세계 범위 내에 극히 나쁜 영향을 조성하고 있다. 나와 유사한 정황은 일본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리샹춘(李祥春), 천강(캐나다의 왕위쯔(王玉芝) 린쩐리(林立), 호주의 장취잉(章翠英), 아일랜드의 조밍(明) 등이다. 각 나라의 정부와 그 곳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들 국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끝없는 노력을 하였다. 쟝쩌민의 행위는 해외에서 살고 있는 법륜공수련 생의 해외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아주 큰 고통을 조성하고 있다. 나는 중국정부가 깨닫고 이지적으로 법륜공을 선하게 대할 것을 희망하다. 또한 전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한차례 비참한, 잔혹한, 인간성을 말살한 박해를 주목함으로서 중국정부로 하여금 하루빨리 법륜공수련 생에 대한 박해를 멈추도록 하기 바란다.

발표시간:2003-12-19

문장분류:시사참고>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3/12/19/6287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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