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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생의 자술 : 악경이 비닐호스로 살점을 비틀어 뼈가 드러났다

[명혜망 2003년 10월10일] 나는 97년 9월에 파룬궁을 배웠는데 그 당시 나는 마침 XX대학의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나는 비교적 우수한 학생이었고, 특히 문장방면에서 매 번마다 모두 전교에서 1등이었다. 서법이 좋고 문장이 좋아 나는 학교선전부에 들어갔으며 학보사기자, 방송반 편집부원으로 활동하게 되어 교직원들이나 교수님들의 신임을 얻었다. 수련인의 관용과 평화로움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아주 성망이 있었다. 본래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눈에는 내가 아주 전도가 유망한 학생으로 보였다.

99년 7월 장(江)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교직원은 끊임없이 나를 찾아 담화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이해(利害)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보증서를 쓸 것을 요구하였고 “이 형세에 부응하라”고 하였다. 나와 아주 많은 연공하는 학생들은 똑같이 진리를 견지하고 감히 진실한 말을 하며 보증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학교에선 1달 동안 거주를 감시하였고 후에 구류되고 집으로 돌려보내졌으며 우리 6명을 퇴학시킨다고 선포하였다.

나는 이때부터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활상에서 보장을 잃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며 신분증 역시 수색해갔다. 그래서 우리집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지역 파출소는 내가 연공하는 것을 알고 역시 우리 가족을 강제로 떠나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 가족이 세를 든 집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가장 엄중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칭찬 속에서 생활하던 나는 삽시에 비웃음을 당하는 대상으로 되었고 아울러 이 일체는 단지 내가 대법을 견지하고 나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쳐 준 대법을 견지한다는 이유 때문 이었다.

2001년 3월 나는 고향 농촌에 가서 전단지를 배포하였고 전단지에는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이는 이번 박해를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다. 그러나 나는 대법의 진실한 정황을 배포하다가 그 지역 파출소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형벌을 당하게 되었다.

정보과 과장인 변(卞)XX를 선두로 5,6명이 나를 호랑이의자에 묶고 혹독하게 때리고 욕하고 전기충격기로 머리, 손, 목 등 여러 곳을 맹렬하게 전기충격을 주고 몽둥이로 심하게 때렸다. 그 당시 날이 아직 아주 추웠는데 찬물을 몸에 뿌렸다.

그들은 자료의 출처를 찾기 위하여 다음 날 또 나를 간수소에서 압송해 내어 형벌을 가하였다 아울러 내게 분신자살하게 할 것이며 석유로 나를 불태워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겠다고 큰소리쳤다.

10일 후, 내가 거주하는 공안국에서 나를 데려가 계속 심문하였다. 그 당시 나의 정신적 압력이 너무 커서 눈이 경직되었는데 이는 간수소의 악경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나중에 나는 황당하게도 2년간 노동개조를 당하였다. XX노역소에서 나는 “보증”을 쓰지 않은 이유로 강제로 노동을 하였는바, 가장 더러운 일을 한 것을 예로 들면 하수도를 청소하는 일이고 가장 힘든 일을 한 것을 예로 들면 구덩이를 파고, 계단을 부수고, 집을 짓는 일 등이었다.

나와 같은 허약 체질이 어디 이런 시달림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신체는 검고 또 허약하여 형상이 가련하였다. 어떤 때는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악경의 혹독한 매질을 당하였다. 악경과장은 여러 차례 나를 때렸고 그는 스스로 노역소의 4대 악인(惡人) 중의 한사람이라고 자칭하였다.

그 당시 그 곳에는 몇 십명의 단호한 파룬궁수련생들이 있었고 모두 그들의 엄중한 박해를 감당하였다. 후에 한 파룬궁수련생이 이 기간에 박해로 치사당하였고, 그 시 악경소장은 또 거짓으로 사탕을 사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구슬리고 사람마음을 달래려고 시도하였다.

8개월 후, 나와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은 구대노역소(九台劳教所)로 옮겨져 계속 박해를 당하였다. 그 곳에서 당한 박해는 더 잔인하여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2002년 3월, 구대노역소의 상부에서 명령을 내려 “강제로 전향시켜야 한다”고 하자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시작되었다. 악경 사무실의 바닥은 선혈이 낭자하였고 전기충격기 소리,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한시각도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의 심정은 정말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여러 차례 전기충격을 당하였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였고 수면을 박탈당하였다. 4월의 어느 날 점심, 4대대의 한 악경 붕위(馮僞)는 나를 사무실로 불렀고 사람을 시켜 2층의 1대대로 끌고 가게 하였다. 그들은 나를 한 작은 방에 가두고 옷을 벗긴 후 5, 6명이 나를 밟았다. 1대대의 악경 당파(唐波)는 미친듯이 입구를 자른 4개의 비닐호스로 필사적으로 나의 겨드랑이와 두 허벅지를 찌르고 비틀었는데 살점이 모두 비틀려 나갔다. 나는 아파서 거의 질식하였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천 조각을 나의 입에 밀어넣었다. 그 당시 나의 머리를 눌렀던 재소자의 말에 의하면 내가 눈이 뒤집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내가 죽은 줄로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정황 하에서 그 풍(馮)씨 교관은 인간성이 없이 다른 한 악경에게 “젓가락을 안으로 꽂아넣으면 안될까?” 고 말하였고 상대방이 안된다고 말하였지만 그렇게 찔러넣어졌다. 바로 이렇게 한쪽으로는 “하얀 비닐호스”로 쑤시고 한쪽으로는 전기충격기로 민감부위인 젖꼭지, 발바닥 등을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교대로 했지만 모두 지쳐서 땀투성이가 되었다.

고문을 받은 후 나는 길을 걸을 수 없었고 길을 걸을 때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다리는 양 옆으로 벌리고 걸었다. 감옥의사가 나에게 약을 바를 때 왼쪽 겨드랑이에는 큰 구멍이 났고 왼쪽 다리에 큰 구멍이 생겨 뼈가 모두 드러났다. 이 상처는 지금까지고 회복되지 않았다.

발표시간 : 2003-10-10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3/10/10/58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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