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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쳐 우리 집이 박해받은 실제 이야기

문 / 하북성 대법 제자

[명혜망 9월 7일 소식] 다음은 우리 집에서 3대에 걸쳐 발생한 실화(實話)이다. 아픈 기억을 참아가며 애써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지만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에는 침통한 눈물이 맺힌다……

○ 반혁명을 진압하는 이른바 “진반(鎭反)” 시기에, 할아버지는 원래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옷깃과 소매는 가장 쉽게 때가 타므로 세탁을 할 때 힘들여 빨아야한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이말을 나쁜 사람이 듣고는“반영수(反領袖), 반혁명(反革命), 반당(反黨)”분자로 모함하여 이유 없이 잡혀가서, 3일 밤낮을 독하게 구타당하셨다. 나중에는 핍박으로 정신이 나가고 미치광이가 되어 한(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셨다.
(역자 주: 한자(漢字)로 지도자를 의미하는 영수(領袖)를 직역하면 옷깃과 소매이다. 여기서 필자의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옷을 빠는 것을 말한 것뿐인데 이것을 마치 혁명지도자를 비판한 것으로 모함하여 핍박을 가한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며 가소롭고, 얼마나 흉악하며 잔인무도한가? 백성이 자유롭게 일상적으로 말하는 권리마저 박탈되었다.! 이와 같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인간성이 상실된 시기에는, 한마디 부주의한 말에도 바로 체포되어 비판을 당하고 흠씬 두들겨 맞고, 심지어 수감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청나라“문자옥(文字獄)” 보다 더 흉악하고 잔인한 것이다!
(주: 문자옥이란 만주족인 청나라 황실이 한족 지식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사상 통제수단이었다. 한 글자라도 청나라를 비방하는 의미가 있으면 곧 바로 대대적인 옥사가 벌어졌다. 물론 판단이 자의적인 경우가 많아서 탄압을 위해 글자를 꼬투리 잡는 경우가 많았다.)

○“삼반(三反) 오반(五反)”(1953년) 시기에, 악도(惡徒)들은 우리 집에서 모든 값나가는 물건들을 수색하여 가져갔다. 그들은 단지 우리 집이 대대로 전해지는 손기술을 이용하여“향유방(香油坊)–기름 짜는 집”“오미방(五味坊)–맛 집”을 열어 생활조건이 일반적인 농민보다 낫다는 이유만으로 “부농(富農)”으로 구분하였다.

당시“지주(地), 부농(富), 반혁명(反), 나쁜 사람((壞), 우파(右)”로 몰리면 중점적으로 공격을 당했다. 이 때문에 부친, 숙부님, 백부님은 수많은 고생을 했다. 물건을 가져가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또 무슨 비판, 청산, 가두 데모를 진행하였다.
하늘 아래에 어떻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자신의 손 기술에 근거하여 생활하고 근면하게 부를 이룬 것이 죄가 된다니 이 얼마나 야만적이며 이치가 없는 일인가?

○“사청(四淸)”(1964년) 시기에, 나의 외조부는 도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잡귀신[牛鬼蛇神]”으로 잡혀가 외양간에 쪼그리고 앉은 채 몇일 밤낮을 음식은 커녕 물도 마시지 못했다. 외조부께서 당시 약간의 공능(功能)이 있어서 천목(天目)으로 항상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모습과 예쁜 신선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외조부는 면벽(面壁)하고 과오를 반성할 것과 무릎을 꿇리는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것으로도 모자라“다시 믿으면, 바로 당신의 두 눈을 파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사람의 신앙은 이렇게 악독하고 처참한 위세(威勢)에 눌려 무정하게 짓밟혀 버렸다. 이때부터, 외조부님은 어리석게 변했고, 다시는 신앙에 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문화대혁명(文革)”(1966-1975) 후반기에, 북경에 있는 청화(淸華)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사촌형은(큰아버지의 아들) 단지 천안문광장에서 주총리(周總理)를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바로“ 혁명파(造反派)”들에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재능이 넘쳐흐르고, 정의로운 수재였으나 “무조건 명령을 집행하는[絶代執行命令]” 앞잡이들에 의해 총에 맞아 산채로 학살된 것이다!

그러나 큰어머니께는 상심하실 것이 두려워 줄곧 속여왔는데 꼬박 15년 동안이나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아들이 해외에 나갔다고 했다.

나중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되찾은 후에 고향에서 추도회를 열 때서야, 비로소 그녀에게 형의 부고를 알렸다. 큰어머니께서는 현장에서 바로 까무러치셨다…… 누가 이런 비극(悲劇)을 만든 것인가?

○“6.4(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시기)”시기에, 사촌동생(숙부의 아들)이 “ 6.4”학생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하마터면 천안문 광장에서 기관총에 명중될 뻔했다.

그는 정부가 진압군대를 파견하고, 장갑차, 기관총 등이 사용된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당시 신문이나 TV에서는 진상을 속이고, 오히려 대학생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며 중국을 반대하는 반화세력(反華勢力)에게 이용당하였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았다.

남동생과 다른 대학생들은 화가나서 씩씩거리며 불평하였고 후에 국민들에게“6.4학생 운동” 진상을 말하기 시작하자, 도리어 위협, 공갈로 그를 대했다……

○ 20세기 말에 들어서자, 강XX 집단의 법륜공에 대한 미친듯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을 믿으며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다. 직장에서도 사직을 당하여, 10여 년간 종사하던 강단을 떠나야 했다.

그들은 강제로 명령을 집행했는데 직위를 잃는 것이 두려운 학교 지도자들은 아이들의 앞길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본래 내가 심혈을 기울여 전국대상을 받았으며 우수한 교육 논문을 많이 발표했고 학생을 가르치는데 특히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는 사실과 나의 양호한 인품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상급 기관의 명령을 집행하였다.

“법륜공을 수련하면 곧 바로 제거한다” 법륜공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가르치고, 도덕이 되돌아 올라가게 하며, 심신에 모두 좋은 공법이지만 도리어 강택민(江澤民)의 사리사욕으로 인한 사악한 명령하에 수천 수만의 대법 수련자들은 참혹하게 피해를 당한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더욱 슬픈 것은 이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박해가 아직도 진행중에 있으며, 수천 수만의 대법제자들이 아직도 감옥에서 혹형의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당이 우리 집안 3대에 걸쳐 잔혹하게 박해한 비참한 이야기이자 중국의 수많은 비극 중 하나이다. 내가 폭로한 것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중국대륙에서는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 특히 대법 제자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

나는 묻는다 “하늘이시여, 도대체 세상이 왜 이 모양입니까? 선악(善惡)과 진위(眞僞)를 분별하지 못하고, 시비(是非)와 사정(邪正)도 구분하지 않으며, 흑백(黑白)이 전도되고, 청탁(淸濁)이 서로 모호합니다.” 그럼에도 XX당은“정세가 매우 좋다”거나“우리 당은 줄곧 정확하다”라고 하고 있으니……

이번 박해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되며 응당 결속되어야 한다!

희망하건대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과 정의의 인사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아직도 참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대법 제자들을 구하고, 되도록 빨리 이번 마난(魔難)을 끝내고,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정의가 세간에 행해져서, 영원히 빛을 내도록 해야한다.

발고시난: 2003-9-7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3/9/7/569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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