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해외대법제자
[명혜망, 4월 20일 소식]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날 미국서부법회에서의 해법》에서 “중국 정부는 법륜공을 박해하기 위하여 국민경제의 1/4의 재력을 쓰고 있다. …법륜공을 박해하기 위하여 공안, 정법(正法), 사법, 외교, 사악한 610, 안전부 특무에게 대량적인 비용을 지급하였다. 가짜를 조작하기 위하여 각종 선전 기구, 라디오 방송국, TV, 신문, 문예, 문화, 심지어 TV, 라디오, 컴퓨터 인터넷을 봉쇄하기 위하여 대량의 자금을 투입시켰다. …박해를 위하여 쓴 수작들은 모두 가장 어리석다. 인민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인민을 박해하면서 오히려 사정없다. 쓴 돈은 그야말로 무척 많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나는 한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江氏정부가 어떻게 대량적으로 인민들이 피땀으로 번 돈으로 법륜공을 박해하는데 사용했는가를 설명하겠다.
작년 여름, 아이가 여름방학을 한 사이에 나는 귀국하여 친척을 방문하였다. 여행길에 대량의 진상자료와 대법서적을 지녔으며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 보는 기회를 이용하여 법륜공이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려주려고 생각하였다. 생각밖에 국내에 도착한지 며칠이 되지 않아 우리 주위에 늘 이상한 사람들이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경찰 차도 내가 어디를 가면 어디를 따라다녔다. 그들은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시종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신분이 폭로될까봐 암암리에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놓고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바싹 붙어서 추적하는 방식으로 뒤를 밟고 있었다. 낯가죽이 두꺼운 줄도 모르고 작은 엘리베이트조차 끼어 드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가 기차표를 끊을 때면 그들도 기차표를 샀으며, 우리가 특석을 사면 그들도 특석을 샀다. 우리가 어디에 가면 그들도 어디에까지 따라왔다.
나는 대충 예산을 잡아보았다. 이 4주 동안 그들은 적어도 21명의 사복경찰, 5대의 경찰 차와 몇 대의 택시를 동원했다. 우리가 집에 있거나 친척집에 가 있으면 경찰차도 문 앞에 정차되어 있다. 문을 나서면 택시가 임시로 뒤를 밟는다. 농촌으로 갔을 때 경찰차도 두 대나 따라 와서 온 마을사람들이 모두 매우 긴장했었다. 매번 외지 성이나 혹은 기타의 성시에 갈 때면 또 다른 한 패의 사복경찰들이 대신으로 투입되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엄밀한 하나의 간첩선을 형성시켰다. 그들 중에는 직장이 있는 것들로, 아마추어인 것들로, 또 임시로 고용된 것들도 있다. 우리가 외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은 또 외국어가 능숙한 대학생 한 명을 파견하였다. 우리가 지방언어로 말하면 그들은 또 지방의 사람을 한 명 데리고 왔다. 그들은 전문인원들처럼 그러한 훈련을 거치지 않았기에 시종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뚜막 위의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 맴돌거나 혹은 혼자말로 “할 수 없지, 생활 사정이 어렵지만 않아도 나는 이런 밥벌이를 하지 않을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기간 중 우리도 지방의 610인원과 성 공안부문의 일부 관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내가 우리 지역의 한 관원에게 “현재 이미 50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박해받아 사망하였소.”라고 말했더니 그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렇게 적을 수가 없을 걸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우리를 엄밀하게 감시하는 목적이 무엇이지에 대하여 나는 줄곧 파악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손을 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들의 행적에 대하여 간섭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뒤를 밟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정부관원이 우리를 찾아서 담화를 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그들이 뒤를 밟는 목적을 알 수가 있었다. 그때 한 관원은 매우 열정적이고도 매우 예절바르게 우리더러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대량으로 인민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허비하는 진정한 목적이었다. 나는 곧바로 “법륜공을 박해하고 간첩으로 되는 일을 우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였다. 결과 그들은 매우 거북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이러했고 또 비록 바라던 데로 대량의 진상자료를 세상사람들의 수중에 가져다 주지 못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체의 기회를 이용하여 접촉할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을 향해 지혜롭게 진상을 똑바로 알려주었으며 또한 대법서적들을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후에 교란이 너무 컸던 원인으로 우리는 앞당겨서 되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생각밖에 중국항공회사에서 중도에 수작들을 피워서 우리들에게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제출했으며 매 사람마다 천여 위안의 수속비를 납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할 수 없이 이 계획을 포기하였다.
항공회사를 이야기하게 된 김에 건의를 제출하고자 한다. 귀국하려고 생각하는 그런 동수들께서는 가급적으로 국내 항공편의 비행기표를 예약하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이미 확인까지 하였던 비행기표가 오히려 명단에서 제외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비행기편을 이용한다면 중국 측에서는 비행기표를 가지고 수작을 부리기가 어렵게 된다.
후에 그들은 우리를 매수하기 위하여 또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길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 우리를 고급호텔로 모셔다가 식사를 하였다. 돈을 너무 많이 허비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거절하려고 하니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돈은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에겐 이만한 돈이 있소.”라고 말하여 우리더러 꼭 약속을 어기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내의 친척들이 많은 시끄러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성급의 관직을 가진 한 관원이 “당신들을 놀라게 하였소”라고 서두를 때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유혹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휴대폰번호, 팩스번호, 전자메일주소 등을 적도록 요구하였으며 꼭 그와 연락을 취하라고 수없이 당부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그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고급 요리들을 시켰다. 그가 어떤 조건을 더 제출하기 전에 나는 엄숙하게 “절대로 밀정이 되지 않겠다. 절대로 간첩이 되지 않겠다. 절대로 법륜대법수련을 포기하기 않겠다”라는 전제조건을 제출하였다. 그러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것은 우리가 중국 행에서 겪었던 간단한 경과이다. 강씨(江氏)정부는 바로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일체의 대가도 마다하고 법륜공을 박해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폭로해내는 것은 수많은 세상사람들이 두 눈을 밝게 뜨고 중국정부의 음모를 식별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江××를 최대한 빨리 국제법정으로 보내기 위하여 하나의 예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문장발표 : 2003년 4월 23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3/4/23/482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