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해받은 법륜공수련생
[명혜망] 우리 집은 어머니가 가장 처음 수련하였다. 어머니는 36세 그 해에 엄중한 소화계통 질병을 얻었는데 식도염, 분문썩음, 반류성위염, 담낭염, 간 비장이 경하게 부음, 또한 만성장염, 빈혈 그리고 엄중한 신경쇠약이었다. 그후부터 약상자를 떠나지 않았고 늘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때 어머니는 온종일 정신이 쇠약하고 걸음걸이가 힘들며 정말로 하루가 일년 같았다. 장기간 만성질병의 소모로 영양불량이 조성되어 신체의 저항력이 극히 좋지 않았다. 95년 8월 연속 흐리고 비가 오자 어머니는 또 만성풍습열에 걸려 열이 내리지 않고 온몸의 뼈가 뜨겁고 아팠다. 페니실린을 쓰면 또 과민하고 기타 항균소는 통제할 수 없었으며 후에 풍습성 심장병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전혀 저항력이 없는 신체에 엎은데 덮친 격이 되어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입원기간에 또 소변에 결핵균과 신장실질성이 손상된 것을 검사해냈다. 온종일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이 떨리고 허리가 아프고, 붓고, 뼈가 뜨겁고, 통증을 참기 어려워 매일 단지 2, 3시간 잠이 들었다가 아파서 깨어났으며 몇 시간 아픈 후 전신에 땀이 났다. 양방 치료를 거쳐 효과가 없자 한방 치료로 바꾸었으며 3달 동안의 입원비용으로 몇 만 원을 썼지만 조금도 호전이 없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바빴고 집으로 돌아와도 바빠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였다. 그는 매일 정신이 고도로 긴장되어 억압된 상태이며 체질은 갈수록 허약해져 늘 심전구가 아팠다. 어머니는 매일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마치 늪에서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1996년 4월 어머니는 다행스럽게 법륜대법을 얻었다. 법륜공이 그녀같이 이러한 병마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즉시 효과가 나타나게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법륜공은 정말로 신기하여 연공한 지 몇 달 후 각종 질병이 모두 좋아졌고 새롭게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나의 집은 또 예전의 쾌락을 회복하여 법륜대법이 나의 일가족을 구하였다. 이후부터 우리 전가족은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우리의 조용하고 행복하던 생활은 타파되고 부모의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법륜공수련 포기 표시를 하라고 요구해 왔다. 어떤 때는 한무리 한무리 사람들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구정보과는 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수련하는가 물어 연마한다고 하기만 하면 공안국으로 올려보냈다. 나의 부모는 모두 정당하고 엄숙하게 신앙포기를 거절하였다. 1999년 7월말 8월초, 아버지는 법륜공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공안국1처에서 심문 당하였다. 후에 아버지와 몇 명의 법륜공수련생들은 강제로 4개월간 세뇌 당하였다.
1999년 12월 어머니는 북경에 가서 청원하려고 준비하였으며 정부에게 법륜공 탄압은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안1처가 알고서 어머니의 회사로 하여금 사람을 파견하여 감독하라고 하였다. 하여 회사에서는 사람을 보내 감시하였고 어머니가 집문을 나서기만 하면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어디를 가면 어디로 따라다녔는데 2개월 동안 이어졌다. 부모님의 두 회사에서 또 끊임없이 사람들이 와서 담화하며 신앙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였는데 한무리 사람들이 막 가면 또 한무리 사람들이 와서 소란을 피워 정말로 집안이 조용한 날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인내심 있게 그들에게 우리 집이 법륜공을 수련한 후 아주 많은 이익들을 얻었으며 법륜대법은 좋으니 수련을 포기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2000년 1월 아버지는 법륜공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강제로 원래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그들은 무릇 법륜공 연마를 견지하는 사람들은 정부기관에서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2000년 3월, 나와 어머니는 북경에 가서 청원하였고 국무원 신방판으로 가는 길에 사복경찰이 법륜공을 연마하는가 하지 않는가 묻고서 붙잡혔다. 주 북경사무처 지하실에 갇히고 이튿날 본고장으로 압송되어 이른바 “거주감시”(방식 자체가 위법이다)를 당하였다. 우리가 연공할 때 파출소 소장이 문을 차고 들어와서 우리가 연공하지 못하게 하였고 또한 사람을 때렸다. 3월말 나는 단식단수로 불법감금에 항의하였고 5일 후 혈압이 없고 맥박이 없는 정황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어머니에게 신앙을 포기하고 보증서와 회개서를 쓰라고 협박하였다. 어머니는 엄숙하게 거절하였고 공안은 할 수 없이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나와 어머니는 비로소 석방되었고 강박에 의해 2천 원을 벌금 당하였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후 학교영도는 일자리가 없는 부부를 보내어 그들 집에서 우리를 감시하게 하였고 (그들의 집은 나의 집 옆의 층집에 있었고 우리는 대문을 드나들 때 모두 지나간다) 우리 일가족의 출입시간을 기록하였다.
2000년 5월 아버지와 기타 몇 명의 법륜공수련생들이 공개적으로 연공한 이유로 나뉘어 거주를 감시 당하거나 구류소에 보내져 구류 당했다. 나와 어머니는 소식을 알고서 붙잡힌 다른 한 수련생의 가족과 함께 공안국 정보과에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였으나 불법으로 압류 당하고 아울러 구류소에 보내져 15일간 구류 당했으며 강제로 800원 화식비를 받아내갔다. 나의 아버지는 감시거주 기간에 단식단수로 항의하여 7일 이후 석방되었고 회사는 한 달간의 보너스를 압류하였다.
7월, 아버지는 공안분국 정보과 과장에게 전화하여 대법제자를 기한이 초과하도록 감금하는 것 역시 위법이라고 알려주었다는 이유로 전화를 내려놓은 지 20여분이 지나 정보과는 직접 회사에서, 전번에 공개적으로 연공한 이른바 법률집행 방해죄로 붙잡아 시간수소에 감금시켰다. 그리고 나의 집에 온 후 불법으로 이른바 증거를 수색하였고 > 한 권과 연공테이프 하나를 수색해갔다. 수색기간에도 우리에게 아버지가 이미 붙잡혔다는 일을 말하지 않았다. 후에 나와 어머니가 예전에 법륜공수련생을 감금했던 모든 곳을 모두 뛰어다니며 찾아보았지만 모두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여 어머니는 과장에게 사람을 어디에 가두었는가 질문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알려줄 수 없으며 마침 그의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가 말했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위법이다.”
8월, 아버지는 간수소에서 불법으로 35일간 감금된 후 노역소에 보내져 강제로 2년간 노동개조와 박해를 당하였다.
노동개조 기간에 아버지는 강제로 노동하고 (그 중에는 부담을 초과하는 체력노동), 강제로 세뇌 당하고, 강박에 의해 자료를 쓰고, 법륜공수련생과의 접촉과 대화를 금지 당하였다. 면회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만날 수 없었는데 이유는 나와 어머니도 법륜공을 수련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노동개조소에서 교도원과 도리를 따질 때 그는 우리를 위협하며 말하기를, 그가 전화를 한번 걸기만 하면 우리를 붙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2000년 12월 시610세뇌반은 어머니회사에게 어머니를 보내 강제로 세뇌 시키라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엄숙하게 거절하였다. 나와 어머니는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법륜공을 위하여 공정한 말을 하고 붙잡힌 후 천안문파출소에 보내졌는데 그 당시 파출소의 아주 많은 법륜공수련생들 중 60여세의 할머니마저 포함하여 경찰들의 구타를 당하였다. 나는 또 다른 방안에 철장이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 속에도 법륜공수련생들을 감금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또 수갑이 철창에 채워지고 옷도 찢겨지고 피가 낭자한 이가 있었고, 또 20여 세 되는 법륜공 청년은 두 손가락이 악경에 의해 부러졌다.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은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높이 외쳤으나 악경은 경찰곤봉으로 수련생들을 향하여 맹렬하게 때렸다. 한 수련생은 안경을 썼는데 악경이 잡아채서 지붕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나뉘어져 각 간수소로 보내졌고 나와 어머니는 조양구 간수소에 보내졌다. 간수소에서 법륜공수련생들은 옷이 벗겨지고 수색을 당하였다. 어떤 수련생은 영하 10여도에서 또 옷이 벗겨져 신체가 “大” 자로 나무판에 묶였으며 교관은 형사범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구타하고 괴롭히게 하였다. 예를 들어 담배로 음부를 태우고, 연필로 옆구리아래를 찌르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신발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 “비행기 타기”를 하게 하고, 오랜시간 벽구석에 쭈그리고 앉게 하고, 한밤중에 끌어내어 눈밭에서 차고 때리는 등등이다. 심문하러 나갈 때 솜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고, 어떤 악경은 심지어 속옷만 입고 맨 발로 눈밭에 서서 체벌로 서있게 하였으며, 의무(醫務)원이 아닌 (형사범) 사람으로 하여금 강제로 코로 음식을 주입하게 하였다. 각종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괴롭히고 사람의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정말로 잔인무도하고 인간성이 전혀 없었다.
나는 본 지역 공안에 의해 압송되어 돌아오다가 길에서 차사고로 머리가 강렬하게 부딪쳤다. 공안은 책임이 두려워 친척에게 (아버지는 이미 노동개조 당하고 어머니는 북경에 감금되어 집에는 사람이 없음) 데려가게 하였다. 친척집에서 휴양하는 기간에 관할구 파출소사무처는 24시간 감시하였다. 후에 나는 정월 초팔일 출근하면 사람을 붙잡는다는 소식을 듣고 초 7일에 방법을 대어 빠져 나왔다. 그후부터 이미 2년이 넘도록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1년 정월 초 4일 어머니는 공안에 의해 북경에서 돌아온 후 세뇌반에 보내져 강제로 세뇌 당했지만 세뇌반에서 어머니의 단호한 수련의 마음은 종래로 동요되지 않았으며 한달 후 노역소에 보내져 박해 당하였다. 노역소에서 사악의 무리는 잔혹하게 단호한 대법제자들을 박해한바, 악경이 대법제자를 끈으로 묶은 후 발로 찼는데 어떤 대법수련생은 어깨에 이미 끈을 잔뜩 감긴 후 간경이 또 몸의 끈을 높은 곳으로 당겼다. 다른 한 수련생은 경찰끈에 묶인 후 또 몽둥이로 받히어 담배로 몸을 태웠다. 끈을 묶는 것이 끝나면 생산대장은 또 대법수련생들에게 생산임무를 주었는데 많은 수련생들은 끈으로 묶인 후 손과 발이 아직 마비상태에 처하여 생산임무를 완성하지 못하자 사악한 간경은 오히려 “소극적이고 나태하게 일한다”고 하면서 끈으로 묶겠다고 협박하였다. 2002년 3월 한 법륜공수련생은 연공을 견지한 이유로 3일 동안 밤낮으로 경찰끈에 묶였다. 2002년 5월 25일 3대대 악경은 아무 이유도 없이 15명의 대법제자를 불러서 강화반(强化班)을 만들고 15명의 대법제자를 강박하여 37, 38도의 태양 아래서 강제로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으며 대법을 모함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하였다. 만약 한가지를 잘하지 못하거나 제자리에 도착하지 않거나 혹은 하지 않으면 태양 아래서 벌로 서있게 하거나 절반 쭈그린 자세로 체벌을 받았으며 심지어 경찰끈으로 묶겠다고 협박하였다. 2002년 5월 하순, 노역소에서 4개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거의 매일마다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녹음을 틀었다. 6, 7월에 1대, 2대, 4대의 많은 대법제자들은 노역소의 간경을 찾아 더 이상 틀지 말라고 요구하였지만 악경은 듣지 않았다. 사악을 제지하기 위하여 어떤 대법제자들은 일하지 않았고 숫자를 보고하지 않았으며 단식으로 항의하였다. 악경은 대법제자들을 끌어내어 끈으로 묶었는데 나의 어머니도 그 속에 있었으며 아울러 악경과 보안에 의하여 다리가 구타당하여 부러졌고 생활은 자립할 수 없었으며 감금되어 사람과 면회하지 못하게 되었다. 음식을 주입 당할 때 이빨 두 개가 부러졌으며 다른 이빨은 전부 흔들렸다. 아울러 3개월 기한을 연장하였다. 면회날 노역소는 또 수련생 가족에게 대법을 공격하고 모함하는 종이에 서명하도록 핍박하여 서명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가족들은 가족을 만나기 위하여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1년 나는 떠돌아다니는 기간에 외할머니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안에게 붙잡혀 집에 갇혀있었는데 박해를 피면하기 위하여 핍박에 의해 창문에서 아래로 뛰어내려 두 다리가 골절되었다. 삼촌도 뛰어내려 분쇄성 골절이 되어 (삼촌도 법륜공을 수련함으로써 핍박에 의해 떠돌아다녔음) 나중에 병원에 보내져 치료하였다.
아버지는 노역소에서 나와서 나와 삼촌이 공안에 의해 추적, 체포될 때 핍박에 의해 층집에서 뛰어내리다가 두 다리를 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법륜공에 대한 박해에 항의함으로써 3대 사무실로 강제로 끌려갔다. 노역소 정위(政委)의 지휘 하에, 일부 간경이 참여하여 등뒤로 두손을 수갑으로 채우고 동시에 4, 5대의 전기충격기로 머리, 귓불, 경추 부위 등에 전기충격을 당하였다. 전기충격 중 바닥에 쓰러지고 또 신체가 발에 밟힌채 전기충격 당하였다. 시간은 대략 40분간이었다. 뺨과 목 부위가 전기에 타서 부었다. 후에 3개월 기간을 연장하였다.
노역소에서는 법륜공수련생을 강박하여 중앙텔레비젼 “초점방담”의 대법 비방 프로를 보도록 하였고 아울러 보고난 느낌을 쓰게 하였다. 아버지는 중앙텔레비젼의 거짓말을 폭로하여 제목을 “대법을 모욕하면 안 된다”라고 씀으로써, 3대 교도관에 의해 대사무실로 불리워 가 두손이 강제로 채워지고 가죽신을 신은 발에 밟히어 전기충격기로 맞았다. 두 악경은 동시에 머리와 귓불, 경추 부위 등에 전기충격을 주었고 아울러 옷을 벗겨 등과 허리, 복부에 전기충격을 주었는데 시간은 약 30분간이었다.
아버지는 노동개조기간이 만기되어 출소한 후 악도는 상급정신을 이유로 강제로 세뇌반에 보냈다.(이른바 普法 학교) 그 당시 아버지는 그들의 행위는 위법의 행위로서 이미 중국의 형법 제238조 불법감금죄를 범하였다고 지적하고 아울러 강력하게 항의하였다.(그 당시 이미 노역소에서 4일간 단식단수 하였다). 그 범법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강제로 아버지를 4개월 넘게 불법으로 감금하고 2002년 년말에 비로소 석방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불법감금 중에 방안을 나서지 못하고, 식사를 타오지 못하고, 다른 법륜공수련생들과 접촉하여 대화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당시 아버지는 12일 동안 단식단수 하였고 그들은 이런 정황 하에서 여전히 위법범죄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박해를 멈추지 않았다. 2002년 11월 23일 아버지는 또 단식단수로 즉시 인신자유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여 항의를 시작하였으나 위법자들은 여전히 박해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 기간에 매 법륜공수련생을 회사에서 한 사람을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16대 전, 공안은 나를 체포하기 위하여 곳곳을 수색하였고 모든 친척집을 모두 뒤졌다. 심지어 중학교 때의 동창생의 집도 수색하였다. 또 비열하게 아버지가 갇힌 세뇌반에 가서 거짓말로 친척의 정황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악경은 친척을 핍박하여 열쇠로 나의 집 문을 열게 하고 나의 사진과 일부 전화번호를 가져갔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밖에서 떠돌아다니며 부모를 만나지 못하였다.
2003년 파출소 소장은 상급지표임무를 완성하기 위하여 기만수단으로 편경에게 나의 집 문을 열게 하였는데 그 뒤로 한무리 악경이 집에 뛰어들어 법륜공 녹음테이프와 책 등을 가져갔으며 아울러 아버지를 납치하여 구류소에 구류시켰다. 2일 후, 회사사람이 친척에게 무엇 때문에 출근하지 않는가 물었을 때 가족들은 비로소 실종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10일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비로소 파출소에서 “두 회의(兩會)” 기간에 청원할까봐 두려워 구류한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아버지는 단식단수하여 비로소 풀려나왔고 아울러 강제로 500원 “화식비”를 걷어갔다.
부모님이 노동개조 당하는 기간, 그들의 월급은 전부 정지되었으며 심지어 어머니의 퇴직금도 주지 않음으로써 우리 집은 2년이 넘게 한푼의 수입도 없어 나는 밖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장(江)범이 말하는 “경제상으로 절단 낸다” 함이다.
3년이 넘는 박해에서, 나의 수련하지 않는 친척들도 똑같이 이별의 고통을 받았고 온종일 공포에 떨었다. 나의 80여세 되는 외할머니는, 딸과 사위가 노동개조 당하고 아들 일가족과 외손녀가 밖에서 떠돌아다님으로써, 그녀를 만나뵙지 못한 중대한 타격으로 크게 자극을 받아 노년치매에 걸렸다.
3년간 탄압하여 나와 가족은 한번도 모인 적이 없었다. 원래 행복하였던 중국의 수천만의 가정은 장(江)범의 잔폭하고 인간성이 전혀 없는 피비린내 나는 탄압 속에서 처자식이 흩어지고 가족이 망하고 사람이 죽게 되었다. 아울러 우리 집이 겪은 일 역시 단지 큰 바다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는 정중하게 미국 일리노주 북구 연방법원에 증인하며 장쩌민(江澤民)이 중국에서 저지른 군체멸절죄는 잔인무도하게 인권을 짓밟고 중국헌법을 짓밟고 국제인권공약을 짓밟았다고 고발한다. 연방법원이 정의를 내세워 선량을 보호하고 중국의 무고한 백성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저지른 장쩌민(江澤民)을 하루빨리 법정에 보내어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기 바란다.
발표일자 : 2003년 3월 30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3/3/30/474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