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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하여 온가족이 혜택을 입었지만 사악의 박해를 받아 일가가 뿔뿔이 흩어졌다

글/길림성대법제자

【명혜망】나는 길림성 대법제자로서 1996년 2월부터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해서부터 여러 가지 기적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내가 13살 때 종합적인 병에 걸렸으며 후에는 또 위장염에 걸렸다. 집이 가난하여 잘 치료하지 못해서 줄곧 병이 남아있었으며 병이 재발할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법륜대법을 수련한 후 몇 달 내에 스스로 나았는데 정말로 너무나 신기하였다. 나에겐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으며 나와 함께 수련한다. 큰딸은 어릴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고 또 심근염증이 있었다. 90년도에 자동차공장병원에서 치료한 적이 있으나 의사는 애들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 현재는 없으며 휴식을 통하여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알려주었다. 아들애가 두 살 때 대엽성 폐염을 앓았는데 겨울만 되면 한 달에 몇 번이나 병에 걸렸다. 매번 앓을 때마다 열이 올라 체온이 40도 좌우로 되었고 어떤 때에는 정신을 잃기도 하여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애들의 병 치료를 위하여 우리가 진 빚은 산더미처럼 되었으며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연공한 후 두 아이는 완전히 나았다. 아내는 연공 전에 위병을 십여 년 간 앓고 있었으나 연공한 후 4개월만에 병세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법륜공은 우리 일가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고 딸에게 두 번째의 생명을 주었다. 우리 일가는 사부님에게 더 없는 감격을 느꼈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진, 선, 인”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실도 증명하다시피 법륜공은 나라와 백성에게 모두 이로우며 사회에 대하여 백가지가 이로울 뿐 한가지라도 나쁜 점이 없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장쩌민범죄집단의 잔혹한 탄압 하에서 나는 가정의 가난함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대법제자들에게 돈을 빌려 2000년 1월 8일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으며 정부가 진상을 요해하길 바랐다. 중도에 파출소에 不法으로 체포되어 5키로 밖의 구치소에 36일간 감금되었다. 감금된 기간에 나는 연공을 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혹형의 박해와 구타를 당했고 후에 또 수갑과 족쇄를 차게 되었다. 지역 파출소 소장 주봉신 등이 나를 심문하였고 또 지독하게 매를 가했다. 그들은 나의 웃옷을 몽땅 벗겨내고는 가죽띠의 철로 된 머리부분으로 나의 얼굴, 머리, 등을 때렸다. 나의 두 눈이 퍼렇게 멍이 들고 등이 벌겋게 부을 때까지 100여 번을 때렸다. 그들의 악독한 행위에 항의를 하기 위하여 나와 동수들은 단식을 시작하였다. 일주일 단식한 후 교관은 우리들을 핍박하여 “결렬서”를 쓰도록 하였다. 거절당한 후 우리들에게 연속 나흘 간의 비인간적인 체벌을 주었다. 영하 20도 되는 기온에 우리를 핍박하여 맨발로 밖에서 몇 시간 동안 달리게 하였고, 또 두 다리를 양쪽으로 극한까지 벌리게 한 후 서도록 하였다. 두 손은 수평으로 들어올려서 매번 두 시간 서있도록 하였다. 또 두 다리를 최대한 벌리게 한 후 허리를 굽혀 머리가 앞으로 향하게, 그리고 두 손은 벌려서 최대한도로 땅에 닿게 하였는데 이것도 매번 두 시간이었다. 두 시간 지난 후 법륜공수련생들마다 사지가 마비되어 설 수 없었으며 어떤 수련생은 열흘이 넘도록 단식하여 신체가 허약하였기에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만약 일어설 수 없으면 그들은 주먹질, 발길질을 하였으며 어떤 사람이 자세가 정확하지 않으면 곧 발끝으로나 혹은 대나무가지로 때려서 두 손등이 붓게 만들었다. 36일 후 지역 파출소에서는 가족들에게서 2300위안을 협박한 후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1년 정월 열 나흘, 지역의 파출소에서 나와서 대법자료를 수색할 때 나의 아내가 대법자료를 베껴 썼다는 것을 알게된 후 강제로 나의 아내를 납치하여 갔으며 200위안을 벌금 시킨 후에야 돌려보냈다. 2002년 8월 3일 파출소에서는 또 우리 집에 와서 대법자료를 수색하면서 또 아내를 납치하여 갔다. 그들은 15살 되는 나의 작은 딸애마저도 놓아주지 않았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과 대법제자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비로소 작은 딸애를 놓아주었다. 후에 아내가 장춘시 허이주이즈 감옥에 감금되어 不法적인 강제노역형 1년을 받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감금되어 있다. 내가 또 장기간 밖에 있다보니 두 아이는 집에서 30키로 이상 떨어진 고등학교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집의 농사일은 작은 딸 혼자서 돌봐야 했으며 가정의 무거운 부담은 그 애가 모두 져야 했다. 낮에 힘이 들면 저녁에는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코를 골았고 꿈속에서 늘 엄마를 부르기도 하여 친척이 보면 모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애는 나이가 어려도 이토록 큰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없으며 꼭 대법이 淸白을 돌려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장쩌민과 그의 610범죄집단은 법률의 위에 올라앉아 마음 데로 자국민의 기본권리를 짓밟고 있으며 또한 각종 수단들을 이용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다. 희망하건 데 미국 시카고법원에서 이러한 사악의 무리들에게 제재를 가해주길 바라며 또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하나의 평화적인 자유의 공간을 주길 바란다.

문장발표 : 2003년 3월 8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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