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나는 96년 8월에 법을 얻어 수련하였는데 지금까지 이미 6년이 넘었다. 어릴 적부터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즐거움이 없다. 다른 꼬마친구들은 아무 걱정 없이 장난을 치지만 나는 도리어 신경성 두통으로 어떤 때는 벽에 머리를 부딪쳤고 어떤 때는 머리가 빠개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주 고통스러웠다. 2, 3일에 한번씩 약을 먹고 침을 맞았는데 어떤 때는 한밤중에 병원응급실로 가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를 “要帳鬼兒”라고 말했다. 이렇게 클 때까지 거의 약으로 자랐고 날마다 부모가 나 때문에 걱정하게 하였다. 어린 나이의 나의 마음속은 고통으로 충만되었지만 오히려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무엇 때문에 세상에 왔으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가를 알지 못하였다.
직장에 다닌 후 역시 수시로 병 때문에 휴가를 내었다. 위하수(胃下垂)는 나의 신체를 허약하게 하였고 시고 맵고 찬 것은 모두 먹지 못하게 하였다. 풍습성 관절염은 나로 하여금 길을 걷는 것마저 곤란하게 하였다. 그 당시 회사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도 나는 모두 1등을 다투고 명리를 위해 다투었으며, 모든 것에 이기려고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였다. 이리하여 늘 잠을 잃었다.
병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는 많은 기공단련에 참가하였지만 심법(心法)이 없으므로 단지 동작만 연마하였다. 나중에는 모두 견지해 나가지 못하였다. 후에 불경 한 권을 청하여 자신이 집에서 읽음으로써 육도윤회의 고달픔에서 초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고 또한 어떻게 닦는지를 몰랐다. 이어서 또 흐리멍덩하게 가짜기공을 배우고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병은 치료하지 못하면서 또한 많은 번거로움을 불러왔다. 어떤 때는 야밤 삼경에 놀라서 감히 잠을 이주지 못하였는데 실면증(失眠)은 갈수록 엄중해졌으며 정신이 쇠퇴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졌다. 후에 친구들과 상의하여 어느 명산대천에서 한 고인을 만나 사부님으로 모셨다. 얼굴을 서쪽에 향하고 서방 삼경을 구하기 위하여 한 갈래 길을 가리키는데 어디에 가서 수련의 법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일주일이 안되어 친구가 > 한 권을 보내주며 나에게 이것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책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이상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번에 나는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광명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으며 마음이 희열로 충만되었다.
수련한 지 한 달이 안 되어 신체가 정화되었다. 그후부터 신체는 홀가분해졌고 밤길을 걸을 때도 두렵지 않았으며 얼굴색은 점차 붉어졌다. 수련해 가면서 명리(名利)에 대해 점차 담담하게 보았고 가정은 화목해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융합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보수를 따지지 않았으며, 마음상태는 평화롭고 얼굴은 늘 웃음을 띄었는데 완전히 다른 한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98년의 대홍수 기간, 회사는 매 사람마다 50원을 헌금하도록 규정하였지만 나는 600원을 헌금하였다. 동시에 자신은 실학한 아동에게 600원을 헌금하였다. 이는 내가 수련 이전에 절대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수련한 지 일년이 안 되는 시간에 일에는 변동이 생겼고 영도는 나에게 재무일을 하도록 분배하였다. 재무예산과 재무분석, 재무보표를 하는 것 외에 아울러 한 세트의 회계컴퓨터소프트웨어를 배워야 했다. 이전에 나는 컴퓨터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었는데 컴퓨터를 켜고 닫는 것조차 몰랐으며 자판 조작은 더욱 아주 느렸다. 나가서 일주일간 배우고 돌아와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시간은 다급하고 기초가 부족하여 나는 압력이 아주 크다고 느끼었다. 그러나 나는 곤란에 놀라 쓰러지지 않았다. 매일 모두 기계 앞에 앉아서 조작하였다. 갓 회계전산화를 보급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공능이 아주 완벽하지 못하여 늘 많은 문제들이 생겨 일이 진행되지 못하여 어떤 때는 답답하여 머리가 아팠다. 매번 이 때마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대법수련은 지혜를 열어준다. 그리고 대법제자는 고달픔 중의 고달픔을 이길 수 있고 아무도 나를 넘어뜨릴 수 없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실험하였고 끊임없이 나타난 문제들을 극복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기계 앞에 앉아있었다. 사무실 빌딩 안은 텅 비어있어도 나는 두렵지 않았고 매일마다 굶으면서 아주 늦게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법공부와 연공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집으로 돌아온 후 찬밥을 조금만 먹었지만 위는 오히려 어떠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비록 사업량이 많고 압력 또한 아주 커서 살이 많이 빠졌지만 정신은 도리어 아주 좋아 일하기 시작하면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는 내가 수련 이전에 어떻게 하여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의 한달 간의 시간을 거쳐 소프트웨어 조작은 성공하여 장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기타 새로 받은 일도 모두 시간에 맞춰 질량에 하자 없이 완성되어 갔다. 내가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연장근무하고 보수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여러 사람들이 그 당시 볼 때 모두 아주 골치 아픈 회계전산화를 독립적으로 완성하였다. 아울러 기타 회사도 모두 사람을 파견하여 배우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회계전산화를 완성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연말에 나의 회사의 재무분석과 보표가 즉시 보고되고, 정확하여 상급회사의 표창을 받았다. 먼저 회계전산화를 완성함으로써 나의 회사의 재무일은 상급회사로부터 전형적인 표창을 받게 되었다. 우리 영도들은 아주 기뻐하며 나에게 물었다 : 우리 이 업종을 하는 사람들에서 또 누가 법륜공을 연마합니까. 내가 그들을 모두 데려올 것입니다. 동사자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신체와 사상경지에서 거대한 변화가 발생한 것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은 대법책을 보기 시작하였으며 또 몇 사람은 연공장에 와서 연공에 참가하였다. 영도는 두 번이나 나를 위해 차를 파견하여 보도참을 도와 대법서적과 자료를 운송하게 하였다.
수련 중에서, 나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였고 어디에서든지 모두 양호한 정신면모, 포만된 사업열정으로 대법제자의 풍모를 펼쳐보였다. 나의 사업표현, 말투와 거동은 이 회사와 상급회사 영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각 회사의 동사자들도 나를 모두 존경하였다. 아울러 나는 대법 속에서 수련하여 몸과 마음이 이익을 얻었으며 비할 바 없는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었다.
● 풍운이 돌변하다
99년 7.20에 시작하여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듯이 대법과 대법제자들은 사전에 예가 없었던 박해를 받았다. 7.20에 시작하여 나는 공안국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던바, 누가 조직자이며 무슨 활동을 진행하였는가 물었다. 아울러 회사영도는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임을 번연히 알면서 압력 하에 도리어 나더러 보증을 쓰고 법륜공을 비평하도록 핍박하였다. 그리고 보증을 쓰지 않으면 출근할 수 없다고 위협하였으며 2-3일에 한번씩 나를 찾아 담화하거나 큰 회의, 작은 회의에서 지명하여 나더러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하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서 멀어졌고 마치 문화대혁명처럼 연루될까봐 누구도 감히 한마디 공정한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보호를 우선하였다. 간부로 승급하고 선진을 평가하는 것은 그후부터 나와 인연이 없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여도 “진선인(眞善忍)”을 닦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무엇 때문에 좋은 사람이 탄압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단락 냉정한 사고를 거쳐 나는 자신이 대법을 수련함에 잘못이 없고 아울러 나의 몸과 마음의 변화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아왔다. 나는 대법 속에서 이익을 받았고 대법은 나로 하여금 신체가 건강하게 하였으며 나를 갈수록 고상하게 변하도록 하였으므로 나는 마땅히 정부에 공정한 말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여 99년 말, 나는 “법륜대법은 좋습니다” 라고 쓴 현수막에 서명하였으며 두 번 째로 공안국에 가서 심문을 받았다. 돌아온 후 회사는 나의 3개월간의 보너스를 압류하고 상급회사는 또 부총경리와 한 처장을 나의 회사에 특별히 파견하여 나에 대해 이른바 “교육”을 진행하였다. 610사무실은 또 5000원의 돈을 강제로 바치게 하여 보증금으로 하였으며 신분증을 몰수하였다.
2000년 6월, 나는 북경에 가서 청원하였고, 중도에서 붙잡혀 불법으로 거의 2개월간 구류되어 비인간적인 대우와 각종 체벌을 받았다. 공안국 정보과는 1만원의 돈을 갈취하여 보증금으로 한 후 사람을 풀어주었다. 회사는 나에게 회사에 남아서 1년간 관찰한다는 처분을 주었고 월급과 보너스를 내주지 않고 아주 낮은 생활비만 내주었다. 일 또한 조정되어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고달프고 또한 힘든 일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각 방면의 압력을 감당하였다. 아울러 나에게 주지 않은 월급과 보너스는 모두 2만여 원이었다. 2000년 12월 나는 또 한번 청원하였고 어느 역전에서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610폭도들에게 납치되었으며 1200여 원을 갈취 당하고 본 지역으로 돌아왔다. 2001년 나는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붙히는 과정에서 나쁜 사람에 의해 신고 당하였고 또 한번 불법으로 거의 2개월간 감금되었다. 감금기간에 회사영도는 극력으로 내가 수련을 포기하도록 유혹하였던바, 간부로 승진하고 월급을 보충, 발급하고 일을 회복시켜준다는 조건이었다. 아울러 배신자들을 찾아 나에게 세뇌하게 하였다. 이 배신자들의 이지가 없는 언행은 나로 하여금 구역질 나게 하였고 나는 이에 이끌리지 않았다. 내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개조 하도록 신고되었다. 그러나 압력 하에 자신의 근본 집착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전향” 되어 그 배신자처럼 그러한 사람으로 될까봐 본의아니게 대법제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였다. 돌아온 후 나는 또 가정감옥에 갇혔다. 전화는 끊기고 나는 방안에 갇히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깊은 통한을 느끼었고 자신이 사부님에게 미안하고 더 이상 대법을 수련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었다. 그 당시 나의 고달픔은 말로 할 수 없다. 회사는 계속 나를 핍박하여 보증을 쓰도록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제적한다고 하였다. 가족들은 공포 때문에 역시 나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한 상태에서 나는 또 본의 아니게 “연마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썼다. 그러나 나는 또 포기하기 아쉬웠으며 고통스러운 미혹 속에서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사상투쟁을 거치고 나는 과감히 집문을 뛰쳐나와 수련생을 찾았다. 나는 이렇게 자신을 망칠 수 없었다. 동수들의 도움과 격려 하에 나는 사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법공부를 시작하여 자신의 근본집착을 찾았다. [명혜망]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이 말하고 쓴 대법에 위반되는 일체를 작폐한다고 성명하고 다시 또 수련으로 들어섰다. 후에 회사에서는 나더러 출근하게 하였고 나를 처분하는 기간을 연장하였으며 계속 가장 낮은 생활비를 주었다. “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나는 노동합동관계를 해제하고 내가 쓴 보증서를 돌려받음으로써 영향을 조성한 범위 내에서 행동으로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언행과 글들을 작폐하려고 결정하였다. 아울러 온 몸으로 정법에 뛰어들어 일체 교란을 배제하고 정법 중에서 자신이 대법에 조성한 손실을 미봉하겠다고 결정하였다.
● 아버지는 나에게 압력을 가하던 데로부터 나의 진상을 알리는 행동을 지지하였다
내가 이 결정을 할 때 나는 아주 큰 저애력을 만났다. 대법은 나에게 일체를 주었고 낡은 세력은 오히려 나를 없애려고 하였다. 사악한 낡은 세력은 대법제자에 대해 노동개조, 심판 등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직접 박해하는 것 외에 또 거짓말 선전을 통하여 대법제자의 가족을 기만하여 간접적으로 대법제자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아울러 나의 가족들은 사악한 박해 속에서 사악의 본질을 똑바로 인식할 수 없어 무의식중에 사악의 한 쪽에 서게 되었고 천방백계로 나를 제지하였다.
먼저 온 것은 아버지한테서 온 압력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렸다. 만약 장(江)xx이 이번 박해를 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 이 가족은 얼마나 화목합니까. 그리고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정상적으로 수련하는데 또 청원하여 불법으로 감금될 필요가 있습니까. 나더러 수련하지 말라면 병이 있어도 누가 나를 대신하여 고통을 감당하고 누가 나에게 의약비를 지불합니까? 당신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내가 고생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또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대법에서 이익을 얻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나를 지지해주세요. 나는 수련의 이 길에서 더욱 잘 걸어갈 것입니다.
내가 일체 걱정을 내려놓고 다시 정정당당하게 대법제자로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나의 심정은 마치 원시산림에 들어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이 아주 즐겁고 편안합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기쁘지 않습니까?”고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다급히 말씀하셨다. “즐거우면 됐다. 즐거우면 됐다.” 이후부터 아버지는 더 이상 나에게 압력을 주지 않았다. 아울러 한번은 내가 진상자료를 붙히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으로 나를 위하여 발정념하였다. (발정념은 신성한 것이다. 아울러 단지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그러한 거대한 위력을 지닌다. 여기서는 다만 아버지가 나에 대한 지지를 나타낸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진상을 알림으로써 아버지는 철저히 개변되었다.
● 나는 가족관계를 처리하면서,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정념의 유지를 배웠다
그 다음은 남편한테서 온 압력이었다. 나에게 후퇴하여 가장 심하게 반대한 이가 바로 남편이었다. 그는 이혼으로 나를 위협하였으며 그는 회사에서 지내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마다 소파에서 자고 내가 설득하여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과거에 내가 잘 하지 못하였으니 이번에 잘 선택한 길을 반드시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고 결심하였다. 그가 매일마다 소파에서 자고 심정이 좋지 않아 아주 피곤해 보였다. 하여 나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그는 “당신이 개변하지 않으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말했다. 나는 인내심 있게 그를 설득하였다. “만약 내가 귀찮다면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서 지내세요. 당신은 속인이기 때문에 늘 이렇게 지내면 신체에 좋은 점이 없어요. 나는 연공인이기 때문에 모든 고생을 다 할 수 있으니, 당신이 어느 때 내가 귀찮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나의 진심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주 늦었고 늘 만취하여 돌아왔다.
그의 고통 때문에 그의 친구, 동사자들은 그더러 나와 이혼하라고 권하였다. 처음에 나도 동의하였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영향주어 당신이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어요. 그러나 이혼할 수 있어도 재산은 절반씩입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연공인인데 재산까지 다퉈요?” 나는 그의 올바르지 못함을 보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연공인도 생활해야 하는데 나는 길바닥에서 잘 수 없어요. 하물며 이 재산에는 본래 나의 절반이 있고 그것은 내가 노동하여 바꿔온 것입니다.” 그 당시 그는 감동 받았다. 후에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한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혼하는가? 하여 나는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이혼할 수 없는데,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이렇게 이혼한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를 보며 대법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이혼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여도 이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기소하겠소.” 나는 그에게 말했다. “기소하세요. 당신이 연루됨이 두렵고 당신이 관리로 승급하여 부자되는 것에 영향주는 것이 두려워 나와 이혼하려는데, 그러나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겠어요? 어떻게 당신을 보겠어요?” 이후 그는 더 이상 이혼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의 동사자, 친구 모두 일종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비꼬거나 풍자를 하였다. 매일 남편을 끌고 가서 술을 마셨고 나를 적처럼 대하였다. 나는 남편과 소통하려고 하였지만 그가 매일마다 만취되어 소통할 수 없었다. 나는 줄곧 참고 양보하였다. 이러한 정황이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하였다. 안을 향하여 찾음으로써 이런 상태가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악은 나의 선(善)을 이용하여 나의 사상의 틈을 탔던 것이다. 아울러 나는 한사코 남편에게 양보하였는데 이것은 그를 박해한 것이다. 그리고 대법수련은 위엄이 있는 것이며 나는 반드시 이러한 상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어느 한번 만찬에서 남편은 또 동사자와 친구들 앞에서 나를 비꼬았다. 아울러 나에게 일부 아주 듣기 거북한 말을 하였다. 이번에 나는 더 이상 침묵하고 양보하지 않았으며 그의 올바르지 못함을 바로 잡았다. 나는 그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당신과 당신의 동사자들은 한번 또 한번 나를 비꼬고 나는 한번 또 한번 참고 양보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만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더욱 심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대법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잘못되었습니까? 나는 대법을 수련함으로써 건강해졌고 사람도 좋게 변하고 갈수록 더욱 고상하게 변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모두 내가 대법을 닦음으로써 나를 존경합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나아가고 정정당당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친구는 오히려 나를 비꼬고 풍자하는데 그럼 당신은 나더러 나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까? 만약 내가 어느 곳에서 잘하지 못하면 당신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잘못하였다면 나는 견결히 고칠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내가 한 말에 놀랐고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 그는 주동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으며 아울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체험하게 되었다. “우주진리에 대한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는 정념(正念)은 선량한 대법제자의 반석같이 확고한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구성했는데, 일체 사악으로 하여금 간담을 써늘케 하고, 방사(放射)해 낸 진리의 빛은 일체 생명의 바르지 못한 사상요소를 해체시켰다. 얼마나 강한 정념(正念)이 있으면 얼마나 큰 위력(威力)이 있는 것이다.”(>)
● 만나는 사람은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릴 대상이다
남편의 개변으로 인하여 그의 동사자들도 점차 개변되었다. 매번 그들과의 접촉에서 나는 모두 인내심 있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었고 대법제자의 순선(純善)으로 그들에게 대법은 좋다는 것과 대법제자가 당한 박해를 알려주었다.
어느 날, 그의 한 동사자가 나의 집으로 왔다. 그는 전에 나를 욕한 적이 있었고 나에게 아주 듣기 거북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에게 대법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리었으며 내가 연공한 후 몸과 마음이 이익을 얻은 것과 나의 개변을 말하였고 대법제자가 고통을 감당하면서 여전히 타인을 선하게 대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에게 대법을 선하게 대하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남길 것을 알려주었다. …… 그는 진상을 알고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끝내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어떤 자료가 있으면 나에게 주세요. 내가 당신을 도와서 할 것입니다. 내가 연공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가 깨어남에 격동되었다.
나는 동사자와 주위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진상자료와 VCD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떤 때는 동사자가 우리 집에 와서 식사하는 기회를 타서 단체로 진상VCD를 보여주었고 어떤 때는 이웃집에 놀러가는 기회에 이웃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진상을 알림에 절대다수 사람들은 부동한 정도로 사상이 변했고 대법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표시하였다. 이와 동시에 나는 또 VCD기계를 들고 타 지역의 친구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얻은 효과는 모두 좋았다. 어떤 친구는 장래에 또 대법을 배우겠다고 표시하였다.
어느 한번 타지방에서 3명의 여자아이들을 만났고 나는 그녀들에게 내가 대법을 수련한 이후의 몸과 마음의 변화와 박해받은 경력들을 이야기하였다. 그중 한 여자아이는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었는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법 속에서 얻은 것은 얼마나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얼마나 많이 잃든지를 막론하고 나 역시 후회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한시간반 동안 이야기하였고 목소리가 조금 쉬었으며 말할 때 아주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여전히 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였고 나더러 시간이 있으면 그녀들에게 더 이야기해달라고 하였다. 떠날 때 그녀들은 마치 가족처럼 나를 배웅해주었고 눈빛은 존경과 탄복으로 충만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의 수련인의 표현은 아주 순정(純正)한 것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표현을 보고 당신들은 좋다고 느꼈다. 만약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자신의 행위를 주의하지 않으면 당신들의 표현을 속인들은 곧 보게 될 것이며 그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깊이 들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는 바로 당신의 표현을 본다. 당신의 한 마디 말, 하나의 표현은 그로 하여금 제도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대법(大法)에 좋지 않은 인상(印象)을 가져다주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여야 한다.”(>)
어느 한번, 나는 한 동수와 함께 버스에 올라 한 여성을 만났다. 차가 급정거할 때 그녀는 두 번이나 본의 아니게 나를 때렸다.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고 선의적으로 웃었다. 아울러 안으로 비집으면서 그녀에게 옆을 내어주어 앉게 하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아주 감사하였고 우리에게 어디에서 내리는가 물었다. 몇 마디 얘기를 한 후, 우리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말하고 한사람은 발정념 하였다. 그녀가 제기한 문제를 일일이 해답하였다. 이 때 앞좌석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몸을 뒤로하고 좀 똑똑히 들으려고 하였다. 하여 나는 목소리를 높였고 아울러 발정념 하여 나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고 아울러 받아들이게 하였다. 노인은 듣고 듣다가 나중에는 뒤돌아 앉아 한편 들으면서 한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운 마음이 없어 말할 수록 더욱 자연스러웠다. 대법이 어떻게 좋고 어떻게 박해를 당함을 길에서 말하니 마치 차에는 우리 두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성은 우리가 말한 것을 완전히 접수하였다. 차가 정류장에 도착하여도 우리는 모두 느끼지 못하였다. 차에서 내릴 때 노인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우리에게 “당신들은 정말 대단합니다”고 하였다.
이후에 기차를 타든지 차에 앉아 어디로 가든지를 막론하고 만나는 사람은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이었다. 몇 달이 지나서 나는 많은 곳에 갔고 진상을 알리는 많은 경험들을 축적하였다. 내가 진상을 알릴 때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였다. 이는 나로 하여금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여의진리(如意眞理)를 지니고 와 소탈하게 사해(四海)를 다니면서 법리를 온 세간의 도(道)에 뿌리어 중생을 가득 싣고 법선(法船)이 떠난다”(>) 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 문제에 부딪치면 즉시 안을 향하여 찾았다. 자신이 법공부가 모자라고 즉시 발정념을 하지 않았는지, 자비심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어떤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였는지. 이 과정을 통하여 나는 아주 많은 집착들을 내려놓았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였다. 민감한 날이든지 아니면 특수한 날이든 매일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종래로 멈추지 않았다. 심성과 경지는 끊임없이 제고되었다.
나의 수련과정 중에는 기세가 등등한 장거(壯擧)가 없었다. 잘 파악하지 못할 때 또한 많은 아쉬움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압력을 이기고 오늘날까지 걸어나온 것이 다행스럽다. 대법이 나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 하는 노정에서 더욱 성숙하게 단련되고 더욱 이지적이 되었다. 인간세상에서 더 많은 것들을 잃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이 길에서 단호하게 걸어나갈 것이며 더욱 잘 걷고 더욱 온건하게 걸을 것이다.
이상은 나의 정법수련에서의 몇 가지 체험들이다. 비교적 혼잡하게 썼다. 아울러 그 당시 환경에서의 법리에 대한 감오를 지금은 이미 완전히 써낼 수 없어 단지 몇 가지 측면에서 나에 대한 악인의 박해를 폭로한다. 인식이 부족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하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발표일자 : 2003년 3월 20일
문장분류 : 護法歷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