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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책임 (1)

[명혜망] 편집자의 말 : 더욱 많은 동수들이 자기가 법을 얻고, 수련하는 정법의 과정을 써주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필로 이 단계에 평범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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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록하려는 것은 내 인생의 한 단계의 노정이다. 그는 법을 얻어 수련하였기에 훌륭하였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 하였다.
예전에 나는 나의 경험(經歷)을 동수와 비교 한다면, 같이 논할 수가 없었으며, 제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동수들의 고무격려 하에 지금 써내어 세인으로 하여금 극히 평범한 여성의 한 단계의 특수한 과정의 이야기를 요해하도록 하고 싶다. 여기에 쓴 매 하나의 사실은 모두 진실이다. 법륜대법은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구원하였으며 하나 하나가 평범한 속인으로 보이나 하나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演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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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한 산골에서 자랐으며, 전문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혼자서 산골을 떠나지 못하였다. 전문대학에 입학한 후 학위를 가지게 되었고 졸업후 한 병원에서 10여 년이나 근무한 아주 평범한 중국 하층의 국민이었다. 법을 얻기 전에는 백과사전의 자연 수수께끼에 대해 아주 흥미가 있어 줄곧 인생의 참 뜻을 찾고 있었다. 생활에서 연로한 부모, 어린아이들은 달마다 모두 약을 먹으므로 경제적 부담이 컸고, 게다가 사람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있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사이에 서로 기만하고 있다. 이런 고민에서 나는 하나의 문제를 생각하였다. 즉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 이리도 고달픈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밥을 먹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는 것이 절 때 다만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예전에 그렇게도 존중하던 일부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을 보고 “거짓이”없는 곳이 없다고 느꼈으며 마음은 아주 슬펐다. 역사의 선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는가? 무엇 때문에 역사에 이런 정직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 있을 수 있었는가?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차례의 생사 이별을 겪은 후 나는 生命에 대해 더욱 희미하다고 느꼈다. 7년 전 나의 친구는 화재로 그렇게도 사랑하던 남편과 아이를 남기고 우리를 떠났다. 인생은 평범하지 않으며 生命은 이렇게도 연약한가? 주역(周易), 팔괴(八卦), 무당들을 나는 다 만났으나 그들은 참으로 모르며, 돈을 버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공에 대해 이렇게 인식하였다. 즉 기공(氣功)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병원을 해서 무엇하랴? 97년에 우연하게《전법륜》을 보았다. 그 때부터 몇 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사부님의 한 마디 말씀 “인류가 약속할 심법(心法)이 없다”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사부님의 사진을 볼 때 낯설지 않았고 도리어 예전에 낯익은 것 같았으며 《전법륜》책에서 손을 떼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나는 자기에게 행복을 축원하였으며 얻기 힘든 한 권의 책을 얻었으며 속으로 나는 묵묵히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 갈 것을 다짐하였다.

매번마다 법 공부를 통하여 무엇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하나의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되어야 하며, 어떻게 대법의 가르침에 따라 집사람, 친구, 동료 및 사업을 대할 것인가를 점차적으로 알게되었으며 신체는 가벼워 졌으며 마음속 쓰레기는 점차적으로 없어졌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법 공부 팀과 연공장소를 찾은 두 달후 “4.25”평화적인 청원 사건이 발생하였다.

99년 4월말 원래의 연공장소가 당국에 의해 금지되었다(후에야 “4,25”와 천진(天津)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6월15일 전후로 이 지역의 신문에 《인민일보》의 소식에 의하면 국회사무실, 민원사무실에서 법륜공에 대해 청원하러 간 사람들에게 답하기를 연공에 대해 반대와 압제 등을 한적 없다고 보도하였다. 나의 상사는 기뻐하면서 “이젠 되었어요. 퇴직 후 나도 수련하겠어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의연공 장소는 전과 다름없이 비합법적으로 금지되어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단체로 연공을 견지하였다.(약 20명이었다.). 여러분은 모두 정부에서 확실히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집정자들은 마땅히 기뻐하여야 된다! 그런데 7.20일에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하루밤사이에 좋은 사람이 죄수로 되었으며 옳고그름(是非)과 흑백(黑白)이 모두 뒤집혔고 산천이 울부짖고 있었으며, 중화(中華)가 재화(災禍)를 입고 있으며, 많은 재난이 있는 祖國에는 또 한 차례의 정치 투쟁이 시작되었다. 유독 이번은 방대한 국가 기구에서 큰 몽둥이를 휘둘러 때려도 맞다들어 때리지 않고 욕하여도 댓구하지 않고 眞, 善, 忍을 신봉하는 많은 인민을 때리었다. 하루밤 사이에 나는, 조용히 연공하여 신체를 건강히 하는 하나의 일반 시민이 억울하게 惡名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몰라하였다. 나는 책에서 그들이 말한 소위 증거를 하나 하나 찾았으나 어디에도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말라, 살인하라, 배를 가르라는 것이 없었다. 사부님의 책에서 수련자는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이야기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한 행위는 본질상에서 대법은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대법을 모함 할 수 있는가? 나의 사부님은 1억이 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체와 마음의 정화를 얻게 하였는데 어떻게 정부는 그를 모함할 수 있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것이 틀렸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와 기타의 수련자는 같이 정부에 편지를 써서 연공전후 나의 신체의 변화를 성명(聲明)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탄압은 갈수록 심해졌으며 죄는 갈수록 컸으며 박해는 갈수록 엄중하였으며 거짓말, 모함과 날조는 갈수록 터무니없고 맞지 않았으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나는 다시 침묵을 지킬 수 있는가? 세인에게 법륜공의 진상을 알릴 책임이 없는가? 나는 수천 수만 명의 수익자(受益者)중의 한사람이다!

“7.20”이후 한 차례 한차례 수련생들은 나라의 미래와 인류의 희망을 위해 북경에 가서 진실한 말을 했으며 정부에 청원하고 충분한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결국에 그들은 매를 맞았고 잡혀서 되돌아오게 되었고 벌금을 받았으며 노동 교양을 받았고 판결을 받았으며 심지어 박해로 죽기도 하였다. 그 뒤로도 많은 수련자들은 북경 천안문 광장에 갔었다. 그들은 평화적 청원의 길에 들어서 대법과 사부님을 위해 억울함을 외쳤고 두 손으로 眞, 善, 忍의 현수막을 높아 들고 하늘을 진동하게 “法輪大法好” 를 높이 외치었다. 나는 줄곧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나의 사부님은 거짓말에 의해 악독한 공격을 받고 있고 수련생들이 한마디의 진실한 말을 위해 보귀(寶貴)한 목숨까지 바쳤는데 내가 또 말하지 않는다면 사악을 용인하는 것이 아닌가? 선량한 사람에 대한 범죄가 아닌가? 나는 길을 일은 아이와도 같이 마음이 급하였고 아팠다. 나는 수련자들의 도움으로 정법의 길에 들어서서 세인에게”法輪大法好”라는 참된 말을 하였다. 세상을 기만하는 거짓말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와 곁에 있는 수련자들은 노력하여 사업하였다. 한번은 진상을 밝힐 때 비합법적으로 잡혀 노동교육을 1년이나 받았다.

교도소에 근 20일 있는 기간에 나는 나의 부족한(差異)점을 알게 되었고, 정법 수련에 대해 더욱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으며, 대법을 증실 함에 있어서 대법은 진실하고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느꼈으며 속인의 언어로 똑똑하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감방의 범인은 대법제자와의 오랜 접촉에서 많은 불량 행위를 버렸다. 심지어 일부는 대법제자를 도와 대법제자와 같이 법 공부를 하고 연공 하였다. 일부는 출옥 뒤 꼭 연공하고 법 공부를 하여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다. 무슨 힘이 살인 범죄자로 하여금 마땅히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는가? 그것은 대법의 힘이며 眞, 善, 忍이다. 누구의 힘이 극단으로 이기적인 절도범과 성 매매하는 범죄자로 하여 다시 사람으로 되는 길을 찾게 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자비와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사부님이다.
퇴직한 노 교사 한 분이 교도소에 잡혀 들어와 있었다. 이 교사는 2000년 12월에 북경에 청원하려 가는 도중에 비합법으로 붙잡혔던 것이다. 권력자들은 불량배의 수법으로 존경하는 사부님의 초상(肖像)과 사진을 출입구에 놓고 행인들로 하여금 딛고 지나가거나 찢거나 욕하게 하였다.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법륜공 수련인으로 여기고 잡아갔으며 세인을 억압하여 나쁜 짓을 하게 하였다. 그는 교도소에 들어 온지 5개월이 되었다. 선달 그믐밤에도 교도소에서 지냈는데 안면도 없는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이 때리고 욕하여 얼굴에 허물을 남기었다.(자초지종에 의햐면 경찰의 감시에서 진행되었다.) 하루는 감옥소장이, 모 시장이 교도소를 시찰하니 여러분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연습”할 때 나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 교사는 “法輪大法好”라고 높이 외치었다. 소장은 노기 등등하면서” 누가 외쳤는가 한 발 나서라”라고 말하였다. 교사는 미소를 띠고 앞에 나섰다. 이 한 발작은 어이 한 걸음이겠는가. 이 한 걸음이 나의 마음에는 아주 멀고 아주 무거웠다. 이 한마디로 교사는 판결을 받고 노동 교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악의 말이 소용없었다. 우리들이 노동 교양소에 압송되던 날 아침에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후에 들으니 그는 7월에 단식(絶食)하여 교도소에서 나갔다 하였다.
교도소에서 나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사람을 해치는 악당인 경찰에 대해 일정한 인식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 사람은 그래도 선량한 마음이 있어 마음에서 우러나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법시기에 만약 자기의 위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천만번의 유감이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은 자기가 가야한다. 사람 자기의 一念이 자기의 미래를 결정한다.”(《다시 미신을 논함》). 교도소에 들어온 첫날밤에 감방장이”내가 보니 당신이 법륜공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법륜공을 연마하여야 웃으면서 교도소에 들어온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수련생들이 좋은 환경을 개시하였고 그 많은 세인이 대법을 정확히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던 날 경찰서에서 두 분이 와서 나를 비합법적으로 신문하였다. 다른 분이 나간 뒤 그중 한 분이 나간 뒤 “나도 연공하면 좋은 것을 알아요. 나의 옆집 할머니도 연공한 뒤 신체가 좋아 졌어요. 당신이 지금 다만 연공하지 않고 북경에 가지 않고 청원하지 않겠다면 당신을 놓아 보내겠으니 집에 돌아가서 남 몰래 연공하세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만약 살인범이 당신하고 나는 다시 살인하지 않겠다고 보증하면 당신이 놓아줄 수 있어요?”라고 하니 그는”이는 서로 다른 것이 예요.”라고 하였다. “그래요. 이것이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신앙은 자유예요. 이는 헌법에 명백히 규정한 것이에요. 하물며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해요.” 그는 “나라에서 연공하지 말라면 연공하지 말지요. 당신의 아이는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하였다. 나는”나라를 말하니 나라는 당신, 나, 그의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한 사람이 나라 헌법과 법률을 과용하면 그는 나라를 대표할 수 있어요? 당신도 나라의 한 분자이며 나 역시 그러해요. 그 사람이 우리의 소원을 대표할 수 있어요? 나는 줄곧 생각하는데 누가 진정한 애국자예요? 조국이 나의 힘을 받칠 것을 요구할 때 내가 무엇을 했어요? 나의 아이는 어릴적부터 우리들은 그가 거짓 말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여 나라를 기만하고 아이를 기만할 수 있어요? 내가 만약 아이를 기만하였다면 장래에 내가 또 어떻게 그를 대하겠어요? 그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책임져야 하죠”라고 하니 그는 다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기록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이야기하여 준 것은 내가 법을 얻은 후 자신이 많은 수익을 받은 사실을 말하여 주었으며, 나는 그가 믿고 있다는 것을 보아 낼 수 있었다. 노동 교양소로 가기 전날 오후 가족은 여러 경로를 거쳐 겨우 면회하게 되었다.(상사, 동료, 친구들이 여러번 면회하려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다) 남편은 내가 그를 떠난지 10여일 동안에 야위었다. 나를 보자 그는 황급히 나를 데리고 한 심문실로 가서 두 무릎을 꿇고 내가 사악과 협상 후 집으로 돌아 갈 것을 희망하였다. 나의 친오빠는 나의 두 어깨를 흔들면서 나를 때리려하나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은 내가 수련하여 붙잡힌데 있었고 그들은 내가 사회 정황이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모습을 보고 나의 마음은 괴롭고 또 급하였고 또 원망스러웠다. 원망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때 사악의 편에 서서 나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고 그들이 대법이 나와 가족들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 수익(受益)을 준 것을 잊은 것이다. 급한 것은 그들이 아주 위험한 한 갈래의 길을 선택한 것이며 내가 어떻게 그들이 알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남편과 오빠는 나를 대신하여 “각서를 쓰려 하였다. 나는 절대 식구들이 기만 되게 할 수 없으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들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한 生命이 일단 대법을 이탈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주동이던 피동이던 모두 좋지 않으므로 나는 그들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무엇을 써도 나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당신들이 쓴 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이때 “610”의 왕가라는 한 분이 와서 “그가 직접 쓰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아요.”라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시름을 놓았다. 나는 반드시 정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래야 우리의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으며 生命은 오직 사부님과 대법이야말로 구할 수 있다. “610”의 사람은 몇 번씩 들어와 상황이 어떠하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면서 나와 같이 들어온 기타 세 명도 이미 “각서”를 썻다 하고는 몇 장의 종이를 나의 눈앞에서 몇 번 흔들었다. 나는 “한사람이 남았다 하여도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사람이 바로 나예요.” 라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 시각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 되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으며 사부님의 제자로 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다고 느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생각만 있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를 대법에서 이탈하고 사부님을 배반하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다. 오빠는 부친에게 전화 통화를 하였다. 부친은 목이 쉰 소리로 “네가 집으로 돌아 오라”라고 말하니 나는 울면서 부친에게 “아버지께서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하세요. 우리는 대법의 수익을 받으므로 내가 어떻게 양심을 버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마지막에 부친은”그럼 너 자신이 결정지어라! 너의 아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너의 아들을 나 여기에 데리고 와서 나와 너의 어머니가 돌보아 줄까.” 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 일은 그의 아버지가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의 견해를 들은 후 부친과의 전화 통화를 마치었다. 그 후 줄곧 비합법적인 노동 교양을 마칠 때까지 부모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언니는 전화에서 울면서 “동생아, 어머님은 몇 일 동안 밥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아 일어나지 못하며 아버지도 늘 울고 있어요.”라고 말하니 당시 나의 얼굴에는 눈물뿐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참말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드는가?
무엇 때문에 참말을 하여 혈육과 이별을 해야 하고 아내와 자식이 흩어져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떳떳하게 대하여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은 남 몰래 아들이 나에게 쓴 편지를 주었다. 편지 내용은 대략 과학을 믿으라는 등이다. 나는 이것이 아들의 마음속의 말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협박에 쓴 것이라는 것을 안다.(후에 확인 하니 아들의 祖父의 뜻에 의해 쓴 것이었다) 기실은 佛法이”가장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이다.….(《논어》)나의 아들의 몸은 아주 나쁘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뒤부터 나의 부모와 아들은 약을 먹어 본적 없었다. 아들은 직접 사부님께 가부좌를 하는 것을 배웠고 대법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악독한 거짓말에서 나의 부모와 아들은 이용당하여 나를 협박하였다. 당시 나는 슬퍼서 울었다. 우리들의 몇 몇 수련자들도 가족과 친구들이 몰려와서 권하거나 욕하고 떠들썩하고 경찰서의 협박으로 유혹하는 등의 소리들이 귀속에 가득 차게 하면서 온 교도소의 신문실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나는 분노와 눈물을 가지고 감방에 와서 안정을 찾은 뒤 한 범인과 내가 운 것이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가 하고 물어보니 그는 “당신이 참지(忍) 못하였겠지요” 한 부 감옥장이 나를 비방하면서 “당신이 남편과 아이를 요구하지 않고 대법을 요구하니 정말로 이기적입니다” 세인은 만약 존경하는 사부님과 대법의 홍전 및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지 않았다면, 나의 생명이 이미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

내가 남편과 아이를 요구하지 않으려는가? 나는 법을 얻은 후 예전보다 더욱 친인. 동료, 친구, 환자를 잘 대하고 있는데 분명히 권력자들이 공민의 합법적 권익을 침범한 것인데 도리어 죄를 뒤집어 씌우는가? 나는 “내가 그들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법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법률을 짓밟고 있으며, 나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권익을 박탈하였어요”라고 말하였다. 한 경찰은 나의 직장동료를 안다. 그는 “듣건데 당신이 일을 잘하고 늘 퀴즈에 참석하여 아주 똑똑한데 어째서 이렇게 어리석어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기를 “대법을 배우는 사람은 성실하지 어리석지 않아요” 일부는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 대한 논평은 능력있는 직원을 능가한다. 그리고 그 논평을 보면 당신은 마땅히 능력있는 직원이에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나는 다만 대법의 요구에 따라 차분하게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사업을 잘 하였을 뿐이에요” 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간 첫날밤에 부 간수장이 특별히 우리를 보러와서 누가 어떻게 대답하는가를 보자고 말하였다. 한 경찰은 나를 설득하면서 “당신들이 붙인 표어가 무슨 소용있어요. 이른 새벽에 떼어 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해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니에요. 적어도 떼어내는 사람이 보았는데 당신이 알아요. 한 사람이라도 대법에 저촉(抵觸)되는 마음을 없애고 대법을 반대하지 않고 구원된다면 나는 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수련인을 형사 범죄자와 같이 대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비합법적 심문을 받았을 때, 펑(馮)씨 성의 경찰이 “당신이 대법이 좋다고 하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이 할복(割腹)하고 어떤 사람이 우물속에 뛰어들어, 천 사백여명이 죽었는가?” 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반문하기를 “무엇 때문에 탄압전에는 없었고 이지역의 몇 천명의 수련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하나도 없어요? 도리어 내가 아는 것은 자궁암에 걸린 사람의 암덩어리가 자체로 흘러 나왔고, 이비(耳鼻)의 종양이 자체로 흘러 나왔으며, 변성 풍습성관절로 뼈가 굳어버린 사람이 사업할 능력과 자립할 능력이 회복되었어요. 그런데 이 천 4백 여명의 예가 날조한 것인지 아닌지도 말하지 않으며 그 수가 2억이 넘는 사람과의 비례가 어떠한가를 말하지 않아요? 그래 병원에서 사람이 죽지 않아요? 입원하면 사람이 죽지 않아요? 공법을 배운 일부사람이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많은 수익자(受益者)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한다면 좋은가요? 이렇게 추리한다면 한 교사가 한 학급의 학생을 가르칠 때 제일 열등한 학생의 수준으로 그 교사를 평가한다면 합리적인가요?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더러 하라는 요구를 그들이 하였나요? 만약 학생이 문제가 생겼다면 마땅히 학교를 비판하고 교과서를 비판하며 교사를 비판하면 합리한가요? 합리하지 않아요. 그럼 무엇 때문에 억압으로 우리의 머리에 덥어 씌워요? 우리가 한 것이 아님이 확실하면 죄를 들 씌운것인데도, 우리들이 진상을 밝히려해도 안되고, 청원하여도 안되며, 천안문에 가도 안되므로 다른 대책이 없기에 표어를 써서 말을 하게 되어 나는 여기에 왔어요. 헌법의 존엄은요? 공민의 권리는요?” 파출소의 한 젊은 경찰이 명령을 받고 나를 “설득”하러 왔었다. 나는 그가 진상을 알아야 하고 법륜대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선량해지게 하며 정법이라는 것을 알기를 희망하였다. 마지막에 그가 말하기를 “당신은 ‘류호란(인명:50년대 열성공산당원)’이에요” 나의 마음은 슬펐다. 그는 나의 동생과도 같았다.
나는 한탄을 하며 그에게 “내가 진실로 희망하건데 당신이 “염석산(공산당의 반대당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일부 경찰의 말에는 늘 “류호란”. “강매(인명:열성공산당원이름)”로 확고한 수련자를 평가할뿐더러 자기도 모르게 그들은 정의를 진압하는 “염석산””사재동의 간첩”이라 인정하였다.
5월1일 두 수련자는 성공적으로 감옥을 나갔으면 유력하게 사악이 무서워 떨게 하였다.

어느 하루는 우리들이 단체로 법공부를 할 때 존경하는 사부님의 가운데 “그러나 나는 만일 수련생들이 가서 감당한다면 걸어 나오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수련생들에게 다만 사람이 표현된 사악을 감당하게끔 하였고 이 실질적인 것을 내가 그것을 감당하였다. 여기에 당신들 사부가 어떻게 대단한 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며 이 뜻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이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곳을 읽을 때마다 나는 늘 눈물을 참을 수 없고, 흐느껴 우는 것이 마음속의 많은 말이 있는 것과도 같았으며, 존경하는 사부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 내가 영원히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며, 사부님은 정말 자비로웠으며 동수들도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성문 : 2002. 11. 19

문장분류 : 호법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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