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한 수련생이 대법을 단호히 수련하고 사부님을 단호히 믿어 2년 9개월 간의 감옥생활을 겪으면서 단식항의 2개월만에 끝내 정정당당하게 노동개조소를 나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근 3년간의 사악한 박해 속에서 이 수련생은 사악을 향하여 한번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아니다(不)”란 말을 하지 않았으며 “보증”이란 글자를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바침과 감당으로써 그의 사전(史前)의 서약을 실현하였다. 나는 이렇게 좋은 동수 때문에 자호감(自豪感)을 느꼈다.
처음 이 수련생을 만난 것은 1999년 3월 천여 명의 법회에서였다. 그의 수련체험은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으니 견정하게 수련함으로써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였는데,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그는 그 지역의 첫째가는 깡패였다. 심지어 경찰을 구타하여 3번이나 형사구류 되기도 하였다. 언젠가 한 차례 우연한 기회에 그는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는데 막 첫 번 째 강의를 보고서 그는 그의 아내에게, ‘나는 법륜공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될 것이오. 이는 큰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어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그후부터 그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향하여 일심으로 대법을 수련하였다.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딸들도 모두 대법을 수련하였다. 곧 흩어지게 될지도 모를 가정이 그후부터 화목하고 행복해졌다.
그러나 1999년 대법이 무단한 비방을 받고 사부님께서 악인에 의해 공격을 당하였다. 7·20 이후 그는 전 가족이 생존을 의탁하고 있으며 또한 장사가 잘 되어가는 도자기점을 양도하고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북경에 가서 호법하였다. 길을 떠나기 전에 그는 집의 열쇠를 두면서, “법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말하였다. 하여 그 지역의 공안은 그들 세 사람을 수배하였다. 북경의 각 여관에는 모두 그들의 사진이 붙어서 그들은 할 수 없이 북경 부근의 산에서 지냈다. 1999년 10월 28일 천안문 광장에서 연공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그 지역의 구류소에서 그는 단식으로 인해 소호(小號)에 갇혔다. 아울러 “대판(大板)”(손과 발을 침대에 묶는 것)을 하고 30여일 있었다. 소호에서 그는 큰 소리로 사부님의 경문 >를 외웠는데 옆 감옥방의 동수들이 듣고서 따라서 외웠다. 50여 일 동안 그는 불법으로 노동개조를 당하였다.
노동개조소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보증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관은 그에게 매일 20시간의 일을 하는 벌을 주었다. 이 한 가지 방법이 소용없게 되자, 교관은 또 범인으로 하여금 그를 때리게 하였다. 한 범인이 나무판으로 그의 엉덩이를 때려 모두 붓게 하였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얻어맞을 때 마음속으로 참는 것이 아주 평온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클 때까지 모두 내가 다른 사람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연마하여 10여 명이 나 한 사람을 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한 수척한 젊은이가 나를 때리는데, 나는 도리어 맞대응을 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확실히 억울하게 참았습니다.” 그가 곳곳마다 대법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대법에 견정히 하며 사악에게 굴하지 않음으로써 얼마 되지 않아 범인들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탄복하였다. 그를 때린 그 범인은 줄곧 그에게 사과를 하였다. “형님, 저를 탓하지 마세요, 저도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았거든요.”
어느 한 명절 연환회(聯歡會)에서 대장은 그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그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 후,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법륜공 제3조 공법을 하였다. 그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저는 정법제자이며 저는 대법을 수호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 이 마음을 제거시킬 요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후에 어떤 사람은 집착과 두려운 마음으로 인하여 보증을 썼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음이 반석과 같았다. 경찰은 그가 기타 대법수련생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그를 항상 대법제자들과 갈라 놓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사부님의 법을 볼 수 없었던 바, 어떤 때에는 마음속으로 파동이 나타날 때 그는 경문 >, >, >와 >등을 외워 즉시 마음상태를 교정하였다. 어떤 때에는 사부님께서 꿈속에서 그에게 점화해 주셨다. 예컨대, ‘장기간 그의 아내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아내가 이번 사악한 박해 속에서 수련을 포기할까봐 아주 걱정하였다. 꿈속에서 그는 그와 아내가 각자 지프차 한 대씩을 몰고 달리는 것을 보았다. 아울러 아내는 그보다 더욱 빨리 달리고 있었다’ 등이다. 깨어난 후 그는 사부님께서 그에게 걱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알려주신 것이라고 깨달았다.
어느 한번 교관은 그로 하여금 배신자가 쓴 자료를 읽게 하였다. 그는, “나는 이런 더러운 것을 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교관이 그를 위협하자, 그가 말했다. “당신들은 사람을 너무 심하게 핍박하지 말라.” 교관은 그에게 어쩔 방법이 없자 할 수 없이 내버려두게 되었다.
어느 날 몇 명의 배신자가 그를 세뇌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들은 제각기 한바탕 함부로 지껄였다. 나중에 끝내 그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바로 당신들처럼 이렇게 고험 앞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대법을 배신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사악으로 하여금 더욱 발광하게 하며 박해가 갈수록 깊어지게 한다. 나는 한사코 대법을 단호히 수련하다가 죽을 것이며, 또 뛰쳐나와 대법을 파괴함으로써 형신전멸(形身全滅)할 마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후에 그는 고양(高陽) 노동개조소로 보내졌다. 노동개조소의 노동장 모포공장에서는 매일 최소한 12시간에서 15시간씩의 일을 시키며 수시로 밥을 배부르게 먹지 못한다. 강제로 그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교관은 예전에 두 번이나 수갑을 바닥에 묶어 채웠다. 첫 번 째는 10여 일이었고 두 번째는 한 달 간이었다. 낮에는 파리가 몸에서 기어다녔고 저녁에는 모기가 물었다. 또 전기충격기의 전기충격을 감수해야 했다. 어떠한 고문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그의 대법에 견정한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하였다.
언젠가 한 번 그는 동수에게 경문을 전하다가 교관에게 발각되었다. 교관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에서 경문을 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가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경문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았다. 나의 동수에게 주었다.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경문을 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그의 마음이 바르기 때문에 이 일 역시 없던 일이 되었다.
일부 보증을 쓴 사람은 그의 영향하에 보증을 철회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 모두 암암리에 그를 위하여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는 한번 또 한번 노동개조소의 사악을 폭로하였다.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 밖에 받지 못하였다. 그는 가족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며 나는 대법에게서 이익을 얻었다. 내가 수련하고 있는 대법이 모함을 받고 있을 때 나의 사부님이 사람에게 모욕을 당할 때 내가 일어나서 한마디 공정한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하루를 사부님으로 모셔도 한평생 부친으로 사부님으로 모신다. 사부님은 마치 자신의 부친과 같다. 나의 부친이 사람에게 능욕을 당할 때 내가 개인의 안일함을 위하여 따라서 그를 욕한단 말인가? 이러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세리(勢利)의 소인이라고 욕먹는 것이 아닌가? 천하의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감히 진리를 견지하고 정정당당하며 하늘과 땅을 떠받치고 선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를 견지하기 위하여 나는 도리어 여기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하며 노동개조소에서 나는 매맞고 욕먹고 굶주리고 전기충격기에 전기충격 당하며 하루에 12시간에서 20시간의 일을 하며 갖은 고난을 당하였다. 이렇다 할지라도 나 역시 양심을 팔지 않을 것이고 사부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위선의 군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서 죽더라도 절대 꿇어앉아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기적이어서 집을 마다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자가 너무 잔혹무도하기 때문이다.”
사악한 박해에 항의하기 위하여 그는 단식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교관은 하루에 그에게 한번 음식물을 주입시켰고 후에는 하루에 두 번 주입시켰다. 2개월 후 사악한 세력은 그가 정말로 아주 허약한 것을 보고 더 이상 주입시키지 않고 할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보냈다.
출옥한 후 그는 친구 집에서, 공공버스에서 사람들에게 그가 노동개조소에서 겪은 일체를 이야기하였다.
나는 사부님에게 이러한 제자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는 이렇게 좋은 수련생이 있음으로 자호감(自豪感)을 느꼈다. 만약 매 대법제자마다 모두 이 동수처럼 생사를 내려놓고 대법을 단호히 하고 마난을 겪고 의지를 잃지도 옮기지도 않는다면 법정인간의 시기가 또 멀단 말인가? 아직도 아주 많은 단호한 동수들이 여전히 극히 간고한 환경 속에서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당하고 있을 때, 나는 아직도 수많은 수련생들이 여전히 사람에서 걸어나오지 못하고 자신이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구도의 사명을 수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자신이 짊어진 책임이 더욱 중하고 더욱 큰 것을 느꼈다. 이 동수의 견강한 의지와 대법에 대한 사부님에 대한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정신(正信)은 깊이깊이 나를 감동시켰으며 또 나로 하여금 더욱 정진하도록 격려하였다.
발표일자 : 2002년 7월 19일
문장분류 : 護法歷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