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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수련자 두자오차이가 산둥성 감옥 11감구에서 당한 박해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자오저우시 파룬궁수련자 두자오차이(杜兆財)는 50대 남성으로 2018년 자오저우시 자오라이 파출소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다. 2020년 7월 5일 산둥성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기 시작했으며, 8월 7일에는 11감구(監區)로 강제 이송돼 구타, 작은 의자에 앉히기, 구속띠 채우기, 작은 어두운 방에 가두기, ‘눈 부릅뜨고 서있기’, 물 마시기와 화장실 가기 제한 등 각종 고문을 당했다.

11감구는 두자오차이에게 강제 ‘전향’을 강요했다. 살인범 루궈바오(鹿國保) 등은 매일 두자오차이에게 소위 ‘면담’(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악한 언어로 공격해 사람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매우 괴롭게 만드는 것)를 진행하고, 대법(大法,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했다. 아침 6시에 기상하고, 낮에는 수면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밤에는 11시에서 12시까지 매일 작은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9월 중순, 왕촨쑹(王傳松) 감구장이 11감구로 전입됐다. 그는 잔인하고 냉혹하며 잔혹한 고문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사기범 우진다(吳金大)에게 “그들이 고통을 모르면 어떻게 전향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며 고문실을 깨끗이 청소하도록 지시했다. 10월 5일 오후, 두자오차이는 살인범 쑨유다(孫友達), 마약범 쉬차오(徐超), 직무범 우커쥔(吳可軍)에 의해 1층 고문실로 끌려갔다. 경찰관 천숴(陳爍, 현 11감구 부감구장)의 지시로 세 범죄자들은 두자오차이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이 세 명의 범죄자들은 잔인하고 경험이 많았다. 쑨유다는 말했다. “여기 감시 카메라는 작동하지 않아. 네게 어떻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나는 널 괴롭힐 만 가지 방법이 있지.” 그는 목재 의자를 가져와 두자오차이에게 강제로 구속띠를 채우고 의자에 앉힌 뒤 가슴 앞의 팽창 나사를 조였다. 두자오차이가 협조하지 않자 신장 191cm에 체중 100kg이 넘는 권투 경험이 있는 쑨유다는 주먹으로 두자오차이의 허리를 강타했다. 이어 두자오차이의 두 팔을 의자 등받이에 묶고 겨드랑이를 의자 등받이의 두 모서리에 끼워 고정했는데, 팔은 곧 마비되어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 후 두자오차이의 두 종아리를 뒤로 접어서 의자 다리에 묶었다. 이렇게 두자오차이는 의자에 단단히 고정됐다. 쑨유다는 담배에 불을 붙여 두자오차이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고, 쉬차오와 우커쥔은 그의 팔을 꼬집었다. 한참 후 쑨유다는 “거의 30분 됐으니 일단 풀어주자”라고 말했고, 그들은 두자오차이를 풀어준 후 천숴 경찰관을 불러들였다.

천숴는 두자오차이에게 노려보며 화를 내다가 마지막으로 ‘5서’(5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쓸 것인지 물었고, 두자오차이가 거부하자 천숴는 잔인하게 “계속해!”라고 말하고 고문실을 떠났다. 쑨유다 등 세 사람은 다시 두자오차이에게 구속띠를 채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구속을 완료한 후, 이번에는 의자의 앞다리를 들어 올리고 뒷다리만 바닥에 닿게 하여 두자오차이의 몸을 평평하게 하고 얼굴을 위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이마에 밧줄을 눌러 양쪽 끝을 물체에 묶어 머리를 들어올릴 수 없게 했다. 약 1시간 후, 두자오차이의 목뼈는 완전히 견딜 수 없게 되어 결국 ‘5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中共酷刑示意图:约束带捆绑
중공 고문 예시도: 구속띠 결박

이후, 그들은 계속해서 두자오차이에게 강제 ‘전향’을 진행하며 불교 영상과 불교 서적을 보도록 강요했다. 이렇게 2개월을 지속한 후 노동에 참여하도록 명령했다. 원래 건장했던 두자오차이의 몸은 장기간 고문 후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고, 1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려면 4번이나 쉬어야 했다.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그가 언제든 사망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두자오차이에게 책 운반과 같은 무거운 일을 더 이상 맡기지 않았다.

왕촨쑹이 감독 질서를 위반하고 엄격한 통제를 실시한 결과, 2021년 4월 청명절 전후로 범죄자 왕싱창(王興强)이 견디지 못하고 목매어 자살했으며, 칭다오 파룬궁수련자 궁피치(龔丕啓)가 박해로 사망했다. 두 사람의 사망 시간은 1주일 정도 차이였다. 7월 5일 감옥은 11감구와 14감구의 위치를 서로 바꾸게 했다.

새 감구로 이동한 후 7월 10일, 두자오차이는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계속 ‘면담’을 해야 했다. 이유는 노동 현장에서 다른 파룬궁수련자들과 교류했고, 평소 ‘사상 보고서’와 ‘사상 인정서’ 등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두자오차이는 매일 스웨이(史偉), 왕구이퇀(王貴團), 천성성(陳生生) 등 범죄자들에게 심야까지 ‘면담’을 당했는데, 가장 늦게는 새벽 2시 30분까지 이어졌고 낮에도 진행됐다.

10일 후, 그들은 두자오차이를 6층 고도경계구역으로 보냈다. 그는 15제곱미터도 안 되는 작은 어두운 방에서 식사와 용변을 해야 했고, 범죄자 장광웨이(張光衛)가 함께 거주하며 감시했다. 두자오차이는 고도경계구역에 수용된 첫 번째 파룬궁수련자였다.

고도경계구역은 중범죄자를 수감하는 곳으로, 각 감방은 금치실이었다. 안에는 몇 개의 밝은 전등이 있고 창문은 작았으며 벽면은 쿠션으로 덮여 있었다. 이 기간 범죄자 왕구이퇀은 자주 두자오차이의 가족과 대법 사부님의 가족을 모욕했고, 그의 앞에서 대법 서적과 사부님의 사진을 밟았다. 범죄자 우진다와 쑨유다는 고문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범죄자 왕구이퇀과 천성성은 두자오차이 앞에서 왕촨쑹 감구장에게 두자오차이에게 약간의 수단(고문)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 벌서기를 시켰는데 아침부터 밤 11시나 12시까지 서있어야 했다. 이 기간 동안 두자오차이의 얼굴색은 어두워졌고, 혈압이 매우 높았으며, 심장과 위장이 매우 불편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우진다는 크게 소리쳤다. “왕촨쑹 감구장이 말했다. 오늘 밤부터 두자오차이를 사흘 동안 밤낮으로 서있게 하고, 그 다음에 쑨유다에게 넘겨서 파룬궁을 비판하는 글을 쓰게 하라. 진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리고 곧 당직자들을 배치했다.

첫 번째 교대에서 두자오차이는 잠시 서 있다가 몸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당직자는 범죄자 위생원 리원다(李文達)를 불러 두자오차이의 혈압을 측정하게 했다. 리원다는 왕구이퇀을 방 밖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그에게 혈압 강하제를 먹이고, 한 시간마다 혈압을 측정하세요. 만약 비상 상황이 생기면 구심환을 한 번에 8알 먹이세요.” 잠시 후 우진다가 와서 더 이상 서 있지 않아도 된다며 벌을 해제했다.

10월 4일, 두자오차이는 엄정성명을 작성하여 강제로 쓴 ‘5서’는 무효라고 선언하고, 이 성명서를 왕촨쑹에게 제출했다.

보름 후, 왕촨쑹은 감구를 떠나 신장으로 갔는데 1년 동안 신장 지원을 간다고 했다. 감옥은 14감구장 량징다(梁敬達)를 11감구장으로 전보했다.

량징다가 부임한 후, 그는 14감구에서 자신이 양성했던 두 차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왕즈융(王志勇)도 11감구로 데려와 파룬궁수련자들을 대처하기 위한 규율조 소분대를 구성했다. 량징다는 ‘전향’하지 않은 모든 파룬궁수련자들을 6층 고도경계구역에 모두 집중시켰고,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게 해!”라고 외쳤다. 매일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했고, 밤에는 2시간 동안 ‘눈 부릅뜨고 서있기’를 해야 했으며, 목욕, 물품 구매,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를 제한하고 계란 등을 갈취했다.

2022년 설날, 량징다는 11감구의 모든 수감자와 파룬궁수련자들을 아래층으로 불러 혈기(血旗, 오서홍기나 공산당 당기)를 향해 손을 들고 죄를 인정하고 후회한다는 선서를 하도록 했다. 두자오차이, 왕량(王亮) 등 8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은 손을 들지 않아 박해를 당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왕량은 범죄자 왕즈융, 쑨유다, 구이커추(桂克秋), 리밍량(李明亮)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구타당했고, 이 과정에서 치아 하나가 부러졌다.

나중에, 두자오차이 등 10여 명의 수련자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자 량징다는 분주히 움직이며 직접 범죄자들을 지휘해 그들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중 70대 파룬궁수련자 왕중스(王忠實, 나중에 박해로 사망)는 들것에 실려 강제로 끌려갔으며, 허리띠까지 쑨유다에 의해 찢겨졌다.

2022년 11월, 팬데믹이 전면 발발하는 동안 두자오차이 등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은 5층으로 이송되어 식량과 필수품이 부족했고, 활동이 금지됐으며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2023년 새해 이후, 팬데믹이 끝나자 그들은 다시 6층 고도경계구역으로 이송됐다. 이 시기는 두자오차이 등 수련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아침에는 30분 일찍 일어나야 했고, 밤에는 30분 늦게 자야 했으며, 낮에는 쉬지 못했다. 작은 의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어야 했고, 밤에는 2시간 동안 ‘눈 부릅뜨고 서있기’를 해야 했다. 4월경, 두자오차이는 박해로 인해 오른쪽 얼굴 마비, 10여 일 이상 지속된 극심한 두통(신경성 두통), 입과 눈이 비뚤어지고 증상이 나타났다. 매번 침대에 누울 때마다 어지러웠고, 오른쪽 귀는 거의 평평해졌으며 왼쪽 귀보다 눈에 띄게 컸다. 또한 통증이 있었고, 청각이 없었으며, 걷기 어려워 직선으로 걷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자오차이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앉아 있었고, ‘눈 부릅뜨고 서있기’를 했다.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이런 박해는 6월까지 계속되어 4개월 동안 지속됐다. 두자오차이의 신체와 정신은 극한에 도달했다.

2023년 10월, 고도경계구역이 해체되자 두자오차이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일반 감방으로 이송됐다. 매일 앉아 있었지만 낮에는 쉴 수 있었고, 밤에는 더 이상 ‘눈 부릅뜨고 서있기’를 하지 않아도 됐으며, 계란도 다시 지급받았다. 장기간의 박해로 인해 두자오차이의 혈압은 계속 높았다. 이완기 혈압이 최대 130, 수축기 혈압은 200 이상이었다. 때로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은 심각한 손상을 입어 쇠약해졌다. 병원은 두자오차이에게 약을 복용하도록 요구했으나 두자오차이는 거부했다. 그러자 그에게 치료 거부 서명과 영상 녹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었다. 두자오차이는 “나는 박해를 받고 있으며 서명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경찰관 왕둥(王棟)이 그를 욕하자 두자오차이는 벽에 걸린 감독 조례 제1조를 가리키며 “보세요, 수감자의 인격은 모욕받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욕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왕둥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두자오차이를 비디오카메라로 찍게 했고, 치료를 거부하면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두자오차이는 호명 시 대답하지 않고, 번호를 보고하지 않으며, 혈기(血旗) 게양 시 일어서지 않아 악질 경찰 천숴의 위협을 받았고, 천숴는 그의 수련하는 가족들까지 위협했다. 천숴는 두자오차이를 위협한 후 계속 출근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세 발가락 뼈가 부러지는 골절을 당했고, 10일 후에야 지팡이를 짚고 출근했다. 악행에 대한 보응을 받은 것이다.

2024년 8월 8일, 두자오차이는 마귀굴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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