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칭다오시 파룬궁수련자 웨이춘룽(魏春榮·72·여)은 2024년 1월 지모시 법원에 의해 또다시 불법으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2024년 6월 지난(濟南) 감옥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박해받고 있다.
웨이춘룽 노인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것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 경찰에 납치되고 구금됐다. 그녀는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고, 세 차례 불법 판결을 받아 누적 10년이 넘는 억울한 형을 살았다. 웨이춘룽의 배우자와 딸도 그녀가 중공의 박해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대법을 얻어 새 삶을 찾다
웨이춘룽은 1953년 9월에 태어났으며, 원적은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화난현 사람으로 초등학교 2학년 학력이다. 그녀의 삶은 고통과 시련이 많았고, 특히 질병의 고통이 심했다. 그녀는 위염, 빈혈, 부인병, 담낭염, 심장병, 심각한 불면증과 신경쇠약 등 10여 가지 질병을 앓았으며, 오랫동안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링거를 꽂아 생명을 유지했다. 나중에는 담낭 부위 통증이 참을 수 없이 심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대량의 약을 복용했다. 이담제는 한 번에 4알인데 그녀는 8알을 먹었고, 수면제는 한 번에 1알인데 그녀는 3알을 먹었다. 링거병은 마당에 산처럼 쌓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바구니로 밖으로 나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녀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고 점점 악화됐다. 어쩔 수 없이 2003년 9월 자무쓰 제2병원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의사들은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봐 수술을 감행하지 못했다. 그녀가 거듭 애원한 끝에(“수술대에서 죽어도 여러분 탓하지 않을게요”) 겨우 수술에 동의했다. 수술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통증에 시달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의사들은 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신체가 너무 약해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그녀의 건강은 더욱 나빠져 온몸이 붓고, 얼굴은 코와 평평할 정도로 부었으며, 수혈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의사인 그녀의 둘째 고모부도 “춘룽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자살을 생각했고, 수면제로 자신의 생명을 끝내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자녀들을 위해 고통을 참고 견디기로 했다. 10여 년간 약값만 10여만 위안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고, 건강은 점점 악화됐으며, 매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생활했다.
2004년 말, 웨이춘룽은 문득 누군가 그녀에게 준 파룬궁 진상 소책자가 텔레비전 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살고자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이 소책자를 펼쳤는데, 그 안에 있는 질병 치료와 건강 회복, 죽음에서 소생한 작은 이야기들에 끌렸다. 그녀는 삶의 희망을 보았고, 살아가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한번 시도해 보자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찾아 파룬궁을 배웠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을 잘 수 있게 됐고,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점차 바닥에 내려와 밥을 할 수 있게 됐고, 밭일도 할 수 있게 됐으며, 심지어 산에 올라 땔감을 지고 내려올 수도 있게 됐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었던 병이 파룬궁 연공으로 나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경건하게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고, 마음을 수련하고, 선행을 베풀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원래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고, 남의 말을 듣지 않던 웨이춘룽은 온화하고 선량해졌으며, 계산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전례 없는 변화를 목격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을 고수하다 중공에 여러 차례 납치되고 구금당하다
웨이춘룽은 수련을 시작한 이후 약 한 알도 먹지 않았고, 주사도 한 번 맞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사심 없이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진상을 사람들과 나누었고,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중공의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하여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킬 때 선택의 기회를 갖기를 바랐다. 그러나 웨이춘룽은 중공의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2014년 12월 17일, 웨이춘룽은 화난 임업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돼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2005년 8월 9일, 웨이춘룽은 화난현 국보 경찰에게 납치되어 약 70일간 불법 구금됐다.
2007년 8월 17일, 웨이춘룽은 화난현 국보대대와 지역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이후 자무쓰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1년 6개월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2013년, 웨이춘룽은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아들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도왔다. 그녀는 쇼핑하거나 여가 시간에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는데, 중공 요원들에게 4차례 납치되고 구금됐다. 2013년 8월 27일, 웨이춘룽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칭다오시 청양구 정양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10일간 불법 구류됐다.
2015년 10월 25일, 웨이춘룽은 칭다오시 청양구의 한 군인 거주 단지에서 진상 CD를 배포하다가 한 군관의 악의적 신고로 칭다오시 청양구 정양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계속해서 지모 푸둥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으며, 2017년 1월 23일 청양구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상소했지만 칭다오시 중급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기각됐고, 2017년 5월 18일 웨이춘룽은 산둥성 여자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25일에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쳤다.
2018년 5월 4일 오전, 웨이춘룽은 칭다오시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정양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칭다오시 지모 푸둥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18년 12월 12일, 웨이춘룽은 칭다오 지모시 법원의 불법 재판을 받았고, 이후 3년 4개월 형을 불법으로 선고받았으며, 2019년 4월 18일 산둥성 여자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웨이춘룽은 2021년 8월 4일에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쳤다.
2023년 3월 2일, 당시 72세였던 웨이춘룽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삼퇴(중공 당, 단, 대 탈퇴)하면 평안하다고 알리다가 악의적 신고로 또다시 정양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칭다오시 지모 제2구치소에 구금됐다. 웨이춘룽은 한때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2024년 1월 11일, 웨이춘룽 노인은 지모시 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1만 위안의 벌금을 강탈당했다. 웨이춘룽은 즉시 상소했으나 중급법원에 의해 판결이 불법적으로 유지됐고, 2024년 6월 산둥 여자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고 있다.
배우자와 딸, 박해 압력 속에 비참하게 세상 떠나
웨이춘룽의 남편은 아내가 여러 차례 박해를 받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웨이춘룽이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는 동안 남편은 정신이 붕괴되고 뇌출혈이 발생했으며, 병원에서 2개월 넘게 입원한 끝에 겨우 살아났다. 그는 아내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정신적 압박이 너무 커서 1년 후 심장병이 재발해 심장 스텐트 4개를 시술받았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다. 자녀들은 모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복지원에 보냈고, 매월 7~8천 위안의 비용이 들었다. 노인의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살아서 아내 웨이춘룽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730여 일 밤낮으로 고통을 겪은 끝에 마침내 웨이춘룽이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치는 날을 맞이했다. 웨이춘룽은 남편을 복지원에서 집으로 데려왔다. 웨이춘룽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반년 만에 남편은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그러나 겨우 1년여가 지난 2018년 5월, 웨이춘룽은 다시 납치돼 3년 넘게 억울하게 판결을 받았다. 남편은 다시 복지원으로 보내졌다. 노인은 다시 한번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매일 울면서 고통스럽게 견디며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아내가 3년 넘는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치는 날이 왔다. 웨이춘룽은 남편을 다시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보살폈다. 이때 남편은 이미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었고 뼈만 앙상했으며, 유동식으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남편은 생명의 마지막 시간에 아내를 볼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고, 백일을 보낸 후 세상을 떠났다.
이 몇 년간, 웨이춘룽의 자녀들도 중공이 어머니를 박해하는 압력을 견디기 힘들어 심신이 지쳤다. 그녀의 큰딸은 2018년 가을, 정신적 압박이 너무 커서 뇌출혈 증세가 나타났으나 나중에 회복됐다.
2021년 9월, 웨이춘룽은 3년 넘는 억울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혼인 큰딸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어머니와 함께 의지하며 생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중공의 사악한 마수가 다시 한번 덮쳤고, 겨우 1년여가 지난 후 70대 어머니는 다시 박해를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여러 해 동안 줄곧 어머니의 처지를 걱정하며 두려워했던 큰딸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그녀는 정신이 붕괴되어 우울증에 걸렸다. 어머니가 지난 감옥으로 끌려간 지 두 달 후, 48세의 큰딸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잘 지내던 한 가정이 이렇게 중공의 박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게 됐다.
맺음말
명혜망 ‘어머니의 날에 어머니들의 비참한 경험을 이야기하다’ 글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중공의 모욕과 가혹한 고문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전례 없이 잔혹한 이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원한다. 지금도 구금되어 있는 어머니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하기를 기원한다.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중공 악마가 하루빨리 해체되고 멸망하기를 기원한다. 전 인류가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 어머니들에게 관심을 갖기를 기원한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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