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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지키다 박해받은 70세 전직 군 지휘관 사망, 아내와 부모에 이어 별세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자무쓰시에 거주하던 70세 남성이 파룬궁 수련으로 인해 수년간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를 견디다 2024년 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서화이중(佘懷忠)은 과거 베이다황 그룹(국영기업) 산하 젠싼장 지사의 치싱 농장에서 무장부대장으로 재직했다. 젠싼장과 그 산하 농장들은 행정구역상 자무스시에 속했으나, 자체 무장부대와 경찰, 검찰, 법원을 갖춘 독립적 운영체계를 유지했다.

서 씨는 1995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수련 포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2개월 만에 해고됐다. 이후 신념을 이유로 지속적인 괴롭힘과 납치를 당했다. 그는 2000년 1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두 차례 노동수용소에 수감됐고, 수용 기간 후에도 세뇌 교육을 위한 감금이 이어졌다.

서 씨의 부인 장서우펀도 파룬궁수련자로, 치싱 농장 제3중학교 교사였으나 수련을 이유로 해고됐다. 또한 4년 3개월간 감금됐으며, 첫 번째 감금 후에는 5천 위안을 강제로 빼앗겼고, 학교 측은 그녀가 재차 감금된 후 급여에서 5천 위안 이상을 삭감했다.

장 씨는 지속적인 박해로 건강이 악화돼 2017년 9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서 씨도 장기 감금과 극심한 학대로 인해 신체적으로 크게 쇠약해졌다. 2005년 석방된 후 집을 팔고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건강이 나빠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치싱 농장과 젠싼장 지사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2006년 치싱 농장이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했으나, 서 씨에게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서 씨 부부의 두 딸은 조부모에게 의지한 채 공포 속에서 자랐다. 특히 막내딸이 다니던 학교는 여러 학생을 동원해 그녀가 조부모와 지내는 집을 감시하게 했다. 큰딸은 치싱 농장 요원들의 지속적인 가택 내 괴롭힘을 견디다 결국 다른 성으로 이주해야 했다.

서 씨의 부모도 당국의 표적이 돼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어머니 바이추이핑은 이런 압박 속에 2018년 사망했다. 아버지 서젠차오는 치싱 농장 제2중학교 직원이었는데, 오랜 박해로 건강이 악화돼 2023년 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첫 번째 강제노동과 세뇌반 감금 (2000년 1월 27일 ~ 2001년 12월 25일)

2000년 1월 27일, 치싱 농장 부서기 추이웨이는 서 씨에게 파룬궁 수련 포기를 강요했다. 서 씨가 거부하자 치싱 농장 경찰서 유치장(치싱 유치장)에 감금했다. 당시 많은 지역 수련자들이 같은 유치장에 갇혀 밤에 누울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2000년 2월 초, 공안 왕쥔리와 주젠화는 서 씨의 손을 등 뒤로 수갑 채우고 눈을 가린 채 창예 농장 경찰서(젠싼장 지사 소속) 유치장으로 납치했다. 처음 이틀간 물과 음식도 주지 않았고, 3일째부터 간수는 하루 찐빵 1개만 지급했다. 일주일 후부터는 하루 찐빵 4개가 주어졌다. 감방에는 쥐가 들끓었고 변기도 없어 세숫대야를 대신 써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2000년 4월, 서 씨는 치싱 유치장으로 다시 이송됐고 그해 9월에 1년형을 선고받았다. 형기는 2000년 1월 27일부터 시작돼 2001년 1월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감금 기간은 2001년 7월까지 연장됐다.

석방 예정일이 되자 쑤이화 노동수용소 간수 가오 씨와 판 씨는 서 씨를 치싱 농장 610사무실 두목 리전뱌오와 치싱 농장 부서기 천린안에게 인계했다. 이들은 서 씨를 호텔에 감금하고 치싱 농장 26개 부서에서 선발된 직원들로 하여금 감시하게 했다. 26일 후 치싱 농장 경찰서는 서 씨를 농장 29조로 옮겨 8명의 직원이 계속 감시하게 했다. 2001년 9월, 서 씨는 다시 치싱 유치장으로 끌려가 2001년 12월 25일까지 감금됐다.

두 번째 강제노동과 세뇌반 감금 (2001년 12월 30일 ~ 2005년 4월)

서 씨는 2001년 12월 25일 치싱 유치장에서 풀려난 지 불과 5일 만인 12월 30일, 다시 납치됐다. 당시 그는 파룬궁수련자인 톈바오위와 스멍창을 만나던 중이었다. 이후 조사 결과, 경찰이 톈 씨의 휴대폰을 도청해 이들의 만남을 사전에 파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날 젠싼장 지사 보위부장 위룽과 치싱 농장 경찰서 부서장 류쭝산은 경찰 5명을 이끌고 톈 씨의 집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톈 씨와 스 씨, 서 씨를 강제로 납치하고 집을 수색했다. 몇 주 후 당국은 이들에게 각각 3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내렸다.

쑤이화 노동수용소는 서 씨의 심장 이상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나 공안 저우지와 주젠화는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수용소 측에 서 씨를 수용하도록 강요했다. 수감된 서 씨는 파룬궁을 비난하는 자료를 읽고 영상을 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거부할 때마다 구타와 전기봉 충격을 당했다. 이후 그는 19일간 독방에 감금된 채 두 명의 죄수가 24시간 감시했다.

서 씨가 견뎌야 했던 또 다른 고문은 작은 의자에 하루 종일 미동 없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4년 가을, 간수 판샤오둥 일당은 서 씨의 복부를 강타해 쓰러뜨렸다. 서 씨가 다시 일어서자 판 씨는 그의 얼굴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 찧으며 “이래도 신념을 지킬 것이냐”고 물었다. 서 씨는 “지킬 것이다”라고 단호히 답했다.

고문이 없는 날에도 서 씨는 매일 16시간 이상의 무임금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물리적 폭행과 언어적 학대를 당했다. 이로 인해 그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고 얼굴은 주름이 깊게 패였다. 등은 심하게 굽어 걷기도 어려운 상태가 됐다.

2005년 1월 서 씨의 형기가 종료됐지만, 젠싼장 지사 610사무실은 치싱 농장 610사무실의 위안신야오에게 지시해 그를 치싱 농장 세뇌반에 강제 이송했다. 서 씨는 그곳에서도 석 달간 풀려나지 못하며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2006년 10월, 21일간의 감금

2006년 10월 어느 날, 치싱 농장 경찰서 부서장 류쭝산과 10여 명의 경찰이 서 씨의 집에 들이닥쳤다. 경찰 4명은 서 씨를 강제로 붙잡아 순찰차에 태웠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경찰은 그의 부인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또한 ‘위안둥’이라는 이름의 경찰은 서 씨의 80세 아버지를 밀치고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서 씨가 경찰에게 “왜 이처럼 착한 사람들을 납치하느냐”고 묻자, 왕쥔리를 포함한 여러 공안은 그의 팔을 비틀고 머리를 잡아 순찰차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왕쥔리는 “착한 사람들을 박해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 씨는 억울함을 항의하기 위해 21일간 단식을 벌였다. 그 기간 세 차례나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으며,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결국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로 21일째 되는 날 석방됐다.

2014년 젠싼장 사건 연루됐다는 이유로 감시당하다

2014년, 젠싼장 지사의 칭룽산 농장에서 10명 이상의 파룬궁수련자들이 신념을 이유로 강제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서 씨와 다른 수련자들은 납치된 수련자들의 석방을 돕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지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 중 일부는 납치돼 폭행을 당하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서 씨 역시 당국의 밀착 감시 대상이 됐다. 그의 집 밖에는 24시간 내내 두 대의 순찰차가 배치됐다. 한 대는 집 앞문에, 다른 한 대는 뒷문에 주차됐으며 공안은 철사로 뒷문을 봉쇄하기까지 했다. 서 씨와 변호사가 납치된 수련자의 심리에 참석하던 중, 공안 류창허가 서 씨의 차량을 멈추려고 시도하는 일도 발생했다.

2018년 강제 혈액 채취 당해

2018년 4월 20일, 서 씨가 집에 도착하자 정체를 밝히지 않은 3명이 차고 밖에서 그의 길을 막아섰다. 10분 이상 대치가 이어진 후, 치싱 농장 공안 리젠과 다른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혈액 채취를 목적으로 서 씨를 치싱 농장 경찰서로 강제로 끌고 갔다.

서 씨가 혈액 채취를 강력히 거부하자 리젠은 5명의 경찰에게 서 씨의 머리를 책상에 억누르게 지시한 뒤 강제로 혈액을 채취했다.

2021년 제로화 운동 중 15일간의 감금

2021년 제로화 운동 기간 동안 당국은 블랙리스트에 있는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치싱 농장은 6명으로 구성된 ‘전향 전담반’을 꾸려 서 씨를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서 씨는 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직접 전담반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서 씨가 파룬궁의 선량함과 박해의 불법성을 설명하자 전담반은 더 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그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자 전담반은 업무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서 씨에게 새로운 작업 명령을 받았다. 이후 두 달 동안 전담반 직원들은 매일 서 씨의 집을 방문했다. 서 씨는 그들에게 파룬궁의 진실을 알리는 영상들을 보여주며 대화를 이어갔고, 직원들은 서 씨의 설명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긴 치싱 농장 경찰서는 “전담반 직원들이 오히려 서 씨에게 전향당했다”는 이유로 서 씨를 15일간 강제 감금했다. 당시 서 씨는 건강 문제로 신체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퉁장시 병원에서 15일간 강제로 구금됐다.

병원에서 석방된 후 그는 한쪽 다리에 마비 증세를 느꼈다.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2024년 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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