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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수용소서 박해받았던 왕구이링, 다시 부당하게 5년형 선고받아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진저우(錦州)시의 파룬궁수련자 왕구이링(王桂令)이 2024년 4월 14일, 진저우시 공안국 타이허(太和) 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들에게 강제 체포됐다. 이후 진저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으며, 같은 해 12월 30일 링하이(凌海)시 법원으로부터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왕구이링에게 불법적으로 징역 5년과 벌금 7,000위안을 선고했다.

왕구이링은 1956년생으로 현재 69세다. 랴오닝성 진저우시 링허구(凌河區)의 파룬궁 수련자로, 그는 진저우시 베이산(北山) 건설회사에서 근무했던 전직 노동자다. 파룬궁 수련 전에는 심각한 천식과 기타 호흡기 질환을 앓으며 매우 허약한 상태였다. 하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건강을 빠르게 회복했다.

2024년 4월 14일, 왕구이링을 비롯해 멍춘잉(孟春英), 류위룽(劉玉榮), 류징쥐(劉景菊), 징수밍(靖素明), 왕저우산(王舟山) 등 여러 명의 수련자들이 진저우시 공안국 타이허 분국 국보 경찰들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돼 구치소에 강제 감금됐다. 이들은 2024년 5월 13일 체포가 승인됐고, 7월 하순에는 조작된 혐의로 링하이시 법원에 기소됐다. 이어 10월 20일 링하이시 법원에서 불법 재판이 열렸다.

2024년 12월 30일, 링하이시 법원은 불법 판결을 내렸다. 왕구이링에게는 징역 5년과 7,000위안의 벌금이, 멍춘잉과 류위룽에게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6,000위안의 벌금이 선고됐다. 류징쥐와 징수밍은 각각 징역 2년과 4,000위안의 벌금을, 왕저우산은 징역 1년 6개월과 3,000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전에도 왕구이링은 수련을 고수하다 네 차례의 불법 강제노동형과 한 차례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두 차례에 걸쳐 진저우 노동수용소에서 심각한 고문과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왕구이링이 중국공산당에 의해 박해받은 간략한 내용이다.

진저우 노동수용소에서 당한 고문과 박해

2000년 봄, 왕구이링은 야외 공원에서 연공하던 중 경찰에 의해 납치됐고, 이후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아 진저우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2000년 10월 6일, 진저우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고, 제5대대 경찰 가오양(高陽)이 파룬궁수련자 리카이(李凱)의 손가락을 담뱃불로 지진 사건을 수용소 측에 알린 관련 수련자들을 모두 붙잡아 엄격한 감시하에 두고 독방에 감금했다. 이러한 폭력적인 행위에 맞서 불법 구금된 모든 파룬궁수련자들이 단식으로 항의했다.

다음 날, 진저우 노동수용소의 경찰 정치위원 장하이핑(張海平)과 부원장 진푸리(金福力)가 직접 지휘해 왕구이링을 결박하고 철제 의자에 수갑으로 고정한 뒤 잔혹한 강제 음식물 주입을 했다. 위생소 소장 스칭산(史靑山)은 개구기(開口機)를 너무 깊이 삽입해 왕구이링은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없었고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었다. 개구기를 억지로 벌리는 과정에서 아래 앞니 한 개가 부러지며 피가 흘렀다. 스칭산은 엄지손가락 굵기의 위관을 왕구이링의 위에 삽입하면서 목구멍에서 앞뒤로 강제로 밀고 당겨 왕구이링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온몸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시연: 잔혹한 강제 음식물 주입

왕구이링은 정체불명의 약물이 포함된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됐으며, 하복부와 종아리에도 각각 정체불명의 약물이 주사됐다. 그런 뒤 독방으로 끌려갔다. 독방에 감금된 지 약 10여 분 후, 심한 설사와 구토를 시작했으며, 거의 바지를 올릴 힘조차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두 시간 후에는 목이 극도로 마르고 갈증을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당시 신체 변화, 배변 상황, 물 마시는 횟수와 시간까지 경찰이 상세하게 기록했다.

경찰은 왕구이링을 비롯한 강제 급식을 당한 파룬궁 수련자들의 손을 등 뒤로 수갑 채운 채, 약 20cm의 정사각형 크기의 작은 의자에 하루 18시간 이상, 최장 44시간 연속으로 강제로 앉혀 뒀다. 이 자세를 견디지 못하면 경찰은 수갑을 채운 손을 들어 올려 독방 철창에 매달았으며, 왕구이링도 이 방식으로 이틀 동안 매달려 고문을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吊铐
중공 고문 재연도: 공중 결박

2001년 2월 10일 밤, 왕구이링과 스중옌(石忠岩, 2003년 4월 26일 진저우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로 사망) 등 여섯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제2 감방에서 조용히 경문을 암송하고 있었다. 그러자 경찰 양팅룬(楊庭倫)이 죄수 주옌(菊岩), 장즈펑(姜志鵬), 하오춘성(郝春生), 쑨웨이천(孫維臣) 네 명을 시켜 방해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항의해 여섯 명의 수련자가 큰 소리로 경문을 외우자 양팅룬이 방 안으로 난입해 왕구이링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네 명의 죄수들이 덮쳐 그를 방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갔다.

한 죄수가 왕구이링의 갈비뼈 아래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두 차례 가격했고, 그는 즉시 호흡곤란을 겪으며 복도에 쓰러졌다. 이어 죄수들은 그를 세면장으로 끌고 갔고 하오춘성이 마구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왕구이링이 다시 밖으로 끌려갈 때, 스중옌을 포함한 다섯 명의 수련자가 침대에서 내려와 이를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문까지 다가간 스중옌은 문을 막고 있던 죄수들에게 폭행당해 바닥에 쓰러졌으며, 쓰러진 그를 향해 쑨웨이천이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마구 찼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 재연도: 독타(毒打, 무차별 구타)

2001년 2월 11일, 왕구이링과 스중옌을 비롯한 여섯 명의 수련자는 이번 박해 사건의 전말을 문서로 정리해 다른 수련자들에게 전달해 진실을 알렸으며, 동시에 노동수용소 측에도 제출해 가해자 처벌을 요구했다.

다음 날인 12일 오후 4시, 정치위원 장하이핑의 지휘 아래 20여 명의 경찰이 제2 감방에 난입하여 왕구이링과 스중옌 등 여섯 명의 수련자를 강제로 바닥에 눕힌 뒤 수갑을 채우고 각각 독방에 감금했다. 이후, 그들은 각각 두 명의 경찰, 두 명의 죄수, 그리고 두 명의 ‘전향자’(강요에 의해 신념을 포기한 수련자)들에게 감시당하며 심한 구속 상태에 놓였다. 수갑을 찬 채 식사, 수면, 화장실 사용까지 강제로 제한당했으며, 각각 2개월에서 5개월까지 형기가 추가되는 추가 박해를 받았다.

2001년 8월경, 왕구이링은 이 끔찍한 수용소를 빠져나와 이번 강제노동 박해를 끝낼 수 있었다.

2002년 12월, 왕구이링은 두 번째로 불법적으로 3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다시 진저우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신입 수감자들이 배속되는 대대에서 왕구이링은 죄수용 조끼 착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

2002년 12월 30일 오전, 진저우 노동수용소 제2대대의 경찰 두 명이 왕구이링을 신입 대대에서 제2대대로 강제로 이송했다. 경찰 양팅룬은 왕구이링에게 “강제 ‘전향’은 정부의 조치다. 나는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니, 네가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전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왕구이링은 두 손이 등 뒤로 수갑 채워졌고, 헬멧을 씌운 채 커다란 책상에 밀어넣어 벽 모서리에 가둬두는 ‘모서리 압박’(擠牆角) 고문을 당했다. 경찰 두 명이 3시간마다 교대하고, 죄수들은 6시간마다 교대하며 감시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전기봉 여러 개와 각종 고문 도구가 준비됐으며, TV에서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됐다. 경찰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협박하며 왕구이링이 눈을 감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이 ‘모서리 압박’ 고문을 당한 파룬궁수련자들은 대부분 허벅지가 심하게 멍들고, 뼈가 변형되며,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도 많으며, 비교적 가벼운 경우라도 몇 주에서 몇 달이 지나야 회복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1~2년이 지나도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는 후유증을 겪는다.

왕구이링은 ‘모서리 압박’ 고문을 밤 9시까지 계속 당한 후, 제2대대 부대장 리쑹타오(李松濤)가 직접 그를 바닥에 눌러 제압했다. 경찰 장자빈(張加彬), 양팅룬(楊廷倫), 장춘펑(張春風), 펑즈빈(馮子斌), 그리고 죄수 안칭중(安慶忠)까지 가세해 함께 폭행을 가했다. 이들은 왕구이링의 손을 등 뒤로 수갑 채운 채 두 다리를 강제로 전통적인 쌍반(雙盤) 자세로 만든 뒤, 다리를 한계까지 잡아당겼다. 이후 그는 온몸이 꽁꽁 묶인 상태로 차가운 타일 바닥에 강제로 앉혀졌다.

30분이 지나도 왕구이링이 ‘전향’하지 않자, 경찰들은 그를 다시 바닥에 눕힌 뒤 상의를 벗기고 양말까지 벗겼다. 그런 다음 여러 개의 전기봉을 사용해 가슴, 등, 그리고 두 다리의 안쪽을 집중적으로 감전시켰다. 왕구이링의 전신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자, 그를 묶어둔 밧줄이 두 차례나 끊어질 정도였다.

酷刑示意图:捆成“球状”
고문 재연도: ‘공 형태’로 묶기

왕구이링은 2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4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극심한 박해를 견뎌낸 끝에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빠져나와 두 번째 강제노동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지역에서 또다시 두 차례나 불법적으로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아 박해당했다.

판진(盤錦) 감옥과 캉자산(康家山) 감옥에서의 박해

2008년 2월 25일 새벽, 왕구이링은 진저우시 공안국 링허 분국과 룽장(龍江) 파출소 소속 경찰들에게 자택에서 납치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검은색 두건을 씌운 채 경찰들에게 구타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치아 5개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후 진저우시 제2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어 박해당했다.

2008년 7월 말, 왕구이링은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고, 이후 판진 감옥으로 강제 이송되어 감금 및 박해당했다. 판진 감옥에서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다. 대표적인 박해 방식으로는 구타 및 전기봉 고문,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공중에 매달기, 호랑이 의자 고문, 손가락에 바늘 찌르기, 올빼미 고문(잠을 재우지 않고 장시간 학대), 칫솔로 갈비뼈 찌르기, 담뱃불로 화상 입히기, 쇠의자에 수갑 채운 채 장시간 고정, 모기떼에 물리도록 방치하기, 폭력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극한의 추위에서 방치 및 찬물 붓기, 정체불명의 약물 주사, 강제 노역 착취 등이다.

中共酷刑示意图:喂蚊虫咬
중공 고문 재연도: 모기와 벌레에 물리도록 방치

2012년 5월 8일, 왕구이링은 선양 캉자산 감옥으로 강제 이송돼 또다시 감금 및 박해를 당했다. 캉자산 감옥에서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극도로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는데, 주요 박해 방식은 다음과 같다.

구타(주먹과 발길질, 몽둥이 폭행, 책을 둥글게 말아 목동맥 부위 집중 폭행, 대나무 막대기로 머리 가격, 모래를 채운 음료수병으로 뒷머리 및 목 부위 폭행, 기절하면 찬물을 머리와 몸에 끼얹은 뒤 다시 폭행), 전기봉 감전, 독방 감금, 장시간 판자 또는 작은 의자에 앉히기, 올빼미 고문, 상처에 소금 문지르기, 극한의 추위에서 방치, 연기 고문(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운 후 담배 연기 주입), 다리 찢기, 비행기 자세(팔을 뒤로 꺾고 강제로 비정상적인 자세를 유지시키는 고문), 이쑤시개로 손가락 끝과 머리 찌르기, 폭력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침대에 결박한 채 장시간 방치 등이다.

관련 정보:
링하이시 법원:
주소: 랴오닝성 링하이시 상업로 41호(우편번호 121200)
원장: 장펑우(張鳳武) 0416-8152001
주심 판사: 청청(程成, 여) 0416-8152034
배심원: 류디(劉笛), 왕청젠(王成健)
법관 보조: 테옌(鐵言) 0416-8152019
서기: 리펑루(李朋儒) 0416-8152080
링하이시 검찰원:
주소: 랴오닝성 링하이시 상업로 56호(우편번호 121200)
검찰장: 마량(馬量) 13941689616
검사: 리펑(李峰) 13314160001, 0416-8107161
조사관 보조: 나광우(那廣伍)

 

원문발표: 2025년 1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6/4885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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