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린성 위수시 파룬궁수련자 위안쥔펑(苑俊峰)이 2024년 9월 12일 위수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양수차이의 전화를 받고 ‘서명’하러 공안국에 갔다가 구치소에 납치돼 불법 구금, 모함당했다. 2024년 12월 더후이시 법원에서 1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2025년 1월 중순 위안쥔펑이 궁주링 감옥으로 끌려가 구금, 박해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안쥔펑은 올해 56세로 위수시 광밍향 출신이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 후 술주정, 싸움, 도박 등의 나쁜 습관을 고쳤다. 위안쥔펑은 “1997년 대법을 배우기 전에는 술주정, 싸움, 도박을 일삼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늘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도덕성 높은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은 위안쥔펑은 구류소 3곳, 구치소 2곳, 노동수용소 1곳, 감옥 2곳에 불법 구금돼 5천여 일간 박해당하면서 신체가 불구가 됐다.
다음은 위안쥔펑이 중공에 박해당한 일부 경험이다.
파룬궁 청원을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불법 구금당해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위안쥔펑은 세 차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청원했고 두 차례 불법 구류됐다. 베이징 펑타이 구치소, 수란 구류소, 위수 구류소에서 100여 일간 박해당했다.
위안쥔펑이 구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위수시 공안국 투차오 파출소 경찰이 자주 집을 찾아와 괴롭혔다. 한번은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까지 때렸다.
진타이 인마허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당해
2001년 7월 14일 위안쥔펑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투차오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15일간 구류됐다. 구류 기간에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기를 거부하자 1년 강제노동을 처분받았다. 지린성 진타이 인마허 노동수용소로 끌려가는 도중에 투차오파출소 소장 장유차이가 “만 위안만 주면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했다.
위안쥔펑은 진타이 인마허 노동수용소에 끌려간 후 널빤지에 앉히는 체벌을 받았고 범죄자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했다. 이 기간에 수란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이 그를 수란 구치소로 끌고 가 고문 취조했다.
수란 구치소에서 잔혹한 박해당해
위안쥔펑은 수란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에게 수란 구치소로 끌려가 고문 취조를 당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찰은 ‘샤오바이룽’(小白龍, 고문도구의 일종으로 맞으면 살과 뼈가 분리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임)으로 등을 때렸다. 한 경찰은 “네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난 널 마음대로 판결할 수 있어. 천천히 고통스럽게 해주고 천천히 괴롭혀주마”라고 했다.
위안쥔펑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고 28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강제로 영양주사를 맞았고 진한 소금물을 탄 옥수수죽을 강제로 먹었다. 강제 영양공급 당시 입이 찢어져 피가 멈추지 않았고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했다. 한 경찰은 그의 얼굴을 발로 밟으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보자”고 했다.
위수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도 수란 구치소에 와서 위안쥔펑을 고문 취조했다.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의자로 발가락을 내리쳤다.
2001년 12월 28일 위안쥔펑은 수란시 법원에서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창춘 톄베이 감옥과 위수 구치소서 박해당해
위안쥔펑은 수란시 법원에서 4년형을 선고받은 후 2002년 4월 15일 창춘 톄베이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이 기간에 위수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이 톄베이 감옥까지 와서 위안쥔펑을 속여 이른바 ‘증거’를 인정하라고 했다. 나중에 위안쥔펑은 위수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 박해당했다.
위수 구치소에서는 위안쥔펑이 다른 사람에게 파룬궁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이 발에 족쇄를 채웠다.
위수 구치소에서 15개월간 구금, 박해당한 후 11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지린성 제2감옥에서 박해당해
2003년 11월 17일 위안쥔펑은 지린성 제2감옥으로 끌려가 구금, 박해당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강제 ‘세뇌’, 밤샘 괴롭힘, 장시간 널빤지에 앉히기, 체벌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위안쥔펑은 말했다. “그들은 내가 수련을 포기하게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강제로 널빤지에 앉히고 체벌하고 세뇌시켰다. 그들은 릴레이식으로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잠을 못 자게 하고 여럿이 둘러싸고 억지 이치로 강제 세뇌시켰다. 난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전향을 거부했더니 장시간 널빤지에 앉혀놓고 신체의 자유를 박탈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더라도 누군가가 붙들고 다녀야 했다. 명찰을 달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격관리반으로 보내 박해하겠다고 했다(엄격관리반은 감옥에서 수감자를 잔혹하게 박해하는 곳으로 외부인이 모르게 박해하는 곳이다. 시체 침대, 매달아놓기, 긴 시간 쇠각대에 앉히기 등의 고문 시설이 있고 매일 옥수수죽과 짠지를 두 끼 먹는다). 난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힘껏 저항했더니 그들도 포기했다.”
2014년 12월 13일 위안쥔펑은 출소할 때 시력이 흐릿해져 있었고 한쪽 다리는 굵고 한쪽은 가늘어져 있었다. 허리도 심각하게 다쳐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었고 오래 앉아있으면 통증이 왔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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