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2024년 10월 30일, 중국 후난성 웨양시의 75세 파룬궁수련자 차이구이자오(蔡桂姣)가 위청 시장에서 진상 달력을 배포하다가 성 관리 직원들에게 납치되었다. 이후 웨양시 공안국 웨양루 분국 경찰에 의해 웨양시 구치소로 끌려가 감금돼 박해당했다.
차이구이자오는 구금된 지 3일 만에 심각한 건강 이상을 보여 웨양시 광지병원으로 옮겨졌다. 2024년 12월, 웨양시 공안국 웨양루 분국 담당 경찰은 차이구이자오를 웨양시 핑장현 검찰원에다 기소하며 억울한 혐의를 씌웠다.
차이구이자오는 원래 후난성 웨양시 쥔산구 차이상후진 파퇀베이촌 출신이다. 그녀는 8세 때 홍역을 앓은 후 후유증으로 토혈과 양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증상을 겪었고, 이후 류머티즘과 어깨 관절염까지 앓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부인병에 시달리며, 밤에 한두 시간 겨우 잠들었다가도 허리 통증으로 인해 일어나 집 안을 걸어 다니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이후에도 그녀는 10여 가지의 만성 질환으로 고생해야 했다.
1998년, 차이구이자오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모든 병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큰 기쁨을 느꼈으며, 파룬따파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됐다.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 속에서 차이구이자오는 여러 차례 납치되고 불법적으로 구금됐다. 그녀는 불법 노동수용 처분과 형사 판결을 받은 적이 있으며, 구치소, 세뇌반,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차이구이자오가 중공에 의해 당한 박해 사실의 일부분이다.
베이징에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불법적으로 구금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대규모 박해를 시작했다. 2000년 2월, 차이구이자오는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베이징으로 갔으나, 도착하자마자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경찰차에 실려 먼 곳으로 끌려갔고 좁은 방에 감금됐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10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함께 갇혀 있었고, 방 안에는 철창도 있었다.
차이구이자오는 이틀간 불법 심문을 받은 뒤 고향 웨양으로 강제로 끌려가 35일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된 채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610 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관계자들이 자주 찾아와 괴롭혔다.
웨양시 세뇌반에서 고문을 받다
2005년 10월 13일, 차이구이자오가 밭에서 목화를 급히 수확하고 있을 때 마을 당서기 쩡진취안(曾金泉)이 진 정법위원회 서기 쉬훙(徐洪), 파출소 직원 돤더량(段德良), 선청(沈誠) 등 6명을 데리고 와서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 웨양시 세뇌반으로 끌고 가서 감금하고 박해했다.
세뇌반에서 차이구이자오는 장시간 벌을 서야 했고, 때로는 손발이 묶인 채로 텔레비전 철제 프레임에 매달린 채 반나절을 방치되기도 했다. 또한 그녀에게 ‘4서(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거부하면 매일 다른 방식으로 고문했다. 때로는 악취가 나는 양말로 입을 막기도 했다.
한번은 매우 더운 날씨에 악인들이 그녀를 이불로 단단히 감싼 뒤 체중이 약 90kg이나 되는 우두머리가 그녀 몸 위에 올라가 3시간 동안이나 압박을 가했다. 결국 그녀의 반응이 없자 죽은 줄 알고 이불을 벗겼는데, 이불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또 한번은 차이구이자오가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여성 우두머리 리(黎) 씨가 대나무 막대기로 끊임없이 구타했고, 남성 경찰 장(張) 씨는 가죽신발을 신은 채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잔인하게 걷어찼다.
차이구이자오는 60일 동안 밤낮으로 이러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악인들은 그녀를 ‘전향’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악인들은 그녀를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수용소로 보내 1년간 강제노동을 시켰다.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다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는 악명 높은 마굴이었다. 차이구이자오는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장실 사용과 수면은 물론 침을 뱉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그녀는 매일 장시간 벌을 서야 했고 이는 20일 이상 지속됐다.
이후 차이구이자오는 더욱 엄격한 통제구역으로 이송됐는데, 그곳에는 각종 고문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밤낮으로 쪼그려 앉은 자세만 허용됐다. 악인들은 작은 나무의자로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내리쳐 심각한 상처를 입혔고, 이로 인해 정신이상 증세까지 나타났다.
후베이에서 방문 중 납치돼 돈을 갈취당하다
2007년 12월 22일, 차이구이자오는 후베이성 타오화산(桃花山) 지역의 친척집을 방문하던 중 누군가의 신고로 구퍼강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하루 동안 불법 심문을 받았고 3,200위안의 돈을 강제로 빼앗겼다. 당시 현지 파출소가 그녀에 대한 감시 지시를 받았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고 100일이 넘는 시간을 타지에서 힘겹게 떠돌아다녀야 했다.
딸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경찰에게 폭행당하다
2010년 10월 11일 자정, 차이구이자오의 딸 천민(陳敏, 파룬궁수련자)은 웨양시 공안국 쥔산 분국 국보대와 량신바오 파출소 경찰들에 의해 자택에서 납치됐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천민은 이틀 동안 강압적인 심문을 받은 후 웨양시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10월 19일, 천민은 불법적으로 3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10월 29일에는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천민의 가족은 강제노동 처분 통지서조차 받지 못했고, 단지 “천민이 ×교 조직을 이용해 법 집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소위 ‘종합자료’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자료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았고 법적 근거도 부족했기에 당사자와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민의 어머니인 차이구이자오는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천민의 불법 노동수용에 대한 항소서’를 작성해 2010년 11월 18일 웨양시 공안국 쥔산 분국 국보대에 제출했다. 당시 경찰 샹웨화(向岳華)와 리쥔(李軍)은 차이구이자오에게 소위 ‘종합자료’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으나, 그녀가 이를 거부하자 주먹과 발로 폭행했다. 이때 한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60대 노인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경찰 샹웨화에게 “문서를 되찾지 못하면 자진 사직하고 내일 집으로 가라”며 폭력을 부추겼다.
이 말을 들은 경찰 샹웨화는 더욱 분노하여 차이구이자오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네가 내 밥줄을 끊으려고 해? 보너스와 퇴직금도 다 날아가.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어. 밟아 죽이고 불태워버리겠어. 널 죽여버리겠어!”라고 위협했다. 차이구이자오는 구타당해 얼굴에 멍이 들고 솜옷의 단추가 모두 떨어져 나갔으며, 의식이 혼미할 정도로 맞았다. 경찰은 또한 “누가 너에게 항소서를 써줬는지 말해라”며 협박한 뒤, ‘610’ 조직의 책임자 펑창화(彭常華)에게 전화를 걸어 상후와 청산 두 마을에 경찰을 보내 파룬궁수련자들의 집을 모두 수색하라고 지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경찰은 차이구이자오를 차에 태운 뒤 그녀의 집에 가서 소위 ‘종합자료’를 강제로 가져간 후에야 폭행을 멈췄다.
웨양 제1구치소에서 박해당하다
2012년 2월 27일, 차이구이자오는 웨양시 화룽현 완위전 창타이촌에 사는 파룬궁수련자 옌중시(嚴從喜)와 함께 타시호 어장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 치안 책임자의 신고로 화룽현 ‘610’ 조직과 국보대 경찰이 옌중시의 집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납치했다. 화룽 구치소에서 불법 구금되어 박해를 당하다가 3월 12일, 차이구이자오는 웨양 제1구치소로 이송되어 더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으나, 구치소의 악인 5~6명이 약물을 강제로 주입하고 야만적으로 강제 음식물 주입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이가 부러지고 입에서 피가 났다.
차이구이자오는 경찰에 의해 ‘판고(板銬)’라는 고문을 이틀 밤낮으로 당했다. ‘판고’는 사람의 손과 발을 수갑과 족쇄로 나무판자에 묶어 대(大)자 모양으로 고정시키는 고문 방법으로, 판자 중앙에 작은 구멍이 있어 배변만 가능할 뿐 그 외에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잔혹한 고문이었다.
2013년 1월 7일, 차이구이자오와 옌중시는 화룽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후난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당하다
차이구이자오는 화룽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은 후 2013년 1월에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강제 이송됐다. 입소 과정에서 3일간 박해를 당했고, 이후 파룬궁수련자들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6감구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경찰은 그녀에게 강제 조치를 취했고, 매일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18시간 동안 서 있게 했다. 이런 고문은 26일간 계속됐고, 그 기간 동안 차이구이자오는 여러 차례 실신했다.
경찰은 죄수들을 이용해 교대로 차이구이자오를 감시하게 했다. 죄수들은 때때로 그녀를 발로 밟거나 갑자기 뒤에서 무릎으로 허리를 세게 밀어 상처를 입혔다. 26일간의 고문이 끝난 후에도 경찰은 또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한 손에는 물병을, 다른 손에는 생수병을 들고, 두 다리 사이에는 작은 노트를 끼운 채 떨어뜨리지 못하게 했다. 이로 인해 차이구이자오의 발톱 두 개가 빠졌다. 이어서 경찰은 4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9일 동안 군인 자세로 무릎을 꿇게 했다. 결국 그녀는 ‘4서’를 쓸 때까지 이런 고문을 계속 당했다.
차이구이자오는 6감구 1대에서 2대로 옮겨진 후에는 강제 생산 노동에 동원됐다. 그녀는 박해 중에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하는 모든 발언과 행동이 무효라는 성명서를 두 차례 작성했고, 이로 인해 경찰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2015년 2월 26일, 차이구이자오는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웨양윈시 구치소서 박해당하다
2015년 11월 18일, 화룽현 완위진 창타이촌에 사는 옌중시가 차이구이자오를 차에 태우러 갔다가, 화룽현 경계 도로를 걷던 중 마주친 화룽현 공안국 경찰이 차 안에서 그들을 알아보고 차에서 내려 차이구이자오의 가방에서 ‘9평(九評共産黨,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등 진상 자료를 강제로 빼앗은 후, 두 사람을 납치해 웨양윈시 구치소에 가두고 41일간 박해했다. 이 과정에서 옌중시는 박해로 인해 한때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2015년 12월 29일, 차이구이자오와 옌중시는 웨양윈시 구치소에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2016년 11월 14일 오전 10시경, 차이구이자오가 자신의 밭에서 유채를 심고 있을 때 화룽현 공안국 경찰 6명이 사복 차림으로 두 대의 자가용을 타고 와서[그중에는 국보대 대장 바이쥔핑(白君平)이 포함되어 있었음] 그녀를 납치했다. 차이구이자오는 맨발인 채로 경찰차에 강제로 실렸다(당시 집에는 그녀 혼자뿐이었고 자녀들은 모두 외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화룽현으로 끌려간 후 웨양윈시 구치소에 다시 불법 구금됐고, 이후 비밀리에 불법으로 7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2017년 5월 1일 억울한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속적인 괴롭힘
2017년 9월 7일, 마을 이장 정샤오화(鄭紹華)가 파출소와 사법소 경찰 6명을 데리고 두 대의 차량을 타고 쥔산구 첸량후진 퇀베이촌 6조에 있는 파룬궁수련자 차이구이자오의 집을 찾아가 괴롭히고 불법 가택수색을 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
2019년 9월 25일 저녁 7~8시경, 제복을 입은 경찰 4~5명이 파룬궁수련자 리더번(李德本)과 류푸슈(劉伏秀) 부부의 집에 들이닥쳐 괴롭혔다. 그 후 인근에 있는 차이구이자오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으나,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대신 창문으로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경찰들은 차이구이자오의 대문에 붙어 있는 ‘복(福)’ 자를 사진 찍고 떠났다.
2021년 5월 12일, 웨양시 쥔산구 차이상후진 파출소의 새로 부임한 천(陳) 소장이 두 명의 경찰과 함께 파룬궁수련자 장구이잉(張桂英), 차이구이자오, 리더번과 류푸슈 부부의 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자들 각각에게 사진을 찍고 지문을 강제로 찍게 했으며, 쥔산구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일반인 포함)이 지장을 찍고 사진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민들에 대한 이른바 ‘감시 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들에 대한 이른바 ‘감시 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평장현 검찰원
주소: 후난성 웨양시 핑장현 청관진 신춘로199호 (우편번호: 410400)
검찰장: 리화(李華) 130-1730-9966
상무부검찰장: 위안치(袁琦) 177-0730-1077
부검찰장: 가오샹(高翔) 183-9015-0088, 샤원핑(夏文平, 전임) 137-6277-7777
정치부 주임: 저우자오(周嬌) 181-5264-6111
검찰위원회 전담 위원: 정핑(鄭平) 152-0021-2788, 중츠하이(鍾池海) 181-7304-8689
사건 관리부 주임: 천옌란(陳豔然) 177-0730-8566
기관 당총지 서기: 푸후이(付暉) 138-0840-7166
수사 협조부 책임자: 장위(張瑜) 150-7400-5710
사무실 주임: 중즈창(鍾志强) 150-8099-8777
제1검찰부 주임: 장샤오지(張驍驥) 153-8740-0796 (체포, 기소, 공소 관련 박해)
• 제1검찰부 부주임: 위쥐안쥐안(余娟娟) 177-0730-8066
• 제1검찰부: 중치(鍾琦) 152-0020-1054, 산쉬안(單漩), 홍푸청(洪富城)
제2검찰부 주임: 중쾅잔(鍾曠展) 137-6278-8831
• 제2검찰부 부주임: 린장이(林江毅) 158-7303-4842
제3검찰부 주임: 리즈젠(黎志堅) 189-7305-2799
제4검찰부 주임: 천쥔윈(陳均勻) 152-7400-2123
제5검찰부 주임: 류펑(劉烽) 134-8776-8609
사건 관리: 리치(李琦) 135-7505-2777, 마오징린(毛菁琳) 135-7400-5200, 후펑(胡鵬) 182-7403-6777
사무실: 장다(蔣達) 137-8798-1555, 탕레이밍(唐雷鳴) 136-0740-5999, 위치(余琦) 159-7436-7789, 저우찬찬(周潺潺) 189-7408-5799, 저우빈(周彬) 135-7509-8595
검무보장(檢務保障): 위안융안(袁永安) 138-7400-3006, 장잉(張瑛) 181-7302-2868, 추신양(邱欣陽) 137-8798-3999, 중후이(鍾輝) 182-7403-2222, 줘빈(卓彬) 186-2752-9111, 뤄징웨이(羅精衛) 159-7436-9891
소송감독(訴訟監督): 추이찬(崔璨) 189-7400-4555, 후왕룽(胡望龍) 138-7400-3138, 위안룽(袁榮) 133-9740-5567, 왕라이즈(王來茲) 133-2730-0001, 정후이(鄭慧) 182-7403-8555, 펑다린(彭大林) 189-7400-4155, 둥충궈(童崇國) 151-1508-8163
형사검찰(刑事檢察): 중상핑(鍾湘平) 181-7302-2880, 팡레이(方磊) 135-7509-5587, 룽천(榮辰) 177-1160-8599, 류친(劉勤) 177-1671-0333, 저우샤오옌(周曉豔) 152-0020-7896, 쉬멍(許蒙) 182-7404-6711
웨양시 공안국 웨양루 분국
국장: 리밍(黎明) 139-0730-9777
상무부국장: 리린(李林) 139-7301-6666
부국장: 류춘(柳春) 186-0730-0113
기율위원회 서기: 류젠(劉戩) 135-7503-6818
국보대대
대대장: 류쉐농(劉學農) 139-7502-0007
경찰: 탕젠밍(唐建明) 183-7301-5035, 이산산(易三三) 151-7306-1333, 황웨이홍(黃衛紅) 189-0730-3311, 장추핑(章初平) 188-0730-6868, 샤야페이(夏亞菲) 137-8606-5063, 슝강융(熊剛勇) 151-9708-2863, 류쉐취안(劉學群) 151-9708-2207, 루보(陸波) 150-0730-9879, 왕취안(王群) 137-6209-9928, 우슝웨이(吳雄偉) 138-7303-8066, 장둥우(張冬武) 138-0730-0177, 류리장(劉漓江) 139-7301-8828
원문발표: 2024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23/48659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2/23/4865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