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레이위안쥔(雷沅俊)은 후난성 천저우시 자허현 스차오진 스탕촌의 한 노년 농민으로 현재 71세다. 그의 아들 레이징슝(雷井雄)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중공에 의해 학업이 중단됐고, 8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으며 고문으로 장애인이 됐다.
레이위안쥔은 수년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선량한 아들을 위해 신원을 호소하고 국가배상을 요구했다. 그는 베이징과 창사(長沙)를 여러 차례 오갔고 왕복 기차표만도 두툼한 한 뭉치가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위안쥔 노인은 지금까지도 선량한 아들을 위해 정의를 되찾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천성적으로 선한 소년
레이징슝[본명 레이란(雷嵐)]은 1980년 후난성 천저우시 자허현 스차오진 스탕촌의 평범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선량하고 부지런하며 총명했다. 레이징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매달 마을의 우물을 무상으로 청소했다. 이런 일은 보통 마을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했는데 그는 어린아이임에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무상으로 좋은 일을 했다. 그의 천성적인 선량함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1997년 레이징슝은 중학교에 다닐 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을 더욱 엄격히 요구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2000년, 자허현 제1고등학교의 대학입시 부정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 이 고등학교에는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본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레이징슝(당시 이름 레이란)이었다. 당시 신문사에서 그를 취재하기도 했다. 또한 2000년, 레이징슝은 창사 후난사범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공부했고, 학교는 우수한 학생 세 명을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에 추천했는데 레이징슝이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은 이렇게 좋은 학생을 용납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를 제화업계의 기술인재로 양성하려 했고 월급도 1만 위안 이상이었다. 하지만 중공의 박해로 인해 그는 한 번 또 한 번의 기회를 잃게 됐다.
중공이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후, 레이징슝은 여러 차례 납치되고 구금됐으며 한번은 화형될 뻔했다. 악당 인원들이 그를 박해한 수단의 잔혹함은 치가 떨릴 정도다.
쇠막대로 식도와 혀, 잇몸이 망가지다
2000년 봄여름, 대학에 다니던 레이란은 자허현에 돌아왔다가 5~6명의 파룬궁수련자들과 함께 자허현 ‘610’과 경찰에게 납치돼 천저우시 자허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파룬궁수련자들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당시 자허 구치소 의사 겸 부소장이던 허투스(何土石)는 몇몇 경찰을 데리고 단식한 지 1주일이 넘은 파룬궁수련자들을 묶어놓고 쇠막대와 죽꼬챙이 등의 흉기로 잔인하게 그들의 입을 벌리고 소금물 등을 먹였다. 당시 20세였던 레이란의 식도와 혀, 잇몸, 입술이 찢어졌고 입이 심하게 부어 한 달 넘게 음식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악질 경찰 허투스는 2006년 1월 25일 보응을 받아 50세 나이로 간암으로 죽었다). 레이징슝은 자허현 구치소에서 29일간 박해를 당했고 마지막에는 공안국에 4천 위안, ‘610’에 3천 위안, 경찰 개인에게 3천여 위안을 갈취당했다. 레이징슝의 집은 가난했고 고모부가 1만여 위안을 내주었다.
연이어 납치되고 구금되다
2001년, 레이징슝은 광둥성 둥관시 창안진에서 우한까지 차를 타고 가서 걸어서 베이징으로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 가는 도중 33일을 걸었다. 레이징슝은 베이징에서 자허현 ‘610’과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되어 창사 신카이푸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6개월간 박해를 당했고, 그 뒤 자허현 구치소로 끌려가 6개월간 불법 구금됐다.
2002년, 레이징슝은 생계를 위해 베이징에서 일했다. 자허현 ‘610’은 파룬궁수련자가 현지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베이징까지 가서 레이징슝을 데려왔다. 레이징슝이 베이징에서 일하던 직장은 그가 일할 때 성실하고 직위와 금전을 다투지 않으며 성실하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돈을 내서라도 그를 베이징에 머물게 하려 했다. 그러나 자허현 ‘610’ 직원은 현지에서 레이징슝의 일자리를 배치해주겠다고 거짓말했다. 자허현에 돌아온 후 향정부는 레이징슝을 학교 교사로 허위로 배치했다. 5일 후 청명절 저녁, 자허 ‘610’과 공안국은 대규모 경찰을 동원해 레이징슝을 납치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날 저녁 마치 하늘이 노한 듯 강풍이 불어 큰 나무가 부러지고 많은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고 한다.
2003년, 광둥성 둥관 ‘610’과 공안국은 어처구니없게도 ‘공고문’을 붙여 레이징슝에게 1만 위안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수련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와 친척, 두 매형을 공안국에 붙잡아 심문했다. 경찰은 레이징슝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이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쳤고 많은 사람이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레이징슝의 아버지는 말했다. “당신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너무 황당합니다. 제 아들은 진선인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아들에 대해 저는 만 배로 안심하고 만 배로 지지합니다.”
구타로 피범벅이 되고 화형될 뻔하다
2004년 8월 18일, 레이징슝은 량젠궈(梁建國), 리쯔란(李自然) 등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창사시 톈신구 후오처난짠 부근 숙소에서 창사시 톈신구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오후 4시, 레이징슝은 톈신구 국보 경찰의 고문을 받았다. 머리와 얼굴이 중상을 입었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으며 정신을 잃었다. 경찰은 그가 맞아 죽은 줄 알고 화장터로 데려갔다. 막 화장하려고 할 때 레이징슝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현장에 있던 한 여경이 발견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가 아직 죽지 않았어요. 화장할 수 없어요.” 현장에 있던 몇몇 남자 경찰이 말했다. “사람이 이런 상태인데다 이미 화장터에 왔으니 태워버리죠.” 여경이 말했다.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태울 수는 없어요. 나중에 추궁하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레이징슝은 창사시 중심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았다.
진단 결과, 레이징슝은 두개내출혈이 있었고 일부 일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왼쪽 눈이 구타로 튀어나왔고 왼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됐다. 이가 모두 흔들렸고 아래턱뼈가 부서졌으며 얼굴의 살점이 거의 없고 뼈만 남아 있었으며 찢어진 피부가 붙어있을 뿐이었다. 얼굴 왼쪽이 마비되어 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었고 의사는 기관지를 절개해 호흡하게 하고 주사기로 음식물을 먹였다.
레이징슝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말했다. “내 아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그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의사는 쇠집게로 레이징슝의 얼굴을 40여 일간 고정했다. 어머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엉엉 울며 비통해했다.
8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다
레이징슝의 얼굴이 심하게 변형됐고 왼쪽 눈이 튀어나와 마치 부은 것 같았으며 아래턱과 얼굴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얼굴에 상처가 가득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그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그를 고용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레이징슝이 도처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친척이 그를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려 애썼다. 2009년 6월 18일, 그는 고모부와 함께 광저우에서 항저우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다가 공항에서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공항 보안검색요원이 레이징슝의 지갑에 작은 칼날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대기실에 남겨두었고, 10시 40분쯤 비행기에 오르려 할 때 경찰 두 명이 탑승구에서 그를 경찰차에 태웠다.
그 후 구이저우성 시수이현 공안국은 레이징슝의 가족에게 서명이 없는 ‘체포통지서’를 보냈다. 2009년 6월 28일, 레이징슝은 시수이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10년, 가족들은 구이저우성 두윈 감옥의 이른바 ‘통지’를 받았는데, 레이징슝이 8년형을 선고받고 2010년 1월 14일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자 노부친이 청원을 견지하다
당시 레이징슝의 아버지 레이위안쥔은 자허현 정부 인원의 입을 통해 시수이시 경찰이 자신의 아들에게 ‘절도죄’로 8년형을 선고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레이위안쥔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선량하고 정직한 아이였으며,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오랫동안 마을의 우물을 무상으로 청소했고, 2000년 자허현 대입 부정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도 아들은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보았다고 말했다. 아들은 창사 후난사범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다닌 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의 추천을 받아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이렇게 품행과 학업이 모두 뛰어난 좋은 학생이고 좋은 아들이 어떻게 ‘절도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가?
단지 파룬궁 수련을 했다는 이유로 아들은 중공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났고, 이제는 터무니없는 죄명으로 8년형을 받은 것에 대해 레이위안쥔은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 레이 씨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들이 친척이 소개한 일자리로 가던 중 광저우 바이윈 공항에서 국보 경찰에게 납치됐다는 점이었다. 그 후 형을 선고받았는데, ‘기소장’을 보지 못했고, 공소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언제 어디서 재판이 열렸는지도 모르고, 더욱이 레이징슝에게 변호사 선임을 통지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절도’는 더욱 황당했다. 레이징슝이 어디서 ‘절도’를 했고, 어떤 물건을 ‘훔쳤으며’, 누구의 것을 훔쳤고, 언제, 어디서 훔쳤는가? ‘훔친’ 물건의 가치와 금액은 얼마인가? 인적 증거, 물적 증거가 모두 없었다. 레이 씨는 말했다. “아들은 원래부터 착한 데다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모든 부정한 일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는데, 죄를 덮어씌우려고 하니 어떤 것이든 구실댈 수 있구나.”
레이위안쥔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아들 레이징슝이 유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정부 각급 부처에서 국무원까지 청원하고 고소하며 레이징슝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레이위안쥔의 청원은 던져진 돌이 물 속에 잠기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때 병보석되었다가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다
2010년 12월 초, 구이저우성 두윈 감옥은 레이징슝의 뇌혈관 하나가 터져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다며 가족에게 통보하고 그를 데려가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이 달려갔을 때 감옥은 사람을 데려가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면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2011년, 레이징슝은 결국 감옥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아 생명이 위태로워져 ‘병보석’이 됐다.
2015년 2월 15일, 자허현 스차오향 파출소 경찰은 일하던 곳인 저장성에서 설을 보내러 귀향한 레이징슝을 속여 데려갔고, ‘병보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구이양 감옥으로 끌고 가 박해했으며, 4월 23일에는 다시 후난성 주저우 왕링 감옥으로 이송해 구금했다.
2015년 10월 22일이 되어서야 레이징슝은 귀가할 수 있었다.
노부친이 수년간 아들을 위해 배상을 신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복당하다
레이위안쥔은 아들이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중증 장애인이 된 일로 수년간 끊임없이 각급 부서에 국가배상을 호소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레이위안쥔은 ‘국가배상법’에 근거해 아들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창사를 여섯 번 갔고 베이징도 여섯 번을 갔으며 왕복 기차표가 두툼한 한 뭉치가 됐다. 레이위안쥔은 또 국가배상을 신청하는 서면자료를 각 정부 부서에 우편으로 보냈다.
하지만 레이위안쥔은 당국의 답변을 전혀 받지 못했고 오히려 불법 구류라는 보복을 당했다. 2014년 12월 8일, 레이위안쥔은 법에 따라 아들을 위해 국가배상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자허현 공안국에 의해 처음으로 5일간 불법 구류됐다. 2018년 3월 28일, 레이위안쥔은 베이징에 가서 아들의 국가배상 신청에 대해 문의했다가 다시 자허현 공안국에 의해 10일간 불법 구류됐다.
레이위안쥔 노인은 지금까지도 선량한 아들을 위해 정의를 되찾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24년 12월 2일, 노인은 다시 창사시 공안국 톈신구 공안분국과 톈신구 법원에 ‘위법 확인 및 국가배상신청서’를 보내 톈신구 공안분국이 레이징슝을 혹독하게 고문하여 4급 장애인이 되게 한 사실을 명확히 고발했다. 톈신구 법원은 관료들이 서로를 비호하며 신청인의 자료는 받아놓고도 계속 수속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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