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하얼빈 파룬궁수련자이자 주민들이 훌륭한 의사라고 말하는 둥원청(董文成)이 중공의 장기간의 박해 속에서 2024년 11월 2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둥원청이 세상을 떠난 후 현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좋은 의사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둥원청은 60세에 가까운 남성으로 하얼빈시 솽청구 란링진에 살았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해온 그는 진에서 진료소를 개설했다. 그는 환자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했고 항상 남을 위해 생각했으며,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에게 합리적인 진료비를 받았고 특히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진료비를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않았다. 진료를 받고 약을 사러 오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100리 밖 주민들까지 진료소를 찾아왔다. 그의 고귀한 의술 정신과 뛰어난 의술은 환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둥원청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며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이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지 25년이 되도록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둥원청이 당한 중공의 박해 사실을 간단히 서술한 것이다.
2001년 12월 3일, 란링진 정부 관리들이 둥원청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했고, 그를 풀어줄 때는 2천 위안과 3채의 집 등기증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2002년, 둥원청은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가 납치된 후 5~6개 구치소로 이송됐고, 나중에는 솽청 구치소로 압송됐다. 그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했으며, 죽을 지경이 돼서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귀가 후 둥원청은 촌 간부들의 장기 감시로 인해 집을 떠나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2002년 4월 16일, 둥원청은 다시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또다시 납치됐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솽청 구치소에서 고문당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구치소 측은 그가 죽을까 봐 두려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둥원청은 불법적으로 2년의 강제노동을 당했다. 창린즈 노동수용소에서 불법 구금됐던 기간에 둥원청은 구타, 거꾸로 매달기, 전기봉 고문, 한겨울에 전신에 찬물 붓기 등 10여 가지의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구타로 뇌진탕을 당해 정신이상이 됐다.
2016년 5월 6일, 란링진 둬러푸 슈퍼마켓에서 쇼핑하던 둥원청은 경찰에게 납치돼 솽청 구류소로 끌려가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5월 6일 당일, 헤이룽장성 공안청 쑨융보, 하얼빈 정법위원회 서기 왕샤오시, 하얼빈 공안국장 런루이천, 부성장 왕쉬안구이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솽청구 공안분국 부국장 리슈즈, ‘610’ 셰뎬천이 명단을 들고 같은 시간에 솽청구 각 향진의 중공 고소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자들을 납치했으며, 솽청구에서만 최소 49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납치됐다.
수년간 둥원청은 경찰과 정부 관리들의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렸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는 늘 체포될까 봐 걱정하며 편히 잠도 못 주무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고 말했다. 둥원청은 이런 엄청나고 상상하기 힘든 압박 속에서 2024년 11월 2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둥원청이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알고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많은 마을 주민들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둥 선생님처럼 의술과 의덕이 높은 좋은 의사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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