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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옥고 치른 랴오닝성 수련자 펑지춘, 또다시 불법 판결 받아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차오양시 파룬궁수련자 펑지춘(馮吉春)이 2024년 6월 2일 신화분국 경찰에 납치된 후 계속 차오양시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있다. 공안은 가족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펑지춘의 소식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최근 신화분국과 룽청구 검찰원, 룽청구 법원이 공모해 펑지춘에게 1년 6개월 형을 비밀리에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펑지춘은 1964년 7월 14일생으로 올해 60세인 여성이며, 차오양시 개발구 치다오취안쯔진에 살고 있다. 1996년 정월, 펑지춘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심근허혈과 두통 등 질병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2개월 만에 모든 질병이 사라졌다. 파룬궁은 펑지춘에게 영원한 진리를 보여줬고, 갈등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수련하며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하며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했다. 그녀는 변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습니다!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뒤로 병이 다 나았고 성격도 좋아졌어요. 우리 아이와 나도 덕을 봐서 병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펑지춘은 파룬궁의 요구대로 타인을 위하고 누구에게나 잘했으며, 시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우리 며느리는 효성스러워요”라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했고 펑지춘은 신념을 고수하다가 네 차례 불법 구류돼 총 330여 일간 구금됐으며, 두 차례 강제노동과 한 차례 7년형을 선고받았다.

2024년 6월 2일 오전, 펑지춘이 진상을 알리던 중 신화분국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고, 신화분국 경찰은 당시 그녀의 딸에게 15일간 불법 행정구류라고 속였다.

15일 후, 딸이 기대에 부풀어 구류소에 어머니를 맞으러 갔을 때 펑지춘이 이미 구치소로 이송됐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가족은 펑지춘을 만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단지 2024년 10월 중순에 펑지춘이 신화분국과 룽청구 검찰원의 공모로 룽청구 법원에 기소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펑지춘은 신화분국과 룽청구 검찰원, 룽청구 법원의 공모로 1년 6개월 형을 비밀리에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사일생의 박해

1. 2년간 강제노동, 선양 마싼자 수용소에서 박해받아

1999년 10월 29일, 펑지춘은 파룬궁 수련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차오양시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차오양 룽청 공안분국 경찰 황뎬샹(黃殿相)에 의해 2년간 강제노동을 당했고 선양시 마싼자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그곳에서 낮에는 15시간씩 강제로 의류 작업을 했고 작업량이 매우 많았다. 밤에는 강제 ‘교육’을 당하고 재소자들에게 구타와 욕설, 체벌을 당했으며 새벽 1시까지 ‘전향(수련 포기)’ 박해를 받았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다시 15시간의 노동을 했다.

펑지춘은 한순간 한순간 긴 2년을 견뎌냈고 2001년 10월 28일에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80세가 다 된 시아버지와 남편, 8살 난 딸이 있었다. 시아버지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펑지춘이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면 시아버지는 매우 기뻐했다. 펑지춘은 온 마음을 다해 가족을 돌봤고 온 가족이 화목했다.

귀가한 지 9일 만에 경찰이 펑지춘의 집에 침입해 계속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납치해 구류했고, 또다시 강제노동을 시키려 했으나 노동수용소에서 받아주지 않아서야 그만뒀다.

2. 네이멍구 츠펑시 경찰의 납치와 박해, 3년 강제노동 미수

2005년 5월 18일, 펑지춘이 츠펑시의 파룬궁수련자 집에 갔다가 막 나와서 얼마 가지 않아 츠펑시 쑹산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펑지춘의 현금 1만 3천 위안을 빼앗고 그녀를 쑹산 구류소에 불법 구금했다. 펑지춘이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몸이 특히 허약해졌고, 그들은 병원 의사와 간호사를 매일 구류소로 데려와 펑지춘에게 강제로 주사를 놓았으며, 가족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돈도 맡기지 못하게 했다.

이후에 경찰은 펑지춘에게 3년 강제노동을 선고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펑지춘은 후허하오터시 투무지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노동수용소 직원들은 펑지춘의 몸이 너무 약한 것을 보고 수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츠펑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인맥을 동원하고 문을 두드리며 반드시 펑지춘을 노동수용소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이후에 그들은 정말로 노동수용소가 제시한 조건에 동의해 펑지춘을 그곳에 밀어 넣었다.

펑지춘의 몸이 너무 약해서 보름 후 노동수용소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츠펑시 쑹산 공안국 경찰은 이를 기회로 펑지춘의 가족에게서 5천 위안을 갈취한 뒤에야 그녀를 풀어줬다.

3. 7년간 옥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2008년 2월 26일, 차오양시 공안국이 휴대폰 감시를 이용해 펑지춘을 또다시 납치했는데, 이유는 그녀가 시민들에게 NTD TV 수신기를 설치해줬다는 것이었다. 펑지춘을 납치하면서 경찰은 법상(法像)과 책, MP4 플레이어 4대, 휴대폰 3대, 멀티 DVD 복사기 1대, 위성수신기와 부속품을 빼앗았다. 펑지춘의 집에 있던 현금 2천 위안과 녹음기 2대도 모두 경찰이 빼앗아갔다.

펑지춘은 불법 구금된 지 4개월이 채 안 돼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2008년 6월 25일에 7년 중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졌다.

펑지춘이 감옥에 들어간 직후 45일 동안 독방에 갇혔다. 감옥경찰은 장시간 그녀를 재우지 않았고, 재소자 장리원과 인구이샹이 감옥경찰의 사주를 받아 펑지춘을 체벌하고 자주 구타와 욕설을 했으며, 각종 수단으로 괴롭히면서 수련 포기를 강요해 그녀의 정신과 육체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펑지춘은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펑지춘은 인권이 없었고, 경찰은 형사범들을 시켜 그녀를 감시하면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초과 노동을 강요해 매일 12시간씩 의류 작업을 시켰다. 그곳에서 7년간 불법 구금되면서 펑지춘이 겪은 일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펑지춘은 감옥의 괴로움과 잔혹함,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만행을 체험했고, 중공의 ‘전향’ 박해 이면의 피비린내 나는 잔혹성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됐다.

7년간의 괴로운 경험과 비인간적인 고문을 겪은 후 펑지춘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한순간 한순간 그녀는 긴 7년을 견뎌냈고, 2015년 2월 24일이 돼서야 형기가 만료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펑지춘은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반년 가까이 불법 구금됐고,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펑지춘의 근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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