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베이성 통신원) 후베이성 수이저우시의 파룬궁수련자 허줘쥔(何卓君)·렁순창(冷順昌)·펑화윈(彭華雲)·궁타이칭(龔太淸) 등 4명이 2023년 8월 수이저우시 공안국 경찰에 납치돼 현재까지 수이저우시 구치소에서 1년 이상 불법 구금됐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9월경 수이저우시 쩡두구 법원에서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다. 허줘쥔과 렁순창은 7년 6개월 형에 벌금 1만 위안, 펑화윈과 궁타이칭은 2년 형에 벌금 3천 위안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후베이성 중급 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2023년 8월 3일 밤 11시경, 파룬궁수련자 허줘쥔(여, 59세), 렁순창(남, 59세), 펑화윈(여, 72세), 궁타이칭(여, 67세)은 수이저우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와 쩡두구 공안분국의 국보, 그리고 둥청 파출소와 시청 파출소 경찰에 각각 납치돼 수이저우시 구치소에 구금됐다. 12월 4일, 이들 4명은 수이저우시 검찰원에 기소됐다. 그 과정에서 렁순창은 감옥경찰 왕보(王波)에 의해 16일 동안 손발이 연결된 수갑을 채운 채 고문을 당했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매일 연쇄 수갑을 찬 상태로 바닥을 닦도록 강요받았다. 허줘쥔과 펑화윈은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단식을 했고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이번 납치 이전, 경찰은 허줘쥔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의 이웃에 위장 요원을 잠입시켜 암 환자 행세를 하며 파룬궁 수련을 원하는 것처럼 가장해 접촉했고, 이로 인해 허줘쥔과 접촉했던 수련자들이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2024년 6월 27일, 수이저우시 쩡두구 법원에서 4명의 수련자에 대한 불법 재판이 진행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박해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고, 변호인단은 이들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중국공산당(중공)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며 4명의 파룬궁수련자에게 부당한 형을 선고했다.
이들 4명의 파룬궁수련자는 진선인(眞·善·忍)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끊임없는 박해를 받아왔다. 다음은 그들이 겪은 박해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허줘쥔, 잇따른 납치와 세뇌교육,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허줘쥔은 1965년 3월 13일 출생했다. 그는 원래 수이저우시 상점에서 일하던 평범한 직원이었으며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쩡두구 둥청에서 살았다. 1998년 5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당시 그녀는 심각한 부정맥과 여러 부인과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단속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중공이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허줘쥔은 숱한 납치와 구금을 당했다.
2000년 6월, 허줘쥔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이저우시 둥청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수이저우시 제2 구치소에서 28일간 불법 구금됐다. 구금 기간 중 전 남편까지 구치소를 찾아와 이혼 서류에 강제로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2000년 12월, 허줘쥔은 파룬궁 탄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베이징으로 민원을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에 납치돼 1년 강제노동을 처분받았다. 사양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그녀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갖은 고문에 시달렸다. 수차례 독방에 감금됐고, 구타와 전기 고문, 수면 박탈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한번은 감시자 여럿이 그녀를 이불로 덮어씌운 채 그 위에 앉아 온 힘을 다해 눌러댔고, 이로 인해 질식할 뻔했다. 거기에다 불법적으로 10개월의 형기가 추가됐다. 2002년 10월 23일 노동수용소 형기가 끝나자마자 수이저우시 공안국은 그녀를 다시 수이저우 제2 구치소로 끌고 가 한 달간 불법 감금한 채 세뇌를 강요했다. 허줘쥔은 단식을 통해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2009년 11월 23일 밤, 수이저우시 ‘610’ 주임과 국보 경찰이 갑자기 그녀의 집을 습격해 납치한 뒤 세뇌반으로 끌고 가 5일간 박해했다. 이 과정에서 집안을 뒤지고 필수 생활용품까지 모조리 빼앗아갔다. 게다가 그녀의 직장에 압력을 넣어 세뇌반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을 대신 내도록 강요했다.
2014년 3월 30일 오전, 허줘쥔이 일하던 중에 국보 경찰이 그녀를 납치해 후베이성 세뇌반으로 끌고 가 45일간 박해했다. 이 기간에 그녀는 끊임없는 모욕과 비방에 시달렸고 장시간 벌서기를 강요당했다. 한번은 국보 대장이 그녀를 심하게 구타해 입 안이 피범벅이 됐고 이가 흔들릴 정도였다. 거기에다 그녀의 얼굴에 세 번이나 침을 뱉는 모욕을 가했다.
렁순창, 3년간의 부당한 노동수용소 생활
렁순창은 1965년 11월 24일에 태어났다. 그는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톄수 방직 그룹에서 전기기사로 일했으며, 수이저우시 쩡두구에 살았다. 1997년 4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다. 건강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가정도 화목해졌다.
중공의 파룬궁 탄압이 막 시작된 1999년 9월 이후, 렁순창은 두 차례나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 탄압 중단을 호소했다가 두 번 모두 수이저우시 공안국 수사대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에서 19일씩 불법 구금됐다. 그때마다 2,000위안의 벌금까지 강요당했다.
2001년 4월 24일, 렁순창은 파룬궁 박해 실상을 알리는 진상자료를 붙이고 나눠준 죄로 국보 경찰에게 납치돼 19일간 구치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같은 해에 수이저우시 톄수 방직 그룹은 그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임금 인상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작업반 동료들에게 그를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2002년 3월 어느 날 새벽 1시가 넘어서, 수이저우시 시청 파출소 경찰 무리가 렁순창의 집으로 쳐들어와 호구 조사를 핑계로 문을 열라고 했다. 렁순창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경찰들은 문을 부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웃들이 소란을 듣고 나오자 경찰들은 마지못해 물러났다.
2002년 9월 30일, 렁순창은 자기 집 앞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10일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2002년 10월 22일 저녁 6시, 렁순창이 야간 근무를 위해 공장으로 가던 중에 국보대장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갇혔다. 납치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그가 단식으로 저항하자 구치소 측은 세 차례나 잔인하게 강제 음식물 주입을 했다. 2002년 10월 28일, 렁순창은 결국 3년의 강제노동형을 처분받았다. 후베이 덩린 노동수용소와 사양 노동수용소에서 그는 극심한 고강도 농사일에 시달렸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돼지나 개에게 주는 것보다도 못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조차 없었다. 또한 끊임없는 세뇌 교육과 장시간의 벌서기, 쪼그려앉기, 작은 의자에 앉아있기 등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 2006년 1월 16일에야 석방됐다.
펑화윈, 연이은 납치와 구금… 언니는 박해로 목숨 잃어
펑화윈은 1952년 3월에 태어나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난자오 류수탕에서 살았다. 그녀는 심각한 부정맥과 신장 질환, 저혈당, 삼차신경통 등 여러 고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1998년 4월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더니 모든 병이 사라졌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도덕적 품성이 높은 사람으로 변모했다.
중공이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을 시작하자 펑화윈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공 당국자들의 잦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2000년 7월 12일, 펑화윈이 파룬궁을 위해 수이저우시 청원 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러 갔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제2구치소에서 35일간 불법 구금됐다. 풀려난 지 채 열흘도 안 된 8월 26일에 다시 경찰에게 납치돼 같은 구치소에서 10일을 더 갇혀 있어야 했다.
2001년 5월 11일 밤 9시 30분, 난자오 파출소 경찰이 그녀의 집을 급습해 불법 수색을 자행했고, 그녀를 파출소로 끌고 가 꼬박 하루 동안 감금했다.
2002년 9월 26일 오후, 펑화윈이 자택에서 운영하던 상점에서 국보 경찰에게 납치돼 이튿날부터 9일간 구치소에 갇혔다. 이 기간에 두 차례나 강제로 음식물을 입으로 주입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2002년 10월 15일 오전, 펑화윈은 당국이 자신의 상점을 강제로 폐쇄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 ‘610’ 주임을 찾아갔다가 난자오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제2 구치소에서 37일간 감금된 채 세뇌 교육을 받았다. 그녀가 불법 구금에 항의하며 단식하자 병원으로 끌고 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세뇌반 사람들이 거기에 다량의 소금을 섞어 넣어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2002년 음력 12월 19일 오전, 펑화윈은 국보 경찰과 난자오 파출소 경찰에 의해 집에서 납치돼 사양 노동수용소에서 1년간 강제노동형을 살게 될 처지에 놓였다. 다행히 노동수용소 측이 수용을 거부하는 바람에 풀려날 수 있었다.
펑화윈의 언니 펑화란(彭華蘭)은 1946년 10월생으로, 2001년 5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심신이 크게 좋아졌다. 그러나 중공의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뒤 그녀는 경찰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가택수색, 납치, 구금 등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결국 혼자서는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2010년 10월 29일 박해를 못 이겨 세상을 떠났다.
궁타이칭이 겪은 박해의 실상
궁타이칭은 올해 67세로, 농사를 지으며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산리강진 허자뎬촌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부인과 질환과 위장병 등 여러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심각한 요추 디스크와 제5요추 골극 형성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돼 침대에 누워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고작 39세였다.
궁타이칭은 1998년 2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단속하면서 갖가지 질병이 기적처럼 사라져 건강한 사람이 됐다. 그녀는 “파룬따파가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습니다. 대법 사부님께 느끼는 이 감사한 마음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궁타이칭도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2000년 11월 3일, 철도 파출소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납치한 뒤 샹판 철도 구치소에 한 달간 불법 감금했다.
2001년 음력 12월 27일 밤 9시, 철도 파출소와 둥청 파출소 경찰이 그녀의 집을 수색하고 그녀를 둥청 파출소로 끌고 가 19시간 동안 불법 구금했다.
궁타이칭은 신발 수선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중공 당국자들은 그녀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며 신발 수선도 못하게 하고 그녀를 내쫓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가 철도 부지의 한 집을 임대해 살고 있었는데, 중공 당국자들은 그녀의 임대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파룬궁만 수련하지 않으면 집을 다시 빌려주겠다”고 협박했다.
수이저우시 구치소:
전화: 0722-3307875
후베이성 중급 법원:
법관 저우싱(周星): 0722-3580117
원문발표: 2024년 11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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