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후난성 사오양시 사오둥현 파룬궁수련자 쩡즈위안(曾志遠)이 지난 6월 6일 왕링 감옥에서 출소했다. 그는 2019년 10월 현지 경찰에 납치됐고 이후 불법적으로 5년 형을 받아 감옥에서 각종 고문과 세뇌 박해를 당했다. 출소 당시 그의 전신은 부어오르고 경직돼 있었다.
쩡즈위안의 집은 사오둥현 수이둥장진 뉴산촌에 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이후, 그는 다섯 차례 감옥에서 박해당했다. 그중 세 차례는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고, 두 차례는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구치소와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10여 년간 불법 구금돼 박해당하며 극심한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다음은 쩡즈위안이 다섯 차례 중공 감옥에서 당한 박해 사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첫 번째 불법 강제노동 1년
2001년 정월대보름이 지난 후, 쩡즈위안이 사오둥현으로 돌아와 생계를 꾸리고 있을 때 수이둥장진 파출소장 리전중(李振中)은 쩡즈위안이 진상 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사오둥 구치소로 납치했다. 한 달 후 그를 창사시 신카이푸 노동수용소로 끌고 가 1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시켰다.
신카이푸 수용소에서 10여 개월 동안 쩡즈위안은 온몸에 작은 물집이 가득 차 참을 수 없이 가려웠고, 하반신 곳곳에 궤양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 반복되는 고통을 겪었다. 2002년 출소 당시 그의 두 발바닥 앞부분은 감각을 잃어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쩡즈위안이 출소한 후에도 사오둥현 ‘610’ 주임 주사오밍(朱少明)과 수이둥장진 파출소의 리전중은 여전히 쩡즈위안의 집을 자주 찾아와 괴롭혔다.
두 번째 불법 판결 4년
2002년 11월 7일 저녁, 쩡즈위안을 포함한 7명의 수련자들이 후난성 천저우시 경찰에 납치됐다. 당시 천저우시 공안국 정보보안과장 천빙즈(陳兵志) 등은 이들 수련자들에게 고문 취조를 가했으며, 무릎을 꿇게 하거나 매달아 놓고 며칠 밤낮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쩡즈위안은 천저우 제3구치소에 구금돼 있는 동안 구타와 노역, 학대를 당했고, 6개월 동안 설사가 계속됐다. 심각할 때는 걷거나 서 있을 수도 없었고 얼굴이 변해 동생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2003년 11월 3일, 쩡즈위안은 천저우시 베이후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3월 초 후난성 츠산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2005년 3월 23일에는 다시 천저우 감옥으로 이송됐다. 천저우 감옥의 박해 수법은 매우 잔인했다.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엄격한 관리’와 고문을 가했는데, 예를 들어 수갑으로 매달기(발끝만 땅에 닿게 함), 전기 충격, 장기간 벽 보게 하기, 주먹과 발로 때리기 등이 있었다.
2006년 11월, 쩡즈위안은 부당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불법 강제노동 1년 9개월
2007년 1월 밤 11시경, 쩡즈위안이 사오둥현에서 진상 스티커를 붙이다가 고발당해 경찰에 납치됐다. 사오둥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 인즈훙(尹志紅) 등의 불법 심문을 받았지만 쩡즈위안은 협조하지 않고 서명도 하지 않았으며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나흘째 되는 날, 경찰은 10명의 죄수들을 불러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려 했다. 경찰은 그를 주먹과 발로 때렸지만 그가 쓰러지지 않자 여러 명의 죄수들을 시켜 그를 바닥에 눕히고 전기 기사용 드라이버 두 개로 그의 입을 억지로 벌려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쩡즈위안의 입은 피투성이가 됐다. 이후 경찰은 쩡즈위안에게 1년 9개월의 불법 강제노동을 선고했지만, 신카이푸 노동수용소는 그의 건강 상태를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다. 2007년 8월, 쩡즈위안이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온몸에 작은 물집이 가득 차 있었고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쩡즈위안은 집에 돌아온 후 한 달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네 번째 불법 강제노동 1년 6개월
2008년, 쩡즈위안은 광시 구이린시로 가서 생계를 꾸렸다. 2009년 8월 31일, 쩡즈위안이 구이린시 안신저우의 한 PC방에서 자료를 다운로드하다가 PC방 관리인의 모함으로 구이린시 국가안전지원대와 안신저우 파출소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쩡즈위안의 아내 리페이옌(李飛燕)에게 전화를 걸어 쩡즈위안이 폭행당해 입원했다며 신분증을 갖고 오라고 거짓말을 했고, 결국 리페이옌도 경찰에 납치됐다.
구이린시 제3구치소에서 리페이옌은 한 달간 구금돼 박해를 당했다. 쩡즈위안은 26일간 구금된 후 1년 6개월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광시 제1노동수용소에서 쩡즈위안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지만 강제로 병원에 끌려가 주사를 맞았다. 그는 죄수들의 감시를 받으며 장시간 세뇌 박해를 당했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과 책을 보도록 강요받았고, 식사와 화장실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잠을 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2011년 2월, 쩡즈위안은 세 번째 불법 강제노동을 마쳤다.
다섯 번째 불법 판결 5년
2019년 10월 6일, 쩡즈위안과 그의 아내 리페이옌은 사오둥시 국보 경찰의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쩡즈위안은 사오둥시 공안국으로 납치된 후 사오둥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돼 박해당했고, 11월 14일 불법 체포됐다. 리페이옌은 사오둥 구치소에 15일간 구금돼 박해를 당했고, 10월 22일에는 사오양 양자룽 제1구치소로 끌려가 계속 구금돼 박해당했다. 11월 14일 ‘처분보류’로 집으로 돌아왔다.
2020년 5월 12일, 쩡즈위안은 사오둥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오양시 중급법원에 상소했지만 불법적으로 원심이 유지됐다. 9월 말, 쩡즈위안은 러우디 감옥으로 끌려갔고, 같은 해 10월 왕링 감옥으로 이송됐다.
왕링 감옥에서 쩡즈위안은 각종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했다. 예를 들어 장시간 벌을 서거나 앉아 있어야 했고, 매일 세뇌 영상과 소위 수업을 보도록 강요받았다. 그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심장 박동수는 분당 135회였고, 허벅지에 힘이 없어 걸을 때마다 벽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 죄수와 간수들은 그에 대한 박해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수면 시간을 줄였고, 때로는 2~3시간밖에 자지 못하게 했으며, 30분마다 깨웠다. 죄수들과 간수들은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으면 그를 때리거나 욕했고, 온갖 더러운 말과 거친 말을 서슴지 않았으며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24년 6월 6일, 쩡즈위안이 왕링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 그의 온몸은 부어오르고 굳어 있었으며 손발이 둔해져 있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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