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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들은 말 “혈액형이 특수해서 맞지 않아”

랴오닝성 하이청시 파룬궁수련자 한둥잉의 16년 전 박해 경험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하이청시 파룬궁수련자 한둥잉(韓東營·남·52)은 하이청시 중샤오전 첸샤오춘 농민이다. 16년 전, 한둥잉은 하이청시 경찰에 납치돼 5일 동안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경찰이 전기봉으로 머리를 전기 고문해 장애가 남았고, 빈번한 경련과 발작 시 이를 악물고 눈이 멍해지며 쇼크 상태에 빠졌다. 그 기간에 그는 강제로 혈액을 뽑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혈액형이 특수해서 맞지 않아.”

명혜망 자료에 따르면, 중공은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곳곳에서 미친 듯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체포했다. 당시 하이청시에서도 여러 명의 수련자들이 납치됐다.

2008년 6월 27일 오후 2시경, 하이청시 뉴좡 파출소 소장 롄샤오하이(連曉海), 장청(張騁) 등 4~5명의 경찰이 파룬궁수련자 톈바오웨이(田寶偉)의 집에 침입했다. 마침 한둥잉이 톈바오웨이를 찾아와 난방기를 수리하고 있었는데, 경찰은 아무 말도 없이 한둥잉을 납치했다. 그리고 전화로 중샤오전 파출소 경찰에게 연락해 한둥잉의 집을 수색하게 했다. 경찰은 파룬궁 서적, 컴퓨터, 프린터, 진상 현수막, 공명등(孔明燈, 작은 열기구) 등의 물품을 압수했다. 하이청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는 공을 세우고 포상을 받으려고 이 사건을 올림픽과 연계시켜 보고했고, 중공 공안부는 이를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기한 내 해결을 지시했다.

하이청 국보 경찰은 한둥잉에게 고문 취조를 가했다. 며칠 밤을 잠들지 못하게 했고 거의 매일 전기봉으로 그를 고문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식기와 머리까지 전기 고문을 가했다. 또한 그에게 매달기, 호랑이 의자, 시체 침대 등의 고문을 가했다. 한번은 경찰이 전기봉으로 그의 백회혈을 쇼크시켜 의식을 잃게 했고 그는 3일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둥잉은 거의 3개월 동안 고문을 당했다. 당시 구치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한둥잉이 항상 검은 두건을 쓰고 있었고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 전기봉 고문
酷刑演示:死人床(呈“大”字型绑在抻床上)
고문 재연: 시체 침대[‘대(大)’ 자 모양으로 침대에 묶임]

이런 심각한 박해 속에서 한둥잉은 자주 의식을 잃었다. 이 기간 국보는 한둥잉의 가족에게 7~8만 위안을 갈취했다. 한둥잉은 나중에 1년 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집에 돌아온 후 한둥잉은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 시 이를 악물고 경련을 일으키며 눈이 멍해지고 쇼크 상태에 빠졌는데, 이는 그가 고문을 당한 후 남은 후유증이었다.

다음은 한둥잉이 직접 겪은 박해 경험의 일부다.

2008년, 나는 랴오닝성 하이청시 공안국 국보 경찰에게 납치돼 머리에 전기봉 고문을 당했다. 날 박해한 주요 책임자는 양쑹(楊松), 리하이화(李海華), 가오훙옌(高紅岩)이다.

당시 가오훙옌이 7~8명의 국보 경찰을 이끌고 내 양손을 등 뒤로 수갑을 채웠고 양발에도 수갑을 채웠다. 손과 발 사이의 수갑은 작은 방 한가운데 있는 고리에 연결됐다. 그 자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었다. 경찰은 나에게 속옷 하나만 입게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졸려하면 찬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약 3~4일 후, 그들은 내 피를 한 관 뽑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혈액형이 특수해서 맞지 않아.”

어느 날 한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기다려 봐, 반드시 너를 전기 고문해서 경련을 일으키게 할 거야.” 그날 나는 눈을 가리고 철제 의자에 묶였다. 손발이 모두 묶여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경찰은 전기봉으로 내 배, 팔, 허벅지 안쪽, 무릎 관절을 전기 고문했고, 마지막으로 생식기와 머리를 고문했다. 머리를 전기 고문할 때 나는 번쩍이는 금빛 한 줄기가 보이고 정신을 잃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3일 후 한밤중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몸에는 4개의 링거가 꽂혀 있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3~4일 동안 의식불명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정말 비양심적이네요. 당신 머리와 생식기를 전기로 망가뜨렸어요.”

경찰은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날 구치소로 보냈다. 구치소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 지경인데 곧 죽을 것 같군. 누구 책임이지?”라고 말했다. 가오훙옌은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국보는 구치소에 책임 서약서를 써서 “죽으면 ‘610’의 책임”이라고 했고, 그제서야 구치소가 날 받아들였다. 구치소에서 첫 날 밤에 난 경련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 같은 감방에 갇힌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경련하는 병이 있어요?” 나는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당신 손발이 마구 움직이고 입에서 피가 나왔어요. 이를 악물어서 혀를 깨문 거예요.”

구치소에서 나와 집에 돌아온 첫날 밤에도 나는 또 경련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었다. 당시 가족들은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 후로 일정 기간마다 나는 발작을 일으켰다. 매번 발작 후에는 기억이 전혀 없었고 길을 걸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매번 보름 정도 지나야 회복됐다. 나는 밖에 나가 일자리를 찾았지만 아무도 날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날까 봐 책임지기를 두려워한 것이다. 약 1년이 지나자 아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요구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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