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후난성 웨양시 파룬궁수련자 탕융치(湯永琪·73)가 중공의 박해로 지난 6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수차례 납치당하고 두 차례 불법 판결을 받으며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박해를 당했다. 2013년 하반기부터는 건강이 나빠져 작은 자극에도 눈의 초점을 잃고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심할 때는 입에서 거품을 토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렸다.
탕융치는 1951년생 한족이다. 그는 1996년 6월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을 엄격히 지켰고, 명예와 이익을 내려놓으며 도덕성을 높였다. 수십 년간 앓던 위장병이 나아져 심신에 큰 이로움을 얻었다.
1. 베이징에서 민원 넣다 납치돼 부당한 2년 형 받아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패거리는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을 잔인하게 박해하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거짓말로 비방했다. 같은 해 10월, 탕융치와 몇몇 수련자들은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로 했다. 천안문 광장에 도착해 광장 경찰이 파룬궁 수련 여부를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자 곧바로 광장 파출소로 납치됐고, 정오에 창핑(昌平) 축구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납치된 파룬궁수련자는 천 명이 넘었고, 중공은 총을 든 군대를 동원해 그들을 포위했다. 밤 12시가 되자 경찰은 수련자들을 50명씩 차에 태워 베이징 시내 각 구치소로 이송해 불법 감금했다. 탕융치는 미윈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경찰은 그가 가진 현금 3,800위안을 강탈했다. 또한 허리띠 속에 숨겨둔 400위안도 발견해 빼앗았다.
일주일 후 탕융치는 웨양 경찰에 의해 웨양으로 강제 송환돼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웨양시 러우(樓)구 공안분국의 자오즈후(趙治胡)에게 불법 심문을 받았는데, 자오는 형을 선고하겠다며 협박했고 며칠 후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은 그의 아들을 협박하며 “네 아버지는 중형을 선고받을 거야”라고 말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접대와 선물에 1만 위안 이상을 쓰고서야 공허한 2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왜 공허한 2년 집행유예라고 하는가? 경찰은 아들이 뇌물을 주자 탕융치를 6개월간 불법 구금한 후 집으로 돌려보내 가족에게 헛된 기쁨을 줬다. 하지만 열흘 남짓 지난 어느 밤, 러우구 국보와 난후(南湖) 파출소 등 일당은 탕융치를 난후 파출소로 불러내 다시 감금하겠다고 했다. 그는 5월 13일 웨양 제1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당시 법원에서 온 사람이 “수감해야 한다”고 말했고, 탕융치가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들은 “우리가 수감하고 싶으면 수감하는 것이지, 이유는 필요 없다”고 했다. 일주일 후 탕융치는 웨양시 젠신 감옥으로 이송됐다.
탕융치는 젠신 감옥 제10대대에 수감된 동안 비인간적인 강제노역 박해를 당했다.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해 밤 12시까지 노역을 해야 했고, 때로는 새벽 2시까지 일하고 4시가 넘어 다시 기상해야 했다. 이런 박해가 100일 이상 계속된 후 위안장츠산 감옥으로 이송됐다가 2001년 7월 말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2. 다시 불법 5년 형 선고받아
설을 10일 앞둔 2002년 1월 30일, 러우구 공안분국 국보대대장 리융페이(李勇飛)와 난후 파출소의 황(黃) 정치지도원이 공안 수십 명을 이끌고 탕융치의 집에 난입해 그와 아내 리위양(李雨陽)을 납치해 강제로 구치소에 수감했다. 이후 쥔산 공안분국의 성이 저우(周)라는 정치안전보위 대대장이 그를 불법 심문했다(이 사람의 고향은 마오톈진이다). 탕융치가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을 잡아갑니까?”라고 묻자 저우가 말했다. “너희 파룬궁수련자들은 내가 몇 년 형이든 마음대로 선고할 수 있어.” 결국 그는 또다시 불법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 불법 감금된 동안 경찰은 탕융치에게 연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구치소 경찰과 부소장 저우완중(周萬忠)은 그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수갑으로 때리고 하룻밤 동안 수갑을 채웠다. 탕융치는 2003년 8월에 진스 감옥으로 보내져 박해받았고, 2007년 1월 30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3. 장기간 지속된 박해
2008년 6월 2일, 올림픽 횃불이 웨양을 지날 때 탕융치는 외지에서 일했다. 러우구 국보대대장과 진어(金鄂) 파출소 공안 무리는 그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다가 다음 날 아침 탕융치와 아내가 외출할 때 그들을 납치해 후빈 구류소에 8일간 불법 감금했다. 경찰은 또 그의 집에 있던 모든 파룬궁 서적, 연공 음악 테이프, 녹음기, 380위안짜리 MP4 플레이어를 강탈했다.
2017년 8월 1일 저녁 8시경, 웨양시 러우구 진어 파출소 경찰 3명(사복 차림)이 탕융치와 리위양 부부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 중 한 명은 리(李) 서기가 휴대폰으로 탕융치, 리위양 부부의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부부가 거부하자 그는 “사진을 찍어야지, 안 찍으면 우리가 안 온 것이 되고, 우리가 일을 제대로 안 했다고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탕융치와 리위양이 말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서 여러분이 할 일이 없어요. 장쩌민이 시킨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면 여러분에게 좋지 않아요.”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장쩌민은 확실히 좋은 일을 안 해.” 탕융치는 이어서 자신의 가족이 수차례 박해받은 경험을 이야기했고, 경찰들은 30분 정도 머물다가 떠났다.
2021년 11월 8일 오후 2시경, 웨양시 진어산 주민센터와 ‘상부’ 등에서 온 3명이 탕융치의 집 아래층으로 찾아왔다. 류씨 성을 가진 남자가 탕융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있는지 물었고, 상부에서 온 두 사람이 집을 방문하려 한다고 말했다. 탕융치의 아내가 자신들이 밖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며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들이 이미 집 아래에 있다고 했다. 탕융치의 아내가 빨리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그는 저녁 8시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들은 저녁에 다시 오지 않았다.
탕융치는 수년간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거대한 손실과 고통을 겪었다. 그는 2013년 하반기부터 건강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해 낮이든 밤이든, 어디에 있든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눈의 초점을 잃고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간질 증상). 심할 때는 입에서 거품을 토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렸다. 때때로 하루에 4~5번씩 발작을 일으켰고, 가끔은 길이나 화장실에서도 발작을 일으켰다. 탕융치는 2024년 음력 5월 14일, 웨양시의 한 요양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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