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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야금지질탐사국 파룬궁수련자 왕슈화, 박해 중 사망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타이안시 파룬궁수련자 왕슈화(王淑華·여)는 산둥 야금지질탐사국 수문공정지질팀(타이안시 주재) 퇴직 직원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과 선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11년간 유랑 생활을 하게 됐다.

그 기간 그녀는 악인들의 모욕과 박해를 당했고 독극물 주사를 맞았다. 이후 고통 속에서 살다가 2013년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집에서 마비 상태로 지냈으며 온몸이 뒤틀리고 다리가 경련으로 변형됐다. 2024년 8월 14일 6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재연: 독극물 주사

1999년 7월 23일, 타이안시 타이산구 공안분국 차이위안파출소 지도원 왕 모씨가 경찰들을 이끌고 아무런 절차도 없이 왕슈화의 집을 불법 수색했다. 그녀와 남편이 법공부와 수련에 사용하던 대법 서적과 비디오테이프, 오디오테이프 등을 강탈해 갔고 집에 있던 생활비 수천 위안도 빼앗아 갔다. 이후 그녀와 남편 저우촨(周傳)은 직장 호텔에 강제로 끌려가 3일간 불법 구금됐다. 이 기간 24시간 감시를 받았고 경찰의 강압 심문을 당했다.

1999년 7월 23일 이후 왕슈화와 남편 저우촨은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 집에서 24시간 감시를 받았고 외출 시 휴가를 신청해야 했으며 매일 파출소에 행적을 보고해야 했다. 왕슈화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난에 있는 성위원회에 가서 상황을 호소했다. 그러나 지난(濟南)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가로막혀 타이안으로 강제 송환됐고 체육관에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오후에야 직장 상사들이 데려갈 수 있었다.

2000년 1월 23일, 그녀의 남편 저우촨은 봉쇄를 뚫고 베이징에 가서 직접 상황을 호소했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25일, 저우촨은 베이징 경찰에 납치됐고 이후 타이안시 공안국 베이징 주재 사무소 경찰들이 경찰차로 그를 고향으로 압송해 구치소에 30일간 불법 구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우촨은 다시 경찰과 직장 서기가 집까지 찾아와 괴롭히는 바람에 다쭝커우 윈하이 휴양촌(호텔) ‘전향반’에 강제로 끌려가 세뇌를 당했다. 결국 나올 때는 3천여 위안을 갈취당했고 직장에서는 이를 빌미로 1년치 임금을 압류했다.

그 이후로 왕슈화와 저우촨은 경찰과 직장 관계자들의 잦은 괴롭힘에 시달렸고 집에서 편히 쉴 날이 없었으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2000년 3월 초, 그녀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 기간 경찰은 세 번이나 그들을 찾아왔고 그들은 여러 차례 이사를 해야 했다. 그들은 후베이, 산시, 허베이 등지를 전전하며 유랑 생활을 했다.

2006년 2월 26일 오전, 허베이성 싼허시 경찰이 갑자기 왕슈화가 임시로 세 들어 살던 집에 들이닥쳐 그녀의 가족 5명(그녀와 남편, 아들과 며느리, 3살 된 손자)을 강제로 현지 파출소로 끌고 갔다가 나중에 싼허시 구치소로 옮겨 불법 구금했다. 경찰은 그녀 집의 대법 서적과 자료, 현금, 인쇄기 등 10만 위안(약 1900만 원)에 가까운 재산을 불법으로 빼앗아 갔고 모두 몰수했다. 동시에 이 사건을 이른바 2006년 싼허시 제1대형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녀의 남편 저우촨은 구치소에 10개월 넘게 불법 구금되어 죄수들의 구타와 욕설, 모욕을 겪었다. 결국 싼허시 법원에서 3년 6개월의 부당한 형을 선고받아 허베이성 탕산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출소 시에는 또 아무런 이유 없이 4개월이 더 추가됐다.

왕슈화는 불법 구금 기간 24시간 전담 감시를 받았고 인신공격과 강제 세뇌를 당해 심신이 심하게 망가졌다. 평소 혈압이 190였는데 최고 290까지 올라갔고 매일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들은 그녀가 전향하지 않자 상급 기관인 랑팡시 법제교육센터로 압송해 더욱 심한 박해를 가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은 그녀에게 파란색 약물이 든 독극물 주사를 놓았고 이로 인해 그녀는 즉시 심각한 경련을 일으켰으며 매일 구역질과 구토에 시달렸다. 그런 상태에서도 매일 2~3명이 그녀를 강제로 세뇌했고 24시간 감시했다.

싼허시에서 랑팡을 거쳐 다시 싼허로 돌아오기까지, 왕슈화는 총 3개월 넘게 박해를 당했다. 그녀가 전향하지 않자 악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가족들을 불러 그녀를 임대한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현지 촌민위원회가 지방정부와 협력해 그녀를 계속 박해했다. 전기와 물을 끊었고 임대 계약 기간이 60년이나 남은 그들의 임대 주택을 강제로 회수해 그녀와 아들, 며느리, 어린 손자를 쫓아냈다. 그들은 다시 한번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기간 경찰은 그녀의 아들 저우충린(周叢林)도 강제로 불법 구금했다. 그는 구치소에서 경찰과 용의자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온몸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심하게 부어올랐다. 그녀의 아들은 수련을 하지 않았기에 한 달 구금 후 풀려났다. 며느리가 그를 데리러 갔다가 이 참상을 보고 법원에 가서 구치소의 악행을 고발하려 했다. 구치소장 왕 모씨는 책임이 두려웠는지 사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직접 며느리에게 2,500위안을 건네 보상금 삼아 일을 마무리 지었다.

2023년 2월 28일, 왕슈화의 남편 저우촨이 제938기 《명혜주보》를 배포해 사람들을 구하려다 타이안시 다이웨구 공안분국 국보대대 부대장 쉬충쥔(許崇軍)과 경찰 자오펑(趙峰), 그리고 저우뎬 파출소 경찰들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모든 진상 자료를 빼앗겼고 파출소로 끌려가 1년간 ‘처분보류’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 그가 이른바 ‘반성문’ 같은 것을 쓰기를 거부하자 국보는 그를 페이청시 검찰원에 날조해 고발했고, 페이청시 법원에서 1년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5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하지만 구치소측은 건강상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기간 왕슈화는 여러 차례 놀라는 일을 겪었다. 게다가 남편이 파출소에 끌려가고 불법 재판을 받을 때 그녀 혼자 집에 남겨져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져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고, 결국 2024년 8월 14일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인력자원사회보장국은 그녀의 남편 저우촨의 연금을 압류했고(지금까지 한 푼도 주지 않고 있음), 아들은 교통사고로 다치고 직장도 구하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왕슈화가 세상을 떠날 때쯤 집에는 500위안밖에 없어 시신 화장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집에 있는 삼륜차로 그녀의 시신을 고향에 가서 장사 지내려 했다. 한 친척이 이 소식을 듣고 1만 위안을 빌려주어 그제야 왕슈화의 시신을 화장할 수 있었다. 매장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묘지 위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남편은 그녀의 마음속 응어리를 알고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더니 비가 그쳤다.

왕슈화의 유골이 흙에 묻힌 후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자정, 아들이 막 잠이 들었을 때 갑자기 20살 모습의 어머니가 금빛 가사를 두르고 8개의 금빛 연꽃 자리에 앉아 훨훨 날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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