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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 후 10여 가지 병 완치된 장수친, 부당한 6년형 선고받아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진저우시 61세 파룬궁수련자 장수친(張秀琴)이 지난 5월 10일 진저우시 하급 행정구역인 링하이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1만 2천 위안을 강제 징수당했다. 장수친은 상소했으나 중급법원은 불법적으로 원심을 유지했다.

장수친은 8월 18일에서 21일 사이에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당하고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장수친의 생명을 구하다

장수친은 1963년 10월 25일생으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인생 중에서도 재난과 고난이 많았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다.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과 이혼을 강요당했고, 빈손으로 쫓겨난 그녀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살았다. 가장 힘들 때는 아이와 함께 기찻길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려 했다. 아마도 운명의 섭리였을까, 그녀는 온몸의 병통을 안고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

장수친의 어머니 차이구이펀(蔡桂芬)도 ‘만성 환자’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평생 약에 의지해 살았으며 여름에도 솜옷을 입어야 했다. 1994년, 차이구이펀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온몸의 병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을 장수친도 목격했다. 1997년, 장수친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수년간 괴롭혔던 10여 가지 질병이 사라졌다. 심장병, 어지럼증, 좌골신경통, 위장병, 류마티스, 부인과 질환, 뇌 질환, 오십견, 경추병, 피부병, 만성 불면증 등 질병이 빠르게 사라졌다. 대법은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고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이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수련자들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고, 장수친은 수련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악명 높은 랴오닝성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당했다.

납치당하고 부당한 6년형 선고 받아

2024년 1월 17일, 장수친은 진저우시 톈둥 시장 근처의 밍싱 아파트에서 진저우시 공안국 구타분국 경찰의 미행과 납치, 가택수색을 당한 후 진저우시 여자 구치소로 끌려가 감금됐다.

장수친은 구타분국에 의해 링하이시 검찰원으로 이송됐고, 이후 링하이시 검찰원은 그녀를 다시 링하이시 법원으로 이송했다.

2024년 4월 11일 오전 10시 35분, 장수친은 링하이시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그녀의 변호사와 가족 변호인이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무죄 변론을 했으며 장수친도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다. 정오 12시, 장수친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치는 가운데 불법 재판이 급하게 마무리됐고, 그 자리에서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

5월 10일, 장수친은 링하이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1만 2천 위안의 벌금을 강제 징수당했다. 그녀는 상소했으나 7월 2일 진저우시 중급법원은 부당하게 원심을 유지했다.

다음은 그녀가 예전에 중공의 박해를 받은 상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마싼자 노동수용소 여자 제2소에서 당한 박해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2000년 6월 26일, 장수친은 베이징으로 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다 진저우역에서 납치돼 진톄 구치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7월 12일, 다시 진저우시 제2구치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고, 7월 21일에는 랴오닝성 마싼자 노동수용소 여자 제2소로 끌려가 2년간 불법 노동교육을 받았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장수친은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자 제2소 1대대장 왕하이핑(王海平)의 지시로 죄수들에게 공격을 당했고, 처음 3일 밤 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다. 이어진 3일간 장수친은 쪼그려 앉기 벌을 받았다. 7일째 되는 날, ‘쓰팡(四防)'(죄수로 이뤄진 감시원) 양젠훙(楊建紅)이 장수친에게 말했다. “2일의 시간을 줄 테니 그래도 전향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일주일간의 고문으로 장수친은 눈이 풀리고 심신이 지쳤지만 여전히 ‘결별서’ 쓰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 양젠훙은 장수친을 ‘쓰팡’ 방으로 데려가 ‘보증서’를 쓰라고 명령했다. 장수친이 거부하자 쪼그려 앉기 벌을 받았다. 저녁 7시경, 장수친이 점점 쪼그려 앉기 힘들어하자 양젠훙은 큰 드라이버 손잡이로 그녀를 2시간 가까이 때렸다. 장수친의 종아리부터 시작해 엉덩이, 팔까지 모두 검붉은 멍이 들었다. 양젠훙은 말했다. “오늘 쓰든 안 쓰든 네가 쓰게 될 거야. 안 쓰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전기봉을 쓸 거야.“

장수친은 고문을 당한 후 걸을 수 없었고, 다리가 굳어 심하게 부었으며, 팔이 굳어 물건을 잡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갈 때는 벽을 붙잡아야 했고 대소변을 볼 때 쪼그려 앉을 수 없었다. 40여 일이 지난 후에도 상처 부위가 여전히 매우 뻣뻣했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도: 구타

마싼자 노동수용소 여자 제2소 1대대에서 장수친은 정신적으로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다.

박해 속에서 유랑 생활 강요당해

장수친은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후에도 현지 경찰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고, 세뇌반으로 끌려가 계속해서 박해당할 뻔했다. 장수친은 유랑 생활을 강요당했고, 직장에서도 그녀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부당하게 해고했다. 장수친은 여기저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2010년 2월 8일, 경찰은 장수친을 납치하려고 그녀 집에 침입해 가택수색을 실시하고 그녀의 파룬궁 서적과 컴퓨터 등 개인 물품을 빼앗아갔다. 마침 당시 장수친은 집에 없었고 그녀의 부모님만 집에 계셨다.

경찰은 또 장수친의 딸 집으로 쳐들어가 딸과 사위를 공안국으로 납치해 10시간가량 불법 심문한 후에야 그들 부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로 인해 장수친은 다시 한번 유랑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제 60대가 된 장수친은 중공의 박해를 겪은 후 다시 한번 자유를 잃고 링하이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1만 2천 위안이라는 거액을 강제 징수당했다. 현재 장수친은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받고 있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27/4812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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