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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여자감옥서 박해당하는 궁루이핑의 근황

[명혜망](베이징 통신원) 최근 베이징 여자감옥에 구금된 파룬궁수련자 궁루이핑(龔瑞平)이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해 고문으로 반신이 마비됐고, 감옥 병원으로 이송된 후에도 계속 박해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궁루이핑은 수련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총 14년 9개월의 징역과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국내외 정의로운 인사들의 관심과 구원 활동을 요청드린다.

파룬따파 수련으로 심신에 이익 얻어

1965년 10월 30일생으로 올해 59세인 궁루이핑은 베이징시 핑구구 다화산 초등학교의 우수 교사였고, 집은 베이징 핑구구 류자뎬진 류자뎬촌에 있다.

궁루이핑이 파룬궁을 배우기 전, 부부 사이에는 늘 다툼이 있었고 때로는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며 몰래 울곤 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이혼을 생각했지만 아이에게 미련이 남아 헤어지지 못했다.

궁루이핑이 가장 고통스럽게 살았던 1996년 5월, 그녀는 핑구 소년과학기술센터 강당에서 파룬궁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봤다. 3일간 본 후, 그녀 몸에서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에 그녀가 앓던 홧병, 숨가쁨, 신경쇠약, 불면증, 산후 요통, 그리고 왼손을 냉수에 담글 수 없고, 냉수에 닿으면 얼얼해지는 등의 증상이 전부 사라졌고, 그때부터 병이 없고 가벼운 몸을 갖게 됐다.

궁루이핑은 파룬궁을 배운 후 활력이 몹시 왕성해져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더는 남편과 다투지 않았다. 말다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따지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으며, 시어머니와도 주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궁루이핑의 변화를 본 남편은 그녀의 수련을 강력히 지지했다. 늘 다투고 때리고 거의 갈라질 뻔했던 가정이 원만하고 화목해졌다.

대법이 전파되어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이익을 얻었다. 이를 극도로 두려워한 중공은 1999년 7월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는 정치 운동을 시작했다. 궁루이핑은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교직에서 불법적인 해고를 당하고, 강제 이혼을 당하고, 여러 차례 납치되고, 세 차례에 걸쳐 세뇌반에 갇히고, 두 차례의 강제노동과 두 차례의 불법 판결을 당하면서 총 14년 9개월 동안 감금돼 온갖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다음은 궁루이핑이 직접 진술한 박해 내용이다.

세뇌반과 강제노동용소서 학대로 정신 이상 겪어

2001년 7월 2일, 현(縣) 교육국과 현 공안국의 20여 명이 나를 집에서 강제로 끌어내 ‘베이징 법제훈련센터(세뇌반)’로 납치했다. 다음날 그들은 날 베이징 다싱 신안 노동수용소로 납치했다. (이후 낮에는 신안 노동수용소, 밤에는 베이징 법제훈련센터에 감금했다.)

내가 노동수용소 문에 들어서자마자 수용소 수감자가 내 뺨을 힘껏 때렸고 이어서 그녀는 현 교육국에서 보낸 두 명의 교사 왕치잉, 리추이란과 함께 화장지로 내 입을 막은 후, 내 코를 쥐고 눈을 가려 숨을 못 쉬게 했다. 나는 눈앞이 깜깜하고 몸이 점점 늘어졌다. 그때 누군가가 “안돼, 손 놔”라고 말하는 것이 희미하게 들리면서 코를 잡은 손이 풀렸고, 나는 깊은 숨을 쉬면서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사람도 손을 뗐지만 입은 여전히 단단히 막혀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입에 화장지를 채워넣고 손으로 입을 막은 사람이 왕치잉임을 똑똑히 봤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비열한 행동을 보았다는 것을 깨닫자 즉시 한 손으로 책 한 권을 집어 내 시야를 가렸다.

이어서 왕치잉은 독한 수단을 바꿔 악랄하게도 내 머리카락을 잡아 머리를 벽에 ‘쾅, 쾅, 쾅’ 박은 다음, 주먹으로 계속 내 얼굴을 때렸다. 나는 눈앞에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의식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깨어났을 때 왕치잉이 내 두 뺨을 손으로 잡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였다. “당신 남편은 당신을 원치 않고 공안국에서 해고됐어. 알아?” 당시 나는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기억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여긴 어디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중에 나는 어렴풋이 내가 큰소리로 뭔가 외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나는 내가 실성했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언제인지 모르게 신안 노동수용소를 떠났는데, 그들에 의해 땅바닥에 끌리며 ‘베이징 법제훈련센터’로 돌아가는 차에 태워지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다. 나중에 깨어보니 양쪽 무릎이 모두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치마도 닳아서 큰 구멍이 많이 나 있었다. ‘베이징 법제훈련센터’에 도착한 후, 여러 사람이 내가 감금된 방의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고, 내 얼굴이 구타로 멍들고 부은 것이 보였다. 왼쪽 눈은 부어서 얇은 틈만 있었고 오른쪽 눈두덩은 검은 보라색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온몸에 통증이었다. ‘베이징 법제훈련센터’의 양 씨 과장, 핑구구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주임 왕훙징, 졸개 왕치잉, 리추이란 등은 계속해서 날 해치려 음모를 꾸몄다. 졸개인 왕치잉과 리추이란은 다짜고짜 날 침대에서 끌어내려 심하게 구타했다. 온몸에 상처투성이었던 내가 다시 마수에 걸려드니 정말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극심한 고통을 참았다. 왕치잉은 내가 굴복하지 않자 뭔가를 들고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당시 나는 머리가 아찔하고 눈이 깜깜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왕치잉은 또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내 귀에 대고 엎드려 소리를 질렀다. 내가 굴복하지 않자 왕치잉과 리추이란은 함께 소곤거리며 또 다른 사악한 계획을 세웠다. 왕치잉은 냉수 한 대야를 가져와 내 얼굴에 부었고 나는 사레가 들려 몸서리를 쳤다. 귀신에 홀린 왕치잉은 기뻐하며 소리쳤다. “이 방법이 그래도 정말 괜찮네. 이 방법이 그래도 정말 괜찮아.” 그녀는 냉수를 여러 차례 부었고 당시 나는 두 사람의 학대로 온몸이 상처였고 물에 젖었다.

나는 나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신앙 자유를 박탈하며 신체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세뇌반에 들어가자마자 단식했고, 그들은 나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다. 그들은 음식을 주입할 때 긴 호스를 콧구멍에서 위장으로 삽입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음식을 주입하면서 몰래 설사약을 넣어 하루에 10여 차례 설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왕훙징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음식을 주입할 때 설사약을 넣어서 하루종일 설사하게 하네요.” 왕훙징이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머리가 어쩜 이렇게 좋지?” 내가 그들의 행위를 폭로했지만 그들은 설사약 넣기를 전혀 멈추지 않았다.

며칠 후, 그들은 다시 나를 신안 노동수용소로 보내 신앙 포기를 강요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한 감옥경찰이 리추이란 등에게 말했다. “오늘 위에서 검사를 하러 오니까 그녀를 건물 안에 두지 마세요(그들은 내가 온몸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검사관이 날 보게 될 경우 자신들의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한 것이다).” 신안 수용소의 한 남자 경찰은 화를 내며 리추이란 등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그녀를 도로 데려가세요. 그녀가 이렇게 나쁜 일을 당했는데, 당신들은 더 이상 상처를 입히지 마세요. 누워 있으면 안 된다면 눕히지 마세요.”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더는 들리지 않았고 왕훙징이 계속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더욱 비열하고 사악한 수단으로 날 박해할 것임을 알았다.

​그들이 나를 다시 ‘베이징 법제훈련센터’로 데려간 후, 왕훙징 등은 흉악하게 음식을 주입하려 했다. 그중 5~6명은 날 강제로 의자에 앉히고 코에 튜브를 힘껏 쑤셔넣었다. 5~6차례 삽입했지만 내가 가슴이 답답하고 메스꺼워 튜브를 토해냈다. 누군가가 “삽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양 씨는 독살스럽게 “콧구멍을 바꿔”라고 말했다. 그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몇 번이나 삽입해 날 초죽음으로 만들었고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그때 나는 교육국에서 파견된 샤오한이 괴로워하며 “온통 피예요. 넣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 사람이 재빨리 종이로 피를 덮으며 낮은 소리로 독살스럽게 말했다. “말하지 마!” 그들은 다시 계속해서 내 콧구멍에 튜브를 삽입했고, 대략 8~9번 시도하고서야 넣을 수 있었다. 오늘 음식 주입이 이전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인간성을 잃었고 내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

주입을 완료한 후, 내가 숨이 차서 힘없이 침대에 누워 가래와 피를 토해냈지만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한 남자가 독살스럽게 “토한다! 다 토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희미하게 들었다. 당시 나는 ‘방금 당신들이 하마터면 날 죽일 뻔했는데, 지금 내가 한숨을 돌리고 다시 토할 거라며 반복해서 그 짓을 벌이려고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토해내면 그들이 다시 주입해서 날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국에서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강제 주입으로 죽임을 당했고, 나와 같은 마을의 궁바오화가 바로 핑구 구치소에서 강제 음식 주입으로 사망했다.

다음 날 정오, 나는 인성을 상실한 채 사람을 죽이려는 강제 음식 주입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식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밥을 먹자마자 왕훙징, 리추이란, 양 과장 등은 불같이 화를 냈다. 리추이란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더니 왕훙징에게 “우리가 이렇게 수동적이어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이 날 죽이려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니 다시 악독한 수단을 쓰려고 하는구나.’ 과연 오후가 되자 왕훙징과 양 과장이 살기등등하게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와 나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나는 그들이 날 살인멸구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안 돼, 내가 아직 그들의 사악함을 폭로하지 못했으니 그들이 날 죽이도록 놔둘 수 없어!’ 그때 왕치잉도 들어왔다. 왕훙징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궁루이핑, 네 눈에서 보여. 넌 지금 이미 우리한테 애걸하고 있어”라고 말한 후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한마디는 나에게 사악을 대할 때 그들을 정시해야 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 나는 두 눈으로 두 악인을 정시했다. 마음속으로는 구결을 외우며 정념을 발했고, 나중에는 집중해 ‘악을 제거한다!’라는 생각을 내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안절부절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왕훙징은 양 과장에게 눈빛을 보냈고 양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이 여전히 날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두 눈으로 양 씨를 주시했고 정념으로 그를 직시하며 계속해서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했다. 양 씨는 손을 떨며 불안하게 손을 비비면서도 태연한 척하며 “궁루이핑, 무섭지?”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안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러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궁루이핑, 당신은 왜 파룬궁을 배워?” 내가 말했다. “나는 파룬궁이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파룬궁을 배워서 이로움을 얻었어요.” 그는 또 몹시 부자연스럽게 떠보며 물었다. “궁루이핑, 당신은 힘이 있어?” 나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나는 힘이 없어요.”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감히 손을 쓴다면 나는 온 힘을 쓸 것이다(그들이 내 힘이 몹시 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양 씨가 더 긴장하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방에는 왕 씨 성을 가진 두 사람만 남았고, 왕치잉은 테이블에 누워 손으로 계속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선념이 나온 것을 알았다. 왕훙징은 겁에 질려 날 바라보았고 나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양 씨와 리추이란이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몇 초도 안 되어 리추이란과 왕훙징은 다시 나가고 양 씨와 왕치잉만 남았다. 그때 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생각했다. ‘달려나가서 그들이 날 죽이려 한 일을 말하자!’ 그때 문이 저절로 열렸고 나는 급한 가운데 지혜가 솟아나 문이 열린 찰나에 재빨리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들은 살인멸구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살인멸구하려고 한다!” 내가 보니 어떤 사람이 안뜰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크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살인멸구하려 한다!” 나는 이번에는 그들이 격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두려워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방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사악이 폭로를 가장 두려워함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나는 마당을 걸으며 세뇌반에 온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을 회상했다. 머릿속으로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이들이 떠올랐고, 살아서 그들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식구들이여, 이건 제 잘못이 아니고, 제가 좋은 사람이 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을 큰 소리로 질책했고 건물 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악한 네 사람의 살인멸구 음모는 결국 실패했다.

그 상황을 본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핑구 공안국에 통보하고 날 핑구로 돌려보낼 준비를 했다.

그날 밤, 왕훙징은 또 다른 사악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610사무실’의 다른 남자 두 명을 내 방으로 데려왔다. 그는 “오늘 밤에 우리 셋이 너를 지켜볼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즉시 깨어났다. 그때 왕훙징이 불을 껐고 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는 뜻밖에도 내 침대로 비집고 올라와 내 옆에 눕더니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생식기 쪽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이전에 한번 그가 날 들어올리다 내 가슴을 더듬었을 때 나는 그를 엄중한 말로 질책했다.) 나는 손에 온힘을 집중해 그런 불량한 행위를 저지했다. 그가 밤중에 몇 번이나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강대한 정념으로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다

다음 날, 핑구 공안국에서 온 사람이 나를 핑구로 다시 데려갔다. 차에 타자 한 남자가 “파룬궁수련생들이 못 보게 하세요”라고 말했고, 그들이 차창을 천으로 가렸다. 당시 내 몸에 있는 상처가 몹시 심각했으므로 그들은 다른 수련생들이 그들의 사악함을 폭로할까 봐 두려워했다.

핑구에 도착한 후, 그들은 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핑구 구치소에 가두었다. 며칠 뒤 내 얼굴과 몸의 상처가 거의 낫자 뜻밖에도 핑구 구치소 경찰 후둥산이 또다시 날 심하게 구타했다. 그는 내 배와 다리 등을 걷어차고 밟았으며, 내 머리카락을 쥐고 ‘쾅, 쾅’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벽에 세차게 충돌시켰다. 경찰 리바오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여자감옥 1호 수감자들은 모두 후둥산의 사악한 행위를 목격했다.

며칠 후 여자 감옥경찰 취진잉이 나를 여자감옥 1호에서 2호로 옮기게 했다. 그녀는 남자 죄수 두 명을 불러 나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면서 오른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혔고, 여자 죄수에게 지시해 주먹과 발로 나에게 폭행을 가하게 했다. 내가 감옥경찰 몇 명에게 폭행 사실을 알리자 그들은 여자감옥 2호 문 앞에 서서 크게 웃으며 날 꾸짖었다. “알리긴 뭘 알려, 누가 너한테 알리라고 했어?!”

며칠 후 한 경찰이 날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고, 나는 그의 말을 믿고 그들과 함께 차에 탔다. 뜻밖에도 차는 집으로 가지 않았고 나를 한좡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것이 진료를 가장한 고문임을 알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반드시 탈출해야 한다.’ 차가 병원에 정차한 후 나는 차창 밖으로 기어나왔고 맨발로 정신병원 밖으로 달려나가 탈출했다.

불법적인 징역 4년 선고, 또다시 세뇌반 학대당해

나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후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01년 9월 17일, 나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박해의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다시 경찰에 납치됐다. 2002년 설날을 앞두고 베이징 치추 구치소(베이징시 차오양구 더우거좡 소재 중범죄자 구치소인 베이징 제1구치소)에 불법 구금됐고, 이후에 불법적인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날 ‘베이징 치추’에서 다시 ‘베이징 법제훈련센터’로 옮겨 감금했다. 경찰은 시트를 찢어 밧줄을 만들고 내 두 손을 묶어 매달아 한 달 넘게 잠도 못 자고 소변도 못 보게 했다. 내가 졸면 머리에 찬물을 부었다. 경찰은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찬물에 담근 파리채로 내 뺨을 여러 차례 때리게 했다. 한번은 손으로 내 뺨을 500번이나 때려 참기 어려운 두통이 생겼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자 감옥경찰은 또 나에게 소변을 참게 했고 나는 참다가 실금을 해 가을 바지와 털 내복 바지가 젖었다. 당시는 겨울인 11월로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바지가 젖어도 옷을 갈아입지 못하게 했다. 마르면 다시 누고 누면 다시 젖었다. 여경 한 명은 나에게 오줌을 마시게 했고 수감자 우야셴과 장진어에게 지시해 내 옷을 모두 벗긴 후 창문까지 열어 벗은 몸으로 찬 바람을 맞게 했다. 나는 울었다. 중공의 장쩌민 집단은 어떤 나쁜 짓도 저지를 수 있다. 한 남자 경찰(다른 사람이 그를 리 대장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은 수감자 장진어와 우야셴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날 의자에 묶은 다음, 의자와 함께 넘어뜨려 하늘을 향하게 한 후, 내 코를 잡고 술을 주입했다. 그들은 약 두 달간 온갖 학대로 또다시 날 정신 이상에 빠뜨렸다. 우야셴은 또 나에게 말했다. “궁루이핑, 네가 전향하지 않으면 널 미치게 하거나 죽일 거야.” 설날이 다가오자 그들은 다시 날 베이징 치추로 데려갔다.

베이징 여자감옥의 비인도적인 고문과 장기간의 독극물 주입

며칠 후 나는 더욱 사악한 곳인 베이징 여자감옥에 갇혔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감옥경찰 류잉춘이 나에게 수갑을 채웠고, 시쉐후이는 전기봉으로 나에게 충격을 가했으며, 감옥경찰이 수감자에게 명령해 날 때리게 했다. 한 수감자는 계속해서 며칠간 다리를 걷어찼고 나는 고통이 너무 심해 이를 악물고 묵묵히 참았다. 수감자 두 명은 벨트로 내 등을 모질게 채찍질했고 지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한 수감자는 볼펜으로 내 손바닥을 힘껏 찔러 손바닥에 구멍을 냈다. 그들은 밤낮 없이 교대로 날 학대하며 한 달 넘게 잠을 못 자게 했다. 내가 굴복하지 않고 전향하지 않자 감옥장 톈펑칭은 감옥경찰을 소집해 날 박해할 악랄한 계략을 꾸몄다. 다음 날 아침, 경찰 중 작은 두목 류수핑이 사람들(경찰과 죄수 두 명)에게 지시해 나를 감옥 건물 아래의 외딴 낡은 집으로 끌고갔다. 그들은 밖에서 누군가 들어와 자신들의 악행을 볼까 봐 두려워 밖으로 나가서 문을 잠근 후 흉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내가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도록 오랏줄로 악독하게 전신을 묶은 다음, 날 땅바닥에 세게 밀어붙였고, 이어서 내 머리와 상체를 모질게 힘껏 눌러 상체와 하체가 거의 일자가 되게 했다. 한 사람은 다시 내 등에 올라탔는데 참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고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악!”하는 비명을 질렀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다리의 힘줄이 그들의 고문으로 상하는 바람에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이 내 몸을 묶은 오랏줄을 풀었고 나는 그들이 여기에서 멈추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경찰 천징이 손으로 내 오른쪽 다리를 힘껏 흔들어 또다시 극심한 고통을 주었고 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 이후로 나는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고 절뚝거리게 됐다. 몇 달 후에야 다리가 좀 좋아져 아프지 않게 되었지만 두 다리와 발가락은 그 이후로 계속 마비됐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더 심하게 마비돼 걷기가 불편해졌다.

얼마 후 나는 파룬궁수련자 위안린(袁林)이 갇힌 감방에서 그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또다시 위안린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경찰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전향’시키던 방에서 수련자 쉬나(許娜)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쉬나가 감옥경찰이 있던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갈 때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누군가의 부축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 후 순이구의 파룬궁수련자 둥추이(董翠)가 구타로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함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한번은 감옥 수색 때 감옥경찰이 내 베개에서 경문 한 편을 찾아내 8개월 동안 집중 박해를 가했다. 어느 날 감옥장 톈펑칭이 날 속여 집중훈련 대상자를 가두는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다른 이의 눈을 피해 CCTV를 가리고 경찰 천징이 수감자 몇 명을 데리고 와 날 다시 폭행했다. 수감자 리추이원은 나무 막대기로 내 머리를 때리고 바늘로 귀를 찔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들은 날 의자 등받이에 묶은 뒤 여러 명이 내 머리를 누르고 허리를 꺾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또 의자에 묶인 날 벽 구석으로 힘껏 밀어 허리를 꺾은 채로 있게 하고 의자 위에 사람을 앉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크게 웃어댔다. 정말 인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한참을 그렇게 날 괴롭혔지만 내가 굴복하지 않자 또 다른 악랄한 수법을 썼다. 의자에 앉아 날 누르던 사람이 내려오더니 내 머리를 들게 한 뒤 여러 명이 힘을 합쳐 내 상체를 뒤로 꺾었다. 허리가 터질 듯 아팠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날 괴롭힌 후 경찰 천징은 또 내 머리카락을 잡고 ‘쾅, 쾅, 쾅’ 하며 내 머리를 벽에 박았다. 이마가 찢어지고 멍이 들어 부어올랐다. 그들 중 몇 명은 또 내 오른쪽 발목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발목이 터져 피가 흘렀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있다.

어느 날 천징은 수감자들에게 날 감시하면서 24시간 내내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나는 소변을 지리고 말았다. 그 후로 10여 분마다 소변을 봐야 했고 조금만 늦으면 바지에 지리고 밤에는 이불을 적시게 됐다.

8개월간의 집중 ‘교육’ 후 여자감옥은 날 8구역으로 옮겼다. 구역장은 황칭화였다. 황칭화는 5~6명의 수감자들에게 지시해 온종일 교대로 나에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말이나 자극적인 말을 늘어놓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벽 1~2시가 돼서야 잠들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미 침대에 누워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음) 한 사람이 내 귀를 잡고 큰 입을 대고 끊임없이 재잘거려 편히 쉴 수가 없었고 머리가 매우 불편했다. 나는 이런 정신적 고문에 단식으로 항의했다. 감옥 측은 내 코로 음식을 주입했다. 그들은 내가 비강 주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그것이 극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나는 7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저항할 힘이 없을 거라 여기고 더 악랄한 방법을 썼다. 음식을 먹인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날 박해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들통 날까 봐 종이로 CCTV를 가리고 대낮에 커튼을 치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내 콧구멍을 꽉 잡아 숨을 쉴 수 없게 했고 거의 질식할 것 같았을 때야 손을 놓아주었다. 한참 만에 겨우 숨을 고르자 그녀는 또다시 내 코를 잡았다. 두 사람이 쇠 숟가락 손잡이로 내 입을 힘껏 비틀어 열어 입술에 피멍이 들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양진샹(楊進香, 8개월째 단식 중인 파룬궁수련자)의 이도 이렇게 먹이다 빠졌어!” 그녀는 양진샹의 이를 부러뜨린 일로 날 협박했지만 난 두렵지 않았다.

나중에 그들은 더는 주입하지 않겠다며 거짓말을 했고 내가 그 말을 믿고 방심한 사이에 갑자기 날 밀어 넘어뜨린 뒤 한 명은 코를 잡고 한 명은 입을 비틀어 열었다. 그들은 늘 갑자기 날 밀어 넘어뜨리고 괴롭혀 놀라게 했고 뇌에 자극을 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눈을 감자마자 악몽을 꾸게 됐다. 모두 낮에 나에게 음식을 주입하며 괴롭히던 장면이었고 나는 주체할 수 없어 소리 내어 울었다.

베이징 여자감옥에서 받은 비인간적인 고문으로 인해 뇌가 자극을 받아 기억력이 크게 떨어졌다.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행동이 느려지고 건망증이 심해졌다. 한참 후에야 조금 호전됐다. 원래 직장(베이징시 핑구구 다화산 초등학교)에 출근해서야 이미 불법 해고된 것을 알게 됐다.

다시 불법적인 강제노동 2년 6개월 선고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은 또다시 파룬궁수련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했다. 퇴근길에 핑구 공안지국의 사복경찰 여러 명에게 납치된 나는 불법적으로 2년 6개월 동안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다. 한 달 넘게 불법 구금된 베이징 다싱 노동수용소는 극도로 악랄했다. 장시간 웅크려 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대대장 푸원제의 사주를 받은 마약 중독 수감자들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심하게 구타했다.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대대장 푸원제는 몇몇 수감자와 간수를 동원해 날 의무실로 끌고 가 강제로 코를 통해 음식을 주입했다. 너무 많이 주입해 배가 부풀어 올랐는데도 계속 주입했다. 위장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입되어 토하기 시작하자 입에 비닐봉지를 씌웠고, 나는 비닐봉지 안에 모두 토해냈다. 사악한 의사는 내가 비닐봉지에 토한 것을 여러 차례 남김없이 주사기로 빨아들여 나에게 다시 주입했다. 정말 역겨웠다. 그렇게 주입하면 토하고, 토하면 주입하며 한참 동안 날 학대했다. 푸원제 자신도 “정말 역겹다”고 말했다.

그들이 날 그렇게 고문한 후 푸원제는 일당들에게 지시해 날 빈 방으로 끌어넣고 커튼을 닫았다(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위를 누군가가 볼까 봐 두려워했다.) 푸원제는 일당들에게 지시해 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게 한 후, 즉시 무뢰한처럼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숨을 내쉬지 못하도록 코를 잡고 입을 눌러 열었다. 푸원제는 커다란 찐빵 조각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숨이 막혀 거의 질식할 뻔했고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그렇게 완전히 고의로 사람을 학대했고 전혀 인간성이 없었다. 그곳은 정말 인간지옥이었다.

베이징 노동수용소에 한 달 넘게 불법 구금된 후, 후베이성 우한시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2년 넘게 불법 구금됐다. 그곳에서 노동수용소 측은 다시 나를 우한시 ‘법제훈련센터’로 보냈는데 그곳 역시 세뇌반이었다. 그곳에서는 밤낮으로 잠을 못 자게 했다.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입을 벌리는 도구로 내 입과 이를 벌렸고, 벌린 후에는 고의로 아주 크게 벌려 양 볼의 근육이 찢어질 듯이 극심한 고통을 줬다. 치아도 흔들렸는데, 지금까지도 이가 좋지 않아 음식을 먹기가 불편하다. 궁씨 성을 가진 두목이 직접 날 구타하고 뺨을 때렸다. 우한 여자 노동수용소 1대대장 청위는 전기봉으로 나에게 충격을 주고 손으로 입을 때렸다. 그녀는 내 두 손에 수갑을 채워 큰 대자 형태로 철창 우리에 매달았는데, 그 매달림 때문에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깜깜했으며 두 팔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나는 또 그곳에서 노동을 강요당했고 그들은 내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구실로 밤에 남들이 자고 있는 동안 화장실 청소를 시키거나 두 시간 동안 서 있게 했다.

다시 2년 9개월 간의 불법적인 노동수용소 박해

2012년 중공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장쩌민 집단은 또다시 미친 듯이 파룬궁수련자들을 대대적으로 납치했다. 미윈구 허난자이촌 유치원에서 일하던 나는 허난자이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들은 내 기숙사를 불법적으로 뒤져 난장판을 만들고 대법서적과 진상자료, 휴대폰 2대를 강탈했다. 나는 불법적인 강제노동 2년 9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베이징 여자 노동수용소에 불법 구금됐다. 그곳에서 나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하루에 10시간 이상 앉아 있었고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경찰이 노동수용소 수감자를 동원해 나에게 욕을 퍼붓거나 발로 차는 등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앉는 바람에 다리가 마비됐다.

이상은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박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온갖 비인도적인 고문은 내 신체와 정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혔고, 동시에 내 가족들까지 연루시켜 정신적으로 거대한 타격을 줬다. 온 가족은 하루 종일 조마조마한 공포 속에서 살았다. 내가 불법적으로 구금되어 있는 동안 남편은 연루되는 것이 두려워 나와 이혼했다. 내가 우한 여자 노동수용소에 불법 구금되어 있는 동안 아버지는 거대한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다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것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대한 정신적 충격이었다. 어린 아들은 엄마의 동행과 사랑을 얻지 못했고, 어린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제는 성장한 아들이 한번은 나에게 자기 마음속 고통을 말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지난 몇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요? 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는지 알아요? 내가 알려줄게요! 나는 살고 싶지도 않았어요….” 말을 마친 아들은 오열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이 빠져 말문이 막혔고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다시 불법적인 5년 형 선고

2021년 7월 20일, 궁루이핑은 진상을 알리다 신고를 당해 셋집에서 경찰에 납치돼 순이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22년 2월 21일, 궁루이핑은 핑구구 법원에서 불법적인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벌금 11,000위안을 강탈당했다.

궁루이핑은 다시 베이징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소식통의 폭로에 따르면 궁루이핑은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하는 학대를 당했다. 감옥 측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사람마다 수련자를 데려가게 했고 이런 방식으로 잠을 못 자게 했다. 수련자들은 매일 밤 ‘수없이’ 깨어나 전혀 쉴 수 없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궁루이핑은 ‘전향’ 거부를 고수하다 감옥 측의 박해로 반신이 마비됐고, 감옥 병원으로 보내져 계속 박해당하고 있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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