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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성 웨양시 수련자 저우둥잉, 고문과 약물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웨양시 통신원) 웨양시 파룬궁수련자 저우둥잉(周冬英·여)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과 마음 닦기, 선행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고문과 약물 박해로 사망했다.

저우둥잉은 여러 차례 납치당하고 세뇌반에 보내졌으며 두 차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했다. 그녀는 고문과 전기 충격,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독극물 주사 강제 투약, 두 차례의 약물 박해 등을 당했다. 2015년 8~9월에 뇌출혈, 뇌경색, 기억 상실, 언어 상실, 마비 증세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됐고, 2024년 설날에 70세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저우둥잉은 생전에 웨양시 웨양현의 회계사였다. 1997년 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건강이 좋아졌고 가족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았으며, 그녀 가족에게 4만 5천 위안을 요구하러 온 여성을 자애롭게 대하며 진상을 알리고 선행을 권유해 악연을 해소했다. 그 이후 가정도 화목해졌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그녀는 법을 수호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고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법을 실증하는 등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 구금, 고문을 당했다. 그녀는 두 차례 세뇌반에 납치됐고 두 차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돼 소위 의료진이라는 자들에게 독극물 주사를 맞았으며 중공 인원들에게 몰래 독약을 투여당하는 등의 일을 당했다. 수차례 박해로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상황이 됐다.

1. 여러 차례 납치, 감금, 고문

2000년 8월, 저우둥잉은 수련자들과 함께 정부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베이징 청원 부서에 가서 파룬궁 수련의 진실한 상황을 반영했다. 그들은 파룬궁을 배우는 것은 건강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며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진정으로 선해지기 위해 수련하며,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원 사무소 직원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서류 양식도 주지 않았으며 “파룬궁 청원은 접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들어갔다. 당시 공안 직원들은 그들이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하자마자 벽을 향해 쪼그리고 앉으라고 했다. 약 180이 넘는 한 경찰이 가죽 구두로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를 세게 한 번 걷어찼다. 저녁에 목욕할 때 보니 다리에 큰 신발 자국이 보라색으로 남아 있었다. 그 경찰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갔다. 나중에 그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웨양에서 왔다고 하자 베이징 주재 웨양 사무소 사람들이 그들을 데리고 갔다. 객실에 이틀 동안 갇혀 있었고 감시하는 몇 명도 객실에 있었으며 그들의 침대는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이틀 후 그녀의 직장 동료인 셰핀주(후관국 무장부장)와 황춘샤(신저우 후웨이창 부장)가 그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날 밤 웨양시 기차역에서 웨양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에 의해 현 구치소로 납치돼 한 달간 불법 구금됐다. 실제로는 12일 동안 갇혀 있었고, 그녀의 남편이 인맥을 동원해 4000위안(그들은 이른바 벌금이라고 했지만 돈을 받고도 영수증을 주지 않았다)을 냈고, 240위안의 식비(식사는 돼지 밥보다도 못했다)를 추가로 냈다.

2000년 12월 20일경, 저우둥잉은 다시 베이징 톈안먼에서 대법을 위해 평화로운 청원을 했다. 당시 청원 부서에서 그들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톈안먼에서 청원을 했다. 그녀는 톈안먼의 사람들과 경찰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궁 수련자를 반대하고 박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할 기회도 없이 톈안먼의 사복 경찰들이 그들을 세게 끌어당겨 경찰차 옆으로 끌고 갔다. 그녀가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두 번 외쳤을 뿐인데 또 경찰에게 머리카락을 잡혀 차에 끌려갔고 허리를 두 번 차였다. 나중에 그들은 순이 구치소라는 곳에 불법 감금됐고 경찰에게 전기봉으로 전기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계속 박해하기 위해 주소를 대라고 했다. 그들은 주소를 말하지 않았고 10여 일 동안 불법 감금됐다가 2001년 설이 지나고 며칠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2001년 9월 5일, 저우둥잉은 웨양시 쥔산구 쉬시향에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진상 표어를 써서 붙이고 선행을 권하는 편지도 배포했는데, 나중에 쉬시 파출소에 발견돼 쥔산 공안분국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위즈허, 자오원화, 리치량 세 명의 악질 경찰에게 심하게 맞았다. 머리에 피가 나고 피가 굳어 머리카락이 엉겼다.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가 약 2.5cm 정도 찢어졌고, 왼팔이 삐어서 움직일 수 없었으며 심하게 부어올랐다. 그녀가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치료받겠다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양손을 천장 들보에 한 시간가량 매달아 놓았다. 자오원화는 담뱃불로 그녀의 허리 오른쪽을 태워 12~14군데의 상처를 입혔다. 그녀가 맞아서 바닥에 앉자 그들은 구두를 신은 발로 그녀의 등을 밟았다. 그들은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이렇게 고문했다. 세 사람이 마치 피구공을 치듯이 서로 때리고 때렸다. 그들의 행동은 완전히 인성을 잃은 것이었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저우둥잉은 시 구치소(제1구치소)에 48일간 불법 감금됐고, 나중에는 1년 6개월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신체 조건이 맞지 않아 노동수용소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위즈허 등은 그녀에게서 3000위안의 현금을 갈취한 후에야 집에 돌아가게 했다. 영수증도 주지 않았고 1년 후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두 번이나 돈을 달라고 갔지만 그들은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돈을 몰수했다고 했다.

2002년 7월, 수련자들이 저우둥잉의 직장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악인들에게 발각됐다. 그녀가 자료를 배포한 곳에 간 적이 있다고 하면서(악인들도 그녀가 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음) 악인들의 무고와 고발로 이튿날 오후 5시경 저우둥잉은 현 수이상 공안분국과 현 국보 사람들에 의해 집에서 납치됐다. 저우둥잉은 웨양현 유치장과 샹인 구치소에 4개월 가까이 불법 감금됐다. 현 수이상 공안분국의 펑 모 지도원과 류 모 서기관이 그녀를 심하게 때렸다. 그들은 일부러 치명적인 부위를 골라 때렸고 특히 머리를 수십 대나 때렸다. 주먹과 고무 슬리퍼로 머리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 벽에 박았다. 현 국보 사람들도 때렸는데, 류 모 국보 부대장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벽에 박았다. 그녀는 계속 협조하지 않았고 그들도 증거가 없어서 저우둥잉은 단식 항의를 했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2.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약물 및 전기 충격 고문 받아

2005년 8월 어느 날 아침, 저우둥잉은 10여 명의 중공 인원들에 의해 웨양시 후빈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한 방에 파룬궁수련자 한 명과 감시자 두 명이 갇혔다. 시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두목 장제훙은 그녀가 협조하지 않자 그녀의 오른팔을 세 번이나 세게 때렸다. 그녀는 들어가자마자 밥을 먹지 못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위출혈이 생겼다. 그날 밤 제1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다음날, 직장 610 두목 판웨화와 세뇌반의 몇몇 악인들이 저우둥잉을 웨양 정신병원으로 끌고 갔다. 악인들은 의사에게 “그녀는 파룬궁을 하는 사람이고 정신병이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천으로 그녀를 병상에 묶어놓고 주사를 놓고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입했다. 하룻밤 내내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들은 묶은 것을 풀어주지 않았고 “그녀가 정신병이 있어서 사람을 때릴까 봐 그래요”라고 말했다. 한 지역사회에서 파견된 감시인이 “그녀는 정신병이 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야 의료진이 묶은 것을 풀어 화장실에 가게 해주었다.

정신병원에서 의료진은 매일 저우둥잉에게 강제로 주사를 놓고 중추신경 파괴 약물을 먹게 했으며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몸이 떨리고 정신이 없어지는 등 매우 고통스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1주일 후 세뇌반으로 끌려갔고 5~6명이 약을 강제로 먹였다. 나중에 세뇌반 악인들이 그녀가 이미 죽음 직전이라고 보고 급히 차로 집에 데려다주었다. 이때 저우둥잉은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어느 날, 저우둥잉은 자신도 모르게 위아래층을 계속 뛰어다니며 밥도 먹지 않았다. 남편은 할 수 없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가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세뇌반의 악인들과 정신병원 의사들이 저를 침대에 묶어놓고 1주일 동안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전기 치료를 했어요. 지금 온몸이 떨리고 심란하며 정신이 없어 매우 괴롭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남편에게 분명히 말했다. “환자에게 병이 없는데 강제로 묶어놓고 주사 맞히고 약 먹이고 전기 치료를 했으니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제가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우둥잉의 남편은 원래 아내가 수련하는 것을 막았지만 아내가 이런 상태가 되고 의사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자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당신 수련하고 법공부를 해. 사부님이 당신을 보호해주실 거야”라고 권유했다. 이렇게 저우둥잉은 다시 법공부와 수련을 시작했고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加持) 아래 점차 좋아졌지만 예전처럼 건강하지는 않았다. 2006년에 또다시 구토가 멈추지 않고 어지럽고 걸을 수 없어 2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법공부와 수련을 했고 결국 점차 회복됐다.

3. 세뇌반에 납치돼 몰래 독약 투여당해

2012년 9월 2일 오전 7시 30분, 웨양시 정법위원회, 610, 후관국, 수이상 파출소 10여 명이 저우둥잉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3층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차에 태워 세뇌반(대외적으로는 ‘창사 법제교육 훈련센터’라고 함)으로 끌고 갔다. 가는 도중 누군가 “이번에는 때려죽일 거야”라고 말했다.

세뇌반은 모든 파룬궁수련자들을 10여 평방미터의 화장실이 딸린 방에 격리 수용했고, 610이 지정하거나 고용한 ‘돌보미’가 24시간 엄격히 감시했다. 매일 파룬궁을 비방하는 DVD와 책을 강제로 보게 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세 가지 문서'(이른바 반성문, 보증서, 비판서)를 강제로 쓰게 했다. ‘전향’을 거부하는 수련자들은 각종 육체적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목을 꼬집고, 작은 대나무 채찍으로 때리고 찌르고, 얼굴을 때리고, 라이터로 턱을 지지고, 홍화유를 눈에 발랐으며, 벌을 서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먹더라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게 했다. 또는 밥이나 강제로 먹이는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

저우둥잉은 불법 구금에 항의하며 단식했고 강제 음식 주입을 당했다. ‘교육 도우미’는 개구기를 사용해 그녀의 모든 치아를 흔들어 놓았다. ‘교육 도우미’는 또한 주먹으로 그녀의 관자놀이, 명치, 팔꿈치, 다리 등을 세게 누르고 비비고 눌렀는데 이것이 ‘마사지’라고 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저우둥잉의 온몸 여러 곳이 ‘마사지’로 인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그녀는 18일 동안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고 세뇌반의 악인들(그중에는 610 직원, 사악하게 깨달은 자들, 의사, ‘간병인’ 등이 있었음)은 음식에 약물을 넣어 매일 그녀에게 강제로 먹였다. 그녀가 밥을 먹기 시작하자 또 그녀의 밥그릇에 약을 넣었다. 어느 날 한 남자 의사(파룬궁 수련자 장메이란을 살해한 세 명의 범인 중 한 명)가 와서 그녀의 혈압을 재고 혈압이 높다고 하면서 몰래 ‘간병인’에게 그녀 밥에 약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한번은 저녁을 먹기 전에 그녀가 발견하고 ‘간병인’에게 왜 그녀의 그릇에 약을 넣느냐고 따졌다. ‘간병인’은 “혈압을 낮추는 약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우둥잉은 “나는 혈압이 없어요”라고 말하고 그릇을 깨끗이 씻어버렸다. 하지만 매번 ‘간병인’이 밥을 가져다주어 저우둥잉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약을 넣었는지, 어떤 약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저우둥잉은 저녁을 먹고 나서 졸음이 왔고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그녀는 ‘간병인’에게 “오늘부터 밥을 먹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간병인’은 “이 삶은 계란을 먹어요. 이건 약을 넣기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이는 세뇌반이 저우둥잉에게 몰래 약을 넣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었다. 바로 이날 세뇌반은 직장 사람들을 불러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4. 박해로 인해 외모가 바뀌고 여러 해 마비된 후 억울하게 세상 떠나

저우둥잉이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직장 610 두목 판웨화와 샤웨이는 그녀의 남편과 딸에게 저우둥잉이 ‘고혈압’이 있으니 약을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610 직원 장모 씨는 저우둥잉에게 “다른 사람에게 평안하라고 권하더니, 자신은 곧 염라대왕을 만나게 생겼네”라고 말했다. 세뇌반의 한 구타범도 다른 사람에게 “저우둥잉은 내장이 다 썩었으니 그녀가 돌아가면 병원에 가야 할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저우둥잉은 세뇌반에서 36일간 온갖 폭력적인 괴롭힘을 당해 외모가 완전히 바뀌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 신체에 많은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 고통스러워했다. 정신이 혼미하고 심란하며 안절부절못하고 기억력을 잃었으며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고 몸이 휘청거렸다. 목이 마르고 혀가 쓰며 눈꺼풀을 뜨기 힘들고 치아가 흔들리며 밥을 먹지 못해 몸이 야위는 등(전체적인 증상이 약물 중독 증상과 매우 유사했다)의 증상을 보였다. 저우둥잉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이런 증상들이 독약을 먹은 반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와 함께 세뇌반에 있었던 파룬궁수련자 장메이란이 바로 이렇게 박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2015년 8~9월경, 저우둥잉에게 뇌출혈,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병원에서 머리에 구멍을 뚫은 후 기억을 잃고 말을 못 하고 마비가 와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됐다. 이때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모든 불행이 중공의 사악함 때문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온 힘을 다해 그녀와 함께 마지막 9년을 보냈다.

저우둥잉은 2024년 설날까지 고통스럽게 버티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소박하고 진실하며 선량하고 관용적이며 인내심 강한 좋은 사람은 이렇게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을 떠났다. 그녀가 떠날 때 그녀가 살던 지역에 수십 년 만에 처음 보는 얼음비가 내렸다. 하늘이 그녀의 억울함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호소하고 통곡한 것이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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