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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경찰, 손자들까지 위협하며 팔순 노인에게 신념 포기 강요

[명혜망](광둥성 통신원) 광저우(廣州) 경찰이 최근 85세의 파룬궁 수련자 웨이잉신(魏應新)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을 자주 괴롭히고 있는데, 두 노인에게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념 포기를 강요하기 위해 심지어 자녀의 직장과 손주들의 미래까지 위협하고 있다.

1939년 6월 18일에 태어난 웨이잉신은 은퇴하기 전까지 광저우 바이윈산(白雲山) 제약 공장의 과학 연구원이었으며, 한때 중국관리과학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웨이잉신과 그의 아내 완멍잉(萬孟英)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으로부터 여러 차례나 납치, 감금 등 박해를 받아왔는데, 최근에는 더 자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경찰이 집에 찾아와 괴롭히다

2024년 6월 19일 오후 3시경, 한 무리의 사복 경찰이 웨이잉신의 집 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우리는 경찰이고 물어볼 게 있다!’라고 외쳤다. 경찰이 웨이잉신의 집을 찾아와 괴롭힌 것은 작년에 잦은 전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웨이잉신 부부가 문 열기를 거부하자, 경찰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꼬박 한 시간 동안 지속됐다.

나중에 두 노인이 첫 번째 큰 문을 열자, 경찰 4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고, 그중 한 명이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었다. 웨이잉신은 그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경찰은 퉁허(同和) 경찰서에서 왔다고 말했다. 완멍잉은 “당신은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말을 함부로 내뱉자, 웨이잉신은 “내 사부님을 모독하지 마세요!”라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노인의 엄한 태도 앞에서 경찰은 갑자기 돌아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웨이잉신은 또 그들을 향해 “돌아오세요! 돌아오세요!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 왜 도망쳐요?”라고 외쳤다. 그가 문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경찰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경찰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도 않고 비상계단으로 아주 빨리 도망친 것이다.

경찰이 노인의 자녀를 괴롭히다

그날 저녁 8시 무렵, 웨이잉신의 딸이 퇴근해 돌아와서 알려주기를, 그 경찰들이 먼저 그녀 집에 갔었고, 그녀의 자녀(외손자)에게 그들(경찰)을 웨이잉신의 집으로 데려가도록 강요했다. 외손자는 체격이 큰 몇몇 남자가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웨이잉신의 사위는 전화로 경찰에게 화를 내며 “내 아들은 아직 미성년자인데, 매우 놀라서 병에 걸리면 당신을 고소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딸은 또한 “경찰이 오빠에게 오늘 밤 9시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융핑(永平) 파출소로 데려가서 심문을 받고 기록하게 해야 하므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준비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했다. 융핑 파출소는 두 노인이 사는 곳의 파출소도 아니고, 호구가 있는 곳의 파출소도 아니다. 웨이잉신은 그 말을 듣고 즉시 큰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일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좋고 제일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으니, 너는 이 일에 상관하지 말아라. ‘이 일은 내가 관할할 수 없으니, 문제가 있으면 직접 부모님을 찾아가세요. 저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사부님이 계신다. 우리 사부님에게 결정권이 있으니, 우리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라!”

다음날 경찰은 웨이잉신의 장남을 계속 협박해 두 노인을 융핑 파출소로 끌고 가려 했다. 웨이잉신은 아들을 협박한 청(程) 씨라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사흘 연속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24년 7월 16일 저녁, 두 노인의 사위와 딸이 찾아왔다. 사위는 어젯밤 10시쯤 경찰 7명이 찾아와 다시 괴롭혔다고 말하며 “경찰이 장인, 장모님의 파룬궁 수련 때문에 제 직업과 자녀의 대학 교육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하며 장인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두 노인의 가족을 모두 연루시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려고 시도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웨이잉신이 2006년에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다

위잉신은 2005년 9월 12일에 웨슈(越秀)구 공안에 납치돼 2006년 5월 25일 광저우시 웨슈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광둥(廣東)성 양장(陽江)감옥에 수감돼 박해받았다. 양장 감옥 측은 웨이잉신을 강제로 ‘전향’시키기 위해 매일 50근 무게인 족쇄를 채우고, ‘제트식 비행기’ 체벌을 가했으며 무려 7개월 동안 가족들의 면회도 거부했다.

酷刑演示:脚镣
고문 재연: 족쇄

중공의 웨이잉신에 대한 잔인한 박해로 인해 97세의 노모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아 위독한 상태에 빠졌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 2008년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을 한 번 볼 수 없었다. 웨이잉신의 둘째 아들은 중공의 아버지에 대한 박해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끝내 이혼했다. 그리고 웨이잉신이 바이윈산 제약 공장에서 받을 수십만 위안의 계좌 잔액도 중공이 명의도용, 축소, 소액 분할 등의 방식으로 모두 횡령됐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7/22/479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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