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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억울한 옥살이…후베이성 수련자 커창옌, 박해 속 세상 떠나

[명혜망](후베이성 통신원) 후베이성 황스시 다예시 밍산향 파룬궁수련자 커창옌(柯昌炎·남)이 중공(중국공산당)의 지속적인 박해 속에서 지난 4월 2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2세였다.

커창옌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다 중공에 의해 수차례 납치, 구금, 고문을 당했으며 불법 강제노동과 억울한 판결로 총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의 몸은 심각한 파괴를 당했다. 커창옌은 출소 후에도 중공 당국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커창옌의 시신은 등과 다리 부분이 검게 변했는데, 이는 감옥에서 맞은 흔적이었다.

1962년 12월 6일 출생한 커창옌은 농민으로 밍산향 상왕촌에 거주했으며 1996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커창옌은 우연한 기회에 파룬궁 소개를 보고, 무료로 공법을 가르치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타인에게 유익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점에서 파룬궁이 매우 바르다고 느껴 배우고 싶어 했다. 그는 파룬궁의 주요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을 학습한 후 진정으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타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참을성 없고 남과 다투기 좋아하는 나쁜 습관을 고쳤고, 그 이후 가정이 화목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졌으며 심신이 건강해졌다.

그러나 중공이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커창옌은 평온한 나날을 잃었다.

2001년 정월 어느 날, 커창옌이 마을에서 목공일을 하고 있을 때 밍산 파출소의 스(石) 씨와 커(柯) 씨 경찰이 그의 일터에 들이닥쳐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다예 제2구치소로 납치해 불법 구금했다. 15일 후 그를 다예 세뇌반으로 이송해 다시 15일간 박해했다. 이 기간에 메이(梅) 과장 등이 매일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을 강제로 보게 하고 그를 인신공격하고 모욕하며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2001년 2월, 커창옌은 집에 침입한 밍산 파출소 경찰 정싼쑹(鄭三送), 왕(王) 씨 등에 의해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파룬궁 서적, 사부님 사진과 파룬(法輪) 도안을 모두 빼앗겼다.

첫 번째 불법 강제노동, 고문당하고 기절한 후 물웅덩이에 버려지다

2001년 9월 28일, 커창옌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호소하다가 톈안먼 파출소로 납치돼 경찰의 인신공격과 모욕을 당했다. 그날 밤 그는 베이징 창핑구 구치소로 이송됐고, 들어가자마자 구치소 경찰이 강제로 그의 옷을 벗기고 선풍기로 바람을 쐬게 했으며, 수감자들에게 지시해 그의 뺨을 때리고 모욕하게 했다. 그들은 그가 잠을 못 자게 했고 1주일 동안 고문성 강제급식을 했다.

15일 후, 커창옌은 고향으로 끌려갔고 밍산향 파출소 경찰 커위민(柯育民), 밍산향 정법위원회 서기 쉬훙빙(許紅兵), 다예시 공안국 경찰 옌푸(延福) 등이 그를 다예 제1구치소에 불법 구금했다. 구치소 부소장 양원젠(楊文建)은 대나무 막대기로 커창옌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커창옌에게 감옥 규칙을 외우게 하기 위해 감옥 경찰 왕(汪) 씨는 그에게 10일 밤 동안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범죄자 차오시녠(喬細年)에게 지시해 그를 벽에 붙여 서게 한 뒤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때리게 했다.

이어서 커창옌은 후베이성 스쯔산 마약중독 재활원 남자 대대로 끌려가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그곳에서 그는 ‘5보 벽 파기’, 수면 금지, 벽 보고 서있기 등 고문을 당했고, 감옥 경찰 리(李) 씨에게 뺨을 맞았으며, 지도원 위안(袁) 씨가 시킨 범죄자들에게 구타당했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맞았고, 주석 종이를 다리는 노역을 강요당했다.

2003년 사스(SARS) 기간, 스쯔산 마약중독 재활원은 불법 구금된 파룬궁수련자들을 샤양 노동수용소로 이송해 노역을 시켰다. 40도의 폭염 속에서 커창옌 등 수련자들은 밭에서 땅콩을 캐도록 강요받았다. 커창옌은 일사병으로 쓰러졌고 간수는 두 명의 범죄자에게 지시해 그를 수용소로 끌고 가 물웅덩이에 던져 넣었다.

불법 구금 기간 커창옌은 비인도적인 고문을 당했고, 이유도 모르는 채 강제로 피를 뽑혔다.

두 번째 불법 강제노동, 다시 학대당하고 정체불명의 약물 투여당해

2007년 12월 10일 밤 10시경, 커창옌은 집에서 경찰에 의해 납치됐다. 당시 경찰은 강적을 대하듯 10여 대의 차량으로 커창옌의 집을 에워쌌고, 몇몇 건장한 남자들이 커창옌의 집 문을 발로 차 열고 아무 말도 없이 그의 양손을 뒤로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커창옌의 가족들도 경찰에게 구타당했다. 마을 간부 왕자오쥔(汪召軍)과 양융칭(楊詠靑)이 경찰과 결탁해 사실을 조작하여 커창옌에게 다시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시켰다. 커창옌은 먼저 다예 제2구치소에 17일간 불법 구금됐다. 이 기간 그는 구치소 경찰의 구타와 라이터로 수염을 태우는 고문을 당했다. 구치소장 리푸안(李福安)은 구치소 의사에게 지시해 그의 뺨을 때리고 목을 졸라 정체불명의 약물을 강제로 먹였고, 이로 인해 그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후 커창옌은 후베이성 샤양 노동수용소 9대대로 이송돼 박해당했다. 이 기간 그는 수면 금지, 호랑이 의자에 앉히기 등의 육체적 고문과 강제 세뇌 등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예를 들어 그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범죄자들에게 지시해 소위 파룬궁과의 결별서를 쓰게 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강제로 보게 했다.

커창옌은 당시 박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8년 5월, 제가 정신이 들자 파룬궁을 다시 수련하겠다는 성명서를 썼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범죄자들에게 지시해 저를 어두운 방에 가두고 구타했습니다. 간수 허빙룽(何兵榮)은 제 옷깃을 잡고 제 머리를 벽에 박았고, 또 저를 끌어내 주먹과 발로 때리고 강제로 쪼그려 앉게 했습니다.” “2008년 8월 12일 밤 10시, 범죄자 톈융(田勇) 등 5, 6명이 경찰의 지시로 전등을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저와 천샤오바오(陳孝寶), 천젠민(陳建民), 쿵창성(孔强勝) 네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폭행했습니다. 그중 이창 수련자 쿵창성은 구타로 인해 실신했습니다. 그들은 10cm 길이의 쇠침으로 제 등을 찔렀고, 당시 제 머리는 맞아서 부어 변형됐으며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경찰은 또 신체검사를 빌미로 우리 수련자들의 피를 여러 차례 강제로 뽑아 검사했지만 결과는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노동수용소 의사 류(劉) 씨는 저를 1층 문 앞으로 끌고 가 강제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했고, 자오(趙) 대장은 ‘커창옌, 너는 돌아가면 네가 원래 하던 목공일도 못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커창옌은 2009년 12월 14일 불법 강제노동을 마쳤다. 노동수용소에서의 약물 학대로 인해 커창옌은 집에 돌아온 후 자주 어지러움, 기억력 감퇴, 정신 혼미 등 증상을 보였다.

4년 불법 징역 판결, 입감 전 이미 박해로 앙상하게 말라

2018년 1월 16일 새벽, 커창옌은 집에 침입한 밍산향 파출소장 황카이진(黃開進), 다예시 ‘610’(파룬궁 탄압기구) 과장 장쉬화(張旭華) 등에 의해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는 다예시의 슝자볜 유치장에 불법 구금됐다. 가족들이 여러 차례 면회를 요구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다예시 공안분국 담당 경찰 천(陳) 씨는 여러 차례 가족을 찾아와 압수한 서적의 출처와 커창옌이 누구와 연락했는지 말하라고 강요했다. 그들은 커창옌에게 죄를 씌우려 했지만 가족들에게는 말만 하면 커창옌을 풀어주겠다고 속였다. 2018년 9월경, 다예시 검찰원은 커창옌을 법원에 불법 기소했다.

2018년 11월 15일 오전 8시경, 다예구 법원은 커창옌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커창옌은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렸고 심신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불법 재판 과정에서 그는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단지 파룬궁을 믿을 뿐입니다”라는 한마디를 고수했다. 검찰원과 법원은 서로 짜고 연극을 벌였고, 약 2시간 만에 소위 재판을 서둘러 마쳤다.

2019년 5월, 커창옌은 다예구 공안·검찰·법원의 공모로 4년 형을 불법적으로 선고받았고, 같은 해 5월 29일 후베이성 샤양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가족들은 5월 28일 오후 유치장에 도착했을 때 커창옌이 이미 박해로 앙상하게 말라 있는 것을 보고 힘없이 눈물만 흘렸다.

커창옌은 2022년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지 중공 무리들은 여전히 자주 그의 집을 찾아와 괴롭히고 위협하며 협박했고, 이로 인해 그의 건강은 회복되기 어려워졌다. 그는 2024년 4월 2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향년 64세였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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