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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1급 등록건축사 천옌핑, 파룬궁 박해 중 세상 떠나

[명혜망](광둥성 통신원) 광저우 톈허구 파룬궁수련자이자 국가 1급 등록건축사인 천옌핑(陳燕萍·여)가 톈허구 공안분국 우산 파출소의 빈번한 괴롭힘을 받아 2024년 5월 23일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였다.

'法轮功学员陈燕萍'
파룬궁수련자 천옌핑

천옌핑은 1963년 광저우 화두구 출생으로 대학 학사 학위를 갖고 있으며 창사철도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건축설계 업무에 종사하며 자신의 회사를 세웠고 국가 1급 등록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덕과 예술을 겸비하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다

천옌핑은 태어날 때부터 간낭종이라는 유전병을 앓았다. 1997년 5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병세가 잘 조절됐고 체중도 줄곧 75kg 이내로 유지됐다. 그녀는 자신을 잘 돌볼 뿐만 아니라 모든 집안일을 담당했으며 친정과 시댁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 온 가족이 즐겁게 살게 했다.

천옌핑은 기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겸손하고 가정을 잘 꾸려나갔다. 대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시부모를 공경하는 면에서 점점 더 잘해나갔다.

최근 50~60년 동안 건축학은 국내에서 계속 인기 전공이었으며 각 대학의 합격선도 줄곧 최고 수준이었다. 건축설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바쁘고 야근이 많아 많은 이들이 가정을 돌볼 겨를이 없어 아이를 완전히 노인이나 보모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천옌핑은 1급 등록건축사로, 회사에서 나가는 모든 도면에 그녀의 서명이 필요해 업무 압박이 컸다. 그러나 바쁜 업무 중에도 가정생활을 잘 유지했다. 등록건축사 자격시험을 볼 때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공부할 때면 종종 찾아와 같이 놀자고 조르곤 했는데, 천옌핑은 모두 인내심을 갖고 아이를 달랬다. 한번은 꽃을 그려주고 한번은 작은 동물을 그려주곤 했다. 그녀는 한번은 당시 시험 복습 자료를 꺼냈는데 많은 자료에 이런 어린이용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2008년 7월 30일 오후, 우산 파출소가 천옌핑의 집을 수색하던 중 그녀의 아이가 광저우 명문 중학교인 화스푸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경찰은 즉시 감탄하며 물었다.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잘 키웠어요?” 천옌핑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잘 지내기 힘들다. 천옌핑의 시어머니는 퇴직 전 우수 초등학교 교사로 능력이 뛰어났고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어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존경받았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직업 습관과 성취는 그녀를 고집이 세고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순종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천옌핑은 진심으로 세심하게 시어머니를 위해 생각했다. 2010년 별장 인테리어를 마친 후 그녀는 시부모를 초대해 함께 살면서 가장 좋은 방을 시부모에게 내주었는데, 시어머니는 크게 감동했다. 이후에 별장이 시내 중심가에 있지 않아 주변이 그다지 번화하지 않고, 노인들의 외출과 생활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시내 중심가에 또 한 채의 강변 아파트를 사서 시부모가 살도록 했다. 그녀가 시어머니를 진실하게 대하고 시어머니가 요리할 때 주도적으로 도왔기에 시어머니도 기꺼이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열고 소통했다. 그녀가 시어머니와 화목하게 지내자 온 가족이 매우 기뻐했고 시어머니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종종 “옌핑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며느리야”라고 말했다.

천옌핑은 자신의 부모도 잘 돌보았다. 부모가 거주하는 집이 계단식 주택이어서 그녀는 부모를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새 아파트를 사주었다.

천옌핑은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관대했지만 자신의 삶은 매우 소박했다. 그녀는 한 번도 명품 가방, 화장품, 옷을 사본 적이 없었고 단지 10여만 위안짜리 보통 차만 몰았다. 천옌핑은 매우 온화했으며 평소 그림 그리기와 서예를 좋아했다.

'陈燕萍的绘画 岭南春晓'
천옌핑의 그림 ‘영남춘효(嶺南春曉)’
'陈燕萍的书法 心如静莲'
낙관적으로 살다 박해로 세상을 떠나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한 후 20여 년 동안, 천옌핑도 계속 경찰의 감시와 괴롭힘을 받았다. 광둥성 공안은 그녀의 출국을 제한했고 홍콩 통행증 발급도 거부했다. 심지어 국내 이동조차 매우 불편했는데 몇 번은 막 탑승 수속을 마쳤을 뿐인데 전화가 즉시 걸려 와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이런 괴롭힘을 피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그녀는 기꺼이 직접 운전했다.

특히 2023년 이래로 우산 파출소는 천옌핑에게 빈번한 괴롭힘을 가했고 이는 직접 그녀 몸의 균형을 깨뜨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2023년 초, 천옌핑이 위챗 그룹에 사부님의 새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추천하는 글을 올렸는데 우산 파출소는 이를 구실로 삼아 그녀 집에 와서 괴롭히고 위협했다. 경찰은 강제로 그녀의 휴대폰을 열어 위챗을 검사하고 강제로 조서를 작성했으며, 사부님 법상과 진선인 그림, 천옌핑 자신이 쓴 ‘하늘이 큰 복을 내리신다[天賜洪福]’는 대련(對聯)까지 빼앗아 갔다.

11월 말 경찰은 또 문을 두드렸고 이웃집 문도 두드리며 천옌핑이 집에 있는지, 평소 몇 명이 사는지 등을 물었다. 그날 저녁 8시가 넘어 천옌핑이 아래층에 내려가 차에 물건을 가지러 갔는데 마당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남경 3명과 여경 1명을 마주쳤지만 4명의 경찰은 반응하지 못했다. 천옌핑은 차에 탄 후 바로 떠났다. 당시 그녀는 휴대폰도 현금도 가져가지 않은 상태였으며 겨우 머물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경찰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천옌핑은 한동안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시작했다.

2024년 2월부터 천옌핑은 걷기가 힘들어지고 발이 붓기 시작하더니 점차 종아리와 허벅지로 부종이 번졌으며 동시에 체중도 증가하고 배 둘레가 커졌다. 복부 무게가 늘어나 하지 정맥을 압박해 정맥혈류가 막혔고 양쪽 다리의 부종이 심해졌다. 동시에 복부가 위로 밀어올려져 횡격막을 누르고 심장을 압박해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위장도 압박받아 식사량이 매우 적어졌다. 5월 초까지 그녀의 체중은 100kg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는데, 즉 3달 만에 25kg이나 늘어난 것이었다. 서 있어도 힘들고 앉아있어도 힘들고 누워있어도 힘든, 어떻게 해도 매우 힘든 상태였다.

우산 파출소가 천옌핑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천옌핑이 페이스타임을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 2024년 4월 4일 파출소 경찰 2명이 또 집으로 찾아와 더 이상 페이스타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서 강제로 그녀의 휴대폰을 열어 페이스타임을 삭제했다.

병원에서 천옌핑은 여러 차례 “작년 11월 우산 파출소의 괴롭힘으로 인해 오랫동안 정처 없이 지내며 식사와 잠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도 천옌핑은 여전히 매우 강인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모든 이를 대했고 침착하게 각종 일을 처리했다. 5월 12일 간호사의 날에는 병원 간호사들에게 꽃바구니와 과일 바구니를 보내 감사를 표했다.

천옌핑은 자신이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가족과 친구들이 슬퍼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이런 좋은 사람이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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