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 미산시 파룬궁수련자 장훙루(姜洪祿)는 2002년 2월 12일(설 첫날) 미산의 악질 경찰 멍칭치에게 총격을 당하고 구타를 당한 후, 부당하게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시시 하다 감옥과 무단장 감옥에서 박해받다가 2024년 1월 27일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6세였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하는 사악한 집단이 광기에 휩싸여 파룬궁을 박해한 후, 장훙루는 확고하게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며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때문에 미산 공안국의 경찰 멍칭치에게 총격을 당해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고, 경찰의 발길질로 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는 한 차례 부당하게 징역형을 받았고, 한 차례 강제노동을 받았으며, 세 차례 불법 구류됐고, 1만 3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장훙루의 아내 위안수즈는 미산 공안국 경찰이 타이핑향과 향 사법소 사람들과 합세하여 끊임없이 괴롭히고 박해하는 가운데 2018년 4월 4일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0세였다.
장훙루는 헤이룽장성 미산시 공로관리소 타이핑 공로양로단 직원으로, 미산시 타이핑향에 살고 있었다. 1989년 그의 4살 된 아들이 알레르기성 기관지 천식에 걸려 10년간 치료하느라 4만여 위안을 들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1998년 10월 아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약을 쓰지 않고도 나았다. 온 가족은 대법의 신기함에 무한히 감사를 표하며 모두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7월 22일 장훙루는 아내, 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톈안먼광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차에 묶인 채로 끌려갔고, 차는 베이징 아시안게임 체육관에 도착한 후 경찰은 그들을 베이징에서 치치하얼까지 가는 기차에 실었다. 치치하얼역에 도착한 후 또 버스로 갈아타고 하얼빈으로 갔으며, 지시 공안국과 미산 공안국 사람들이 장훙루 가족 세 사람을 미산으로 데려가 솽성향 파출소 지하의 작은 감방에 가두었다.
1999년 10월 6일, 미산시 공안국 정보과장 멍칭치가 10여 명을 이끌고 갑자기 장훙루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장훙루가 어떤 법률을 위반했다는 법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하고, 10여 권의 파룬궁 서적과 900여 위안짜리 비디오 재생기 1대, 150위안짜리 새 녹음기 1대, 녹음테이프와 녹화테이프 등 사유재산을 빼앗아 갔다. 장훙루 부부를 공안국으로 끌고 가 불법 심문한 후 당일로 제1, 제2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한 달 남짓 지나 정보과장 멍칭치와 두융산은 각종 불법적인 명목으로 치안관리처벌비 등 4천 위안과 보증금 8천 위안(장훙루 3천 위안, 아내 위안수즈 5천 위안, 총 1만 2천 위안)을 갈취한 후에야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 장훙루가 갈취당한 사실을 해당 부서에 반영하자 해당 부서에선 “이는 윗선의 뜻이니 불복하면 베이징에 가서 고발하시오”라고 했다.
1999년 12월 3일 장훙루는 다시 한번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 12월 18일 미산 경찰에게 붙잡혀 현지로 끌려와 미산 구치소에 갇혔다. 악질 경찰 두융산은 장훙루에게 하의를 모두 벗으라고 한 후 가죽 띠로 장훙루의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장훙루의 하체는 멍이 들고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다. 당시 장훙루는 고통에 “사부님, 어서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장훙루가 소리치자마자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문을 훅 열어젖혔다. 경찰 두융산은 문이 정말 열리자 깜짝 놀라 뒤돌아 뛰쳐나갔고 잠시 후 돌아와서야 장훙루를 감방으로 데려갔다. 구치소에서 13일간 박해를 당한 장훙루는 부당하게 강제노동 처분을 받아 노동수용소에서 1년 3개월간 박해를 받다가 2001년 3월 25일에야 가족의 마중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2002년 2월 12일(음력 정월 초하루) 장훙루는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썼다가 경찰 멍칭치에게 권총으로 왼쪽 무릎 아래 뼈를 총격당해 부러졌다. 멍칭치와 두융산은 장훙루의 앞으로 달려가 그의 머리를 마구 걷어찼다. 그 자리에서 장훙루는 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얻어맞고 기절했다. 경찰은 승합차로 장훙루를 미산시 솽성향파출소 지하로 끌고 가 시멘트 바닥에 내팽개쳤다. 경찰은 장훙루가 죽을까 두려워 다시 차로 장훙루를 인민병원으로 끌고 가 장훙루의 손을 침대에 수갑으로 묶어놓고는 의사에게 장훙루의 두 눈알을 도로 밀어 넣으라고 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경찰 멍칭치와 두융산은 장훙루를 불법 심문할 때마다 고무호스로 때리고 그의 코에 겨자기름을 부었다. 9개월이 지난 후에도 장훙루의 몸에는 떨림이 계속되는 후유증이 남았다.
2002년 10월 말, 미산 중공 법원은 장훙루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어 그에게 14년 형을 선고했다. 장훙루는 부당한 판결을 내린 데 불복해 지시 중급법원에 상소했으나 지시시 중급법원은 상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장훙루는 지시 하다 감옥의 집중훈련대에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몸이 떨려 달리기를 할 수 없자 경찰은 장훙루에게 벌로 옆에 서 있으라고 했는데, 한 번 서면 두 시간 넘게 서 있어야 했다. 감방에 돌아와서는 경찰이 장훙루에게 58개의 사악한 규정을 외우라고 했다. 장훙루는 멍칭치에게 머리를 얻어맞아 기억력이 손상되어 암기할 수 없었다. 이에 간수는 죄수 잡부들을 시켜 장훙루를 체벌했다.
두 달 후, 하다 감옥의 경찰은 장훙루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그를 무단장 감옥의 집중훈련대로 보냈다. 훈련대에 도착한 지 엿새 만에 장훙루는 제1대대로 배치됐다. 경찰 리푸청은 장훙루에게 매일 작업장 바닥을 쓸게 했고 경찰 린융밍은 몇 명의 죄수를 시켜 장훙루를 감시하게 했다. 2004년 설날 전 한 달쯤, 대대장 왕웨이가 장훙루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윗선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전향(수련 포기)’시키라고 요구했다며 장훙루에게 사서(四書,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했다. 장훙루는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몸을 튼튼히 하고 건강해지는 좋은 공법이라고 말했다. 파룬궁은 사회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며, 파룬궁의 법리에 따라 진정으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그 마음이 있으면 몸이 건강해져 병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장훙루는 자신의 가족이 대법 중에서 얻은 혜택에 대해 말했고 왕웨이는 듣고 나서 “윗선에서 내린 명령이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어느 날 간수들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일일이 연마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다. 장훙루가 쓰지 않자 경찰은 죄수 펑바오화, 푸쥔, 자오미후 세 사람을 시켜 장훙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게 했다. 장훙루가 구토할 때까지 얻어맞고서야 그들은 멈췄다. 경찰 린융밍은 장훙루를 독방에 가두고 박해했다. 장훙루의 몸에 18kg짜리 쇠고랑과 수갑을 채우고 사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가 독방에서 박해받은 지 15일째, 설날 일주일 전에야 그를 나오게 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설 연휴가 끝난 후 다시 각종 구실로 장훙루를 독방에 가두고 보름간 박해했다. 그가 나왔을 때 박해받아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2008년 6월 6일에 이르러 장훙루는 말이 분명치 않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2009년 10월 감옥에서는 또다시 박해 명령을 내려 각 감방의 ‘전향율’을 75% 이상 달성하라고 요구했다. 장훙루는 사악한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장훙루의 침대를 흔들게 하고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2010년 8월 10일 장훙루는 병보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2013년 9월 초, 미산시 타이핑향의 사법을 관장하는 청위화가 장훙루를 찾아와 미산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는 장훙루를 위협하며 “세 차례 통지에도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지 않으면 무단장 감옥에 통보해 수감시키겠다”고 했다. 미산시 타이핑향 부향장 천줘셴은 한 뭉치의 보증서를 손에 들고 아내 위안수즈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그는 “당신은 성에서 명단에 올라 있다. 서명하지 않으면 며칠 후 성에서 사람이 와서 당신을 잡아갈 텐데 그땐 좋지 않을 것”이라며 위협했다. 하지만 위안수즈는 서명을 거부했다.
2015년 9월 23일, 장훙루는 미산 공안국 위하이잉에 의해 20일간 불법 구류됐다. 10월 13일, 장훙루는 무단장 감옥에 불법 수감됐다가 2016년 2월 11일 박해 기한이 만료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장훙루는 사악의 잔혹한 박해 때문에 몸에 후유증이 남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자주 발작이 일어났으며 점점 더 심해졌다. 그의 몸은 앙상할 정도로 말라갔다.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도 차도가 없었다. 나중에는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고 말도 분명치 않게 됐다. 의사는 그에게 코에 삽입관을 꽂아 유동식을 공급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게 했다. 2024년 1월 27일(음력 2023년 섣달 17일) 오후 5시경, 장훙루는 복지양로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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