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명혜망 통신원 톈진 보도) 톈진시 우칭구 파룬궁수련자 야오스란(姚士蘭)이 5년간의 부당한 감금 박해를 마치고 2024년 3월 9일 톈진여자감옥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다. 75세의 야오스란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야오스란은 톈진 우칭구 다젠창향 창툰촌 사람이다. 그녀는 1997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곧바로 병 없는 몸이 됐고, 한 달 후 체중이 40kg에서 55kg으로 늘었다. 야오스란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돕고 적극적으로 길을 보수하는 등 마을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다.
중국공산당이 1999년 7월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야오스란은 파룬따파의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 당원들의 잔인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납치되고 감금됐으며, 그중 두 차례는 부당하게 강제노동 3년 10개월 형을, 두 차례는 부당하게 징역 8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그 기간 고문과 학대로 아홉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음은 야오스란이 겪은 납치, 감금, 강제노동, 부당한 징역형 등의 사실을 간략히 서술한 것이다.
1999년~2005년: 여러 차례 납치, 감금, 두 차례 부당한 강제노동 당해
1999년 7월 20일 이후, 야오스란은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했다가 도중에 경찰에 의해 가로막혀 다젠창 파출소 경찰 사오자오잉 등에게 납치돼 우칭 구치소에 15일간 불법 구금됐고, 그 기간 감옥경찰에게 구타당했다.
야오스란이 집으로 돌아온 후, 다젠창 파출소 경찰은 야오스란의 가족이 출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매일 야오스란을 파출소로 데려가 청소를 하게 했으며, 그녀를 약 10일간 변칙적으로 감금했다.
얼마 후, 야오스란은 옆 마을 서기 리청웨이에게 진상자료를 전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고발당해 구치소로 납치돼 15일간 불법 구금됐고, 그 기간 강제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2000년에 야오스란은 다시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천안문에서 경찰에게 납치됐고, 한 젊은 경찰은 구두로 그녀의 얼굴을 밟아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다젠창 파출소로 압송된 후 경찰은 야오스란의 머리를 붙잡고 힘껏 벽에 찧었다. 그 후 야오스란은 다시 사오자오잉 등에 의해 우칭 구치소로 끌려가 2개월간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서 야오스란은 소금물을 강제로 먹이는 등 박해를 당했다.
2개월 후 경찰은 야오스란에게 1년간 부당한 강제노동을 처분했다. 그녀는 톈진시 반차오 노동수용소와 젠신 노동수용소로 차례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그 기간 구타, 수면 박탈, 음식물 강제 주입, 강제노동 등의 박해를 당했다.
2002년 야오스란은 길거리에서 다젠창 파출소 경찰 장칭리, 황주오샹에 의해 구치소로 납치돼 15일간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서 야오스란은 단식으로 항의했고, 거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경찰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야오스란은 법공부와 수련을 통해 몸이 빠르게 회복됐다.
2003년 야오스란은 시샤오랑에서 진상을 알리다 고발당해 파출소로 납치됐고, 경찰에게 뺨을 맞아 피가 날 정도로 구타당했다. 경찰은 다시 그녀를 우칭 구치소에 감금한 후 2년간의 부당한 강제노동 처분을 내렸다.
반차오 노동수용소에서 야오스란은 장기간 벌좌 등 각종 고문을 당했다. 아침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계속 앉아 있어야 했고,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화장실에 갈 때뿐이었다. 엉덩이 살이 벗겨지고 한 겹 한 겹 떨어져 나갔다. 야오스란은 한번은 약 100일 동안 계속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야오스란이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자 장기간 꿇어앉아 있게 해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매일 밤 10~11시까지 일해야 했다. 야오스란은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했고, 무려 110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야오스란은 악당들의 폭력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다. 두 팔을 의자 등받이에 묶고 악당들이 입을 벌리는 도구로 그녀의 입을 벌려 급식관을 삽입했는데, 심지어 위를 찔러 구멍을 냈다. 매번 음식물 강제 주입 후 야오스란은 피를 몇 번씩 토했다. 2년 후 노동수용소는 임의로 야오스란의 형기를 10개월 늘렸다. 부당한 강제노동이 끝날 때는 이미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다.
2006년~2015년: 반복적으로 납치, 감금, 부당한 3년 6개월 형 판결
2006년 3월 15일, 야오스란은 진상을 알리다 고발당했다. 마을 서기 리청웨, 치안대장 황서우칭이 다젠창 파출소 경찰, 우칭 국보대대 경찰을 이끌고 그녀 집으로 쳐들어가 불법 가택수색을 하고 야오스란을 우칭 구치소로 납치했다. 야오스란은 박해에 항의하며 45일간 단식했고,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해 여러 차례 위 출혈이 있었고, 하체가 마비되어 감각을 잃었으며, 체중이 45kg으로 빠졌다. 그제서야 보석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2006년 8월 18일, 창툰촌 치안주임 황서우칭은 다젠창 파출소 경찰을 이끌고 야오스란의 집으로 쳐들어가 담을 넘고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야오스란을 우칭구 법원으로 납치해 불법 재판을 했다. 판사는 야오스란 등 파룬궁수련자들이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전했다며 소위 증거를 제시했다. 야오스란은 당장 그것이 위증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그날 야오스란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6년 9월 4일 오후, 창툰촌 치안주임 황서우칭은 또다시 다젠창 진파출소 경찰을 이끌고 야오스란의 집으로 쳐들어가 담을 넘고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야오스란을 우칭구 법원으로 납치해 불법 재판을 했다. 야오스란은 모든 날조된 위증을 단호히 부인했다. 법원은 그날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7년 4월 4일 오후, 마을 치안대장 황서우칭은 다젠창 파출소, 우칭국보대대를 이끌고 야오스란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녀를 우칭 구치소와 톈진 제1구치소로 차례로 납치해 불법 감금했다. 이후에 우칭구 법원은 그녀에게 3년 6개월의 부당한 징역형을 선고했다. 야오스란은 다시 톈진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이후 야오스란은 톈진시 링좡쯔 감옥으로 이송되어 불법 감금됐다. 야오스란은 약 7개월간 단식으로 항의했고, 코에 꽂은 관을 통해 음식물을 강제 주입 당했다. 감옥경찰은 그녀의 두 팔을 잡아 침대 양쪽에 수갑을 채우고 코에서 위까지 관을 꽂아 10일 밤낮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보름마다 감옥경찰은 야오스란의 몸에서 한 큰 병의 피를 뽑았다. 10개월 후 야오스란은 걷지 못하게 됐다. 야오스란은 또한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11월 초, 감옥경찰은 야오스란을 신생의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했는데, 밤낮으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했다. 야오스란은 매우 불편함을 느꼈고 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말을 할 수 없었고 자주 의식을 잃었다. 야오스란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감옥경찰은 강제로 그녀의 손을 잡고 지문을 찍고 사진을 찍어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2007년 11월 23일, 야오스란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보석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신생의원에서 22일 동안 박해를 당했고 경찰이 그녀의 팔에 링거를 매달고 들것에 실어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때 그녀의 체중은 55에서 35kg으로 줄었고 기억력이 쇠퇴해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다.
야오스란은 몸이 회복된 후 박해를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 유랑했다.
2008년 7월 16일 밤 11시, 야오스란은 빌린 집에서 베이차이촌 파출소와 다젠창향 경찰에 의해 납치돼 다젠창으로 끌려갔다.
2009년 8월 12일 오전, 야오스란은 난차이촌진 바바이후촌 근처에서 진상을 알리다 고발당해 우칭구 형사경찰대 경찰 5~6명에 의해 납치되어 난차이촌 파출소로 끌려갔다. 이후 경찰은 그녀를 우칭구 구치소로 끌고가 불법 감금했고, 한 달 후 톈진 제1구치소로 옮겨졌다. 보름 후 야오스란은 다시 링좡쯔 감옥으로 끌려가 1년간 불법 감금됐다.
부당한 감금에서 풀려난 후에도 야오스란은 계속 대중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기에 경찰과 중공 관리들로부터 자주 괴롭힘과 납치, 약탈을 당했다.
2014년 5월 13일, 야오스란은 추이황커우진 시뤼촌 서기 저우구이치의 악의적 고발로 추이황커우진 허샹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하고, 우칭 구치소로 끌려가 43일간 불법 감금됐다. 그 기간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과 정체불명의 약물 주사를 맞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야오스란은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을 느꼈다. 귀가 후 야오스란은 중공 인원들의 잦은 방해를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 2개월 넘게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2015년 12월 23일 오전 9시 넘어 다젠창 파출소 경찰 3명과 법원 경찰 2명이 야오스란의 집으로 쳐들어가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야오스란을 강제로 경찰차에 끌어올려 우칭구 법원으로 끌고 가 불법 재판을 했다. 야오스란은 속옷 바람으로 신발도 외투도 없이 끌려갔다. 법정에 도착한 야오스란은 단호히 철제 의자에 앉기를 거부하고 재판장 자리에 앉으려 했으며, 그들에게 “오늘은 내가 당신들을 심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 3명이 강제로 야오스란을 철제 의자에 묶어두고 수갑을 채웠다. 한 젊은 경찰은 심지어 야오스란에게 한 칸을 더 조이고 팔을 힘껏 꼬집었다. 야오스란은 “파룬따파는 좋다!”라고 크게 외쳤다. 문서 낭독 과정에서 야오스란은 큰 소리로 대법을 배웠다. 오전 11시 넘어 야오스란은 다시 경찰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2019년~2024년: 또다시 부당한 5년 형, 온갖 고난 겪어
2019년 4월 23일 오전, 우칭구 다젠창 경찰이 국보 경찰을 이끌고 야오스란의 집으로 쳐들어가 불법 가택수색을 한 후 그녀를 톈진 우칭 구치소로 납치해 불법 감금했다. 이후 우칭구 공안, 검찰, 법원은 어떤 법적 절차도 밟지 않고 모의해 야오스란에게 부당한 5년 형을 선고한 후 곧바로 톈진여자감옥으로 끌고 갔는데, 시기는 2019년 9월경이었다.
우칭구 공안, 검찰, 법원은 야오스란에 대한 사법 박해 과정 내내 야오스란의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2개월 후에야 가족들은 야오스란의 행방을 알게 됐는데, 당시 그녀는 이미 구치소에서 우칭중의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고 있었다.
소식에 따르면, 야오스란은 구치소로 납치된 후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고, 10일 후 병원으로 강제 이송되어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다. 그녀는 장기간 수갑과 족쇄를 차고 손발이 침대에 묶여 꼼짝할 수 없었으며, 감옥경찰은 그녀가 소리치는 것을 두려워해 특수한 ‘큰 철모’를 씌웠다. 또한 매일 강제로 그녀의 피를 뽑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문했는데, 납치된 지 45일 만에 그녀는 이미 걷지 못하게 됐다.
경찰은 그녀를 감옥으로 끌고 가기 전날 구치소에서 야오스란에게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했고, 다음 날 들것에 실어 톈진여자감옥으로 옮겼다. 야오스란은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2019년 9월, 가족이 감옥에 면회를 갔을 때 야오스란의 몸은 매우 허약하고 부축을 받아야 했으며 말할 힘조차 없었다.
톈진여자감옥은 파룬궁수련자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감형 등으로 죄수들을 유혹해 그들의 심복으로 만들어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게 했다. 야오스란이 파룬따파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감옥경찰과 죄수들은 그녀가 침대에서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7개월 동안 땅바닥에서 자게 했으며, 야오스란은 장시간 벌서기와 저녁 9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고 음식마저 빼앗겼다.
사기범 위빙신은 감옥경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앞장서서 야오스란을 박해했고, 감시원 죄수 왕리는 자주 주먹과 발로 그녀를 때리고 모욕했다. 죄수 야오징, 허우훙메이, 류춘훙 등도 모두 감옥경찰이 야오스란을 박해하는 심복들이었다.
박해 책임자:
톈진여자감옥 제6대대:
감옥경찰 대장: 왕뤼이, 차오웨
죄수: 위빙신(우칭 천쭈이진 아이푸좡 사람), 류춘훙, 야오징, 허우훙메이, 왕리
우칭구 검찰원:
리리자오
우칭구 법원:
마오싱둥, 인젠, 샤오위샤, 왕샤오, 류춘슈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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