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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박해당한 지린시 수련자 레이슈샹, 재차 부당한 5년 형 선고받아

[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중공 당국의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아온 지린시 파룬궁수련자 레이슈샹(雷秀香·63·여)이 5월 하순에 부당하게 5년 형을 선고받고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녀는 2023년 3월 31일 밤 지린시 공안국 펑만분국 다창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레이슈샹은 지린시 펑만구 장난향 위펑신위안(裕豊馨苑)에 거주한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누가 말하든 자기 고집만 부리며 언제나 거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 있었다. 30여 세에 이미 건강이 망가졌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했으며 강가에 가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1998년 말 레이슈샹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의 경쟁심 강하고 남을 꺾으려 하던 성격을 완전히 고치고, 어디서든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으로 대했다. 그녀의 몸은 건강해졌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2023년 3월 31일 저녁 7시경, 레이슈샹은 지린시 공안국 펑만분국 다창툰 파출소 부소장과 경찰 등 5명에 의해 불법적으로 가택 침입을 당하고 납치됐다. 집에 있던 파룬궁 서적, 파룬궁 창시자 사진, 프린터 등 개인 물품이 강탈당했고 그녀는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이후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전에도 레이슈샹은 중공 악당에 의해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구금됐으며, 세 차례 불법 강제노동, 한 차례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유치장, 세뇌반,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박해받았다. 약물 투여, 독극물 주사, 라디에이터에 수갑 채우기, ‘시체 침대’에 눕히기, 구타, 전기봉 사용, 옷 벗기기 등 갖은 모욕과 고문을 당했으며, 한번은 기절해 죽을 뻔했다.

다음은 레이슈샹이 중공 악당에 의해 박해당한 일부 경험이다.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에 가서 불법 구금돼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이 파룬궁에 대한 광란적인 박해를 시작하면서 레이슈샹은 종종 주민센터나 파출소의 방해를 받았다. 2000년 말 그녀는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다가 베이징 주재 지린시 사무소로 납치된 후, 며칠 뒤 다시 압송돼 유치장에서 15일간 불법 구금됐다.

세뇌반과 구치소에서의 박해

2001년 2월 레이슈샹은 다창툰 파출소 경찰과 주민센터 악인들에 의해 세뇌반으로 끌려가 60일간 감금 박해를 당했다.

2006년 3월 2일 레이슈샹은 지린시 공안국 펑만분국 경찰들에 의해 가택 침입과 납치, 가택수색을 당했고 한밤중에 구치소로 끌려가 감금 박해를 당했다. 레이슈샹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고 하루에 두 번씩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다. 한번은 악인이 그녀의 입에 대나무 판자를 집어넣어 관을 꽂아 음식물을 강제 주입했고, 또 코에 관을 꽂아 주입하기도 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중공 고문 재연도: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레이슈샹은 15일간 감금 박해를 당한 후 창춘(長春)시로 끌려가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신체검사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아 노동수용소가 수감을 거부해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당한 첫 번째 경험

2006년 6월 7일, 다창툰 파출소 소장 팡빈(方斌)이 두 명의 사복 경찰을 데리고 와서 레이슈샹을 납치했다. 레이슈샹이 집에 들어가자 경찰들이 바깥방을 지키고 있었고, 그녀는 틈을 타 창문으로 달아났지만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경찰은 레이슈샹에게 1년 3개월 불법 강제노동 판결문을 주고 당일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로 끌고 갔다.

다음은 레이슈샹은 당시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술회한 것이다.

“저는 4대대에 배치됐어요. 막 도착한 날 밤에 제가 놓아달라고 외쳤더니 양(楊)씨 성의 경찰이 전기봉으로 저를 때렸어요. 저는 단식으로 항의했고, 그들은 저를 땅바닥에 눕히고 손과 다리를 누르고 몸 위에 올라타 머리를 눌렀어요. 처음에 관을 꽂을 때는 의료용 식사관이 아니라 노란 고무호스 같은 딱딱한 것을 썼어요.(가스통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 그들은 그걸 억지로 밀어 넣었는데, 특히 콧구멍으로 밀어 넣을 때는 너무 아팠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식도와 위 안쪽이 다 상했고 뱃속이 화끈거리며 아팠어요. 위산이 역류하고 구토하고, 오랫동안 핏덩어리를 토했어요. 또 수갑으로 침대에 묶어두고 강제로 수액을 맞혔어요. 하루에 네다섯 병은 맞아야 했죠.”

“한 번은 관씨 성의 대대장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음식물 강제 주입을 시켰어요. 그는 저를 사정없이 때리고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머리를 땅바닥에 있는 힘껏 찧었어요.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을 잃을 뻔했지요. 그다음엔 또 음식물 강제 주입을 했어요. 저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어요. 의사가 사고 날까 봐 제지했어요.”

“단식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또 단식을 했어요. 저는 그들에 의해 간수실로 끌려갔고 양손이 수갑으로 침대에 묶였어요. 대대장 리샤오화가 제안해서 제 발을 가죽끈으로 침대 양쪽에 묶었어요. 그 후로 매일 묶였어요. 두 팔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어요. 날씨도 무척 더웠는데 소변을 누지 못했고, 대변은 한 손만 풀어 침대 옆에서 보게 했어요. 매트리스가 젖었고 엉덩이가 다 문드러졌어요. 너무 아팠어요. 저를 지켜보는 사람이 의사에게 말해서 겨우 밤에는 발을 풀어줬지만 낮에는 여전히 묶였어요. 이렇게 30일 정도 매일 침대 머리에 수갑을 채워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어요.”

“한번은 음식물 강제 주입을 하면서 주사도 한 대 놓았는데,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어요. 맞고 나서 밤새 잠이 오지 않았고, 배가 부풀어 올랐어요. 저는 너무 괴로워서 큰 소리로 외쳤어요. ‘당신들이 제게 무슨 약을 놓은 거죠? 왜 이렇게 정신이 또렷하고 배가 부풀어 오르죠?'”

“7일마다 신체검사를 했어요. 그들이 저를 병원으로 끌고 갔는데, 제가 사람을 보자마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어요. 경찰 펑샤오춘이 제 옷을 걷어 머리를 덮고는 마구 때렸어요. 때리고 나서 병원으로 끌고 갔는데, 나와서 제가 또 외치자 그들은 외부 사람들이 보는 걸 두려워했어요. 차에 오르자마자 또 미친 듯이 저를 때렸어요.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뺨을 때렸는데,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때려서 제가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자 겨우 멈췄어요. 한번은 신체검사를 하고 돌아올 때 제가 길에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고 그들이 저를 간수실로 데려갔어요. 그들은 절 때리기 시작했어요. 경찰 장구이메이가 발로 저를 걷어찼고, 경찰 펑샤오춘, 왕주펑은 전기봉으로 절 때렸어요. 장구이메이는 가위로 강제로 제 머리카락을 잘랐고, 또 억지로 저를 끌고 갔어요.”

“한번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했는데, 제가 거기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어요. 경찰 펑샤오춘이 저를 끌고 간 다음 마구 때렸어요. 그 후 제가 또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펑샤오춘이 큰 가죽신발을 신고 복도에서 뒤에서 발로 차서 저를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한바탕 마구 때렸어요. 저는 맞아서 정신을 잃었다가 몇 분 후에야 노동수용소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노동수용소에서 맞고 욕먹는 건 예사로운 일이에요. 주로 심하게 때리고, 전기봉으로 때리고, 침대에 수갑을 채우는 건데요,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소변을 누려면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하며, 벌거벗은 채로 수치심도 돌볼 겨를이 없게 만들어요.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는 거죠. 이게 가장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계속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났어요.”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당한 두 번째 경험

2008년 7월 13일 레이슈샹은 다창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지린시 장베이 부근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경찰 선훙취안이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팔을 잡아당겨 리모컨으로 손등 관절을 때렸다. 레이슈샹은 너무 아파서 손을 뒤로 감췄더니 선훙취안은 발가락을 때렸다. 나중에 힘줄이 부풀어 오르자 겨우 그만뒀다. 레이슈샹은 단식으로 항의했지만 다시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헤이쭈이쯔 수용소 4대대에서 레이슈샹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아 수갑으로 침대 다리에 묶여 40여 일 동안 계속 땅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

레이슈샹은 강제 노역을 당했고 저항하자 매달 27일씩 불법적으로 기한을 연장해 몇 개월을 더 감금당했으며, 2008년 말에야 풀려났다.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당한 세 번째 경험

2011년 5월 하순, 레이슈샹은 다창툰 파출소 경찰에게 또다시 가택 침입과 납치, 가택수색을 당하고 그날 바로 헤이쭈이쯔 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레이슈샹이 당시 헤이쭈이쯔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술회한 것이다.

“또 4대대였어요. 한 무리 사람들이 달려들어 제 옷을 벗기고 수갑으로 양손을 침대에 묶었어요. 몇 명이 제 손을 비틀고 또 다른 사람은 전기봉으로 때렸어요. 억지로 무슨 지문을 찍었어요. 제 옷을 다 빼앗아 가고 강제로 죄수복을 입혔어요. 제가 밥을 먹을 수 없자 그들은 음식물 강제 주입을 했어요. 어느 날 절 지켜보던 사람이 제게 말해주길 밥에 약을 많이 타서 밥 색깔이 변했대요.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수감자들은 (약을 탄) 밥을 바닥에 엎었는데, 의사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치며 사람들에게 바닥에서 밥을 주워 먹이라고 했어요. 매일 죄수복을 억지로 입히고 수갑을 채워 라디에이터나 의자에 매달았어요. 한번은 죄수복을 입지 않으려 했고 할 수 없이 그냥 알몸으로 있어야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이불보를 뜯어 감쌌는데 그때 감옥경찰은 장샤오후이였어요. 그들은 제 이불보며 침대보, 속옷, 바지를 다 가져갔어요. 속바지 하나만 남겨뒀죠. 날씨가 추웠는데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고 갈아입을 옷도 없었어요. 정말 방법이 없어서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속바지 하나를 주워 입었어요. 그날은 생리 중이라 바지가 다 젖었는데 저를 지켜보던 사람이 당직 간수에게 말해줘서야 속바지를 가져다주었어요. 신발도 빼앗겨서 맨발로 지냈어요. 오랫동안 맨발이었죠. 한 수련자가 집에 갈 때 신발 한 켤레를 주어서야 신을 수 있었어요. 한번은 대변을 보려고 했는데 그날 당직은 대대장 리샤오화였어요. 수갑을 풀어주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의자를 안은 채 복도로 뛰어갔더니 그제야 수갑을 풀어줬어요.”

“설 무렵 어느 날, 모든 사람을 큰 교실로 내몰았어요. 위에서 사람이 온다고 하더니 조금 있다가 한 무리 사람들이 왔어요. 제가 말했죠.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우리를 여기에 가둬놓고 박해하는 거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잘못된 거예요? 당신들은 가족들과 함께 설을 쇨 수 있는데 우리는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해요!’ 그 무리 사람들 중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갔어요. 그들이 간 후 주단, 진리화, 리샤오화 세 명의 대대장이 저를 감시카메라가 없는 방으로 끌고 가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댔어요. 제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어요.”

“2012년 9월 노동수용소는 강제로 파룬궁수련자들을 ‘전향(수련 포기)’시키려 했어요. 모든 확고한 수련자들을 고문 도구 ‘시체 침대’에 눕혀 팔다리를 묶고 전기봉으로 때렸어요. 이른바 ‘5서(五書,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죠. 이른바 ‘시체 침대’란 사람을 수갑으로 침대에 손발을 고정시키는 건데, 온몸이 공중에 매달려 어느 한 곳도 침대에 닿지 않아요. 몸무게를 모두 사지에 의지해야 하죠. 모든 관절과 허리 척추가 당겨지고 심신에 큰 상처를 입어요. 너무 아파서 숨이 막힐 정도인데 견디기 힘든 고통이에요. 1분도 버티기 힘든데 대소변 보는 것, 밥 먹는 것도 풀어주지 않아요. 불구가 된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서 걸을 수 없게 된 사람도 있으며, 머리와 손에 이상이 생긴 사람도 있었어요. 제 손은 시체 침대 고문으로 인해 제대로 쓸 수 없게 됐고, 검지, 중지, 약지, 소지에는 감각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중국 고문 재연도: 시체 침대

2013년 1월 7일 레이슈샹은 헤이쭈이쯔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나왔다.

지린성 여자감옥에서의 박해

2015년 7월 9일 레이슈샹은 다창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어 먼저 쑹장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당하다가 8월 7일 다시 지린시 구치소로 옮겨져 계속 감금 박해를 당했다. 구치소에서 레이슈샹은 알루미늄 박지를 누르는 강제노역을 거부했다. 경찰은 두 차례나 첸잉즈, 자오루이, 스진링 등 죄수들을 시켜 그녀를 화장실로 끌고 가 구타했으며, 가슴과 머리를 움켜쥐고 꼬집고, 아이스크림 막대기로 갈비뼈를 찔렀다. 레이슈샹은 20여 일 동안 수갑과 족쇄에 채워졌는데 화장실에 가거나 잠잘 때도 풀어주지 않았다. 죄수들은 레이슈샹이 침대에 올라가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그녀는 작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야 했다. 밤에 눈을 감으면 깨웠다. 죄수들은 족쇄를 그녀 발 위에 올려놓고 밟으며 “너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라고 외쳤다. 레이슈샹이 강제노역을 거부하자 두 차례나 복도로 끌고 나가 ‘걸레질’ 고문을 당했다.

酷刑演示:顺地拖着走
고문 재연도: ‘걸레질(끌고 다니며 고문하기)’

2016년 3월 22일 레이슈샹은 지린시 펑만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가족들이 9월에 구치소에 옷을 전해주려 했을 때 그녀가 이미 법원에 의해 비밀리에 부당한 판결(5년 형)을 받았으며 곧바로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압송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밀착감시, 독방 감금, 구타, 장시간 벌서기, 굶기기, 야간 고문, 작은 의자에 앉히기, 얼리기, 찬물 끼얹기, 물통에 머리 박고 물 쏟아붓기, 야만적 음식물 강제 주입, 얼굴에 고춧가루와 소금물 뿌리기, 세면도구 사용 금지, 포위해 ‘세뇌’ 시도, 인격 모욕 등이 있었다.

2018년 4월,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들을 강제로 ‘전향’시키려 했다. 레이슈샹은 작은 의자에 앉도록 강요당했는데 박해에 저항하며 9개월 동안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녀와 함께 수갑으로 연결돼 앉아 있었던 파룬궁수련자는 징옌(荊豔)이었다.

레이슈샹은 여러 번 범죄자 왕쿼에게 머리를 큰 물통에 박혀 물을 강제로 먹어야 했다. 한번은 왕쿼가 레이슈샹의 팔을 잡아당겨 물통에 머리를 박고 물을 먹이려 했는데 다른 사람이 막아냈다. 왕쿼는 찬물 한 대야를 레이슈샹에게 끼얹었고 솜옷이 모두 젖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었는데, 다행히 두 번째 물대야는 한 죄수가 가로채 주었다. 이 죄수는 나중에 9개월 감형을 받았는데, 1회당 최고 감형 기간에 속했다.

2019년 7, 8월경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전향’을 위한 고문을 자행했다. 1층에서 레이슈샹은 작은 의자에 앉도록 강요당했는데, 죄수들은 이를 ‘개구리 의자’라고 불렀다.(대략 가로세로 18×23cm, 높이 15cm) 두 다리를 모으고 다리와 몸이 직각이 되도록 했으며, 두 무릎 사이에 종이 한 장을 끼웠는데 종이가 떨어지면 꼬집고 밀치며 괴롭혔다. 박해에 가담한 죄수는 류핑핑, 가이리자, 리단, 류단단이었다.

中共刑具:强迫法轮功学员坐的小凳
중국 고문 도구: 파룬궁수련자들에게 강제로 앉히는 작은 의자

이후 레이슈샹은 또 벌을 받아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 계속 서 있어야 했는데, 하루 15, 6시간 정도 서 있어야 했다. 감옥은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집에 전화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음식 구매도 허락하지 않았고, 목욕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수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한 폐렴(코로나19) 발생 시기에 이르러서야 레이슈샹과 정춘링(鄭春玲), 주시위(朱熹玉), 옌수팡(閆淑芳), 뉴위후이(牛玉輝) 등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자들이 단식으로 항의한 후에야 감옥 측에서 집에 전화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 구매와 목욕은 허락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23일 레이슈샹은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나왔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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