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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성 파룬궁수련자 위하이룽, 중공의 박해로 사망

[명혜망](허베이성 통신원) 허베이성 파룬궁수련자 위하이룽(於海龍)이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계속 받다가 지난 1월 24일 안타깝게 사망했다.

허베이성 청더시에 거주하던 위하이룽은 사망하기 전까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중공의 불법적인 납치, 감금, 고문을 당했다.

2005년 12월 30일 밤, 위하이룽은 중공에 납치돼 6개월간 불법 감금돼 고문당하다 3년 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7월 8일, 또다시 납치된 그는 4년 형을 선고받고 탕산 지둥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해 온몸에 악성 종기가 생기고 점차 야위어 사망에 이르렀다.

1971년 10월 10일에 태어난 한족인 위하이룽은 허베이성 청더시 다스먀오진 지관산촌에 거주했다. 1995년, 그는 B형 간염에 걸려 허베이성 청더시의 주요 병원 3곳에서 B형 간염 양성 판정을 받았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입원할 여력이 없었던 그는 중의원에서 3년간 한약을 복용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1998년 운 좋게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그는 건강을 되찾아 공사 현장이나 채석장에서 일할 수 있었고, 가족이 소유한 땅을 일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파룬궁 수련의 원칙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다. 한번은 쇼핑하다가 판매자가 착각해서 거스름돈 10위안을 100위안으로 줬다. 그는 90위안을 즉시 가게에 돌려줬다. 모르는 노인이 묵을 곳이 없자 위하이룽은 그를 여관에 재우고 숙박비를 대신 냈다. 그는 또한 어려움을 당한 친척, 친구, 이웃을 보면 외면하지 않고 도와줬다.

계속되는 납치 고문과 부당한 4년 형

2005년 12월 30일 오후 6시쯤, 위하이룽은 집을 나갔다가 청더시 공안국 경찰 류밍청과 우더융에게 불법 납치됐다. 경찰들은 위 씨 집에 무단 침입해 복사기, 소모품, 커터 등 개인 물품을 불법 압수했다. 위 씨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밤새 공안국에 감금된 후 2006년 12월 31일 구치소로 이송돼 감금됐다.

2006년 1월 14일 밤, 위하이룽은 구치소에서 경찰에게 심문과 자백을 강요당했다. 스수젠, 류밍청, 우더융, 류펑, 장다펑,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두세 명의 경찰관이 그의 머리에 검은 두건을 씌우고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그들은 위하이룽을 루안핑 구치소로 끌고 가 철제 의자에 수갑을 채워 놓고 구치소 사람들과 함께 그를 심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류펑에게 입을 열 번 정도 맞고 귀를 너무 세게 맞은 위하이룽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루안핑 구치소에서 그를 청더 구치소로 데려갔다. 청더 구치소가 시간이 너무 늦었다면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자, 공안국은 그에게 수갑을 채운 채 밤새 감금한 후 다음 날 구치소에 감금했다.

위하이룽은 박해로 인해 B형 간염이 재발했고, 여전히 6개월 6일, 즉 193일 동안 감금돼 있다가 부당한 재판을 받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위 씨는 검찰 심문을 받을 때 변호사를 선임해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고, B형 간염이 재발했다고 하자 검찰은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위하이룽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중공의 감시와 괴롭힘을 당했다. 다스진 정법위 서기 리푸위, 사법소 란샤오펑, 파출소 경찰 2명이 집에 찾아와 그를 괴롭히고 협박했으며, 란샤오펑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괴롭혔고, 류밍청은 집에 찾아와 돈을 갈취했다. 어쩔 수 없이 며칠간 위 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떠돌아야 했다.

4년 형 선고받고 투옥돼 고문받아

2016년 7월 8일 저녁, 위하이룽, 볜췬롄, 위다리, 장위환이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위해 청더현 샤반청으로 갔는데, 청더현 공안국이 그들을 미행했다. 갑자기 검은색 승용차가 그들의 차를 가로막으며, 위하이룽이 운전 중에 사고를 냈다며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고 속여 주차하게 했다. 경찰 우레이와 허우서우인은 수련자 5명을 납치해 차량과 함께 청더현 구치소로 데려갔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위하이룽의 집을 불법 수색한 경찰은 파룬궁 진상 자료와 프린터, 컴퓨터, 파룬궁 수련서 등을 강탈해갔다.

酷刑演示:脚镣
고문 재연: 족쇄

세 명의 남성 수련자 위하이룽, 볜췬롄, 위다리는 청더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7월 10일, 가족은 청더현 공안국에 석방을 요청했지만 우레이는 석방하지 않았고, 가족이 다시 그곳으로 갔지만 여전히 석방을 거부했다.

위하이룽의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7월 15일, 변호사는 구치소로 급히 달려가 위하이룽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것을 목격했고, 70대 파룬궁수련자 볜췬롄은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을 뿐만 아니라 전기봉으로 충격을 받아 위중한 상태였다. 변호사는 족쇄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구치소 측은 이를 무시했다.

12월 20일 9시, 위하이룽, 볜췬롄, 위다리, 장위환의 재판이 불법적으로 진행됐으며, 변호사의 변론이 재판장 왕푸에 의해 여러 차례 중단되자 변호사는 의뢰인을 변호할 합법적인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 철회 신청을 제출했다. 결국 휴정과 재판 연기가 결정됐다.

2017년 1월 5일 불법 재판이 계속됐고 판사는 여전히 왕푸였으며 검사 수는 2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다. 법정 안팎에는 사복경찰들이 있었고, 정치법률위 관계자들도 법정에 나왔다. 재판 내내 변호사 4명이 강력하게 무죄를 변호했으나 검찰은 어떠한 법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이른바 ‘공소인’은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2017년 2월 15일, 청더현 공안, 검찰, 법원은 합세해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날조된 죄를 뒤집어씌웠고 변호사의 무죄 변론과 수련자들의 진실한 진술을 무시한 채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위하이룽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만 위안, 볜췬롄과 위다리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만 위안, 장위환은 징역 3년과 벌금 1만 위안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위하이룽, 위다리, 볜췬롄은 탕산 지둥 감옥에 투옥돼 온갖 고문을 당하며 박해받았다. 볜췬롄은 탕산 지둥 감옥에서 죽을 정도로 박해를 받았고, 2020년 8월 9일 집으로 돌아간 지 4일 만인 8월 12일에 결국 사망했다.

탕산 지둥 감옥에서 위하이룽은 심한 고문을 받아 온몸에 악성 종기가 생겼고, 점점 야위어 가다가, 2024년 1월 26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둥 감옥은 허베이성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는 가장 사악한 감옥 중 하나다. 허베이성에서 부당한 선고를 받은 남성 수련자들 대부분이 지둥 감옥에 투옥돼 있다. 이곳에 불법 감금된 수련자들은 모두 온갖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했으며, 지둥 감옥에서는 각종 잔혹한 방법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최소 431명의 수련자가 지둥 감옥에 불법 감금돼 있으며, 그중 최소 36명이 고문으로 살해됐고, 더 많은 사람이 잔혹한 구타와 온갖 비인간적이 고문으로 장애와 상처를 입고 있다. 이 수치는 중국공산당의 철저한 정보 봉쇄 속에서 밝혀진 일부분일 뿐이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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