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네이멍구 수련자 돤쉐친, 감옥서 여러 번 위독 상태

[명혜망](네이멍구 통신원) 돤쉐친(段學琴·여)은 네이멍구 츠펑(赤峰)시 바린쭤치(巴林左旗) 쓰팡청(四方城)향 출신의 60대 여성이다.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지난 20여 년간 중공(중국공산당)에게 여러 번 납치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금되어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수련 전 돤쉐친은 대장염, 담낭염, 위염, 심장병, 간 질환 등 각종 질병을 앓았으며, 매일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병상에 누워 지내게 됐다. 1998년 돤쉐친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한 달 정도 지나자 모든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던 마비 환자에서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녀는 더 이상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었고, 일가족은 모두 법공부를 했으며 외지로 가서 일하며 즐겁게 생활했다.

불법 강제노동 처분으로 고통을 당하다

1999년 ‘7·20’, 중공 장쩌민은 사악한 당 조직과 국가기구를 동원해 중국 전역에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정월 28일, 돤쉐친은 공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중공에 납치돼 15일간 불법 감금됐고, 온 가족은 본적지인 츠펑시 바린쭤치 쓰팡청향으로 돌려보내졌다.

2000년 1월 초, 쓰팡청향 공무원과 파출소 경찰들이 돤쉐친의 집에 침입해 그녀를 괴롭혔다. 돤쉐친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한 편지를 건네줬고, 그 결과 그녀는 촌장 장궈중(張國忠)과 파출소 경찰 츠젠쉐(遲建學)에 의해 쭤치 공안국에 신고당했다.

2001년 1월 5일(섣달 11일) 저녁, 돤쉐친은 쭤치 공안국 대장 투부신(圖布新) 등에게 유치장으로 납치됐다. 돤쉐친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다 몸이 약해져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파출소의 자웨이잉(賈偉英)에게 1500위안, 유치장의 정(鄭) 씨라는 경찰에게 식사비 100위안을 갈취당했다.

2001년 6월 13일, 돤쉐친과 남편이 채소를 팔러 나갔을 때 경찰 츠젠쉐는 쭤치 공안국의 류즈쥔(劉志軍)과 바이슈전(白秀珍), 츠펑 공안국 경찰들을 이끌고 가택수색을 해 파룬궁 수련서를 모두 강탈했다. 돤쉐친의 15세 딸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줬어요”라고 말했다가 츠젠쉐에게 뺨을 맞았다. 3일 후인 6월 16일 저녁, 츠젠쉐, 류즈쥔, 바이슈전 등 경찰들이 돤쉐친의 집에 침입해 그녀와 딸을 납치하고 보름간 불법 감금한 뒤 돤쉐친에게 강제노동 처분을 내렸다.

돤쉐친은 싱안멍(興安盟) 투무지(圖牧吉) 노동수용소에서 심한 박해를 받아 위장에 천공이 생겨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는 심한 박해를 받아 가족과 이웃조차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돤쉐친은 법공부와 연공을 해서 건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향 정부 직원과 파출소 경찰들이 종종 그녀 집에 찾아와 괴롭혔다.

빈번히 괴롭힘과 핍박을 당해 유랑생활을 하다

2002년 9월, 당시 돤쉐친은 몸을 푼 큰딸을 돌보러 가고 집에 없었는데, 경찰은 다시 돤쉐친의 집에 침입해 총구를 들이대고 둘째 딸을 위협하고 욕설로 겁을 주어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했다. 또 돤쉐친의 남편을 파출소로 납치해 이틀간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그 후 큰딸의 집에서 돤쉐친을 납치해 데려와 감시했다.

2002년 10월 14일, 치보린(齊柏林) 등 쭤치 공안국 경찰들은 다시 갑자기 돤쉐친의 집에 침입해 ‘학습’하러 가자고 강요했다. 돤쉐친은 협조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 벗어났다. 그날 밤 12시, 20명이 넘는 경찰들이 돤쉐친의 집을 포위하고 집 앞과 뒤를 샅샅이 뒤졌으나 그녀를 찾지 못했다. 이어서 경찰은 돤쉐친의 친척 집을 모두 뒤져 가족 중 일흔 살이 넘은 두 노인을 겁에 질리게 했다. 경찰은 돤쉐친을 잡지 못하자 그녀의 아들을 납치해 파출소로 끌고 가 20회 이상 뺨을 때리고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음력 섣달 27일인 2003년 1월 29일에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돤쉐친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중공의 엄청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문전 박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돤쉐친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고문당해 한때 위독해지다

2003년 2월 7일(정월 초이레), 돤쉐친은 동냥하면서 츠펑시에 이르렀다. 2월 11일 정오, 츠펑시 공안국의 한 무리 경찰들이 돤쉐친, 톈쑤팡(田素芳), 저우차이샤(周彩霞), 정란펑(鄭蘭鳳) 등 수련자들을 납치해 구치소로 데려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돤쉐친이 이름과 주소를 밝히기를 거부하자 경찰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다리를 구타했다. 그녀는 박해에 맞서기 위해 단식을 했다. 매일 수감자 7~8명이 그녀를 들고 나가 그녀의 입을 비틀고 음식물을 주입했고, 그녀의 치아를 톱니 모양으로 비틀었다. 한번은 경찰 장(江) 씨가 그녀에게 소금 반 봉지를 주입했는데 이로 인해 그녀는 피를 토했다. 한번은 수감자들이 음식을 주입하던 곳에서 다시 그녀를 감방으로 데려와 침대에 심하게 던져, 그녀는 다리 뼈가 부서지듯이 아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18일 후, 돤쉐친은 고문을 당해 사경을 헤맸고 경찰은 그제야 가족에게 의식을 잃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한 달 후, 돤쉐친은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다시 츠펑시 공안국 경찰 부런(布仁) 무리들에게 납치돼 훙산(紅山)구 구치소로 납치됐다. 돤쉐친은 도중에 피를 토했다.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여경 덩리옌(鄧麗豔)은 두 명의 남성 수감자에게 돤쉐친에게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덩리옌은 전기 스위치 열쇠를 돤쉐친의 머리에 대고 “먹을 거야, 말 거야?”라고 물었다. 그 후 돤쉐친은 전기봉으로 구타를 당했다. 그 후 돤쉐친은 병원으로 끌려가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호스를 꽂을 때마다 각혈하며 죽었다 살아났는데, 매번 많은 피를 토했다.

酷刑演示:死人床(呈“大”字型绑在抻床上)
고문 재연: 시체 침대(‘큰 대’자 모양으로 침대 위에 묶어 사지를 늘림)

훙산(紅山) 구치소에서 경찰은 돤쉐친을 보름간 ‘시체 침대’에 수갑을 채워놓아 팔 근육을 위축시키고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었다. 그녀를 지키던 죄수 왕샤오단(王曉丹), 류수제(劉淑傑), 천(陳) 씨는 종종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왕샤오단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고 수갑을 채운 팔을 내리쳤고, 류수제는 그녀의 이불을 들어 모욕하고 가슴을 심하게 때렸으며, 경찰 샹(向) 씨는 욕을 잘 했다. 왕샤오단과 류수제는 경찰의 부추김에 더욱더 날뛰었다. 그녀들은 심지어 돤쉐친이 눈을 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돤쉐친이 눈을 뜨면 두 수감자는 그녀를 구타했고 돤쉐친은 수갑이 채워진 채 침대에 묶여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두 수감자들은 또 변기를 빼앗아 가 돤쉐친이 배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보름 후에야 수갑을 풀어줬지만, 또 두 손을 뒤로 해 수갑을 채웠다.

감옥경찰 덩리옌은 수감자 왕샤오단과 류수제에게 돤쉐친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라고 지시했다. 너무 오랫동안 수갑을 차고 있었기에 돤쉐친은 온몸이 굳어 대소변을 볼 수 없었고, 쪼그려 앉을 수도 없어 무릎을 꿇고 용변을 봐야 했다. 때때로 그녀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기도 전에 수감자 왕샤오단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돤쉐친은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고문을 당해 사경을 헤맸다. 경찰들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위출혈 진단을 받은 후 인명 사고가 생길까 두려워 돤쉐친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쭤치 ‘610 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 주임 푸슈윈(傅秀雲), 부주임 장룽산(張榮山), 쓰팡청(四方城) 향정부와 마을의 악인들이 돤쉐친에 대해 줄곧 끊임없이 괴롭혔다.

두 차례 9년 형을 선고받고 괴롭힘을 받아 마비되다

돤쉐친은 2005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부당하게 4년과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두 차례 모두 네이멍구 제1여자감옥[후허하오터(呼和浩特) 여자감옥]에 납치돼 박해받았다.

2005년 10월 17일, 돤쉐친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려던 중 돤쉐친이 쭤치 공안국과 파출소로 납치됐다. 경찰은 돤쉐친이 4년 형을 선고받았고 아직 형기가 만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다반(大板) 구치소로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다반 구치소에 도착한 뒤 돤쉐친은 남녀 경찰들에게 구타와 발길질을 당했다. 그 후 돤쉐친은 후허하오터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2012년경 돤쉐친은 다시 납치됐고, 이번에는 부당하게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후 구치소 경찰 왕하이선(王海申)과 덩리옌이 그녀를 네이멍구 제1여자감옥으로 납치해 갔다.

명혜망에 따르면, 이 기간에 돤쉐친이 감옥에서 다음과 같이 박해를 당했는데,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돤쉐친에게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감옥 측은 그녀에 대해 폭력으로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하고 거짓말을 하고 유혹했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사오(邪悟)한 자들에게 그녀를 속이게 했다. 돤쉐친은 박해를 당해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있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으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극심했고 온종일 사는 게 죽기만도 못한 상태에 시달렸다.

한번은 돤쉐친이 파룬궁 진상을 알리자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자)들에게 비밀리에 심한 구타를 당했다. 한번은 돤쉐친이 도착보고를 거부하고 죄수복 착용을 거부해 가족 면회권도 박탈당했다. 나중에 돤쉐친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게 됐다.

돤쉐친은 사흘 밤낮으로도 겪은 박해에 대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해, 거듭 3년 형을 선고받다

2018년 1월, 돤쉐친은 억울한 징역형이 만기되어 출소한 뒤, 바린유치(巴林右旗) 다반진의 아들 집에서 거주했다.

2018년 12월 6일, 바린유치에서 진상 달력을 대중에게 배포하던 돤쉐친은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바린유치 공안국 경찰 4명에게 경찰차에 강제로 납치됐다. 경찰들은 돤쉐친이 지닌 진상 자료와 집 열쇠를 빼앗아 집에 있던 파룬궁 수련서, 컴퓨터, 파룬궁 창시자의 사진, 모든 진상 자료를 불법적으로 강탈했다. 그후 이를 소위 증거로 삼아 그녀에 대해 사법 박해를 진행했다.

바린유치 구치소에서 돤쉐친이 사진 촬영을 거부하자 세 명의 남자 경찰이 교대로 그녀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고, 여경 한 명이 그녀의 귀를 잡고 사진을 찍도록 강요했다. 돤쉐친이 연공을 한 이유로 감옥경찰 쑤르나(蘇日娜)는 그녀의 뺨을 때렸으며, 죄수복을 입지 않은 이유로 하루 동안 등 뒤로 수갑을 채웠고 오후에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풀어줬는데, 돤쉐친은 두 팔이 마비되고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이 굳어지고 왼쪽 반신이 마비돼 걷지 못했다. 박해로 인해 그녀는 혈압이 180, 심박수가 105에 달했다. 구치소장은 그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 강제로 약을 먹게 했으며, 또 밥과 반찬에 몰래 약을 넣었는데 그녀는 먹지 않았다. 여경 양슈메이(楊秀梅)는 세 차례나 감방에서 그녀를 구타했다. 구치소에서는 매주 한 번씩 감방을 뒤졌는데, 돤쉐친이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자 여경 류쉬안(劉軒)은 그녀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놔둔 채 몸을 뒤집어 수색했다. 구치소에서는 또한 돤쉐친을 두 번이나 병원에 보내 MRI 검사를 받게 했다.

돤쉐친은 납치된 지 일주일 후 바린유치 공안국에 의해 누명을 쓰고 바린유치 검찰원에 넘겨졌으며, 2주 후 다시 누명을 쓰고 츠펑시 검찰원에 넘겨졌고, 3주 후 바린유치 검찰원의 천쓰친(陳思琴) 검사에 의해 불법 기소를 당해 2019년 바린유치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5월에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바린유치 법원은 돤쉐친에게 부당하게 3년 형을 선고하고 5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진뉴카드(金牛卡)에서 직접 현금을 갈취했다. 돤쉐친은 다시 네이멍구 제1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네이멍구 여자감옥에서 돤쉐친은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 한때 집중 관리 박해를 받았다. 매일 눈을 뜨면 바오자 리차이샤(李彩霞)가 욕설을 퍼붓고 그녀가 생활필수품을 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구역장 바이(白) 씨는 마약중독자 류훙(劉紅)에게 돤쉐친을 박해하는 일을 맡기고 감방에 문제가 생기면 구역에 연락하지 말고 류훙이 직접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류훙은 “파룬궁과 싸우려면 죽도록 혼내야 한다”라고 소리쳤다.

한번은 류훙이 수감자들에게 돤쉐친의 물에 약물을 넣으라고 지시한 후, 수감자 4~5명이 그녀를 붙잡고 약물을 강제로 주입하고 코에 쏟아부었다.

한번은 한 살인범 수감자가 돤쉐친과 시비가 붙어 나무 의자로 그녀를 구타한 적도 있다.

한번은 류훙이 돤쉐친에게 배지를 달라고 했는데 그녀가 거부하자 류훙은 돤쉐친의 팔을 잡고 바깥쪽으로 강하게 비틀어 팔의 통증을 유발했다.

한번은 돤쉐친이 박해를 받아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녀가 감옥 측에서 주는 약을 먹지 않자 류훙과 다른 수감자들이 감시카메라를 막고 폭행을 가했다. 류훙은 돤쉐친의 목을 조르고 머리채를 잡아끌고 목을 세게 뒤로 비틀어 돤쉐친이 의식을 잃게 했다.

2003년과 2012년에도 돤쉐친은 경찰에게 꼬리뼈를 걷어차여 앉기도 힘들었지만, 류훙 등 사람들은 그녀를 눕히지 않았다. 돤쉐친은 당직 경찰인 치치거(其其格)에게 상황을 반영했는데, 치치거는 돤쉐친에게 입을 다물라고 했다. 돤쉐친은 여러 차례 기어서 감옥 구역장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구역장은 오히려 류훙이 돤쉐친에게 구타당해 멍이 들고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2018년쯤, 돤쉐친은 ‘공견조(攻堅組, 전문적으로 수련생을 전향시키고 박해하는 팀)’에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한번은 수감자들이 돤쉐친을 침대에 눌러 하반신이 침대 아래에 드리워지게 한 다음, 류훙이 그녀의 옷을 걷어 올려 머리를 덮고 왼팔로 그녀 가슴을 두드리고 오른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내리쳤는데, 돤쉐친은 구타로 입에서 피가 났다. 돤쉐친이 목숨을 구해달라고 외치자 류훙이 돤쉐친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데 돤쉐친이 외치면서 밖으로 기어나가면 죄수들은 또 그녀를 끌고 돌아왔다. 이렇게 돤쉐친은 악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이렇게 사악한 자들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돤쉐친은 핍박에 못 이겨 ‘전향’을 당했다.

그녀가 법공부하고 연공을 할 수 없게 되어 몸에 질병 상태가 나타나자 감옥경찰 두춘메이는 그녀가 꾀병을 부린다고 말했다.

장기간의 잔인한 박해로 인해 돤쉐친의 몸은 심각하게 손상됐다. 평소 그녀는 침대에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기에 땅에서 기어 다녀야 했다.

돤쉐친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두 차례 대수술을 받았으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바린유치 주민센터 직원, ‘610’ 직원, 공안국 및 파출소 경찰들은 종종 다양한 구실로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괴롭혔고, 때로는 길에서 그녀와 만다면 비디오 촬영과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2/24/47357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2/24/47357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