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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찰 장아이취안, 박해로 가족 3명 사망 후 다시 납치돼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지난 11월 29일, 산둥성 둥잉(東營)시 공안국과 성리(勝利) 유전 빈하이(濱海) 공안국이 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한 가운데, 집에 있던 파룬궁수련자 장아이취안(張愛泉)도 빈하이 구치소로 납치됐다.

장아이취안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24년간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고 가정이 파괴됐다.

파룬궁 수련으로 지덕을 겸비하다

장아이취안은 성리 유전 빈하이 공안국 교통관리센터에서 근무했다. 1999년 경독(한국의 경위에 해당)으로 승진했으며, 산둥성 무술협회의 유명 인사였다. 장아이취안은 1995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좋은 사람이 됐고, 항상 남을 배려하라는 파룬궁의 요구를 실천했다. 그는 검소하게 생활하며 성실하게 일했고, 직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직장과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한 좋은 사람이었다.

장아이취안의 아내 왕밍윈도 파룬궁을 수련하며 성리 유전 둥신(東辛) 채유공장 감측(監測)대대 직원으로 일했는데, 1995년 수련을 시작한 후 오랫동안 낫지 않던 두통, 요통, 등 함몰 등 질병이 단기간에 나았고,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그녀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했고 동료들과 화목하게 지냈으며, 직장, 채유공장, 관리국에서 여러 차례 모범직원 평가를 받았다. 또 장아이취안과 왕밍윈 부부가 만든 화목한 가정은 직장에서 ‘문명 가정’으로 선정됐다.

1999년 7월, 중공의 악랄한 우두머리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자 수련자들은 거짓말에 현혹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아이취안은 중공의 눈엣가시가 되어 중점 박해 대상이 됐고, 이후 그들 가족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불법 감금, 가택수색, 벌금, 공직 해고

장아이취안은 1999년 7월 22일부터 12월 23일까지 직장인 교통관리센터에 몇 달간 불법 감금됐고, 약 9개월간 급여를 받지 못했으며, 매월 생활비로 겨우 3백 위안(약 5만 원)만 받았다.

2000년 7월 20일, 경찰 40여 명이 경찰차 10여 대에 나눠 타고 장아이취안 부부의 집을 포위했다. 장아이취안은 2000년 8월 20일 교통관리센터에 불법 감금됐고, 이후 경찰에 의해 빈하이 구치소로 납치돼 30일간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장아이취안에게는 항상 족쇄가 채워졌다. 이후 장아이취안은 공안기관에서 해고됐고, 동시에 파룬궁 수련서와 파룬궁 창시자 사진 등 물품을 불법적으로 강탈당했다.

2000년 9월 19일부터 9월 30일까지 장아이취안은 빈둥 공안지국에 감금됐다.

불법 강제노동과 징역형 받고 각종 고문당해

2000년 9월 30일, 장아이취안은 불법적인 강제노동 3년 처분을 받았다. 장아이취안은 산둥성 왕춘(王村) 노동수용소에서 강제 세뇌, 수면 박탈, 화장실 이용 금지,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히기(매일 10시간 이상 지속되어 전신의 조직, 특히 엉덩이 부분에 극심한 고통을 받음), 햇볕 노출, 체벌, 강제 노동 등 잔인한 학대를 당하며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2002년 집으로 돌아왔고 1년간 연공한 후에야 몸이 점차 회복됐다.

중국공산당의 진면목을 폭로한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9평)’이 중국에 전파되어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자, 중국공산당은 큰 공포를 느꼈다. 2005년 5월 13일, 장아이취안은 쯔보(淄博)시 환타이(桓台)현 ‘610’(파룬궁 박해기구),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국) 대대​, 빈둥 공안지국 바펀창(八分廠) 파출소, 형사경찰대 등에서 온 경찰 20여 명에 의해 대중 앞에서 납치됐다. 그 과정에서 장아이취안은 머리가 찢어졌고, 대량의 출혈로 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경찰 20여 명이 담을 넘어 장아이취안의 집에 침입해 장아이취안의 아내 왕밍윈을 납치했고, 집을 불법 수색해 알토 승용차 한 대(5만 8천여 위안 상당)와 HP 프린터 한 대(3천 위안 상당), 새 델 컴퓨터 한 대(1만 3천 위안 상당), 휴대폰 한 대(1천 위안 상당)를 강탈했다.

환타이현 공안국 경찰은 장아이취안 부부의 집과 다른 파룬궁수련자의 집을 수색할 때, ‘9평’ 자료, 특히 보다(博大) 출판사에서 출판한 양장본 ‘9평’을 발견했다. 산둥성 공안청은 매우 놀라며 ‘9평’의 출처를 반드시 알아내려고 했고, 파룬궁 박해 전담조가 성리 유전에 도착해 성리 호텔에 묵으면서 여러 수련자를 대대적으로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장아이취안은 세뇌반으로 납치돼 9일간 자백을 강요받으며 고문을 당했고, 세 개의 삼각 철제 돌기가 있는 쇠의자에 강제로 앉혀졌고,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으며, 수면 박탈과 전기봉 충격 등 고문을 당했다. 5월 20일, 구치소에서 나온 장아이취안의 옷은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중에야 장아이취안이 한 달 넘게 고문 도구 ‘시체 침대[死人床]’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酷刑演示:死人床(呈“大”字型绑在抻床上)
고문 시연: 시체 침대(큰 대 자 형태로 침대에 묶어놓음)

2006년 3월, 장아이취안 부부는 환타이 법원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는 변호사들이 거칠게 항변하는 가운데 검사가 얼굴을 붉힌 채 공소장을 낭독하며 말을 더듬는 등,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법정은 소란스러웠다. 결국 판사는 선고도 하지 않은 채 재판을 허둥지둥 마쳤다. 나중에 법원은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전에 변호사와 가족에게 통보하는 규정도 어기고, 2006년 7월 28일 부당하게 장아이취안에게 8년 형을 선고했고, 왕밍윈에게는 7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장아이취안 부부는 각각 산둥성 감옥과 산둥성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됐고, 집에는 슬픔에 잠긴 노인과 아직 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남겨져 힘든 나날을 보냈다.

산둥성 감옥에서 장아이취안은 비행기 태​우기, 나무판 위에 쪼그려 앉히기, 뺨 때리기, 수면 방해, 항문 찌르기, 곤봉으로 관절과 옆구리와 예민한 부위 때리기 등 각종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장아이취안은 8명이 번갈아 폭행하는 바람에 이틀 만에 두 차례나 쇼크 상태에 빠졌고, 보름 이상 걸을 수 없었으며, 양 옆구리에 온통 피멍이 들었고, 오른쪽 허벅지와 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다리와 허리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불법 감금 기간에 통신, 우편, 면회 등 정당한 권리도 박탈당했다.

酷刑演示:坐飞机,将法轮功学员整个身体抬起来,平着身子,将头撞向墙
고문 시연: 비행기 태우기 고문, 파룬궁수련자를 눕힌 채 공중에 달아매고 머리를 벽에 충돌시킨다.

가족 3명이 박해로 사망

장아이취안이 불법 강제노동 박해를 받던 기간에 그의 장인은 큰 충격을 받고 2001년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아이취안의 연로한 아버지도 수년간 고통스러운 정신적 학대를 당하다 2012년 8월에 사망했다.

2006년, 아내 왕밍윈이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되자 경찰은 그녀를 훈련대에 가두고 고문하며 수련 포기를 강요했다. 그들은 왕밍윈에게 40여 일간 서 있기 벌을 내렸고, 매일 새벽 3~4시까지 벌을 서게 해 잠을 겨우 두세 시간밖에 못 자게 했다. 경찰과 감시자는 인격모독, 때리고 욕하기, 생필품 구입 금지, 협박, 가족 면회 금지 등으로 장기간 그녀를 괴롭혔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감옥에서 그녀에 대해 오랫동안 약물 박해를 진행하면서 알 수 없는 약물을 쌀밥, 만두, 호빵, 채소 등에 섞었다는 것이다​.(그녀가 풀려난 후 겨우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약물 박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 결국 왕밍윈은 형기 말기부터 출소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몸에 뾰루지가 났고, 온몸이 견딜 수 없게 가려웠으며, 비정상적인 통증에 시달렸다. 중공의 극심한 박해로 왕밍윈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치아는 흔들렸고, 혈압은 늘 200이 넘었으며, 원래 검었던 머리는 백발이 됐다.

왕밍윈은 7년 6개월 동안 죽음보다 더한 고통스러운 학대를 당하다 2012년 11월 19일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과 80여 일만인 2013년 2월 10일, 52세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아이취안은 단지 수련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의 박해를 받아 가정을 파괴됐고, 가족 세 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장아이취안에게는 아무런 수입도, 최소한의 보장도 없었으며, 수년간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023년 11월 29일, 이렇게 지덕을 겸비한 좋은 사람이 다시 중공 경찰에게 납치, 감금돼 박해를 받게 됐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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