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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당국의 공모로 중학교 교사 수련자, 박해받아 사망

[명혜망](쓰촨성 통신원) 쓰촨성 다저우(達州)시 다주(大竹)현 주베이(竹北) 중학교 교사이자 파룬궁수련자 왕하이첸(王海乾·60)이 감옥의 박해로 지난 11월 20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는 쓰촨성 자저우(嘉州) 감옥에서 박해받아 중태에 빠진 후, 10월 11일 새벽 1시 감옥 측에 의해 구급차로 다주현 사법국으로 이송됐다. 이후 다시 가족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원래 건강했던 왕하이첸은 부당하게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자저우 감옥에서 박해받아 혈변을 봤는데, 직장암 진단이 내려졌다. 2023년 3월 8일, 그는 청두(成都)시 진탕(金堂) 감옥 병원으로 이송됐다. 감옥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려우니 가족에게 병보석 절차를 빨리 진행하라고 했다. 가족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사건을 처리했고, 7개월 이상 다주현, 다저우시, 자저우 감옥, 성 감옥관리국을 오가며 그들이 제기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책임 전가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10월 10일, 성 감옥관리국은 왕하이첸의 병보석을 승인할 수 없고, 파룬궁수련자는 사망 후 시신을 돌려보내는 ‘녹색 통로’만 통과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왕하이첸은 1963년 다주현 칭허(淸河)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진(鎭)의 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해심이 많고 총명하며 배우기를 좋아하며 자랐고, 성적은 항상 최고 수준이었다. 1980년에 다주현 사범대학에 입학한 그는 198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주현 주베이 중학교에 취직해 국어 수업을 가르쳤다. 왕하이첸은 진지하게 가르치고, 인내심을 갖고 학생들을 상담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가르친 반의 학생들의 성적은 항상 선두에 있었으며, 30여 세에 그는 중급 직함으로 승진해 주베이 중학교의 기간제 교사가 됐다.

왕하이첸은 장기적인 과로로 건강이 점차 나빠져 비염, 표재성 위염, 복통, 현기증, 두통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1994년 하반기에 31세의 왕하이첸은 B형 간염에 걸렸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억지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 후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간 부위 팽창과 통증, 이물감이 있었다. 잠을 잘 때 오른쪽으로 누울 수 없었고, 온몸이 나른해 몹시 피곤한 상태가 나타났는데 각종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매우 적었다. 한 권위 있는 의사는 “이 질병은 근절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스스로 몸조리를 잘하세요”​라고 그에게 말했다.

1996년, 왕하이첸의 아내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공법이 매우 좋고, 또한 불가(佛家)의 공법이며 건강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도덕성을 향상시킨다고 여겨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같은 해 8월, 왕하이첸은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곧 B형 간염 증상이 점차 사라졌고 나중에는 모든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착실하게 ‘진선인’을 기준으로 삼고 안으로 찾아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됐으며,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주며 사상 경지를 높였다. 나중에 그는 다주현 파룬궁 보도소장을 맡았다.

파룬궁의 기적적인 효과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켜 수련생이 급속히 늘었다. 장쩌민은 질투와 증오 때문에 1999년 7월 20일에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이 24년간 박해 중에 왕하이첸은 불법적으로 2년간 강제노동 처분을 선고받았고, 여러 차례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세 차례 세뇌반에 갇혀 박해당했다. 게다가 재정적 박해와 교사 권리를 박탈당해 온 가족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왕하이첸은 아무리 악인들이 몸과 마음을 망가뜨려도 수련에 확고해 항상 40대처럼 보였다.

1. 베이징에 가서 평화적으로 청원해 2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1999년 7월 20일, 왕하이첸은 다주현 공안분국 경찰 자오젠성(趙建生)과 추타오(邱濤) 등에게 집에서 납치돼 이틀 밤낮 불법 감금과 박해를 받은 다음에야 제2구치소에서 석방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왕하이첸이 집으로 돌아온 뒤 경찰은 그에게 파룬궁 서적을 넘기고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서 직접 국보(국내안전보위국) 대대에 보내라고 했다. 이어서 향, 진 전역의 수백 명 수련자들을 정부 회의실에 모이게 했고 보증서를 쓸 때까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1999년 11월 중순, 왕하이첸과 그의 아내는 평화적으로 청원하고 진상을 알리기 위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며칠 후 왕하이첸은 다주현 교육위원회 보안과의 류더완(劉德萬)과 국보대대의 리웨쉐(李月學)에게 납치돼 현지로 돌아와, 탈옥한 도주범들이 처벌받는 촨둥(川東) 감옥 독방에 감금됐다. 그에게 매일 돌의자에 앉아 소위 ‘반성’을 시켰고,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박해는 매일 반복됐고 매끼 주는 음식은 70g을 초과하지 않았다.

2000년 1월, 왕하이첸은 다주 구치소로 이송돼 불법 감금됐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마자 파룬궁수련자들은 목에 팻말을 걸고 꽁꽁 묶인 채 무장경찰에 의해 3중학교로 이송돼 이른바 ‘공개체포 대회’에서 인격 모욕을 당했다. 공안국장 허융청(何永成)은 왕하이첸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표한 후, 그와 다른 수련자들을 트럭에 태워 전 시내에서 조리돌림을 시켰다.

示意图:中共监狱中的奴工迫害
중공 감옥의 강제 노동 박해 재연 그림

같은 해 4월, 왕하이첸은 경찰 자오젠성과 추타오에게 납치돼 쓰촨성 쯔양(資陽)시 다옌(大堰)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불법적으로 2년간 강제노동 처분을 선고받았다. 노동수용소에서 왕하이첸은 목화 따기, 밧줄 짜기, 폭죽 만들기, 전구 꼬기, 채소 심기, 물고기 기르기 등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섣달그믐 전날에는 반바지를 입고 허리 깊이까지 차오른 물웅덩이에서 죽은 물고기를 건지기도 했다.

2001년 9월, 집으로 돌아갔을 때 왕하이첸은 온몸이 퉁퉁 부었다.

2. 괴롭힘, 감시, 불법 심문

왕하이첸은 출소 후에도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 공안은 그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그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이 이미 잠든 사이 경찰 천구이샹(陳貴祥), 자오젠성(趙建生), 원리(文莉), 추타오가 집에 들어와 가족들을 괴롭혔다. 이 경찰들은 주위를 한바탕 조사해 본 다음 화를 내며 가버렸다.

한번은 왕하이첸이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가 바이타(白塔) 공원에서 한 수련자를 만나 몇 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경찰에게 발각됐다. 다음 날 아침 왕하이첸은 공안국으로 납치돼 불법적인 심문을 받았다. 또 한번은 왕하이첸이 작은 놀이공원에서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은 여성 수련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막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곧 110 경찰차에 납치돼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왕하이첸은 불법적인 몸수색과 심문을 받았다.

2004년 8월 22일 저녁, 왕하이첸이 막 출소한 수련자를 방문하러 갔을 때 베이청 파출소의 리충정(李從政)이 이끄는 한 무리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공안국 부국장도 직접 왔고 두 사람은 납치됐다. 왕하이첸은 한 달간 감금돼 박해받았다. 이 기간에 그는 경찰 천이룽(陳一龍)에게 불법적인 심문을 받았다.

왕하이첸은 장기간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고 집에서의 일상이 감시당했다.

3. 세 차례나 세뇌반에 납치돼 박해당하다

2004년 8월 말, 다저우현 ‘610(파룬궁 박해기구)’, 교육국, 향 정부, 학교 측이 조직한 일당이 왕하이첸을 다저우 외딴 지역에 있는 ‘룽텅산장(龍騰山莊)’ 세뇌반에 납치해 강제 ‘전향’(수련 포기) 박해를 가했고, 세뇌반이 해체된 2005년 1월에야 왕하이첸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07년 다음 학기가 시작된 직후, 왕하이첸은 다저우시 다바(達巴) 교차로 언덕에 있는 이른바 ‘법제센터’에서 세뇌 박해를 받았는데, 2008년 설날 며칠 전 집으로 보내질 때까지 계속 박해를 받았다.

2010년 11월 24일, 한 젊은 경찰이 학교에서 왕하이첸의 머리채를 잡고 몇 사람이 손과 허리를 잡아당기며 20개가 넘는 돌계단으로 그를 끌어내려 다저우시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그는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풀려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세뇌반은 직장에서의 해고, 강제노동 처분, 징역형 등으로 위협했다.

4. 부당한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자저우 감옥에 비밀리에 납치되다

2019년 7월 27일, 다저우 경찰들은 열쇠공을 불러 민가에 침입해 단체로 법공부를 하던 파룬궁수련자 26명을 납치했다. 그중 왕하이첸과 덩밍즈(鄧明志)는 다저우현 구치소에, 허다추이(何大翠), 정둥펀(鄭東芬), 뤼정민[呂正敏 혹은 뤼청민(呂成敏)]은 다저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2020년 12월 29일, 왕하이첸은 다저우현 법원에서 부당하게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5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그는 중급법원에 항소했지만 억울한 원판결이 유지됐다. 2021년 8월 5일, 왕하이첸은 비밀리에 쓰촨성 자저우 감옥으로 이송됐다.

5. 자저우 감옥에서 위독해질 정도로 박해받다

2021년 7월, 왕하이첸이 자저우 감옥에 이송된 후, 감옥 측은 강제 전향을 위해 육체적으로 잔혹하게 학대하고, 보름간 강제로 쪼그려 앉아있게 했다. 매끼 대략 40g 정도만 주고, 잠을 못 자게 했으며, 화장실 사용도 금지해 그는 매분 매초 고통 속에서 시달렸으며 몸은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자저우 감옥의 일반적인 전향 수단은 초밥먹기(吃秒飯)다. 매우 뜨거운 밥을 몇십 초 만에 먹어야 해서 먹기가 힘들었다. 그 목적은 수련자를 굶주리게 해서 항복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4명의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를 배치해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인신 자유를 빼앗아, 파룬궁 수련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고 양심을 어기게 해서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시키려고 했다.​

박해 수단은 모든 감옥 구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며, 속박옷(束縛衣) 착용, 고춧물 주입, 여름철 철모 착용, 여름철 이불솜으로 감싸기, 햇빛 노출, 독방 감금, 시체 선반(帶死人鐵架, 약 50kg) 운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박해했다. 제10구역은 전향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자와 규칙을 위반한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곳으로, 이곳에서 사용되는 방법은 매우 잔인하다. 일반적으로 10구역에 감금된 지 한 달이 지나면 몸이 심하게 변형되고 체중이 30kg 이상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보기에 매우 무섭다. 10구역의 박해 사망률은 감옥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박해 방법이 얼마나 잔인한지 상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바로 ‘감옥 중의 감옥’이었다.

6. 가족을 속여 ‘병보석’을 신청하게 하고,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며 책임을 전가

원래 젊고 건강했던 왕하이첸은 2022년 자저우 감옥에서 혈변 증상이 나타났는데, 직장암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결국 2023년 3월 8일 청두시 진탕 감옥 병원에 입원했다. 감옥 병원 측은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우니 빨리 병보석을 신청하라고 했다. 가족은 병보석을 신청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다주현 국보 대대였다. 국보 대대장 랴오즈보(廖志波)는 ‘사교방지사무실(防邪辦)’과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사교방지사무실 책임자는 국보대대만이 정확한 상황을 알고 있다고 했다. 다시 국보대대로 찾아가자 랴오즈보는 병보석에 동의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왕하이첸의 이름이 사망 전후를 포함해 외국 사이트(명혜망)에 게재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저는 저 자신만 보장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랴오즈보는 “당신이 가서 그들(파룬궁수련자)과 대화하세요”라고 말했고, 가족에게 충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다주 출신 수련자 마(馬) 씨와 왕(王) 씨를 ‘전향’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 후에도 그들은 계속 각종 이유를 들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국보대대는 또 사법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다주현 사법분국의 병보석 담당 직원 렁원리(冷文莉)는 또다시 다주시 정법위, 국보대대, 사법국, 성 감옥관리국, 자저우 감옥 등 여러 부서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부서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병보석을 지연시키며 책임을 전가했고, 몇 달이 지나도록 왕하이첸의 병보석은 처리되지 않았다. 결국 감옥 병원은 왕하이첸 몸에 암세포가 이미 전이됐다고 통보했다. 병원은 또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반복해서 요청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지연하는 과정에서 7개월 이상이 지났는데, 이때의 왕하이첸은 이미 사경에 이르렀고 감옥 병원 중환자실에 여러 번 입원했다.

다주현 정법위와 다주현 국보대대가 밝힌 병보석 거부 이유는 우선 왕하이첸이 다주현 파룬궁의 ‘책임자’(박해 이전에 다주현 파룬궁 보도소장)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그의 아들이 감옥 관리원으로 다저우시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감옥관리국은 그가 병보석 후 수련을 계속해 건강이 회복되면 박해에 대한 황당무계함이 증명될까 봐 두려워했고, 마지막으로 자저우 감옥 측은 그가 ‘감옥 중의 감옥’의 잔인한 수단을 폭로할까 두려워 석방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7개월이 넘는 시간을 들여 다주현, 다저우시, 자저우 감옥, 성 감옥관리국을 오가며 다양한 어려움과 책임 전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왕하이첸의 병보석은 결국 승인되지 않았다. 마침내 10월 10일, 성 감옥관리국은 파룬궁수련자는 병보석을 받을 자격이 없고, 사망 후 시신을 돌려보내는 ‘녹색 통로’만 통과할 수 있다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았다. 가족은 인명을 초개처럼 여기는 모든 관련 부서를 고소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감옥 측은 황급히 “우리가 돌아가서 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틀을 더 주겠다고 했다.

10월 11일 새벽 1시, 왕하이첸은 구급차를 타고 감옥 병원에서 다주현 사법국으로 이송돼 석방됐다. 몸이 너무 약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없자 친척들이 업어서 집으로 데려갔다. 동시에 감옥 병원은 박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 모든 의료비, 책임 및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건강한 생명이 학대당해 사경에 이르렀는데도 감옥 측은 완전히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친척들은 24시간 그를 간호했다. 그는 또 매일 사법국 관리자에게 도착 보고를 해야 했고, 병원에 가려 해도 신청해야 했으며 승인받은 후에야만 갈 수 있었다. 왕하이첸은 직장에서 해고된 지 오래돼 수입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었으며, 5만 위안의 벌금과 입원비를 모두 본인 부담으로 내야 했기에 가족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줬다. 집으로 돌아온 지 30여 일만인 2023년 11월 20일 정오, 다주현 중의원 병상에 누워 있던 왕하이첸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왕하이첸의 시신은 시골 친척 집에 묻혔다. 다주현 정법위와 국보 대대는 아들에게 보증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고, 외부에서 왕하이첸이 박해로 사망한 것에 대해 알 수 없도록 차단하려 했다. 또 파룬궁수련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참석하면 즉시 체포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많은 경찰이 현장을 지키기 위해 파견됐다. 국보 대대장 랴오즈보는 장례식 전날 오후 한 시간 넘게 가족을 협박하며 왕하이첸의 상황을 친구와 친척에게 알리는 것을 금했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30/4701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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