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네이멍구 통신원) 네이멍구 싱안(興安)맹 투취안(突泉)현 파룬궁수련자 량리신(梁立新)이 창춘시 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량리신은 지린성 창춘시에 있는 딸 집에서 생활하던 중,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2023년 3월 창춘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주타이(九台)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이후 창춘시 구치소로 이송됐다가 6일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량리신은 2023년 3월 창춘시 차오양(朝陽)구 구이린(桂林)로 파출소 경찰 4명에게 납치됐고,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구이린로에서 찍은 ‘공산당 조직 탈퇴’ 부착물 사진이 량리신이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량리신은 사당(邪黨: 공산당)에 의해 부당한 선고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납치된 후 믿음을 견지했고 ‘수련 포기 각서’를 쓰거나 서명하지 않았다. 량리신은 주타이 구치소에 감금된 후 다시 창춘시 구치소로 넘겨졌다. 파출소 경찰은 량리신을 검찰로 넘기기 위해 모함 자료를 준비했다.
그러나 량리신은 납치돼 6일간 감금된 후 고문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구이린로 파출소와 주타이 구치소, 창춘시 구치소에서 박해받았으므로 네이멍구 고향의 친척과 친구들은 자세한 상황과 책임자를 알지 못한다.
파룬궁 수련으로 건강과 행복 얻어
량리신은 네이멍구 투취안현 공상국 직원이었다. 량리신은 어린 시절 가정의 불행으로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고, 난잡한 기공을 숱하게 배우며 많은 돈을 썼지만 건강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량리신은 1997년 8월 15일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끝까지 읽지 않고도 여러 해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수련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쇠약, 위경련, 관절염, 담낭염 등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그때부터 량리신은 건강과 즐거운 인생을 누리기 시작했다.
불법 노동수용소 감금과 두 차례 부당한 선고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정권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량리신은 2001년에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고, 2004년과 2013년에도 각각 부당한 7년 형과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다음은 량리신이 수년간 받은 박해 기록이다.
1.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려다 노동수용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돼
2000년 12월, 량리신은 다른 수련자 3명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결백을 밝히기로 하고 랴오닝성 다스차오(大石橋)시에서 모이려 했다. 량리신이 다스차오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 전에 집에 전화를 걸자 남편이 받았다. 남편은 직장에서 그녀를 찾고 있으니 빨리 돌아오라며, 그래도 오지 않으면 직장도, 가정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고 했다.
량리신은 파룬궁이 박해받고 있으니 베이징에 가서 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계속 가기로 결심했다. 다스차오 기차역에서 량리신과 세 명의 수련자가 베이징행 표를 사려고 할 때, 지방 불량배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다가와 신분증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그녀들을 납치했다.(당시 그녀들은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았음)
량리신과 수련자 3명은 다스차오 파출소에 불법 감금돼 하룻밤을 보냈다. 경찰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음 날 량리신 등을 현지의 양로원으로 끌고 갔다. 그곳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한 정신질환자는 밤새 노래를 불렀고, 한 사람은 복도에서 소변을 보았으며, 음식은 옥수수죽뿐이었다.
양로원 책임자는 량리신에게 이름을 물었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량리신은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해 주소를 알려줬다. 이후 싱안맹 투취안현 공안국 사람들이 그녀들을 납치하러 왔는데, 납치를 위해 오던 차량이 큰 나무에 부딪혀 파손됐다.
이후 공안국의 장(張) 국장과 추이(崔) 대장 등이 차량 두 대를 더 몰고 와서 그녀들을 납치했다. 또 한 여경은 량리신 등 수련자들의 몸을 불법 수색해 돈을 모두 강탈해 갔다.
량리신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추이 대장은 량리신에게 집으로 보내준다고 거짓말하고 구치소로 납치했다. 구치소에서는 매일 옥수수죽만 먹였다. 량리신은 61일간 불법 감금됐고 불법적으로 2년 6개월 강제노동을 받았다.
2001년 2월, 량리신은 싱안맹 짜라이터(紮賚特)기 투무지(圖牧吉)진 여자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는데, 이 수용소의 1중대가 특히 사악했다.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은 수련자는 낮에 일한 후, 밤에 서 있거나 고문을 당했다. 량리신은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다리가 부러진 스무 살 정도의 여성 수련자를 보았는데, 그녀는 맞아서 다리가 부러져 한쪽 발로 뛰면서 이동했다. 량리신은 4~5명의 죄수가 단식 중인 수련자를 땅에 쓰러뜨려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것도 보았다.
량리신은 2중대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2중대의 ‘전향’ 수단은 매일 세뇌 자료를 주입하고 집중해 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농사일을 강요당했는데, 새벽 3~4시에 나가서 일하고, 정오에 한 시간 반을 쉬고, 저녁 7~8시에 일을 마치며 매일 13~14시간을 일해야 했다. 어느 날 량리신은 지쳐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식당에 가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량리신은 반년이 넘어가자 온몸이 야위어 체중이 15kg 이상 빠졌다. 그렇게 1여 년을 보냈다.
2. ‘장쩌민 공개재판’ 전시판 제작 후, 부당한 7년 형 선고받아
2004년 어느 날, 량리신은 싱안맹의 한 간판 가게에서 ‘전 세계 장쩌민 공개재판’ 현수막을 만들면서 일부러 글자 몇 개를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가게 여주인의 악의적인 신고로 싱안맹 우란하오터(烏蘭浩特)시 공안국에 납치돼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서 량리신은 노란 조끼 착용, 벤치에 앉기, 식사, 침대에 눕기 등을 모두 거부했다. 7일째 되는 날, 한 경찰이 량리신에게 일어나라고 했지만 량리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이 방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그녀를 일으키라고 명령했지만 그녀들이 손을 쓰지 않자 그녀들까지 괴롭혔다.
15일째가 되자 투취안현 공안국은 량리신을 싱안맹 투취안현 구치소로 납치해 계속 학대했다. 3개월 후, 량리신의 목 아래에 갑자기 혹 하나가 생겼고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15일 후에는 더 이상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 기간에 량리신은 부당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량리신의 몸이 매우 허약해지자 책임을 두려워한 구치소장 니웨이광(倪偉光)이 량리신을 병원에 보내 검사받게 했는데, 의사 여러 명은 진찰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경찰은 량리신을 네이멍구 여자 감옥으로 납치해 학대를 계속했다.
당시 량리신은 온몸이 아파서 자면서 몸을 뒤집을 수 없었다. 또한 침대가 2층으로 배정됐고, 방에 있던 10명이 이야기를 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들은 대장이 시켰다며 자정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낮에는 나가서 8~9시간 일을 해야 했고, 밤에도 매일 10시간씩 잔업을 해야 했다. 음식도 좋지 않아 찐빵 표면에는 온통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감자는 모두 싹이 나서 썩었으며, 배추도 썩은 것이었다.
량리신의 목에 난 혹은 점점 더 커져서 작업장을 오가며 작업할 때 다른 사람이 보고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게 계속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혹에 돌기 세 개가 솟아나자 경찰은 량리신에게 의무실에 가서 고름을 짜도록 강요했다. 거즈 세 조각을 세 개의 돌기에 쑤셔 넣고 다시 끌어내며 고름을 빼냈다. 이후 경찰이 그녀에게 약을 바꾸어 먹도록 강요했는데 약을 먹으니 얼굴이 검게 변했다. 량리신은 공복에 자극적인 약을 먹어 복통이 발생하자 더는 약을 먹지 않았다.
감옥에서는 매년 11월에 이른바 ‘공격전’을 벌인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자를 한 방에 한 명씩 넣고, 죄수 두 명을 붙여 수면 방해, 서 있기 체벌, 전기봉 충격 등을 가했고, 변절자를 동원해 생억지 주장으로 수련을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량리신은 그런 고통 속에서 4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3. 진상 CD 배포 후 부당하게 3년 6개월 형 선고받아
2013년 4월, 량리신은 사람들에게 진상 CD를 나눠주다 사복경찰의 신고로 투취안현 공안국의 한(韓)씨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됐다.
량리신은 구치소에서 매일 연공했고 파룬궁 사부님의 경문을 외울 수 있는 만큼 암송했다. 어느 날 저우(周) 소장이 량리신을 불러내, 연공을 했기 때문에 하룻밤 감금한다고 했다. 다음 날 그녀는 항소심에서 원래의 부당한 3년 6개월이 유지됐다는 통지를 받았고, 그날로 네이멍구 제1여자감옥으로 끌려가 학대를 받았다.
여자감옥에 도착한 량리신은 곧바로 이른바 ‘공격조’에 불법 감금됐다. 그곳에서는 말하는 것이 금지됐고, 감방에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이 금지됐으며, 파룬궁수련자 한 명당 두 사람이 감시했다. 오전과 오후에는 각각 두 시간씩 작은 의자에 앉아야 했다.
캉젠웨이(康健偉)라는 남자 대장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모든 감방을 돌아본 후 온갖 이유로 트집을 잡아 각 감방에 있는 사람들을 집결시켜 ‘전향 수업’을 했고, 파룬궁을 모독하는 동영상을 보도록 강요했다.
량리신이 감금된 감방의 감방장은 왕샤오메이(王曉梅)라는 경제범이었다. 그녀가 매일 량리신에게 전향 수업에 나오는 내용을 듣도록 강요했지만 량리신은 듣지 않았고 왕샤오메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량리신은 서 있기 벌을 받았고 잠을 자지 못했다.
감옥경찰은 또 죄수들에게 각자의 침대에 죄수임을 나타내는 표찰을 걸게 했는데, 그 당시에는 표찰 대신 파룬궁 사부님의 사진을 방바닥, 벽, 화장실 등에 걸게 했다. 량리신은 정오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사부님의 사진을 내렸다. 그러자 대장은 량리신을 사무실로 불러 전기봉 충격을 가했다.
‘610사무실’(파룬궁 박해기구)에 몸담았던 윈위메이(雲玉梅)라는 경제범이 있었는데, 그녀는 량리신이 잘난 체한다고 했다. 위안웨이(袁偉)라는 죄수는 량리신에게 욕하며 뺨을 때려 피를 흘리게 했다.
나중에 량리신은 다른 감방으로 옮겨졌고, 캉젠웨이는 수감자 표찰을 달지 않던 같은 감방의 파룬궁수련자를 때렸다. 량리신이 막자 캉젠웨이는 그녀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다. 그래서 량리신은 며칠 동안 통증에 시달렸다.
캉젠웨이는 또 그 수련자를 다시 사무실로 불렀다. 그녀가 너무 심하게 맞아 위층 침대에 올라갈 수 없게 되자 량리신은 그녀와 침대를 바꾸어 자신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량리신의 혈압은 최고 200~220, 최저 120~130이었는데, 악인들은 량리신의 음식에 약을 섞었다. 량리신이 그것을 발견하고 음식을 먹지 않자 악인들은 강제로 량리신에게 약을 먹였다.
현재 중공의 지속적인 박해를 받아온 량리신은 지린성 창춘시에서 불법 감금된 지 단 6일 만에 고문으로 사망했다. 량리신이 박해로 사망한 세부 상황과 책임자를 파악할 수 있도록, 여건이 되는 수련자 분들이 도움을 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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